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역사적인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가 이루어지자 북한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던 87년 KAL858기 사건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14일 ‘KAL858기 가족회’(회장 차옥정)과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위원장 김병상 신부)는 미국 국무부와 북한 외무성, 한국 외교통상부에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 과정에서 KAL858기 사건에 대해 어떤 논의가 이루어졌는지 묻는 질의서를 발송키로 했다.

KAL858기 가족회 류인자 부회장은 “저희 사건으로 인해 북한이 테러지원국으로 묶여졌지만 해제시키면서 저희 KAL858기 가족들에 대한 사과도 없었고 논의된 내용도 알 수 없다”며 “사건의 진상과 오고간 내용을 알고 싶다”고 말했다.

시민대책위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천주교인권위 김덕진 사무국장은 “북한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이유가 KAL858기 사건이기 때문에 테러지원국을 해제하면서 분명 미국과 북한 사이에 논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며 “그간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해왔던 가족회와 시민대책위는 미국과 북한, 그리고 우리 정부의 외교담당 부서에 그 내용에 대해서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공식적으로 보낼 예정이다”고 전했다.

그러나 14일 정부 관계자는 <통일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테러지원국 해제는 지난 6개월간 테러행위가 없었고 앞으로 안 하기로 하면 법적 요건은 갖추어진다”며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정치적으로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KAL858기 사건이 개별사건으로 심도있게 검토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판단이다.

미국은 87년 11월 29일 발생한 KAL858기 실종사건을 북한 테러범에 의한 공중폭파로 단정지은 한국 안전기획부의 수사결과 발표(88.1.15) 직후인 88년 1월 2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려놓았다. 당시 미국은 독자적인 수사결과 KAL858기 사건과 관련해 ‘북한 공작원에 의한 테러’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988년 2월 16.17일 양일간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당시 긴급회의 의장국인 미국은 KAL858기 사건의 책임소재가 북한에 있다는 결의안 채택을 추진했지만 안기부의 수사결과가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채택이 무산되었다. 국제적으로 KAL858기 사건의 책임소재가 북한에 있다는 주장이 배척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매년 갱신되는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사유의 첫 자리엔 항상 KAL858기 사건이 있었다. 다만 1999년부터 2002년까지 4년간은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사유에서 KAL858기 사건이 사라졌다가 2003년부터 다시 등장해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따라서 북미간 테러지원국 해제 협의과정에서 KAL858기 사건이 어떻게 처리됐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

실제로 지난해 2.13합의 당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브리핑에서 테러지원국 해제와 관련된 질문을 받고 “검토를 시작하는 게 이치에 아주 맞다고 생각하며 그 기록을 살펴볼 것이다(look at the record)”고 말해 KAL858기 사건 관련 자료검토에 착수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이어 지난해 9월 초 “익명의 미 관리는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의 관건은 KAL858기 사건 개입에 대한 해명을 포함, 몇몇 사안이 될 것이란 견해를 밝혔다”, “KAL기 사건이란 현안이 해결되면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될 것이다”(연합뉴스 9.5자)는 보도와 “톰 케이시 국무부 부대변인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을 삭제하기 위해 ‘민감한 절차(delicate process)’를 진행시키고 있다고 밝혔다”(서울신문, 프레시안 9.6자)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지난 11일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가 취해졌음에도 불구하고 KAL858기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KAL858기 사건은 국가정보원이 스스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를 구성해 이 사건을 7대 의혹사건 중 하나로 선정해 재조사한 바 있고, 이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재조사가 진행중이다.

정부 차원에서 아직도 진상규명이 진행중이며, 특히 KAL858기 가족회와 시민대책위라는 이해당사자가 존재하는 이 사건이 북미간 정치적 협상에 따라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가 취해짐으로써 다시한번 진상규명의 기회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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