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오전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단통협의 방북불허 사유에 대해 '정부를 을사오적으로 비유' 했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우리 정부는 을사오적으로 지칭하면서 방북신청을 한 것에 대해서 허가하는 것은 좀 논리적으로도 모순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17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신관 제2브리핑룸에서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일일브리핑에서 “정부는 어제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의 방북신청을 11월 16일자로 방북승인을 신청한데 대해서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서 불허를 결정하고 통보를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부가 이 행사를 불허한 이유는 이 행사에서 남과 북이 공동으로 채택하려고 하는 공동호소문의 내용이 우리 정부를 을사오적으로 비유하는 등 도를 넘게 정부를 비난하는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불허사유”라는 것이다.

▲ 정부의 관계기관 협의 과정에서 문제가 된 공동호소문의 일부. [자료사진-단통협]

그러나 지난 15일 남측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단통협)과 북측 ‘단군민족통일협의회’가 실무협의를 거쳐 합의한 ‘을사늑약 103주년 규탄 민족자주역사대회’ 공동호소문에는 남측 정부를 ‘을사오적’이라고 지칭하는 대목은 없다.

다만 “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외세의 부당한 간섭과 ‘을사5적’과 같은 사대매국세력이 있는 한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은 언제가도 지켜낼 수 없다”고 한 대목이 있는데, 정부 스스로 이를 남측 정부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기자의 확인을 요청하는 질문에 김호년 대변인은 “수정한다. 지칭이 아니고 비유다”고 해명하고 “빠른 시간 내에 확인을 해서 알려주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만일 정부가 공동호소문에서 지칭한 '사대매국세력'을 남측 정부라고 받아들였다면 스스로 사대매국세력을 자칭하는 꼴이 돼 파문이 예상된다. 

단통협 규탄 기자회견, "방북불허 사유 명명백백 밝혀야 할 것" 

▲ 17일 오전 단통협 관계자들은 통일부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한편 단국민족평화통일협의회는 17일 오전 10시 통일부 앞에서 윤승길 사무총장의 사회로 통일부의 방북불허 조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이 낭독한 ‘을사5조약 규탄 남북공동 민족자주역사대회 남측 대표단 방북불허에 대한 성명서’를 통해 “통일부는 16일 오늘(17일) 북측 개성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을사5조약 규탄 남북공동 민족자주역사대회’ 남측 대표단 85명의 방북불허를 통보해왔다”며 “정부당국은 방북불허 사유를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 김삼렬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오른쪽)이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들은 “북측 대표단은 16일 현재 행사 장소인 개성에 집결, 남측 대표단을 맞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며 “이런 상황 하에서 통일부의 일방적인 방북불허 통지는 북측 대표단과의 신의 문제는 물론 ‘단통협’ 산하 범민족진영 1백 20여개 회원단체가 결집해 펼치고 있는 민족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당국으로부터의 재정적 지원은 고사하고 오직 민간단체 스스로의 시간과 비용, 의지와 뜻만으로 힘겨운 공동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해온 민간단체의 순수한 뜻을 정부당국이 앞장서 가로막아서는 안 될 것이다”며 “이제라도 통일부는 민간차원의 순수한 민족공동행사를 받아들여 ‘단통협’ 대표단의 방북을 승인함으로써 민족의 존엄과 자주를 향한 대오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엄중 촉구한다”고 밝혔다.

<추가, 오전 11시 55분> 통일부 "우리측을 '을사5적'에 비유"

통일부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정부가 이 행사를 불허한 이유는 이 행사에서 남과 북이 공동으로 채택하려고 하는 공동호소문의 내용이 우리 정부를 을사오적으로 비유하는 등 도를 넘게 정부를 비난하는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불허사유”라고 밝혔던 부분을 "우리측을 '을사5적'에 비유하는 등"으로 수정한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이날 오전 해명자료를 통해 "정부가 이 행사를 불허한 이유는 행사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채택하려고 하는 '공동호소문'의 내용이 우리측을 '을사5적'에 비유하는 등 행사의 목적을 벗어나 도를 넘는 남측 비난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동 단체가 그간 팩스교환과 개성 실무협의(11.15) 등을 통해 '공동호소문' 내용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 온 점은 있으나, 결과적으로 남측을 심히 비난하는 내용의 '공동호소문'을 채택하기 위해 우리 민간단체가 방북하도록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는 "남북 민간교류가 교류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게 진행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통일부 관계자는 "남측 정부라고 했을 때 오해가 있을 수 있어 '우리측'이라고 수정했다"며 "(공동호소문) 문맥상 '을사오적'은 우리측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동호소문에는 '보수세력', '사대매국세력' 등의 표현은 등장하지만 이를 '남측'에 한정한 문구는 없어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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