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첫 돌은 잔치를 벌일만큼 경사스러운 날이다. 한 생명이 탄생해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비로소 온전한 생명체로 땅에 두발을 딛고 설 때 쯤이 보통 첫 돌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초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 이른바 10.4선언이 발표 첫 돌을 맞았다. 여러 단체들이 곳곳에서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10.4선언 한 돌의 성적표는 초라하고 ‘생사여부’마저 불투명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그 이유는 두말할 나위 없이 이명박 정부의 10.4선언에 대한 부정적 입장 탓이다. 6.15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이어받아 이를 보다 구체화시킨 10.4선언은 이명박 정부에게는 실패한 10년간의 대북화해정책, 이른바 햇볕정책의 결정판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따뜻하면 옷을 벗어야 하는데 옷을 벗기려는 사람이 옷을 벗었다”는 말로 햇볕정책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내비친 바 있다.

10년간의 햇볕정책으로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이 됐고 남북교류는 늘었지만 북한의 개혁개방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식량난은 여전한데도 받는 쪽이 큰소리치는 ‘불합리한’ 상황을 바로잡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생각이다.

그러나 오히려 현 정부의 등장으로 남북 당국간 관계는 완전히 단절됐고, 민간 차원의 경협과 교류도 현수준을 유지하기도 버거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지난 2일 현 정부 들어 첫 남북 대화인 군사실무접촉이 열렸지만 남북관계 복원보다는 파탄의 경고장만 받은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한미동맹만을 소리 높이 외치는 과정에서 북미관계와 6자회담의 진전과정에 한국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나 정전체제 종식과 평화체제 구축은 까마득한 일이 되고 말았다. 한반도 평화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하다.

10.4 첫 돌에 정부 차원의 기념식 하나 열리지 않고, 민간 차원의 남북공동행사마저 무산된 오늘의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6.15선언과 10.4선언이 온 겨레의 여망을 담았기에 전 민족의 지지를 받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축하를 받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 내세우고 있는 실용의 기치에 비추어보더라도 지금과 같은 남북관계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6.15선언과 10.4선언이라는 역사적 성과를 제대로 인정하는 데로부터 대북정책을 전면 전환해야할 것이다.

남북 당국간 관계가 꽉 막혀 있다고 해서 모든 게 중단돼선 안 된다. 남북관계가 어려울 때마다 늘 치고 나가 돌파구를 열어준 건 민간 차원이다. 민간 역시 어려운 남북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때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민간통일운동이 서리를 맞은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아서야 되겠는가?

10.4 첫 돌을 맞는 모두의 마음이 단지 축하만 하기에는 너무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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