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진 신임 통일연구원 원장의 대북 관련 발언이 파장을 낳을 전망이다. 지난 21일 취임 후 기자들과의 첫 만남에서 그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부터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입장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통일뉴스> 22일자 기사에 따르면 그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 “상생.공영의 대북정책은 ‘비핵.개방.3000’에 모자를 씌운 것”이고, 또한 남북관계와 관련 북한이 6.15선언과 10.4선언 이행을 요구하는 것은 북측이 남북교류 자체를 기피했기 때문에 남측에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런데 그 발상과 내용이 너무도 자의적이고 아전인수 격이라 할 말을 잃게 한다. 서 원장은 인수위에 참가도 하고 또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 성안에 참여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그의 발언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 관련 인사들의 공통된 인식이라는 느낌을 저버릴 수가 없다.

먼저, 서 원장은 최근 정부의 대북정책이 ‘비핵.개방.3000구상’에서 ‘상생.공영정책’으로 바뀐 것과 관련 이는 “모자를 씌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비핵.개방.3000’이나 ‘상생.공영정책’이나 그게 그것이란 말이다. 솔직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청맹과니 학자의 모습을 본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원래 ‘비핵.개방.3000’은 남측 여론의 반대와 북측의 반발로 고사 상태에 이르자 슬쩍 ‘상생.공영정책’으로 이름만 바꾼 것이다. 명칭 변경 때 그래도 정부 당국자는 “남북관계의 발전은 처음의 적대관계에서 화해협력관계를 거쳐서 상생.공영의 단계로 간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고 말하면서 북측을 의식했다. 정부당국 관련 인사로서 서 원장은 최소한 이러한 명칭변경의 명분이라도 고수해야 하지 않았을까? ‘솔직함’을 너머 어떤 ‘오만함’마저 풍긴다. 게다가 그는 ‘북한의 비핵개방’과 관련 이는 “우리의 요구라기보다는 북한 내부의 대다수 권력 엘리트들의 희망사항”이기에 “‘비핵.개방.3000’이 북한 권력 엘리트들 사이에 엄청 인기가 좋다”고까지 말했다. ‘자의적’ 해석을 너머 어떤 ‘악의적’ 해석까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다음으로 남북관계와 관련, 그는 “북한이 지난 10년 동안 남한정부와 활발한 교류를 하고 나서 체제는 유지했지만 체제에 미치는 데미지가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그래서 북한이 작년 6자회담 10.3합의에 즈음해서 미국과 관계개선이 예상되고, 이외에도 중국, 베트남, 서방국가로부터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통외봉남’(通外封南)으로 생존전략을 바꿨다는 것이다. 북한이 이처럼 “남한과의 거래 자체를 기피하는 전략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에 남북교류 단절의 책임을 남측에 전가하기 위해 “명분을 남한에서 찾아, ‘왜 6.15선언 10.4정상선언을 이행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10.4선언에서 북측이 “오히려 남한이 하자는 대로 다 받아준 것 자체가 오히려 함정을 판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이 정도쯤에서 그에게 묻고 싶다. 6.15선언으로 시작된 지난 10년간 남북교류에서 북한이 체제에 손해를 입었고 또 10.4선언이 함정을 판 것이라면 북한은 왜 지금 남측에 6.15선언과 10.4선언 이행의지를 촉구하는가? 정녕 북측이 남북교류를 기피함을 증명하려면 남측이 6.15선언과 10.4선언의 존중과 이행의지를 밝히면 되지 않는가?

‘될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까지는 아닐지 모르지만 서재진 원장의 이같은 일련의 대북 관련 발언과 관련한 조짐이 있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올해 2월 중순 한 연구소가 개최한 포럼에서 당시 현안인 이명박 당선자측의 ‘통일부 폐지론’에 대해 “(이는) 국내 야당과의 협상카드이기도 하지만 북한에 대한 고도의 전략적 메시지이기도 하다”면서 “이번에 통일부 폐지라는 일종의 정치게임을 통해서 신정부가 이미 북한에 대해서 엄청난 기를 죽여 놓은 측면이 있다”고 기발한(?) 해석을 한 바 있다. 서 원장의 대북인식이 이 정도라면 이는 통일부장관 내정자에서 낙마한 남주홍 경기대 교수와 통일교육원장에 유력했다가 탈락한 홍관희 안보전략연구소 소장의 대북강경 계보를 잇는다고 볼 수가 있다. 남 교수는 일찍이 ‘6.15선언은 대남 통일전선 전략용 공작문서’라고 혹평했으며, 홍 소장 역시 ‘6.15선언은 이적문서’라고 악평했다. 서재진 원장에게 다시 묻고 싶다. 그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어떻게 평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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