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전일까?

26일, 서울 강서구에 터를 잡고 있는 우장산 초입의 인조잔디구장 위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유소년 축구선수들에게 한국말과 일본말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헌데, 경기가 끝난 뒤 점심 도시락을 먹는 풍경은 영 딴판이다.

"너 몇살이야?"
"10살. 여기 나이로는 11살!"


늦여름 더위로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잔디 위에서 한바탕 몸싸움을 벌인 양팀의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자, 한데 뒤엉켜 점심 도시락을 먹는다. 용산구어린이축구단과 재일동포 어린이축구단과의 축구시합 현장이다.

▲ 도쿄의 제1, 3, 9 초중급학교 학생 18명은 용산구어린이축구단과의 축구교류를 위해 지난 24일 한국을 찾았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재일조선인'들이 다니는 도쿄의 제1, 3, 9 초중급학교 학생 18명은 용산구어린이축구단과의 축구교류를 위해 지난 24일 한국을 찾았다. 앞선 4월 용산구축구단이 일본을 방문한 데 대한 답방형식이다.

용산구축구단과 조선학교와의 축구교류사는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학교쪽의 내부문제로 교류가 성사되지 못한 2005년과 이 여파로 용산구청으로부터 예산을 배정받지 못했던 2006년을 제외하고는 격년제 상호답방 형식으로 축구교류를 이어왔다.

모든 조선학교와 교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도쿄에 있는 7개 초중급학교 중 교류 원년맴버는 1학교. 지난해 끊겼던 축구교류를 2학교와 9학교가 이었고, 올해 1,3,9학교가 함께 했다. 특히 올해는 격년제로 상호답방 해 오던 것에서 한 해 동안 양쪽이 서로 왕래하는 방향으로 교류의 폭을 넓혔다.

한국의 구 단위 축구단과 일본의 몇몇 조선학교 간의 유소년 축구교류이지만, 같은 말을 쓰며 몸을 부대끼는 아이들에게는 중요한 체험이자 삶의 교육이다. 김성렬(48) 용산구어린이축구단 단장의 말이다.

▲ 김성렬(48) 용산구어린이축구단 단장.[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민족학교 애들이 여기에 오면, 민족이 있다는 것을 보고선 힘내서 간다. 일본에서 얼마나 이지메를 당하나? 근데 여기 와서 보고 나면 '나도 조국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라 한다."

1999년 마츠다 시의 일본 학교와 축구교류를 시작하다 지인을 통해 조선학교를 소개받은 김성렬 단장은 2002년부터 지금까지의 축구교류를 이어온 장본인이다. 김 단장은 일본 지하철역에서 일본학생들에 의해 재일동포 여학생의 치마저고리가 찢겨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민족'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민족'과 '동포'란 짧은 단어에 눈물을 훔치기는 학부모회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축구교류를 통해 서로의 삶을 접하면서 싹튼 '정'에 학부모회의 부모들도 축구교류에 열성. 이제는 아들 김지호가 중학교 2학년이 돼 올해 교류에 참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장미선 전 학부모회 회장은 후원은 물론 점심 도시락 챙기기까지 정성을 쏟았다.

과거 반공이데올로기로 인해 사회적 왜곡과 편견으로 자리 잡은 '조선학교=총련=북한'이라는 등식은 단 한 번의 만남만으로도 쉽게 깨져버렸다.

"동무들 하고 놀고 싶어서 다음에 또 만나고 싶습니다." 
 

▲ 축구시합전 상호인사를 하는 양측 축구단 학생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아이들은 그라운드에서 서로 몸을 부대끼며 서로의 존재를 알아간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축구교류의 주역인 아이들은 어떨까?

지난해까지 양쪽을 오가며 교류를 이어왔던 아이들이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올해 만남이 처음인 아이들이 대부분인 까닭으로 아직은 서먹한 분위기. 그러나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공통점 하나만으로도 서먹함은 쉽게 녹아내린다.

"용기가 저 배 나왔다고 했어요!"(용산구축구단 유형우)
"야~ 좋은 배를 하고 있구나"(조선학교 리용기)

형우(11)의 볼록 튀어 나온 배를 연신 놀려대던 용기와 형우가 서로의 배를 쓰다듬으며 노는 모습에 주변 친구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배꼽을 잡는다. 옆에서 깔깔대던 권준석(11.조선학교)이 장난스레 배를 찰싹 때리자, 형우는 금새 쀼루퉁해져 용산구축구단쪽으로 홱 돌아선다. 영락없는 아이들이다.

형우는 한 살 아래인 최호연이 마냥 귀여운 모양. 형우가 '용산구 진영'으로 돌아오고 얼마 후, 용기와 호연이 근처로 와 공 놀이를 하자, 형우가 호연을 부른다.

"쟤(호연), 진짜 귀엽네. 이름이 뭐야? 아까 보니까 쪼그만데 스피드도 엄청 빠르고 진짜 축구 잘하더라."

용기는 형우의 말을 듣고는 곧바로 호연을 호출해 형우의 앞자리에 앉혀 통성명을 시켰다.

▲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공통점 하나만으로도 서먹함은 쉽게 녹아내렸다. 용기(좌)와 형우(우)가 서로의 배를 만지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짧은 만남이지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영향이 크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짧은 만남이지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영향이 크다. 특히, 남과 북이 아닌 '조선'을 조국이라 부르는 '재일조선인'에게 '또 하나의 조국'인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의미가 더 하다.

지난해 아들 경철(11)과 경성(13)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했던 이신의(41)씨는 "아이들이 지난해 한국에 와서 함께 축구를 하면서, 우리 민족이 있다는 것에 많이 좋아했다. 일본에 돌아가서도 추억이 많이 남았다"고 전했다.

1997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재일동포 최성림(43)씨를 만나 결혼한 호연이 엄마 한희순(37)씨는 조선학교를 다니고, 축구교류를 하면서 아이들이 '자존감'을 찾는다고 말한다.

"저랑 얘기할 때 아이들이 일본말을 써요. 엄마는 한국말을 잘 하는데 자기는 잘 못하니까. 일본 아이들과 있을 때는 자기가 한국 사람인 것을 숨기려고 하는데 조선학교에 와서는 민족역사도 배우고, 자기랑 같은 또래를 보면서 숨기려고 하지 않고 말도 당당하게 쓰더라고요. 한국에 오니 어떠냐고 호연이한테 물어보니까 말이 너무 좋데요. 그냥 듣기만 해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최성수(12.조선학교) 군도 "동무들하고 놀고 싶어서 다시 꼭 오고 싶다"고 말했다.

▲ '재일조선인'은 남과 북이 아닌 '조선'을 조국이라 말한다. '또 하나의 조국' 한국을 방문한 재일동포 축구단 선수들의 표정이 밝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 재일동포와의 교류를 통해 한국의 아이들도 '민족'과 '동포'란 개념을 차츰 알아가기 시작한다. 사진은 용산구어린이축구단 아이들.[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민족과 동포를 알아가는 것은 한국의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7살 때부터 축구교류에 참여해 온 김윤모(12) 군는 일본을 방문하고는 그렇게 많은 재일동포들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고 했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친해졌던 김순지(13)가 이번에 오지 않아 섭섭하다는 윤모는 축구경기가 끝난 뒤, 새롭게 사귄 김기영(12)과의 이별이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윤모의 아버지이기도 한 김 단장은 "아이들이 이렇게 한 번 만날 때마다 '민족적 동질성'이 생기게 된다"며 "한국 아이들은 재일동포 사회를 이해하게 되고, 재일동포 아이들도 우리 부모님들은 일본으로 왜 오게 됐고, 왜 차별받을까 생각하다가도 이렇게 한 번 오고나면 '나에게 조국이 있다'는 마음과 함께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고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재일동포 축구단의 단장인 김준일(47)씨도 "그럼, 그게 최고지"라고 맞장구를 치면서 "축구교류 뿐만 아니라 역사교류, 서적교류 등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지원 없어 교류예산 태부족.. 日정부 탄압에 줄어드는 조선학교 '위기'

쑥쑥 자라나는 아이들을 통해 양측 간 교류의 중요성을 실감하지만, 민간차원의 쌈짓돈만으로는 서로 왕래하는 것조차 녹록치 않다. 특히, 날이 갈수록 조선학교가 줄어가는데 반해 한국에 보수정권이 들어선 것은 가장 큰 현실적 장애물이다.

지난해 용산구어린이 축구단은 용산구청으로부터 재일동포 축구단과의 교류협력기금으로 2,400만 원을 받았다. 그러나 올해는 지자체에서 용산구어린이축구단 운영 지원금으로 매년 주는 500만원을 제외하고는 단 돈 1만원도 받지 못했다.

격년 단위로 상호 방문을 하다, 교류의 폭을 넓혀야 된다는 생각해 올해 처음 연간 상호교류를 처음 시작한 터여서 예산문제는 더 크다. 김 단장은 "내년부터가 더 걱정이다. 구청도 정권이 바뀌어서 내년도 예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기류다"고 말했다. 또 "정부는 교류를 막지는 않지만, 지원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며 "정부가 조금만 지원을 해줘도 완전히 다를 텐데..."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미래세대를 위한 '비용'을 순전히 민간의 '얇은 지갑'을 털어야 하는 실정. 더욱이 학교의 거의 모든 운영비를 학부모들이 대고 있는 조선학교의 경우는 부담이 더 크다.

조선학교가 나날이 줄어가는 현실은 더 조급함을 부른다.

▲ 조선 제9초중급학교 출신인 김준일 단장.[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해방 이후 '조선인을 조선인으로 키우기 위한 민족학교'는 가장 많게는 140여개 까지 만들어졌었지만, 현재 반 토막을 조금 넘긴 80여개만 남아 있다. 게다가 도쿄와 같은 대도시만 학교로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 지방에서는 분교수준이거나 폐교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조선 제9초중급학교 출신인 김준일씨는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학생 수가 300명이 있었다. 근데 지금은 80명 정도밖에 안 남았다"고 서글퍼했다.

조선학교가 지속적으로 쇠퇴하는 이유는 일본 사회에서의 차별이 주원인으로 지적된다. 일본정부는 조선학교를 각종 학교로 분류, 정식 교육기관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학진학을 위한 학력인정도 각 학교마다의 재량에 맡기고 있고, 교육지원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우리학교'와 영화 '박치기' 등을 통해 '재일조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환기되고, '우토로'와 '에다가와 조선학교'에 대한 성금이 이어지기도 했지만, 민간차원의 캠페인 형식으로는 한계가 명백하다.

재외동포 차원에서 지원을 해야 하는 정부가 뒷짐을 지고 있는 것과 같이, 교류를 이어나가야 할 지자체 역시 '역사의식'의 부재를 드러내고 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이후, 일본 도쿄 스기나미구와의 교류행사를 취소한 서초구는 2003년부터 매년 '한일 청소년 교류캠프'를 열어왔지만, 정작 스기나미구에 있는 조선 제9초중급학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스기나미구에서 유소년 축구의 강자인 조선학교를 배제한 채 서초구와 교류를 하고 있는 일본 지자체보다 '재일조선인'을 먼저 챙기지 않는 한국의 지자체가 더 얄미운 까닭은 '민족'이기 때문이다.

축구경기를 끝낸 재일동포 축구단 학생들은 오후 4시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위치한 서대문형문소를 찾았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한 초등학교 학생들은 처참한 광경에 깜짝 놀란 표정이다.

학생들은 서대문형무소 역사전시관을 소개해주는 가이드로부터 을사5적, 3.1운동, 유관순 열사 등 일제강점기 당시의 역사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용어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는지 '뚱'한 반응이었지만, '옥중생활사'관에 들어서자 눈빛이 달라졌다.

독립운동가들이 처참하게 고문당하는 모습을 자료사진과 모형을 통해 눈으로 직접 확인하자 여기저기서, 아찔하다는 듯 "아!"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조선 제9초중급학교의 홍대수 사무국장은 모진 고문으로 귀가 잘려나간 한 독립운동가의 사진을 가리키며 "너희들은 우리말을 쓰지? 근데 우리말을 쓰면 이렇게 되는 때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2-3일 동안 독립운동가를 세워 놓은 채 고문을 하는 벽관(壁棺)에 실제 들어가 보거나, 사형대를 재현해 놓은 의자에 앉아보면서 일본사회에서는 알 수 없었던 역사의 현장을 체험했다.

권준석(11) 군은 "학교에서 조금 배웠지만, 이렇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너무 무섭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홍 사무국장은 "교과서에 식민지가 왜 됐는가에 대해서도 2-3줄 밖에 안 나와 있다. 이런 교양은 더해 줘야 한다"며 "애들이 독립운동과 식민지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재일동포 축구단은 27일 롯데월드, 전쟁기념관 등을 관람한 뒤 28일 4박 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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