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방한 중인 손형근 한통련 부의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지금 단계로서는 후쿠다 수상이 북조선에 대한 정책을 바꿨다고 하기가 어렵다. 한 마디로 그대로다. 아직까지 총련과 재일동포에 대한 탄압 작업도, 지금도 사건이 생기고 있다.”

지난 23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초청으로 ‘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의 이른바 '반국가단체' 사건 관련 증언을 위해 방한 중인 손형근(57세) 한통련 부의장은 아직도 일본 정부의 대북 적대시 정책과 재일동포 탄압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진실화해위에서 증언을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그가 묵고 있는 숙소에서 기자들을 맞은 손 부의장은 “지금 총련계 동포들은 부모님과 형제들과 만나고 싶다면 중국을 통해 평양에 갈 수 밖에 없다. 굉장한 돈과 시간이 들고 수속도 번거롭다”며 “일본 정부가 세계정세를 잘 이해하고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해야 되는데, 우선적으로 만경봉호의 입항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월 11일 세 번째 대북 제재조치 6개월 연장을 발표를 통해 △만경봉호 등 북한 선박의 입항금지 △북한으로부터의 물품 수입금지 △24개 품목의 사치품 수출금지 조치 등을 계속 적용하고 있다.

그는 “한편으로는 다른 움직임이 시작됐다”며 “자민당 의원도 그렇고 민주당 의원도 참여해서 공산당, 사민당까지 유지 의원들이 모여서 북.일관계 정상화를 원하는 초당파 의원연맹이 결성됐다. 가까운 시일에 평양을 방문하겠다고 얘기했다”고 최근 일본 정계의 소식도 전했다.

그는 재일 동포들이 바라는 바는 "일본 정부가 북하고 화해하고 국교정상화 하는 길로 가는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곽동의 한통련 고문의 ‘세 가지 알리바이’

▲ 일본 중의회 외무위원회 회의록을 보도한 1980년 11월 14일자 사회신보. [자료제공-한통련]
손 부의장은 한통련 ‘이적단체’ 진실화해위 조사와 관련 “78년 대법원에서 재일 한국인 유학생 간첩사건과 관련해서 한통련은 반국가단체라는 판시가 나왔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당시는 정확한 근거도 증거도 없이 한통련 전신인 한민통(한국민주통일연합)이 소위 반국가 단체라는 문헌만 나왔다”며 “대법원에서 확실한 증거나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판시가 나왔기 때문에 우리가 반국가 단체가 아님을 증명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재일동포가 자수간첩이라고 해서 법정에 나왔다. 이름은 윤효동이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재일 한국인 간첩사건 때도 나왔고, 김대중 씨 재판에도 나와서 증언했다”며 “그런데 그 증언내용은 그 사람이 ‘70년대에 곽동의 씨를 데리고 평양에 가서 교육을 받았다’ 이런 내용이었다”고 한통련이 이적단체로 규정된 경위를 설명했다.

그는 “윤효동이가 곽동의 씨를 데리고 갔다고 하는데 그 평양에 가 있었다는 기간에 실은 곽동의 씨는 일본에 계셨다. 세 가지 알리바이를 가지고 ‘그 증언이 허위증언이다’ 그렇게 소명했다”고 전했다. 윤효동이 곽동의 한통련 고문을 대동하고 방북했다고 주장한 기간에 곽 고문이 일본에서 활동한 행적들이 공식적으로 3건이나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6일 서울형사지법에서 열린 사진작가 이시우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손 부의장은 ‘1980년 11월 5일자 일본 중의회 외무위원회 회의록 및 관련 보도 기사’, ‘1970년 4월 10일자 민단 도쿄본부 지방위원회 회의록’, ‘안상종 씨 증언서’ 등을 제출하고 곽동의 한통련 고문의 알리바이에 대해 증언한 바 있으며, 이후 이시우 사진작가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한국 정부, 한통련 홈페이지도 차단

▲ 인터뷰는 손 부의장의 해밀턴 호텔 숙소에서 진행됐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우리말 구사에는 문제가 없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손 부의장은 4년 전부터 복수비자를 발급받아 방한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한통련을 인정해서 입국허가를 내렸다. 그래서 사실상 명예를 회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법적으로 아직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라는 판시가 남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불이익이 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그는 구체적인 불이익 사례로 한통련 기관지 <민족시보>의 한국 반입이 차단돼 있고, 한통련 홈페이지 역시 차단된 점과 한통련이 야간학교 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민족학교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원 불가 방침을 꼽았다.

그는 일본의 민단, 총련, 한통련 등 동포조직 중 “한통련이 제일 먼저 세대교체를 실현했다”며 “주변에서 많이 걱정했다. 2,3세가 조직을 잘 꾸려나갈 수 있는지. 그러나 그 걱정이 필요 없었다. 우리는 1세 선생들이 구축해온 조직을 잘 지키고, 잘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의 새 정부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하며 국가보안법 폐지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을 촉구하기도 했다. 

한통련 조직국장과 사무총장을 거쳐 4년 전부터 부의장 역할을 맡고 있는 손형근 부의장과의 인터뷰는 23일 오전 11시부터 서울 이태원 해밀턴호텔 숙소에서 1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 통일뉴스 : 이번에 방한한 목적과 일정을 소개해 달라.

■ 손형근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도 진실화해위원회에게 재작년에 우리가 반국가 단체가 아님을 인정해 달라고 신청했다. 요즘 와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다며 직접 한통련 간부들에게 사정을 듣고 싶다고 해서 초청장을 보내왔다. 그것을 받아서 우리도 좀 스스로 반국가 단체가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고 판단해서 방한하게 됐다. 어제, 진실화해위원회에 우리 문제를 다루는 담당위원들과 만나서 한통련이 반국가 단체가 아님을 거듭 소명했다.

□ 초청장을 받고 왔는데, 방한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 전혀 없었다.

□ 어제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주로 어떤 내용 진술했는지?

■ 78년 대법원에서 재일 한국인 유학생 간첩사건과 관련해서 한통련은 반국가단체라는 판시가 나왔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당시는 정확한 근거도 증거도 없이 한통련 전신인 한민통이 소위 반국가 단체라는 문헌만 나왔다. 그래서 우리는 대법원에서 확실한 증거나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판시가 나왔기 때문에 우리가 반국가 단체가 아님을 증명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유학생 간첩사건 재판이 어떤 재판이었는지 듣고, 나중에 김대중 씨가 한민통의 수괴라고 해서 재판에서 사형판결을 받으면서 그때 어떤 재판이었는지를 우리가 파악했다.

어느 재일동포가 자수간첩이라고 해서 법정에 나왔다. 이름은 윤효동이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재일 한국인 간첩사건 때도 나왔고, 김대중 씨 재판에도 나와서 증언했다. 그런데 그 증언내용은 그 사람이 ‘70년대에 곽동의 씨를 데리고 평양에 가서 교육을 받았다’ 이런 내용이었다.

아마 이 증언이 근거가 돼서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라고 그런 판시를 받았던 것 아니냐 그렇게 판단했다. 그래서 우리는 윤효동이가 곽동의 씨를 데리고 갔다고 하는데 그 평양에 가 있었다는 기간에 실은 곽동의 씨는 일본에 계셨다. 세 가지 알리바이를 가지고 ‘그 증언이 허위증언이다’ 그렇게 소명했다.

□ 한통련이 사실상 정치적으로는 사면을 받지 않았는가? 한국방문이 가능해지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면담한 것으로 아는데, 그것과 사법적 처리는 다른 것인가?

■ 우리가 4년 전에 공식 여권이 발급되어서 조국에 자유 왕래할 수 있게 됐다. 복수 비자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상 한국 정부가 한통련을 인정해서 입국허가를 내렸다. 그래서 사실상 명예를 회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법적으로 아직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라는 판시가 남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불이익이 있다.

예컨대, 우리 <민족시보>라는 기관지가 있는데 그것을 본국에 보내는 것이 차단되고 있다. 그리고 홈페이지도 개설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차단되고, 일반 사람들이 홈페이지를 방문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재일동포 3,4,5세를 위해서 야간학교 식으로 민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예컨대 민족교육의 일환으로써 한국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정부의 지원금을 내달라고 요청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답이 역시 한통련에 그리고 재일한국청년동맹 사업에 돈 내주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유가 역시 우리가 반국가단체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답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완전히 명예회복을 하기 위해서 ‘대법원 판시가 부당한 것이었다’, 그것을 공식 기안해서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이루어져야 우리가 완전히 명예회복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 김대중 전 대통령도 한통련과 관련해 굉장히 피해를 입었던 당사자인데 한통련 집행부와 면담했고, 일반인 보기에는 합법화가 다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뿌리 깊은 인연이랄까 악연이랄까, 지금은 다 정리됐나?

■ 4년 전에 조국 방문했을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다. 그때 김 전 대통령이 자기가 하고 있는 재판에서 자기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것으로써 한통련도 누명을 벗겼다”고 말씀했다. “한통련이 해온 것을 보면 정의는 이긴다 하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까지 말씀해 주셨다. 우리로서는 그 말로 김대중씨와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여러 가지 있었지만, ‘앞으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서 다시 힘을 합쳐서 다시 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생각했다

□ 한통련 문제는 국가보안법 문제와 깊게 관련돼 있다. 국가보안법이 지난 정부에서 폐지를 추진하다 안 됐는데, 여기에 대한 입장은?

■ ‘국가보안법이란 어떤 법인가’ 이제 와서 다시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해서 미국이 한국 정부를 시켜서 만든 악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어떤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가 하면, 한반도의 핵문제를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이 협상을 잘해서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머지않아 미국에서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할 것이다. 나아가서는 북.미 국교정상화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런 마당에 국가보안법은 무효이고 깨끗이 철폐되어야 한다. 그렇게 돼야 한다.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 이명박 정부가 새로 들어서서 한.일관계와 재일동포들에 대한 정책이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재일동포로 구성된 단체의 간부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 이명박 대통령이 4월 달에 일본 도쿄를 방문해서 일본 수상에게 “앞으로 한국 정부는 역사문제에 대해서 묻지 않겠다” 이런 말을 했다. 그리고 “정치가 개개인은 자유롭게 의견을 낼 권리가 있다” 이렇게까지 말을 했다. 이것은 어떤 뜻이냐면, ‘정치가 개개인에게 있어서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한 사실에 대해서 반성을 하지 않아도 되고, 미화해도 묻지 않겠다’ 이렇게 볼 수 있다. 이것에 대해서 일본의 반동들이 박수를 줬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냐면, 일본의 교과서를 선생님들이 설명하는 요령서 같은 게 있는데 거기에 ‘독도(다케시마)는 일본의 고유한 영토다’ 이렇게 명기하게 됐다. 그러니까 일본학교에서는 앞으로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대해서 “다케시마는 일본영토다” 그렇게 가르치게 된다. 이것은 민족적으로 우리가 일본에 살고 있기 때문에 분노를 억누를 수 없다. 이렇게 한국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민족적인 본질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이 재일동포가 모이는 자리에서 “당신들은 좋든 싫든 일본에 오래 살게 됐다. 이제야 일본의 참정권을 획득해도 좋지 않겠는가. 나는 재일동포가 일본 참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협조하겠다” 이렇게 말을 했다. 우리는 한국의 대통령에게 요망이 있다. 어떤 요망이냐면, 한국의 대통령이 일본에 와서 이야기할 때 이렇게 말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은 어디에 살든, 민족의 긍지를 가지고 정정당당하게 한국 사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를 위해서 나는 모든 면에서 협조하겠다.”

□ 이명박 정부 들어서 한국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을 늘 접하고 있을텐데, 해외에서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이나 바람이 있다면?

■ 해외에서 살고 있는 교포인 우리가 조국을 방문했으면 즐길 거리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여기 있는 건강한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여기 맛있는 요리를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조국에 관한 많은 소식이 일본에도 전해져왔는데, 특히나 미국산 쇠고기 문제이다. 안정성이 확인되지 않는 미국산 쇠고기가 전면적으로 한국에 수입된다. 우리도 많이 걱정하고 있다. 전면개방을 반대해서 지금은 중.고등학생 중심으로 국민들이 매일같이 촛불을 들거나 문화제를 벌이고 있다. 청소년이야 말로 이 나라 장래를 짊어질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쇠고기를 먹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미국산 쇠고기가 전면 개방되면 조국에 와도 마음 놓고 쇠고기를 먹지 못 하게 된다.

그래도 우리는 역시 조국이니까 조국으로 와야 되지만, 아마 일본 사람들, 관광객도 이대로 가면 줄어든다고 예상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중대한 책무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잘못을 인정하고 쇠고기 전면수입에 관한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느끼는 것은 촛불문화제를 보니 국민들은 ‘미국에 대해서 비겁하게 추종하는 것이 싫다. 민족 주권을 지키고 자주적으로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는 거 같다. 그런 민족 자주의 부름은 세계사의 흐름의 추세이고, 우리 교포도 그 자주의 길을 걷는 것을 지지하고, 전면적으로 합세할 생각이다.

얼마 전에, 남대문이 소실됐다. 우리도 굉장히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정보를 들었더니, 남대문 개방을 이명박 씨가 서울시장 때 한 것으로 들었다. 개방하는 것이 좋은데 국보 제1호라는 곳을 잘 배려한다면, 완전한 방화예방책을 강구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것 없이 개방해버렸으니까 그런 비참한 사태를 우리가 보아야 했다.

그것을 보니, 이명박 대통령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한 기조가 그런 거 아니냐 생각이 든다. ‘내일 모레 아니고 오늘만 좋으면 좋다’ 쇠고기 문제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와 정책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이 대통령에게 호소하고 싶다. 오늘 아니고 내일 모레를 위해 정책을 생각해 달라. 남대문 운명이 나라의 운명이 되면 절대로 안 된다.

□ 북.일 관계가 납치문제로 인해 풀리고 않고, 재일동포의 처지도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들었는데, 현지에서 느끼는 북.일관계, 재일동포의 현황은?

■ 작년 9월에 후쿠다 수상이 출범했다. 그 전에는 1년간 아베 수상이었다. 아베 수상이 왜 실패했는가. 그것을 분석하면 그분이 북한에 대해서 너무 강경한 정책, 적대 정책을 폈기 때문에 실패했다.

미국이 북조선에 대해서 적대시 정책을 벌였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러나 요즘은 북.미 관계가 상당히 개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수상이 적대적으로 시도했다. 그런데 미국측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정책이 바뀌니까 ‘일본도 바꿔라’ 이렇게 했는데 아베 수상이 따라가지 못했다. 그러니까 후쿠다 수상이 북조선에 대해서 아베 수상이 실패한 것을 교훈삼아 바꿔야 하는 그런 입장이었다.

그러나 지금 단계로서는 후쿠다 수상이 북조선에 대한 정책을 바꿨다고 하기가 어렵다. 한 마디로 그대로다. 아직까지 총련과 재일동포에 대한 탄압 작업도, 지금도 사건이 생기고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다른 움직임이 시작됐다. 자민당 의원도 그렇고 민주당 의원도 참여해서 공산당, 사민당까지 유지 의원들이 모여서 북.일관계 정상화를 원하는 초당파 의원연맹이 결성됐다. 가까운 시일에 평양을 방문하겠다고 얘기했다.

후쿠다 정권이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바꾸지 못하는 속에서 ‘이대로 가면 안 된다. 미국과 보조를 맞춰서 일본도 적대시가 아니고 국교 정상화 하는 길로 가자’ 이런 움직임이 대두되어 오고 있다.

우리는 2년 전부터 2년간 계획이라는 운동방침을 세우고 그 속에서 최우선적으로 ‘북.일관계 정상화를 실현하자’ 그런 운동을 해왔다. 앞으로 우리는 더욱 힘차게 북.일관계 정상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여론을 환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지난 4월 초에 대북제재 조치가 연장 됐고, ‘만경봉호’가 못 들어와서 재일동포 입장에서 불편하지 않나?

■ 총련계 사람들에게 북한은 조국이다. 부모님도 살아계시고, 형제들도 살아계시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야 당연하지 않나. 그런데 일본 정부가 모든 교류를 금지하고 있다. 북조선하고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겠다. 그것이 제재다.

그러니까 지금은 총련계 동포들은 부모님과 형제들과 만나고 싶다면 중국을 통해 평양에 갈 수 밖에 없다. 굉장한 돈과 시간이 들고 수속도 번거롭다. 우리가 볼 때, 이것이 제재 문제를 생각할 때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니까 일본 정부가 세계정세를 잘 이해하고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해야 되는데, 우선적으로 만경봉호의 입항을 허용해야 한다.

□ 한통련은 민단하고 총련과 함께 6.15 공동행사도 같이 하면서 재일동포 사이에서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민단과 총련 간에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재일동포 내부의 단결문제와 관련한 상황은?

■ 한통련의 가장 중요한 운동 방침의 하나가 동포화합이다. 단결하자는 거다. 그런데 총련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민단 중앙본부만 화합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단 중앙본부가 왜 거부하고 있는가? 무엇을 핑계로 거부하고 있는가? 하면은 우리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 단체다 그러니까 접촉할 수 없고, 화해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민단 중앙본부는 국가보안법에 매달리고 있다.

그리고 2년 전에 ‘5.17 민단.총련 공동성명’이 발표된 바 있다. 그 내용의 축이 ‘통일운동 같이 하자’, ‘재일동포 권익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자’ 이런 내용이었다. 모든 동포가 좋은 공동성명이라고 해서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일본 반동들이 이것을 반대했다.

왜 반대했냐면, 지금 일본 정부는 북한을 적대시하고, 총련을 탄압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민단이 총련과 접근하는 것이 일본 정부에 이익이 안 된다’ 이런 생각으로 일본 정부가 이 공동성명에 반대했다.

그래서 민단에게 압력을 가했다. 재일동포가 일본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세금문제나 일본 당국에게 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런 상황을 공안당국이 최대한 이용해서 민단에게 압력을 가했다. 그래서 민단 중앙에 보수적인 사람들이 힘을 얻어서 5.17 공동성명을 백지화시켰다. ‘5.17 민단.총련 공동성명’이 굉장히 좋은 내용인데, ‘일본 정부의 반대와 민단 중앙본부의 보수적인 사람들의 책동으로 인해 안 돼버렸다’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북한에 대한 적대의식을 줄이고 국교정상화 하자는 방향으로 간다면, 일본 정부가 재일동포의 화합에 반대할 이유가 없어진다.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일본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우리는 일본 정부가 북하고 화해하고 국교정상화 하는 길로 가는 것을 원하고, 그 조건 속에서 동포 화합 사업이 굉장히 좋은 환경을 얻을 수 있다. 열심히 하면 동포화합이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

□ 한통련의 곽동의 의장이 상당히 상징적 존재였고, 새롭게 세대교체가 됐는데, 내부적인 변화가 잘 안착되고 있는지? 한통련 내부 상황은 어떠한지?

■ 일본에서 재일동포사회에서 3개의 단체 있다고 평가한다. 민단, 총련, 한통련이다. 세 개 큰 조직 속에서 한통련이 제일 먼저 세대교체를 실현했다. 곽동의 전 의장님은 1세대였지만, 곽 선생님 졸업한 후 지금 한통련 간부들은 모두 2,3세이다.

주변에서 많이 걱정했다. 2,3세가 조직을 잘 꾸려나갈 수 있는지. 그러나 그 걱정이 필요 없었다. 우리는 1세 선생들이 구축해온 조직을 잘 지키고, 잘 운영하고 있다. 한통련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제까지 왜 없어지지도 않고 남아있는지, 이것이 기적 같은 것인데 우리도 자료를 분석해봤다.

이 조직의 매력이랄까 장점이랄까? 제일 먼저 배동호 선생님과 곽동의 전 의장님의 위상이 높다. 그리고 조국과 민족에 대한 애정이 깊다. 그것을 우리 2,3세가 착실히 이어받고 있으니까 조직의 생명이 생생하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차세대를 육성하고 있다. 그 거점이 재일한국청년동맹, 한청이다. 벌써 한청의 주된 세력이 4,5세이다. 아무래도 4, 5세가 되면 민족의식 희박해지고 민족조직에 결집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한청 간부들이 매일 호별방문하고 청년들을 만나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많이 교육도 시키고, 야간 민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교포들이 거의 일본학교 다닌다. 우리 민족사 모르고, 언어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런 가운데 한청이 야간학교를 운영하면서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하는 민족교육을 민간의 입장으로 교육시키고 있다. 우리 차세대가 한청에서, 지역에서 속속 나온다. 운동은 1,2,3,4,5세 영원히 계속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우리는 총력을 다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통련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다.

□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한통련이 6.15위원회 성원으로서 열심히 통일운동도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에 남북관계 악화를 굉장히 걱정하고 있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8년이 됐는데, 남북관계는 순조롭게 발전해 왔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이명박 정권이 전 정권이 합의한 것을 존중해서 그것을 계승해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 출범해서 석 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6.15남북공동선언, 10.4공동선언을 지지 이행한다는 표명을 안 하고 있다. 이것이 남북관계 악화에 가장 큰 이유, 원인이 되고 있다. 조금 늦어졌지만, 지금이라도 이명박 대통령이 ‘6.15, 10.4를 이행한다’ 그렇게 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가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항상 말하고 있는데, 경제 살리기도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야 이룰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경시하고 무시하면 경제 살리기도 더더욱 어려워진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전환을 결심해야 한다. 10.4 공동선언 이행해서 기반을 튼튼히 하면서 더 적극적인 제안이 있으면, 그 기반 위에서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해외에 살고 있는 속에서 진짜 통일에 대한 갈망이라고 할까, 하루 속히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는 갈망이 점점 커지고 있다. 통일조국이 있어야 우리도 해외에서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다. 앞으로도 남북 동포들과 손을 잡고 해외 동포들도 주체의 하나로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한층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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