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가 지나간 자리에는 항상 포연(砲煙)이 자욱한가 봅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부시가 방한한 날인 5일 오후 종로 일대가 그랬습니다. 세종로 네거리부터 차도가 막힌 종로를 비롯해 을지로, 명동 일대는 부시 방한을 반대하는 시위대와 이를 막으려는 경찰력과의 ‘전투’로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흡사 5,6공 때의 시가전을 방불케 했습니다.

이날 가장 눈에 띈 것은 최근 부활한 이른바 ‘백골단’의 활약이었습니다. 무슨 딱정벌레마냥 머리끝에서 발톱까지 무장한 백골단은 괴성을 지르며 초장부터 시민들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습니다. 선임자의 호루라기에 맞춰 착착 발소리를 내며 진법(陣法)을 쓰면서 시위대를 차도에서 인도로 몰아냈습니다.

시민들은 딸랑 촛불 하나만 들고 있는 비무장 차림새였습니다. 그런데도 경찰력은 빨간 색소가 섞인 물대포를 쏘았고, 방패와 진압봉을 앞세우고 모인 시민들을 와해시키기 위해 작전을 폈습니다. 백골단은 기습작전을 펴 시민들을 해산시킨 뒤 인도에까지 쫒아와 상점들까지 뒤졌습니다. 이 통에 수많은 시민들이 다치고 150명 이상이 연행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이날 밤 종로 일대는 ‘경찰들의 무법천지’였습니다.

“향을 싼 종이에서 향냄새가 나고, 똥 싼 종이에서는 똥냄새가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호전광(好戰狂)으로까지 불리는 부시가 지나간 자리에는 장소를 불문하고 화약냄새와 포성이 멈추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시가 방한하는 날에 맞춰 백골단을 출범시키고 또 이날 현장 출전(出戰)까지 시킨 이명박 정부도 그 호전성을 닮지 않을까,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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