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동당과 KIN이 재일동포 단체와 일본 내 인권.교육단체들과 함께 2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재일한국인 교원에 대한 차별을 시정할 것을 일본 정부에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통일뉴스 박현범 기자]

1993년 교원에 임명돼 현재 일본 고베(神戶)시립타루미 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재일동포 한유치(43)씨는 지난 4월 3일, 4년 동안 해 왔던 2학년 부주임의 직위와 교내 7개 위원회의 부위원장직 자격을 박탈당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에서다.

공립학교의 교사가 될 수 없었던 재일동포들은 지난 1991년 한.일 외무장관이 '한일법적지위협정에 기초한 협의 결과에 의한 각서'에 합의에 따라 1992년부터 교원채용 전영시험에 응시자격을 부여받으면서 비로소 공립교원의 길이 열렸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재일동포를 비롯한 외국인을 '상근강사' 직위에 한정하는 '재일한국인 등 일본 국정이 없는 자의 공립학교 교원임용에 대하여'라는 통달을 각 지차제에 내려 보내 경력이 쌓여도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없게 했다.

한.미 외무장관이 '91년 각서'에 사인을 직후인 그 해 3월 22일 각도도부현(都道府縣) 지정도시 교육위원회 앞으로 내려진 통칭 '91년 통달'은 공립학교 교원채용 전형시험에 통과해도, 공무원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통달은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일본국적을 필요로 한다고 정한 '공무원에 관한 당연한 법리'에 의거, 공립학교의 교유(敎諭)에 대해 "교장이 행하는 교무운영에 참획(參劃)하는 것으로써 공공의 의사 형성의 참획에 종사하는 것을 직무로 하고 있다고 보아 일본국적을 소유하지 않는 자는 임용할 수는 없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재일동포를 비롯한 외국인들은 임용은 가능하지만, 이들의 지위인 '상근강사'는 '공무원에 관한 당연한 법리'에 적용되는 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1992년부터 시작된 공립학교 교원채용 전형시험이 "일본인과 동일한 기준으로 실시하는 것이며, 일본국적을 소유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 별도 특별의 채용전형시험을 실시하는 것은 아니"라며 채용에서는 일본인과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지만 채용 후에는 차별이 가해지는 것이다.

이 통달에 따라 상근강사는 수업 등 교육지도 면에서는 교유와 동등한 역할을 맡지만, 교장이 행하는 교무의 운영에 관해서는 항상 교무주임이나 학년주임 등 "주임의 지도.조언을 받아 보조적으로 관여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며, 교무의 운영에 '참획'하는 직이 아니"다.

그런데 한유치씨는 어떻게 4년간이나 부주임으로 일해 왔을까? 더구나 한씨는 학교장이 임명했다.

현재 이 통달은 모든 지자체에서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지 않다. 각 지자체의 공립학교마다 제 각각이라는 얘기다.

한씨의 경우도, 학교장의 임명으로 부주임직을 수행해 오다 시교육위원회가 '91년 통달'을 근거로 "부주임이 될 수 없다"고 하자 교장은 하루아침에 교무분장표일람표에서 한씨의 이름을 지우게 했다.
한씨와 같이 효고현의 한 공립학교에 재직 중인 다른 재일동포 교사 역시 주임으로 지내다 관할 현교육위원회가 이를 알고 해임시켰다. 효고(兵庫) 현에 있는 28명의 재일동포 교사들 중 교무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직위를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게 됐다.

'정부, 일본사회의 재일동포 차별 시정에 적극 나서라'

지구촌동포연대(대표 배덕호, KIN)측에 따르면 또 다른 학교의 한 재일동포 교사는 주임으로 있는 대신 그 직에 따른 수당을 받지 않기로 했다. 차별의 형태도 제 각각인 것이다.

재일동포 사회와 일본 내 인권.교육단체들은 지난 16년여 동안 일본 공립학교 내에서 소리 없이 진행돼 온 이같은 '교사차별'을 없애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한유치씨를 비롯해 효고재일한국조선인교육을생각하는모임, 효고재일외국인인권협회원, 전국재일외국인교육연구소 등 단체는 이같은 문제점을 국내에 알리고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에 차별을 없애도록 적극적 외교를 펼쳐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교육현장에서 민족(국적)문제로 차별과 계급의식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재일한국인교사는 일본교사보다 한 단계 낮은 교사이다'는 인식이 동료교사들은 물론 학생들과 학부모 사이에 형성되는 것에 대한 우려다. 지금까지는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상근강사'인지 아닌지 알지 못했지만, '91년 통달'로 차별이 '공식화'될 수 있다.

▲ 4년동안 수행해 온 부주임직을 하루아침에 박탈당한 한유치 재일동포 교사.[사진-통일뉴스 박현범 기자]
28일 민주노동당, KIN과 함께 국회에서 기자회견 열어 한국정부의 적극적 대응과 일본정부의 전향적 태도를 촉구한 한 한씨는 "학생들한테는 일본의 오래된 세대가 가지는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이들의 일이라고 가르쳐 왔다"며 "학교 내에서도 민족차별을 받는 학생들도 봐 왔고, 취직을 해도 차별을 받는 학생들을 봐 왔다. 저는 학생들한테 차별대우를 받아도 지치지 말라고 가르쳐 왔다. 제가 받은 차별에 지쳐 버리면 제가 한 말, 행동은 거짓이 돼 버린다"고 말했다.

고니시 카즈하루 전국재일외국인교육연구소 사무국장은 "재일한국인의 90%가 일본학교에 다닌다. 이런 학생들에게 재일한국인 선생님은 희망의 별"이라면서 "재일교포 아이들의 부모들은 일본에서 제대로 취직도 못하고 본명도 못 쓰고 공무원도 될 수 없었다. 이런 희망의 별인 재일교포 선생님이 실제로는 일본교사보다는 한 단계 낮은 것을 알게 되면 얼마나 슬퍼할까? 한국 선생님이 낮은 계층에 있다고 생각하면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낮은 계층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재일교포들은 해방 60년 동안 한국국적을 유지하면서 살아왔다. 이 문제는 이런 재일교포에 대한 탄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탄압의 문제는 일본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본 지자체를 상대로 싸워왔고 앞으로도 싸워갈 생각"이라며 한국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정부에 적극적 외교를 벌일 것을 주문했다.

동포사회와 일본 내 인권.교육단체가 일본 사회 내에서 알게 모르게 진행돼 온 이같은 '교사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하기 시작했지만,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서고 있다. 이 문제가 공론화 되도 일본 정부가 이를 시정하기는커녕 '91년 통달'을 강화할 경우, 그나마 각 학교와 지자체의 재량에 따라 교무운영에 정상적으로 참여해 왔던 재일동포 교사들마저 '상근강사'로 격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의중 KIN 운영위원장은 "이 문제가 간단하지가 않다. 학교 자체적으로 유야무야 돼 오다, 이번에 처음으로 이 문제를 공식화시켰는데 만약에 우리가 진다면 앞으로 모든 시들도 그렇게 해야 되는가 하면서 일반화 되는 효과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선 일본 정부가 '91년 통달'을 철회해야 한다고 지적한 황 운영위원장은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언론이 이같은 사실을 조금 알려주기만 해도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듭 한국정부와 여론의 지지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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