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의 역사적인 이정표인 10.4 남북정상선언이 오는 4일, 첫 돌을 맞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육로를 통해 '금단'의 땅을 넘었고, 평양에서 맞잡은 두 정상의 손에 한반도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그 때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잃어버린 10년'의 '복원'을 내세운 새 정부의 등장으로 남북 관계는 '잃어버린 10년' 전으로 '완벽'하게 '복원'됐다.

남북 상호간에 실질적인 인정을 통한 평화상생 기반의 구축을 골자로 한 10.4선언의 이행은커녕 그동안 정례적으로 진행됐던 남북 간의 '소통'조차 사라져 버린 현실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한미공조 강화...7월 '금강산 사건' 이후 남북 관계 '위기' 국면
작계5029 격상 우려, 합동군사훈련 부활로 인해 군사적 긴장 심화

노무현 정부는 지난 11월 남북 총리급 회담에서 정상선언 이행에 관한 제반 현안에 대해 협의하고 8개 조 49개 항의 합의문을 채택하는 등 10.4선언 실천을 위한 각 분야의 구체적인 이행 로드맵 마련에 발 빠르게 나섰다.

이어 제2차 국방장관회담에서 남북군사공동위원회의 설치, 남북적십자 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주의 협력사업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다. 경제협력공동위원회도 부총리급으로 격상되는 등 10.4선언 이행은 급물살을 탔지만, 이명박 정부의 집권과 동시에 이런 움직임들은 급속하게 멎어버렸다.

10.4선언이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북핵 시설에 대한 연내 불능화를 합의한 직후 열린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라는 점을 감안할 때,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발전을 구체화하는 합의와 함께 '종전선언'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새 정부 들어 남북관계는 6.15공동선언의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을 배제하고 한미공조의 강화에 역점을 뒀다. 이에 대해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패당', '역도' 등 직접적으로 불만을 터뜨렸고, 남북 갈등은 급속하게 심화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 관계 인식 구조는 한.미관계에 따라 남북관계가 종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에 우선적으로 대미외교에 '집착'하게 됐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특히, 남북간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7월 금강산 관광객 사망 사건으로 인해 남북관계는 더욱 경색돼 있다.

6자회담에서 합의됐던 2단계 조치는 미국의 핵검증 체제에 대한 요구에 북한이 핵 불능화 중단 조치를 취함으로써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지만, 막혀있는 남북관계로 인해 6자회담에서의 한국의 역할은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도 심화되고 있다. 최근 개념계획 5029가 작전계획으로 격상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10년 만에 대규모 합동화력시범이 진행되는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협의틀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남북경협 '성적표' 참담...개성공단 지난 1월 이후 접촉 중단, 2단계 사업도 지연

10.4정상회담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됐던 남북경제협력사업의 '성적표'도 참담하다.

대표적인 남북경협사업인 개성공단사업은 지난 1월 실무접촉회의 이후 지금까지 개성공단 문제를 둘러싼 남북 당국 간의 공식접촉은 중단된 상태다. 일부 기업이 위탁가공의 형태로 경협사업을 확대하고는 있지만 이마저도 형식적 수준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개성공단 2단계 사업과 관련해서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어 개성공단 추진에 대한 정부의 의지에 대해 의문도 일고 있다.

게다가 지난 2일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 개성공단과 개성관광에 대해 남측 인원의 군사분계선 통행 문제, 개성.금강산 지구에 체류하고 있는 남측인원에 대한 제한 조치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위기'를 맞고 있다.

안변과 남포지역의 조선협력단지 조성도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조사단 등이 경색된 남북관계의 여파로 방북하지 못한 데다, 이 지역에 대해 투자조차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0.4선언에서 주목할 만한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와 관련한 진행 사항도 거의 전무한 상태다.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은 물꼬조차 트지 못했다.

올림픽 공동응원단 열차 이용, 백두산 직항로 무산
이산가족 상봉, 올 들어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아...추진 여부도 불투명


지난 8월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10.4선언에 명시된 남북단일팀과 열차를 통한 남북공동응원단 성사가 무산됐으며, 남북한 동시 입장도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을 더하기도 했다. 직항노선을 통한 백두산 관광으로 관심을 모았던 백두산 직항로 개설도 무산됐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매년 꾸준히 이뤄졌던 이산가족 상봉 역시 올해 들어 한 차례도 열리지 못하고 있으며, 올 한 해 500가족 대면상봉과 160가족의 화상상봉 등의 합의사항은 그 추진 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아울러, 인도적 대북지원 사업도 큰 폭으로 줄었다. 통일부 자료에 의하면 올해 들어 8월까지 정부 및 민간이 북한에 무상으로 지원한 금액은 총 5,143만 불(503억 원)로 전년 같은 기간의 19,726만 불(1,873억 원)에 비해 3배 이상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10.4선언 이행 거금 투입" vs "최대 55조 효과, 'ABR' 색채 강해"

이명박 정부는 10.4선언을 이행하는 데 많은 자금이 들어간다며 이행 거부의 이유로 '경제성'을 들고 있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 24일 "10.4선언의 합의 사항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경우, 남한이 얻는 경제적 효과는 최대 55조원이며 투입 대비 1.7배~3.6배의 산출을 기대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 전면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정부의 대북정책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프레임에 얽매여 'ABR(Anything But Roh)'라는 정책 기조 속에서 10.4선언의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상생.공영'의 대북정책에서 '상생'과 '공영'의 파트너는 바로 북한이다. 상대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 의지 표명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최근에 실시한 두 선언에 대한 국민적 여론으로도 나타난다.

사회동향연구소의 8월 여론조사에서 조사 응답자의 55.6%는 6.15.10.4 공동선언에 대한 이행을 촉구했으며, 반대의견은 21.4%에 그쳤다.

"MB,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남북관계 풀어가야"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두 선언에 대한 기본입장이 점차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1일 한 토론회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기본입장은 존재부정(3.26통일부)-> 존재인정과 이행협의용의(7.11국회)-> 합의정신존중과 구체적 실행방안마련(9.22평통)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아직 전면이행 의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두 선언에 대한 이행의지를 천명하지 않으면 남북관계 원상회복과 새로운 진전을 이룰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을 점차 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이명박 정부가 이행에 들어가는 비용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평화적 효과와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도 분석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처음 맞는 10.4선언 1주년. 남북관계를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야 한다는 지적에 '실용주의'를 앞세운 이명박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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