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일본이 지난 11-12일 중국 베이징에서 국교정상화를 위한 실무그룹회의를 열고, 여기에서 서로 몇 가지씩 주고받기 식으로 합의(6.13합의)에 이른 것을 환영한다. 보도문에 의하면 북한은 일본인 납치문제를 재조사하고 요도호 관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고, 일본은 대북제재 조치의 부분해제로서 인적 왕래 및 전세비행기 규제 해제, 북한 선박의 입항허가 진행 등의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다. 사실 이번 합의의 핵심은 ‘(일본인) 납치문제 재조사’이다. 일본은 북한에 계속 납치문제를 제기해 왔고 미국에 도움도 청했고 또 이 문제로 인해 6자회담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이러던 참에 어떤 의미에서건 대립돼 있던 두 나라가 합의에 이르렀다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번 북일 6.13합의는 단순히 양국간의 문제로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몇 가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먼저, 북미관계 개선의 일정표가 보다 명확해졌다. 북한은 지난 10일 이른바 반테러 성명을 공식 발표한 데 이어 이번 13일에는 납치문제 재조사를 밝히고 나섰다.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 볼 때 이는 북한이 미국과 잠정합의한 일련의 시간표를 이행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나온 조치로 이해된다. 즉,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기 위한 사전 조치인 것이다. 이로써 다소 불투명했던 북미 일정표가 미국 정부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위한 의회통보 - 북한의 핵 신고서 제출 -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파 - 6자회담 재개 순으로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북한의 납치문제 재조사 용의는 북미간 일정표에서 첫째 관문을 여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다.

또한, 6자회담 재개에 탄력이 붙게 되었다. 사실 납치문제는 북한과 미국에게는 북미관계 발전에 있어 계륵과도 같은 존재일지라도 현실적으로는 북일간 관계개선을 막아온 걸림돌이었을 뿐만 아니라 6자회담의 진전을 가로막아온 요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북한의 납치문제 재조사 용의로 인해 6자회담 재개의 걸림돌이 사실상 제거된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아울러 아직 부정하고는 있지만 어쨌든 일본은 북핵 2.13합의에 따라 비핵화의 진전과 맞물려 북한에 제공하기로 한 경제.에너지 지원에 동참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했다. 이로써 일본은 그간 6자회담에서 받아온 수모와 소외감을 단숨에 만회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북미관계 개선과 6자회담 진전 못지않게 북일관계 개선이라는 그 자체도 중요하다. 오히려 북한은 이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 온 재일 <조선신보>는 이번 북일실무회담(11-12일) 소식을 연일 베이징발로 보도하면서 “(양국은 이번 회담에서) 평양선언에 따라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현안문제를 해결하는데서 나서는 ‘쌍방의 관심사항’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강조했다. 2002년 9월 17일 당시 고이즈미 일본 수상이 평양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합의한 평양선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선언의 핵심은 양국이 과거를 청산하고 관계정상화를 이루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로써 북한은 북미관계 정상화와 북일관계 정상화를 병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문제는 이번 북일 6.13합의가 북미관계 개선과 6자회담 진전 그리고 북일관계 개선이라는 적지 않은 함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최근 김하중 통일부장관이 김대중평화센터가 주최한 6.15공동선언 8주년 기념행사에서 축사를 통해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몇 번이나 밝혀온 바와 같이 과거 남북 간에 이루어진 여러 가지 합의들, 즉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또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문제에 관하여 북한과 협의를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으나 시쳇말로 화끈하지가 않다. “6.15와 10.4선언을 존중하겠다”면 딱 끝날 일을 두고 이것저것 다 나열하니 헷갈리기만 하다. 분명한 건 이번 북일 6.13합의로 인해 북한은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며 저만치 나아가는데 비해 남한은 자꾸 뒤처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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