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횃불로 변하고 있다. 구호가 함성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에 반대해 지난 5월 2일 청계광장에서 최초로 촉발된 촛불시위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다가 5월 24일 광장에서 거리로 진출했으며 급기야 지난 주말인 5월 31일에는 세종로 일대를 완전 장악했다.

촛불들이 청와대 코앞까지 진출한 것이다. 그때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광화문과 정부종합청사 근처 차도는 촛불들에 장악되어 이른바 ‘해방구’가 되었다. 숱한 대(對)정부 투쟁이 있었지만 이처럼 시위대가 그 함성이 들릴 정도로 청와대 앞까지 진출한 경우는 드문 일이다. 노투사(老鬪士)들에 의하면 4.19혁명 이래 처음이라 한다.

시위와 축제가 어우러지다

당시 이 일대는 시위장이면서도 축제장이었다. 청와대로 통하는 3개의 통로인 경복궁길, 효자동길, 청운동길은 촛불과 공권력과의 전선이 쳐져 물대포와 분말소화기가 뿌려지는 등 시위장이었지만 그 배후로 시위대가 장악한 열린 광장에서는 노래와 박수와 춤이 어우러진 축제의 장이었다. 말하자면 6월항쟁의 시위에다 2002월드컵 응원의 결합이었다.

열린 공간에서는 밤새껏 시위와 축제가 번갈아 가면서 연출되었다. 정부 관료가 이 광경을 본다면 어떨까? 마침 이날 청와대 참모진이 민심 탐방을 위한 암행(暗行)을 했다고 하니 그 실상을 정확히 대통령에게 전달했음직하다.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는 촛불을 이길 수가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집회가 빠르게 변화 발전하고 있다. 이 속도를 정부는 따라 잡을 수가 없다. 중고생 위주로 시작된 문화제가 대학생을 비롯한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시위 형태로 변하고 있다. 처음엔 천 명 단위였다가 만 명 단위로 훌쩍 늘면서 10만 명까지 모였다.

놀라운 건 집회 후 거리 행진을 하면 시민들이 호응을 하면서 행진 대오가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 구호도 발전하고 있다. ‘쇠고기 수입 반대’에서 점차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 ‘한반도 대운하 반대’를 거쳐 ‘독재타도’, ‘이명박은 물러가라’로 톤이 높아진다.

이는 4.19혁명과 6월항쟁 때의 운동의 진화를 연상시킨다. 4.19혁명도 초기에는 3.15부정선거 반대였다가 이승만 정권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자 ‘이승만 하야(下野)’로 발전했으며, 6월항쟁 때도 처음엔 ‘4.13호헌 철폐’였다가 전두환 정권 역시 강경진압에 나서자 ‘독재타도’로 나아갔다. 결국 두 대통령은 국민들에 항복했다. 지금 촛불시위 구호도 ‘쇠고기 수입 반대’에서 ‘이명박은 물러가라’로 정착화되고 있다.

배후가 없는 독특한 시위

둘째, 이번 시위의 독특한 현상은 배후가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어떠한 이념공세나 색깔론도 통하지 않는다. 촛불들은 각 개인이나 단위별로 움직이고 있다. 이들 단위들을 하나로 엮는 지도부가 없다. 오직 각 단위들은 횡적으로 네트워킹 되어있을 뿐이다. 여기에다 대고 정부가 ‘배후’를 들추고 ‘좌파’를 꺼내봤자 정신 나간 소리일 뿐이다.

배후가 없는 싸움은 그림자와의 싸움이니, 헛심만 쓰고 지쳐 자멸하기 마련이다. 시위자를 연행해도 구속시킬 수가 없고 또 길거리 시위대를 해산시킬 수도 없다. 이는 분명 지난 시기의 투쟁이나 항쟁과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모습이다.

보통 운동교과서에 의하면 지도부(배후)가 없는 자연발생적 시위는 오합지졸이기에 오래가지 못하거나 무력진압 앞에 패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21세기 초 한국사회에서 세계 최신의 인터넷과 휴대폰을 장착한 ‘개인’들은 다르다. 마치 아메바와 같다고나 할까?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 세포분열한다.

시위장의 풍경이 이를 대변한다. 밤샘투쟁이 끝나 아침이 돼 경찰병력이 지쳐서 헥헥거릴 때 인터넷을 보고 달려온 네티즌에 의해 시위장은 새롭게 수혈된다. 끝없는 시위대와의 싸움이다. 유한한 공권력으로 무한한 촛불을 막을 수가 없음은 자명하다.

셋째, 철저히 평화시위이자 비폭력시위라는 점이다. 이것만으로도 촛불은 공권력에 비해 어찌할 수 없는 도덕적 우월성을 차지하고 있다. 자칫 시위대 중에 거센 구호나 과격 행동이 나오면 자체에서 솎아질 정도다. 시위대 자체 검열에 의해 시위가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오직 평화적 촛불과 구호만 있는 것이다.

이러니 경찰병력이 촛불들을 해산시킬 수가 없다. 강제로 진압하거나 최루탄을 쏠 수가 없다. 결국 강제진압에 나섰다가는 숱한 거리의 디카와 동영상에 의해 채증되어 단박에 인터넷에 뜬다. 경찰병력이 범죄자가 된다. 게다가 시위 후 풍경도 감동적이다. 말끔히 거리 청소를 한다. 흠잡을 데가 없다. 뿐만 아니라 네티즌들은 온라인상에서 청와대와 한나라당, 경찰기동대, 맥도날드 홈페이지를 해킹하는 기민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촛불들의 시위 방식이 눈부시게 변하고 진화하는데 이에 비해 공권력은 20여년 전 수준 그대로다. 디지털 시위방식과 아날로그 진압방식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이 같은 격차로는 공권력이 절대로 촛불을 끄거나 시위대를 해산시킬 방법이 없다.

미국에 ‘요청’ 아닌 ‘재협상’을

이처럼 정부는 결코 촛불을 끌 수가 없다. 정부당국은 그간 촛불의 배후 운운하더니 10만의 촛불이 나서고 비가 억수로 와도 멈추지 않는 촛불의 행진을 보고서야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하다. 대책을 내놓겠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그 대책이라는 게 아직 불확실하다.

정부는 인적 쇄신과 청와대 내부 시스템 개혁에 착수한다면서 장관과 수석 4~5명을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한다. 아울러 한반도 대운하 건설 ‘일단 보류’ 얘기도 나온다. 총리 교체얘기도 나온다. 그러다 마침 정부는 미국측에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중단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대증요법일 뿐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이러다간 오히려 촛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이다. 지난 달 22일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문에서 ‘광우병 괴담’ 운운했다가 촛불들의 심기만 불편하게 해 결국 광장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했다.

지금 촛불은 스스로 타오르는 불길의 방향과 목표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중단 ‘요청’ 정도가 아닌 전면 ‘재협상’이다. 미봉책으로 어물쩍 넘어가려 해선 안 된다. 그러기엔 국민들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국민들의 마음은 오직 하나. 우리 정부가 미국과 대등하게 다시 협상하길 원한다. 그래서 자존심을 되찾고 싶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 정도의 판단과 대책으로 촛불이 저절로 잦아들거나 임시방편으로 촛불을 끌 생각을 한다면 오산이다. 시간이 갈수록 촛불들 사이에서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구호가 ‘이명박 퇴진’ 구호로 진화해 나오는 것이 심상치 않다. 마침 6월항쟁 기간이 다가온다. 국민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줄 시간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이명박 정부는 촛불을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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