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에 즈음해 정부당국이 8.15행사 준비에 부산하다. 시내 한복판에는 8.15행사 공식 엠블럼이 펄럭이고 공공건물에는 대형 홍보물이 등장했다. 이명박 정부가 올 8.15 광복절 행사의 공식명칭을 ‘제63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건국 60년 중앙경축식’으로 확정해 ‘건국’자를 처음으로 집어넣었다. 이처럼 ‘건국’자가 삽입된 것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의 제안을 정부가 일부 받아들인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8.15행사를 아예 건국절 행사로 치르려다가 반대여론에 부딪혀 절충을 하면서도 핵심단어인 ‘건국’을 살린 모양새를 취했다는 표현이 더 올바를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8.15행사를 알리고자 길거리에 가로수마냥 펄럭이며 서 있는 공식 엠블럼에는 위의 긴 공식명칭이 ‘어쩔 수 없이’ 들어갔지만 ‘실제로는’ 다른 홍보물 등을 통해서 ‘건국 60년’만을 강조한다는 데 있다. 공사중인 광화문에는 대형 간판으로 가림막을 세웠는데 그 간판을 중심으로 해서 좌우에는 각각 무궁화에 감싸인 ‘태극무늬’와 숫자 ‘60’을 형상화한 대형 홍보물을 세웠다. 누가 봐도 ‘대한민국 건국 60년’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정부종합청사 건물 전면에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한 대형 현수막을 부착했는데, 거기에는 ‘경축 대한민국 건국 60년’이라고 아예 노골적으로 ‘건국 60년’을 내세웠다. 이 정도라면 이명박 정부의 본심은 올해 8.15를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치르자는 심사라 할만하다.

8월 15일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945년 8.15는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광복절’이고, 1948년 8.15는 비록 분단되기는 했지만 남측의 ‘정부수립일’이다. 그런데 8.15를 건국절로 하자는 것은 이 둘 모두를 부정하는 것이다. 보다 엄밀하게는 1945년 8.15광복절의 의미를 폄하하고, 1948년 8.15정부수립일을 나라를 세운 ‘건국절’로 신분상승 시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 태어나 살면서 10월 3일 개천절을 알고 있고 또한 일제 식민지시기 항일독립운동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국민들에게는 ‘건국절’이 도무지 가슴에 와 닿지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황당무계한 ‘건국절’ 논리를 펴는 뉴라이트는 누구인가?

뉴라이트가 이명박 정부 출범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음은 알만한 일이다. 또한 이 정부가 촛불정국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돌쇠처럼 나서 ‘미국산 쇠고기’를 시식하는 만용도 보여줬다. 이제 ‘개국공신’ 뉴라이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개국(開國)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8.15를 광복절에서 건국절로 바꿔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노림수가 있다. 원래 광복절은 해방과 분단이라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전자는 일제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이고 후자는 외세에 의한 남북 분단이다. 우리가 8.15광복절을 기리는 이유는 일제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고 분단된 나라를 통일하자는 염원이 깔려 있다. 그러기에 역대 대통령 누구라도 8.15치사를 통해 과거사 청산이나 또는 통일문제와 관련한 대북 제의에 인색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8.15를 광복절에서 건국절로 바꾸자는 것은 이 두 가지를 모두 부정하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시대를 부인하고 민족통일을 이루지 말자는 것이다. 뉴라이트는 이미 이에 관한 이론을 착착 준비해 왔다. 전자는 뉴라이트가 그간 주장해온 핵심 논리인 ‘식민지 근대화론’과 맞닿아 있고, 후자는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이 올해 3월 펴낸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에서 민족통일을 부정하고, 역사의 주체를 ‘민족’에서 ‘한국인’으로 재설정한 것과 관련이 있다. 즉, 건국절이라는 양날의 칼로 과거사인 일제 식민지문제와 미래사인 통일문제를 동시에 자연사(自然死)시키자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뉴라이트는 ‘반민족’인 동시에 ‘반통일’이라는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8.15가 건국절로 되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대한민국은 1948년 8.15에 고고성을 울리며 건국되었다. 이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1948년 이후도 뉴라이트의 ‘건국-산업화-민주화-선진화’라는 준비된 도식적 논리가 있다. 이 논리에 따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 즉 국부(國父)로 되며, 독재자 박정희는 근대화(산업화)의 아버지가 되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민주화 시대는 ‘잃어버린 10년’이 되고, 이명박 정부는 선진화 시대의 효시가 된다. 혹세무민하는 뉴라이트의 논리는 그렇다고 치자. 이러한 뉴라이트의 황당무계한 건국절 논리를 받아들여 국가적 의제로까지 부상시키고 또 올해 8.15를 ‘건국 60년’ 행사로 치르려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역사는 어떻게 심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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