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그림

한때 서울의 삼각지에서는 일명 `쫑쫑이 그림`이라고 불리는 미술품이 유행했었다. 수요층은 주로 용산의 미군들이었다. 삼각지 화가들은 서양의 명화를 모작하거나 미군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이 외에도 범선그림, 파도, 석양, 일출풍경, 민화나 동양화의 요소와 결합한 유화 따위도 그렸다.

손재주가 좋은 민족이기에 70년대에는 미국으로 수출까지 하는 호황을 누린 적도 있었다. 사람들은 이런 그림을 `이발소 그림`이라고 통칭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 화실 문을 닫거나 액자전문점으로 전업하거나 초상화 주문을 받으면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이발소 그림은 미술용어로 `키치(저급미술)`라고 부른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고급미술을 모방하거나 약간의 변형을 가하여 대량으로 만들어 낸다. 가격은 그야말로 `액자값만 받는다`는 말처럼 저렴한 편이다. 어떤 평론가는 이발소 그림에 독자적인 가치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1980년대에는 아파트 열풍이 불면서 거실을 장식할 그림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여기에 부응한 것이 이발소 작풍의 동양화이다. 유화는 부담스런 반면 동양화는 친근하고 빠른 시간 내에 많이 그릴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아파트 거실에 유명하다고 하는 작가의 동양화가 걸린 집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사실 거의 가짜라고 보면 된다. 

이발소 그림의 명맥은 지금도 활발히 유지되고 있다. 쇼핑센타 매장, 지하상가 매장, 고속도로 휴게실 같은 곳이나 표구사, 동네화랑에서 거래가 되고 있다. 심지어는 미대생이라고 하면서 사무실이나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그림을 파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팔린 그림은 유흥업소, 갈비집, 카페나 다방, 화장실, 거실 따위에 장식용으로 쓰인다.

감성적인 우리 사람들은 미술작품을 제법 선호한다. 아무래도 어렵고 복잡하며 비싼 작품보다는 쉽고 싸며 장식적인 그림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술에서 취향이나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하는 일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화가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이발소 그림이 불편하다. 이유는 있다. 하나는 미술을 소비하는 것이다. 이것은 돈주고 사고나면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일종의 소유욕과 맞닿아 있다. 미술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거나 공감하는 것이다.

몇 년 전 교육방송에서 `그림을 그립시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미국의 `밥 로스`라는 사람이 나와 쉽게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강의 한 내용이었다. 작품의 내용은 없었고, 기법도 그야말로 싸구려에 가까웠다. 이 프로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대히트를 치고, 서울 강남 아줌마들 사이에 파고들었다. 물론 `밥 로스`상표가 붙은 물감과 교본, 도구를 비싼 값에 사야 했다. 미술은 정신적인 가치인데, 아마도 돈이 많거나 게으른 사람들은 정신가치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는 미술작품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비싸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비싼 그림도 있는데 이는 주로 유명한 작가들의 것이다. 하지만 젊은 작가나 청년작가의 미술작품은 그렇지 않다. 청년작가들은 물감 같은 재료를 살 돈이 없어 허덕인다. 가전제품을 살 정도면 충분히 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입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안목을 높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미술전시회를 많이 하는 곳도 드물고 입장료나 관람료를 받지 않는 나라도 없다. 거의가 공짜다. 심지어는 비싼 팜플렛도 말만 잘하면 공짜로 준다. 다시 말해 굳이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미술품을 향유하고 교양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술이 발전한 나라는 좋은 나라이다. 정신가치가 풍부하고 삶의 다양성이 숨쉬는 그런 사회는 우리가 꿈꾸는 이상형이다.

월급 받는 화가

▶총석정
한상익/유화/80.5*64.2

이번 그림은 북한화가 한상익이 그린 <총석정(叢石亭)>이란 유화작품이다. 기암절벽이 있고 석양이 지며, 파도가 부서지고, 고기잡이배와 갈매기가 날고 있는 풍경이다. 두텁게 칠한 물감층과 화려한 색상은 마치 우리나라의 이발소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북한미술의 특징 중에 하나는 모작이 많다는 것과 고급미술과 저급미술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을 방문해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의 기행문을 보면 전시되어 있는 작품의 거의가 모사품이라는 데 놀란다고 한다. 문화재 또한 마찬가지다. 진짜 작품을 보호하려는 의지가 강해서 그런지는 확실하지 않다. 북한의 화가들은 실력을 연마하기 위해 모작을 많이 한다고 한다. 이런 모작은 우리 미술대학이나 작가들도 선호하는 방법이다.

북한과 우리는 미술품을 창작하는 태도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는 작품을 창작하고 판매하는 일은 모두 개인이 떠맡고 있다. 아주 실력이 있는 화가들은 화랑과 전속계약을 맺어 활동하기도 하는데 전체 미술가 중에 아주 작은 수만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에는 국가에서 월급을 받으며 창작을 한다. 그러다 보니 국가에서 원하는 일정한 과제를 소화해야 하면서 틈틈이 개인창작을 병행한다고 한다. 북한미술이 어느 면에서 딱딱하게 느껴지는 대목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 사회적으로 기여를 많이 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지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실력을 가지기도 전에 미술을 포기하는 사람이 80~90%를 능가한다. 작품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에 자유롭고 다양하게 창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북한의 경우는 창작내용에 제약을 받는 단점이 있으나 실력이 있는데 조건이 어려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그림을 대량 모작하고, 수요자의 취향에 맞추는 화가들이 많다.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 하는 차이가 있지만 현실에서는 어느 것이 좋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나는 안정된 조건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싶다. 오죽하면 `마누라가 벌어주는 돈으로 그림만 그리는 것`이 희망사항이라고 떠들고 다니겠는가. 물론 농담이다. 나도 월급 받는 화가이고 싶다. 하지만 정부나 회사는 아니다. 그것은 내가 사회에 기여하는 능력만큼 사회와 사람들에게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다. 아직은 한푼도 못 받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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