북한이 예고한 '육로통행 제한 시한(12.1)'이 열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남북관계의 파국을 막기 위한 각계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북한의 강경기류가 재차 확인되고 남북관계가 악화일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에도 정부의 대북정책에 이렇다 할 변화는커녕 최소한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대책도 나오고 있지 않아, 시민.사회.종교 단체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정부의 안일한 인식으로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감이 팽배하다.

◇ '최악 상황 막자' 각계, 긴박한 움직임 = 종교, 시민사회단체, 학술 및 문화계 등 각계인사들은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시국회의(이하 시국회의)'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남북관계 정상화 촉구 시국회의 발기인 명단

김병상(신부, 몬시뇰), 김성훈(상지대 총장), 김용태(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김윤옥(전 정신대대책협의회 대표), 김종철(전 YTN 사장), 김현(원불교 교무), 박순경(진보연대 상임고문), 박영숙(한국여성재단 이사장), 박용길(고 문익환 목사 미망인), 박형규(목사), 백낙청(6.15남측위 상임대표, 서울대 명예교수), 문창섭(개성공단입주자협의회 회장), 성유보(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범국민행동 운영위원장), 신경림(시인), 안교식(금강산관광발전협의회 회장), 염무웅(문학평론가, 6.15민족문학인남측협회 회장), 영담(불교방송 이사장), 이효재(이화여대 명예교수), 인병선(짚풀문화박물관 관장), 장임원(전 민주화운동공제회 이사장), 정동익(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정성헌(한국DMZ평화생명동산 창립준비위원회 위원장), 최영도(변호사), 최병모(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 상임대표), 한상진(전 서울대 교수), 한승헌(전 감사원장, 변호사), 황석영(소설가), 홍창의(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백낙청 6.15남측위 상임대표를 비롯해 김성훈 상지대 총장, 김종철 전 <YTN> 사장, 박용길 장로, 최병모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 상임대표, 한승헌 전 감사원장, 황석영 소설가 등 각계 28명은 21일 오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 시국회의 구성을 제안할 예정이다.

이들은 20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북측의 분계선 엄격통제 및 적십자 직통전화 단절과 12월 1일 시한 통보는 앞으로 남북관계가 더 나쁜 상황으로 나아갈 수도 있음을 예고하고 있음에도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에서 보듯이 악화일로의 남북관계에 대한 정부 및 정치권의 반응은 여전히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남북관계는 장기 악화의 고비에 서 있으며, 따라서 최악의 상태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는 현 남북관계 상황을 국민들에게 더 널리 알리고 남과 북의 양 당국이 더 이상 남북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호소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내달 2일 제1차 시국회의를 소집해 각계의견을 수렴하고 구체적 사업계획 등을 확정, 이후의 상황에 맞춰 후속 시국모음을 이어갈 방침이다.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를 비롯한 보수성향의 목사들이 포함된 '계속되는 남북관계 경색을 우려하는 기독인' 같은 날 오전 서울 한국기독교회관 대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부 보수단체들의 대북 전단(삐라)살포 중단과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를 촉구한다.

이들은 미리 배포한 성명을 통해 "현 정부는 이전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한 차별화에 너무 집착해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고 퍼주지 않겠다는 원칙만 고수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면서 "북한의 내부 변화를 목표로 하는 대결 유발적 정책을 강행하기보다 북핵 폐기와 북미, 북일 수교와 경제 협력, 평화체제 정착 등 보다 유연하고 포괄적인 접근을 균형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을 주문했다.

최근 남북정당교류 차원으로 방북해 조선사회민주당측 인사들과 접촉, 북측의 기류를 파악하고 돌아온 민주노동당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추진하는 등 긴박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승흡 대변인은 20일 브리핑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제정당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를 제안하면서 "연석회의를 통해 경색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하고, 정책 대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긴급 대책 논의를 제안한다"며 "남북 정상회담을 경험한 두 분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남북문제의 해법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방북결과에 대한 통일부 장관 면담 이후 이명박 대통령에게 긴급회동을 제안하고 추진해 나가겠다"며 "비상한 위기국면 속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강기갑 대표가 만나는 자리가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진보연대도 이명박 정부에 남북관계 정상화를 요구하며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을 촉구하는 릴레이 비상행동을 28일까지 전개한다.

남북공동실천연대, 민가협양심수후원회, 사월혁명회, 전국빈민연합,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한국청년단체협의회 등 8개 단체도 같은 날까지 노상 시국농성에 돌입했다.

각계의 움직임이 이처럼 긴박하게 돌아가는 배경은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다음 수순으로 개성공단 폐쇄, 관광 중단까지도 예측하고 있다.

'시국회의'를 추진 중인 한 시민사회단체의 관계자는 "상황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개성공단도 중단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며 "특사니 뭐니 이런 것들은 변화를 만들 수 없는 조치들이고, 6.15 10.4선언에 대한 '원칙적인 입장'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등의 '실질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정부가 이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보수층의 지지와 결집을 높여야 할 상황이어서 현실적인 기대치가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고 덧붙였다.

북한 조선사회민주당측과의 접촉을 통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북한의 강경기류를 파악하고 돌아온 박승흡 민노당 대변인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전면전환 없이는 남북관계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했다"며 "우리 정부의 구체적이고 성의 있는 후속조치가 없을 경우 남북관계의 단절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고 우려했다.

◇ "정부, 삐라살포 막아라" = '최악의 상황'까지 염려되고 있는 현 남북관계에서 일부 보수단체들의 대북 전단(삐라)살포 문제는 '화약고'다. 21일에도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과 납북자가족모임(회장 최성용)은 대북 전단살포를 강행했다. 때문에 이들 보수단체에 전단살포 중단을 촉구하는 것은 물론 정부가 강력한 제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기독인 모임'은 21일 발표할 성명에서 "현 정부가 중시하는 '남북기본합의서' 1장에는 '상호 비방과 중상 금지'라는 원칙이 명시돼 있다"면서 "대한민국 전체 국민이 신성한 안보의무에 입각해 진중하게 검토하고 결정해야 할 중대 사항을 국민과 국회의 동의 없이, 일부 단체들이 강행하는 것은 더 이상 방임돼서는 안 된다"고 전단살포 중단을 촉구했다.

민노당은 정부가 전단을 살포하는 단체들을 적극적으로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승흡 대변인은 전단살포 문제에 대한 별도 브리핑에서 "무단투기죄, 환경오염죄, 평화위협죄를 묻는 한이 있더라도 당장 중단시켜야 한다"며 "이들 단체에 대한 지원금 중단 카드를 꺼내서라도 압박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통일부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합니다. 중단할 수 있는 제반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해야 한다. 대통령은 삐라 살포 중단을 요청하는 대국민 호소문이라도 발표해야 할 상황"이라고 거듭 정부의 적극적 대처를 요구했다.

민주당 남북교류협력특별위원회도 성명을 발표, "현재 남북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느냐, 대화와 화해로 나아가느냐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면서 "남측 민간보수단체들의 대북 비방 전단 살포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태도는 향후 남북관계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정부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했다.

정부는 유관부처 합동으로 이 문제에 적극 대처하겠다고 밝히면서 종전 보다 압박수위를 높이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20일 전단살포에서 이렇다 할 제재를 하지는 않았다.

한편, 개성공단의 직접적 이해당사자로 북한의 '12.1' 조치 예고에 가장 불안해 하고 있는 개성공단입주기업협의회(회장 문창섭)는 오는 25일 입주기업 대표들이 개성공단을 단체방문, 개성공단관리위원회(위원장 문무홍)와 북측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총국장 주동찬) 개성공업지구사무소를 찾아가 개성공단이 지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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