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북한과 미국 사이의 ‘핵신고 대 테러지원국 해제’가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진행된 뒤 이 ‘행동 대 행동’이란 용어가 각광을 받고 있다. 북미간에 이른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유일한 원칙으로 떠오른 이 ‘행동 대 행동’ 원칙은 원래 북한측이 6자회담 초기부터 제기한 작명이자 작품이다. 그런데 ‘행동 대 행동’ 원칙 이전에 ‘말 대 말’ 원칙이 있었다. ‘말 대 말’ 원칙이란 북한이 핵포기를 공약하는 대신 미국은 대북 체제전복 포기를 공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말로 합의를 본다는 의미이기에 ‘말 대 말’로 불리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북미간 불신의 벽이 얼마나 높기에 우선 말로라도 약속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행동 대 행동’이란 이같은 ‘말 대 말’ 약속에 따라 북한측의 핵폐기 과정에 맞춰 미국 등이 단계별로 대북 안전보장과 경제적 보상 같은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동시이행 원칙을 뜻한다. 그러기에 ‘핵신고 대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동시행동과 북측의 비핵화 의지의 상징인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이벤트 이후 대개의 전문가나 언론들은 한반도비핵화 2단계가 무사히 진행되었으니 이제 곧 3단계를 위한 6자회담이 열릴 것으로 당연시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6자회담 재개가 주춤거리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하던 참에 지난 4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담화가 나왔다. 담화 내용을 보면 누구나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담화는, 북한은 핵시설 무력화(불능화)가 80% 이상 진척되었으며 핵신고서도 제출했고 게다가 덤으로 냉각탑까지 폭파했는데, 이에 비해 미국측은 테러지원국 명단삭제조치가 절차상 요인으로 아직 발효되지 않았으며, 적성국무역법 적용종식조치도 내용적으로 보면 완전하지 못하며 더구나 5자의 경제보상의무도 현재 40%밖에 이행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북한의 셈법에 의하면 ‘북한 대 미국 등’의 동시행동이 ‘80 대 40’으로 커다란 차이가 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행동 대 행동’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니 어떻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가 있느냐는 뜻이다.

그간 ‘북핵문제’를 두고 적지 않은 편견과 오해들이 있어 왔다. ‘북핵문제’라는 용어부터가 잘못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편의상 ‘북핵문제’라는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는 북한만 할 일이 있는 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들에게도 똑같이 할 일이 있는 것이다. 9.19공동성명에는 ‘북의 핵포기 대 미국의 대북 불침공 의사’가 병기되어 있고, 그 1단계 조치인 2.13합의에는 ‘핵시설 폐쇄 대 중유 제공’이 적시되어 있으며, 2단계 조치인 10.3합의에도 역시 ‘핵신고 대 테러지원국 해제’가 나란히 나와 있다.

북한만 행동하는 게 아니라 미국 등도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다소의 편차가 있을지 모르지만 동시행동 원칙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이러니 한쪽에서 속도가 더디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다. 북한은 향후 한반도비핵화 3단계에서도 철저하게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적용할 것이다. 미국과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이 바쁘게 됐다. 저렇게 깐깐한 북한과 협상을 하자니 미국도 혀를 내두를 만하겠다. 북한의 셈법에 의하면 2단계 진척정도가 ‘80 대 40’이니 다음 단계인 3단계 조치를 협의하기 위해 당장 6자회담을 개최하기가 여의치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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