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숨은 그림 찾기’

누구나 한번쯤 ‘숨은 그림 찾기’ 놀이를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복잡하게 그려 놓은 그림 속에 숨겨진 물건 찾기는 언뜻 보아선 쉽지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생각지도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때 그 물건은 전체 그림과의 조화 속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준다. 여기 ‘숨은 그림 찾기’란에서는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어디선가 숨은 그림처럼 나서지 않고 묵묵히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찾아 인터뷰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 편집자 주

▲ 자기 가게 앞에 ‘저분과 간자(중화)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의 재협상을 요구합니다’라는 글귀를 적어놓은 지정윤 사장. 그가 맥주컵을 손수 세척하고 있다. [사진 -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월드컵 때 붉은 악마가 시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냐”

광우병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라는 내용으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최근 의료 및 공기업 민영화, 물 사유화, 교육, 대운하, 공영방송 등으로 의제가 확산된 가운데 두 달 여에 가까운 기간 동안 계속되고 있다.

특히 6.10항쟁 21주년을 맞은 지난 10일에는 전국적으로 100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미국산 쇠고기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이런 가운데 중화동 한 퓨전주점에서도 촛불이 켜져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저분과 간자(중화점)’ 지정윤 사장의 작품이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에서 지난 2005년 7월 주점 사장으로 변신한 지 사장은 최근 가게 앞에 ‘저분과 간자(중화)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의 재협상을 요구합니다’라는 글귀를 적어놓았다.

손님을 왕으로 모셔야하는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란다. 특히 이처럼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내용이나 정치적 견해를 손님들 앞에서 밝히는 것은 거의 금기시 되는 일이라고.

처음에는 진짜 초를 켜 놓았지만 가게 밖에 세워 놓는 게시판을 바쁜데 일일이 살펴볼 수도 없고 관리가 되지 않아 위험하다고 판단이 돼 초 대신 글귀와 함께 촛불을 그렸단다.

지 사장은 “월드컵 때 붉은 악마가 시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냐”며 “비록 시청에 갈 수는 없지만 마음만은 함께 한다는 의미로 매장에 촛불을 켜게 된 것이다”고 밝혔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일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는 그는 “과학자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도 안전하다며 상관없다고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365일 매일 먹어도 상관없다고 해도 먹기 싫다”고 한다.

“미국은 자신들도 꺼림직 해 안 먹으면서 우리나라에만 30개월 이상을 수출하는 것만 봐도 분명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우리 국민들의 건강권을 완전히 포기를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만약에 공짜로 미국산 쇠고기를 던져주면 이런 의지가 있어도 분명 먹을 것 같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럴 것이고 또 학교나 군대의 급식 등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 등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예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최근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평화적인 촛불만 가지고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라는 주장과 ‘그래도 무조건 비폭력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뉘어져 있는데 이와 관련, 지 사장은 단호히 “무조건 비폭력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촛불집회가 축제분위기처럼 바뀌어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오거나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면서도 참여를 하는 것으로 들었는데 자신의 뜻을 밝히기 위한다는 이유로 폭력적으로 바뀐다면 아기를 업고 쇠파이프를 들고 나갈 수는 없지 않느냐. 오히려 그들의 이야기를 못 듣게 될 것이다. 지금 촛불집회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바뀐 시위 문화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동참할 수 있도록 집회는 꼭 비폭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효순이 미선이 추모집회 때에도 촛불 들어

그러나 지 시장은 이명박 대통령을 부정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다수에 의해 대통령에 뽑힌 것이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검어 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퇴진을 하도록 압박을 하는 것은 반대라고.

그는 다만 주변에서 옳은 길을 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충고와 격려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의 파업도 반대의 입장이라는, 지 사장은 “파업이 정권 압박의 수단이 될지언정 주변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삶터에서 일을 열심히 하면서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견해를 밝혔다.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 요구 글귀가 적힌 게시판은 원래 영업점에서 매일매일 할인해주는 메뉴를 적어 놓는 곳으로 글귀가 나붙으면서 상대적으로 할인메뉴가 없어져 고객들은 손해 아닌 손해를 보게 됐다. 그렇다면 고객들의 반응은 어떨까?

그는 “사실 관심 없어 하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 문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 아니냐, 가끔씩 친한 고객들이 ‘오늘은 왜 할인도 안 해주고 촛불을 켜놓냐’고 하기도 했지만 이제까지 별 문제는 없었다.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혹시라도 문제제기를 하는 손님들에게는 ‘사장님이 하신 거고 우린 잘 모른다’고 답하라 했는데 역시 문제제기를 하는 손님들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사실 지 사장의 가게에 촛불이 켜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평소에도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효순이 미선이 추모집회,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 등에 회사원의 입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그는 지난 2006년 5월 5일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위한 집회에서 군인들까지 나서 집회참가자들을 폭행하는 모습을 보고서 ‘이건 아니다’는 생각에 가게에 처음 촛불을 밝혔다고 한다.

당시 처음으로 밝힌 초에 고객들의 반응이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촛불의 의미를 묻는 고객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했더니 오히려 “군인들까지 투입해 폭력진압을 하는 것은 아니다”며 호응을 해줘 보람됐었단다.

다른 자영업자들에게도 촛불을 켜자고 권유를 한 적 있냐는 질문에 그는 “그저 내가 밝히고 싶어서 밝히는 것이지 함께 밝히자고 하진 않는다”며 인터뷰 기사가 나가는 것도 사실 많이 부끄럽다고 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보면 우스워 보일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월드컵 때 시청에 나간다고 붉은 악마고 나가지 않았다고 해서 붉은 악마가 아닌 것이 아니듯, 비록 시청에서 촛불을 들진 않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켜고 있는 그의 촛불이 그의 가게를 환하게 비춤은 물론 그 빛이 청와대를 넘어 미국까지 전달되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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