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김양희 기자가 ‘평화3000’(이사장 신명자)이 주최한 북측 지원사업장 방문단 일원으로 9월 27일부터 30일까지 3박4일간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평화3000’은 주요 대북 협력사업 중의 하나인 장충성당에 있는 콩우유공장을 현장방문했으며, 아울러 평양시내-백두산-묘향산을 참관하였다. 김양희 기자가 ‘평화3000’과 모든 일정을 함께 하면서 느낀 방북기를 일기식으로 10여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김 기자는 이전에도 두 차례에 걸쳐 평양일기를 작성한 적이 있기에 이번 방북기 제목은 구별을 위해 ‘김양희 기자의 다시 쓰는 평양일기’로 한다. / 편집자 주

▲ 평양순안공항에 도착한 '평화3000' 방북단.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 남짓, 벌써 평양순안공항에 도착했다.

남녘에서 방북증명서를 보고 신원조회를 했던 것처럼 북녘에서는 비행기에서 내리기 직전 초청자 명단과 비교를 해가면서 조회를 하고 허가된 이들만 북녘 땅을 밟을 수 있다. 때문에 초청장을 받지 못한 승무원 등은 순안공항에까지는 왔어도 비행기에서 내려서 사진을 찍거나 할 순 없다. 지난 2005년 10월 5000여명이 ‘아리랑’을 참관하기 위해 한 달 여간 남과 북을 오가던 아시아나 전세기 승무원들은 ‘같이 가서 구경하자’는 참관객들에게 “아! 저희도 내리고 싶어요!” 했었다.

이번 승무원들도 내리지 못하긴 마찬가지, 참관단들도 확인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북측 초청자 명단 순서대로 내려야 했다. 이미 남녘에서부터 내가 내려야 할 순서 등을 알고 갔기에 북측에서의 확인 작업도 별 문제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러나 사실 난 속으로 비행기에서 내리기 직전, 평양순안공항에서 뭔가의 이벤트가 있기를 막연히 바랐는데 너무 아무 일이 없이 서운한 맘까지 들었다.

지난 방북 시 초청자 명단을 대조하던 이가 이전 방북 시 안면이 있었던 리동혁 안내원으로 그는 나를 보자마자 ‘시집갔나?’ 안부를 물었고 ‘아직’이라고 답했었다.

이에 그는 ‘문제 있구만~’ 했다.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받게 된 인사치고 너무 황당하긴 했지만 그만큼 잊지 못할 기억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뭔가 새로운 기사거리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 것이다. 이도 아니라면 리동혁 안내원과의 재회쯤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의 마지막 번호인 나까지 아무 일 없이 신원조회는 끝이 났고 일행은 바로 순안공항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북녘에 초청된 인사들은 북측 입장에서 보면 통일을 위해 분단의 벽을 넘어 온 손님들이기 때문에 지금 찍힌 이 기념사진은 <로동신문>에 실릴 수도 있다. 일행은 짐을 찾고는 바로 조별로 버스에 올라 평양시내로 향했다.

30명 당 한조로 나뉘어 버스 한 대씩을 차지하고 이동을 하는데 우리 조와 함께하는 북측 안내원은 총 3명, 장충성당 신도회의 김철웅(프란체스코) 부회장과 민화협의 박용호 안내원, 리어금(데리사) 안내원 등이다.

일 년 여 만에 다시 찾은 평양 시내

▲ 평양순안공항에서 만난 북측 승무원.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일 년 여 만에 찾은 평양 시내는 놀랄 만큼 또 바뀐 모습이었다. 지난 2007년 5월 방문 당시, 시내 곳곳에는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던 만큼 건물들과 빌딩 숲이 생겼고 거리와 건물은 모두 말쑥했다. 거리 곳곳에는 청량음료 등을 파는 거리매대가 자리하고 영화관에는 ‘유산’ ‘꽃 파는 처녀’ 등의 영화 포스터가 걸려있으며 ‘인민을 위해 복무함’이라고 적힌 전차 등이 거리를 오가고 있다. 창밖에는 어린 아이의 바지를 입혀주는 아버지, 손을 잡고 데이트를 하는 남녀, 분주히 목적지를 향해 오가는 이들 등 활기찬 평양시민들 모습에 1분 1초가 새롭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대동강에는 모래채취선이 떠 있고 평양대극장을 비롯 주요 건물들에 대한 재건 사업이 한창이다. 북녘은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을 맞는 2012년을 강성대국의 해로 맞이하기 위해 우선 인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옥류관, 청류관 등 식당과 평양대극장 등 공연시설 등을 먼저 재정비한다는 기사를 읽은 바 있다.

마치 이곳이 평양이 아니라 유럽의 한 전원도시라는 착각이 들만큼 평양시내와 대동강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창밖을 내다보던 중, 내 옆에 앉은 북측 박용호 안내원은 내 이름표를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아 통일뉴스 기자구만, 근데 언제부터 일했나? 왜 한 번도 못 봤지?” 한다.

순간 멈칫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낯선 사람을 경계해야한다는 교육을 받아온 나는 편안하게 인사를 하며 다가오는 이를 의심하고 있었다.

“통일뉴스를 아세요?”
“아 아다마다...” 하면서 그는 통일뉴스가 지난 몇 차례 방북취재 왔을 때 자신이 안내를 맡았다면서 아는 체를 해왔다.
나는 오히려 그가 너무 많이 아는 것에 의심쩍어 하면서 말을 줄이고 있었다.

만수대동상에서 꼭 마주치는 신혼부부들

▲ 만수대동상에서는 결혼을 막 마친 신혼부부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그러던 중 첫 번째 방문지인 만수대언덕에 도착했다. 화창한 날씨에 이곳은 꾸준히 주민들이 방문해 꽃을 두고 갔으며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신혼부부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예식장을 찾아가면 결혼을 막 마친 신혼부부를 볼 수 있지만 북녘에서는 신혼부부를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만수대동상이 아닐까 한다.

처음 방북 당시만 해도 이곳에서 신혼부부를 발견했을 때 ‘난 정말 운이 좋구나, 이곳에서 신혼부부를 다 만나고...’하며 진심어린 축하 인사를 건넸으나 갈 때마다 어김없이 신혼부부들을 만나게 되면서 기쁨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남녘에서도 커플들이 달갑지 않은 노처녀의 눈에 북녘 커플들이라고 뭐 예뻐 보이는 것은 아니다.ㅋㅋ

어찌됐건 간에 기쁜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우리가 부모에게 의지하고 하소연하는 것처럼 북녘에서는 김일성 주석을 ‘어버이’라고 부르며 이곳을 찾는다. 때문에 이곳은 언제나 신혼부부들과 꽃을 들고 찾아온 주민들을 볼 수 있다.

꽃다발 정도가 아니라 커다란 화환도 꽤 많이 보인다. 화환 모양은 우리와 다른 형식인데 붉은 꽃이 많고 붉은 리본에 황금색 글씨가 적혀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붉은색은 혁명을 의미한다던데 그래서인지, 꽃은 물론이고 구호도 붉은색으로 쓰여 있는 것이 많다.

나 어렸을 적 만해도 흑인들을 깜둥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대다수였지만 이제는 세계화 시대인 만큼 더 이상 깜둥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는 몰상식하게 북녘에 대해서는 빨갱이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쓰고 일다.

중남미에서 붉은 색은 정열의 상징이며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붉은색 옷만을 입고,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만큼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도 붉은 옷을 입고 있으며 사랑을 전하는 헌혈 표시나 적십자 표시도 모두 빨간색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구는데 일조한 우리 국민 모두도 붉은 옷만을 입었는데도 유독 북녘의 붉은색에 색안경을 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만수대언덕에 서있는 만수대동상.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 만수대동상에 바쳐진 화환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화환을 자세히 보니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많은 인원이 다녀간 듯하다. 김일성종합대학은 창립 62주년을 맞았고, 이 기쁨을 함께하기 위해 이곳을 다녀갔다고 했다.

순간 박용호 안내원이 <통일뉴스> 측 관계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사진까지 찍고 있다. 알고 보니 박용호 안내원은 북 민화협의 언론분야를 담당하기 때문에 북녘을 방문하는 남녘의 기자들을 자주 접하고 그러다보니 친한 터였다. 그쪽에서는 열린 마음으로 친근감을 표현한 것인데 나는 오히려 마음을 닫고 경계를 한 꼴이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남북관계에서도 우리 사회는 마음을 열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어려서부터 세뇌된 대로 무조건 ‘북은 나쁘다’는 생각만 갖고 서로 계속 오해만을 하고 있다. 최근 심화되고 있는 남남갈등도 다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고 선입견에 파묻혀 다른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하기 때문에 더 심각해진 것이 아닐까 싶다.

눈과 귀를 닫고 못질에 용접까지 해대던 것을 이제는 그만 둬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실 나부터도 그만둔다고 쉽게 말하기 어렵다. 그만큼 우리의 선입견은 무섭고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박용호 안내원님, 잠깐이나마 의심했던 것 죄송합니다.’

환영오찬, ‘통일과 민족 번영을 위해 건배하자’

▲ 남측 '평화3000'과 초청측인 북측 '조선카톨릭교협회'와의 환영오찬.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양각도 호텔에는 백두밀영의 대형 벽화가 그려진 식당에서 우리 ‘평화3000’ 참관단의 환영오찬이 준비돼 있었다.

조선카톨릭교협회 장재언 위원장은 환영사에서 “이번 방북기간 동안 민족의 성산 백두산을 답사하는 평화3000 참관단은 조국의 자주통일과 번영에 기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며 “10.4 선언 받들고 조국통일 앞당기길 위하여 노력하자”고 말했다.

이에 ‘평화3000 신명자’ 이사장은 답사를 통해 “그동안 ‘평화3000’이 진행한 콩우유 공장, 두부공장, 평양축구장 건립 등은 서로에 대한 동포애적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며 “6.15, 10.4선언에 기초해 남북공동번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장 위원장과 신 이사장은 ‘통일과 민족 번영을 위해 건배하자’며 참가자들에게 건배를 제안했다.

꽃같이 고운 접대원들은 연두색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완두콩국, 다랑어즙구이, 소발통장수곰 등으로 이루어진 요리를 차례로 내왔다.

아직은 점심시간으로 술을 한 잔 하기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은 북녘의 환대와 어려운 시기에 북녘에 왔다는 기쁨으로 몇 차례고 술잔을 주고받았다.

기분만 생각한다면야 계속 만찬을 즐기며 술자리를 이어가고 싶지만 빡빡한 오후 일정으로 자리를 급히 정리하고 바로 만경대고향집 참관에 나섰다.

만경대고향집 참관

이곳 역시 많은 북측 주민들이 계속해서 참관하며 꽃을 바치고 있다. 특별한 기념일이나 행사가 없어도 늘 헌화하며 참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만경대고향집은 김일성 주석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북녘을 방문한 인사들의 방문 필수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1947년 사적지로 지정된 뒤 60여년 동안 약 1억 1,800만명이 방문을 했다고 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민주노동당이 만경대고향집와 주체사상탑 방문을 놓고 서로 ‘가지 않았냐’ ‘가지 않았다’는 공방을 계속하게 한 유명한 장소 중 하나이다.

민주노동당 측은 북녘의 언론 보도와 박 전대표의 방북기 등을 인용해(박근혜 전 대표는 당시 미니홈피 등에 만경대고향집을 갔었다고 글을 올렸으나 나중에 논란이 되자 그 부분을 지웠다고 한다. 또 기자들에게 만경대에 위치한 소년학생궁전에 간 것이지 만경대고향집에 간 것은 아니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만경대에는 소년학생궁전이 없다.) 자신도 만경대고향집에 갔으면서 민노당 대표단이 가서 참배하는 것은 국가 안위에 위협이 된다며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불만을 표했다.

이에 박 전 대표는 끝까지 만경대고향집에는 가지 않았고 주체사상탑은 6.3빌딩처럼 관광차 다녀온 것이라고 해명을 했다.

유럽에 가면 자신의 종교와는 맞지 않아도 바티칸 성당에 가서 예를 갖추고 태국이나 일본에 가면 절에 가 인사를 한다. 베트남의 호치민 묘에 가면 사회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그 나라의 국민들이 칭송하는 위인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해 관광객들은 모두 모자를 벗고 정숙한 차림으로 들어가 인사를 올린다. 가보진 않았지만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등의 무덤을 가게 되면 분명 반바지 차림은 출입이 금지될 것이고 대부분 사진촬영도 금지될 것이며 조용히 참배를 하고 나와야 할 것이다.

거길 참배를 하고 나왔다고 해서 그 종교나 사상에 심취됐다고 말할 순 없다. 그저 방문한 나라의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과 종교이기 때문에 우리가 방문해서 그에 걸 맞는 예를 갖추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평양에 방문을 했으면 평양에서의 예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나마도 우리 참관단들은 껌을 씹거나 모자를 벗지 않는 등 아주 기본적인 예도 갖추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곳에 갔다고 해서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동남아 여행은커녕 가까운 동네 근처 산에 있는 절에도 한번 가보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관악산의 연주암에는 주말이면 등산객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기나긴 줄을 선다. 나도 그렇고 연주암의 주지스님도 그렇고 이들이 모두 불교신자라고 생각하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경대고향집을 참관하는 사람들을 색안경을 끼고 ‘국가 안보에 위협을 하는 인물’이라고 보는 사람은 그 자신이 바로 바보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경대고향집은 통일부에서 규정한 참관 제한 구역도 아니고 북녘을 방문하는 세계인들 1억만명이 넘게 방문한 곳인데 북녘에 가고서도 가지 못한 것은 오히려 박근혜 전 대표에게도 안타까운 일이다.

못 갈 곳을 간 것도 아니고, 갔다고 해서 박근혜 전 대표가 갑자기 보수를 버리고 진보세력이 됐다고 보는 이도 하나 없을 텐데 왜 그리 변명에 급급한지 내가 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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