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단체' 협의로 2심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는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이승호 의장.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2008년 촛불정국을 거치면서 국민들의 의식은 한층 높아졌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거꾸로 간다. '명박산성'을 쌓았던 자리에 '백골단'이라는 별칭이 붙은 경찰관 기동대를 투입했고, 결국에는 광화문 거리 이순신 동상 칼집에서 국가보안법이라는 칼날을 꺼내들었다.

그 칼날을 사노련(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라는 단체에 들이댔고, 촛불집회 배후세력으로 지목된 '한국진보연대'에 대해서도 국가보안법상 이적행위가 포착됐다는 경찰의 말도 흘러나왔다.

이런 가운데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의 이적단체 혐의 관련 항소심 재판이 지난 7월, 2년 만에 재개됐다. 2006년 7월 항소심 첫 공판 이후 열리지 않았던 재판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속개된 것이다.

공판도 속전속결이다. 2개월간 두 번의 공판에서 증인 심문 없이 공판진술 -> 최후진술 ->공판구형까지 진행됐으며 오는 25일 재판부의 선고만 남겨두고 있다.

2004년 1심 재판부는 '한청'에 이적단체 판결을 내리고 3명의 지도부에게 2-3년의 징역과 자격정지 및 집행유예를 선고한 바 있다. 이번 2심에서 검찰은 전상봉 한청 전 의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하는 등 오히려 더 강경한 모습이다.

"'자주'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없애야 하나?"

▲ 10일 서울 영등포 한 커피숍에서 만난 이 의장은 요즘 청년실업문제로 한창 바쁘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지난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 한 커피숍에서 한청 이승호 의장을 만났다. 그에게서 '무시무시(?)'한 이적단체 '수괴'의 모습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는 이날 점심 때 '청년실업해소특별법' 기한 연장 및 개정을 위해 관련 단체와 회의 일정이 잡혀 있다고 했다.

"그 전에는 사회전반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면, 이제는 청년들의 경제적인 문제와 직결된 사안부터 접근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어요. 청년들의 실업, 비정규직 문제, 고용불안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해소하기 위한 사업들을 실제로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청년들이 사회 봉사활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면서 지난해에는 태안 기름유출 사건 봉사활동,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몰래 산타' 사업 등 봉사활동도 대대적으로 벌이기도 했다.

물론 '한청'은 통일운동에도 적극적이다. 강령에도 '자주.민주.통일'을 명시해두고 있다. 하지만 공안당국은 이를 두고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을 따르고 있는 근거로 제시한다.

이 의장은 "자주.민주.통일이라는 내용이 북의 통일전선전술을 따르는 것이라 아니라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 또는 사회 진보를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공안당국은 북한이 주장한 것과 비슷한 주장한 것만 추려냅니다. 100가지 중에 5-6가지가 북한의 주장과 같으면 95가지는 무시하고 나머지를 들이대며 '니네들은 이적단체다'라고 억지 부립니다. 백번 양보해서 북한과 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이야기 하면 안 되나요? 북쪽의 통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남쪽에서 통일을 외치는 것이 찬양 고무하는 꼴이 되어 버립니다. 당당한 나라, 자주권 이야기도 마찬가지죠. 그러면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자주'라는 단어는 없애야 하는 겁니까? 같은 민족으로서 같이 사용하는 말은 말도 못하는 사회입니다."

"우리가 국가를 전복할 물리적인 힘을 가진 것도 아닌데..."

▲그는 '이적단체' 규정의 남용을 꼬집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반국가단체로 규정된 '한통련(한국민주통일연합)' 산하 '재일한청'과의 교류를 두고 검찰이 이적행위 혐의를 씌우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으면 일본 동포 사회에서 건강하게 민족 문화를 배우고 사회의 진보를 꿈꾸는 친구들이에요. 그냥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전면적인 교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각 지역별로 자매결연을 맺기도 하고 우리말을 배우려는 재일한청 회원들에게 홈스테이 사업도 진행합니다."

그러나 검찰은 한청과 재일한청의 교류를 국가 전복을 공모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2004년부터 '한통련' 회원들의 고국 방문의 길이 열리는 등 한국 사회는 변하고 있지만 공안당국은 여전히 낡은 인식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이적단체'는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도와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단체를 말한다. 그러나 공안당국은 '이적단체'라는 규정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 법리적인 측면에서도 국가변란의 명백한 위험이 존재하는 지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청이 실질적으로 국가전복을 꿈꾸면서 한 것이 무엇이냐고 되묻고 싶어요. 우리가 명백한 위협을 가지고 있으면 그게 뭐냐, 그런 위험들을 실질적으로 우리가 했느냐, 군사조직을 꾸리는 것도 아니고 국가를 전복할 수 있는 물리적인 힘을 가진 것도 아닌데...... 묻고 싶어요. 하지만 답을 못합니다. 이것은 억지죠."

이적단체 규정에 대한 한청의 우려는 대단히 크다. 이 의장은 "한국청년 운동의 사형선고"라고 표현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0만명을 동원했던 '한총련'도 김영삼 정권에 의해 '이적단체'로 규정되면서 위축되고 말았다.

"한청이 어떤 단체인지 아는 국민들은 이적단체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구속과 연행, 자유로운 활동 제한, 보수진영의 여론몰이를 생각한다면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3-4년이 지나 보수 세력에 죄과가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 시기가 너무 안타까워요."

비장한 각오로, 그러나 대응은 촛불의 언어로

▲ 국가보안법과의 한판 싸움을 앞둔 이 의장이지만, 그의 미소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이같은 극심한 우려감이 깔려 있지만, 대응방식은 2004년 국가보안법 철폐운동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의장은 당시 국회 앞에서 천여명이 집단단식을 했던 방식은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기 좋은 전술이라고 지적했다.

'촛불정국'을 거치면서 성숙한 국민의식은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틀에 의존하는 이명박 정부에게 분명한 약점이다. 하지만 '촛불운동'의 언어는 기존의 운동권과 달랐고, 그들의 소통방식을 배워야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비장한 각오는 좋지만 방식까지 무거워져 버리면 백전백패에요. '명박아,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봉사활동하고 청년실업 문제에 나서는 57개 청년단체를 이적단체로 만드냐'는 식으로 국민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일단 한청은 2심 선고공판에 앞서 여론화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22일 국회토론회 및 종교.정치계 등 각계인사 선언식이 예정돼 있으며, 일상적으로는 '민주주의 내가 지킨다'는 주제로 포토 선언을 진행할 계획이다.

촛불운동과 연계해 준비 중인 10월 말 '민주주의 페스티벌'에서도 국가보안법 문제를 촛불의 방식으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이 의장이 생각하는 대응은 가령 이런 방식이다.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수백명의 주민들의 사진이 걸려있는 무대 위에서 지역 청년회 회원이 무대 위에 올라가 '자유발언'을 한다. 촛불시민의 말투로.

"명박이가 또 뻘짓을 하고 있습니다. 한청이 이적단체래요. 국가의 전복을 꿈꾸면서 반국가단체의 노선을 충실히 따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민주주의를 사수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거든요. 소속 57개 청년단체들이 이적단체가 되는 바람에 나도 이제 이적단체 구성원이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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