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 나가면 마음이 들떠지는가 보다. 종종 한국의 정치인들은 국내에서보다 외국에서 중대선언을 발표하곤 했다. 특히 미국을 방문하는 경우 한국의 대통령은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에 숭미(崇美)적 발언을 쏟아낸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 덕에 늘 피해를 입는 쪽은 북한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정치인은 미국에만 가면 북한을 무슨 동네북마냥 두들긴다. 백번 양보해 립서비스 차원이라고 해도 미국만 그냥 ‘순수하게’ 찬양하면 됐지 왜 꼭 북한을 끼워 넣어 두들기냐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다. 이쯤 되면 단순한 찬양이 아니라 아부가 된다. 바야흐로 미국에 잘 보이기 위해 북한을 희생양으로 삼는 연속극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다. G20 금융정상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고 이어 브라질-페루를 순방 중인 이 대통령이 이국(異國)에서 대북문제와 관련해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6일(현지시각) 워싱턴 디시(DC)에서 있은 특파원 간담회에서 “임기내 대북정책 목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국의 국익은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핵 없이 통일하는 것”이라면서 “북한문제의 경우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통일하는 게 최후의 궁극 목표”라고 강변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이라니, 깜짝 놀랄 일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남북간 통일문제는 ‘먹고 먹히는 문제’가 아니다. 즉, 남북통일은 흡수통일도 적화통일도 아닌 남북의 양 체제를 인정하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이란 흡수통일을 의미한다. 이는 그간 남북이 합의를 이뤄온 통일문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문제다. 한 나라로 치면 국기(國基)를 흔드는 문제다. 어찌 한 나라 최고지도자의 입에서 이런 말이 아무런 제어도 없이 쉽게 나올 수 있을까? 이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안중에도 없을 뿐더러 냉전시대로 회귀하자는 대결주의적 대북관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오바마의 미 대통령 당선 이후 북미정상회담이 성큼 다가왔다. 이 대통령은 “북한 핵을 포기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미국 대통령(버락 오바마 차기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그 이유다. “한미관계가 완벽하다면 (북미정상회담이)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는 것이다. 한미동맹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다. 마치 ‘한미동맹 주술론’마저 풍긴다. 이는 옳지 않다. 한미동맹이 한반도 문제에서 최우선 가치가 될 수 없을 뿐더러, 설사 그렇더라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가치에 절대절명의 목을 거는 것은 지도자가 택할 일이 아니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미국도 국익을 위해 움직인다. 미국은 국익에 북한이 이득이라면 남한을 버리고 북한을 택할 수도 있다는 국제사회의 냉혹함을 잊어선 안 된다. 게다가, 그에 앞서 오바마 당선 이후 당장 남측의 대북정책과 미국의 그것이 엇박자가 나 한미관계에 균열이 생길 공산이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통미봉남’(通美封南)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이 대통령은 향후 북미관계의 밀착을 예상이라도 하듯 “혹자는 미국이 직접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면 한국이 소외될 것이라고 말하는데...”하고는 “통미봉남이라는 폐쇄적 생각을 갖고 봐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자, 보자. 통미봉남의 주체는 북한이다. 그런데 북한은 6.15선언 이후 단 한번도 통미봉남정책을 쓴 적이 없다. 이는 남북관계를 단절시킨 김영삼 정부 때의 일일 뿐이다. 6.15 이후 북한은 오히려 ‘우리 민족끼리’ 이념에 따라 민족화해와 남북공조를 주장해왔다. 일부에서 통미봉남을 우려할 정도라면 이는 남한의 자업자득 면이 크다. 북한은 남한과 대화를 요구해 왔지 대결과 봉쇄를 해 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남한이 북한의 대화 요구에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회피해 온 것이 사실이다. 북한은 지난 12일 군부의 전통문을 통해 남한의 ‘반공화국(반북) 대결소동’을 지적하면서 ‘12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을 통한 육로통행의 제한, 차단’ 방침을 알렸다. 남한에서 대화를 하자고 나서도 시원치 않을 판에 이 대통령은 대결주의적 대북관과 한미동맹 주술론에 빠져 있으니, 이래서는 통미봉남이 현실화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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