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2차 명단 발표를 앞두고 조세열 친일인명사전편찬위 부위원장을 만났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친일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논의의 시작입니다. 우리 사회 가치기준을 확립하고, 민족사의 정통성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2차 명단발표를 하루 앞둔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인근에 자리잡은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 사무실에서 조세열 친일인명사전편찬위 부위원장을 만났다.

고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받아 20여년 만에 결실

조 부위원장은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의 주축인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명단발표 기자회견을 하루 앞둔 데다 사전편찬 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든 상황이어서 조 부위원장의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의 배경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자, 그는 60년대 친일연구가로 유명했던 고 임종국 선생에 대한 이야기부터 차근차근 말을 꺼냈다.

▲ 인터뷰는 28일 오후 민족문제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고 임종국 선생이 1966년 '친일문학론'으로 친일 청산의 화두를 던지셨다. 당시 지식인 사회의 충격이 컸다. 그 분은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해서 친일 문제에 매진했다. 89년 임 선생이 돌아가시기 직전 친일파 연구 총서를 기획하고 그 안에 친일인명사전 수록을 계획하고 계셨다. 그러나 착수도 제대로 하시기 전에 돌아가셨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받기 위해 1991년 출범했다. 초창기에는 심포지엄, 전시회 등을 통해 친일문제를 여론화하는 데 집중했다. 그 노력의 성과로 99년 8월 전국 대학교수 1만 2천명이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지지하는 선언에 동참하기에 이른다. 그 결실로 2001년 제1기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출범했다.

임종국 선생이 별세한 뒤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올해 8월이면 '친일인명사전'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조 부위원장은 "100% 국민의 성금과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의 회비로 1차적인 결실을 맺게 된 것"이라며 그 의미를 더했다. 특히 2003년 12월 사전편찬 작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던 '일제협력단체 기초조사 지원 예산' 5억원이 국회에서 전액 삭감되면서, 거꾸로 전국민적 관심을 모았다.

"어떤 네티즌이 기사를 보고 처음으로 친일인명사전을 국민 성금으로 완성시키자는 제안을 했다. 그것이 의외로 전면적인 호응을 이끌어 냈다. 11일 만에 5억원의 목표액을 달성하고, 이후 국민 모금 운동으로 번져나가 7억원이 모였다. 그것이 민족문제연구소가 어려운 시설에 사전편찬을 추진할 수 있는 상당한 동력이 됐다."

"안타깝지만, 역사에는 명암이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에는 수많은 친일 관련 자료들이 축적돼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친일인명사전은 총론편 1권, 인명편 3권, 부록 3권 등 총 7권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오는 8월 우선 발간되는 인명편 3권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05 년 8월 3,090명의 1차 명단 발표에 이어, 이번에 발표될 1,700여명의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에는 그동안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던 인물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번 2차 명단발표에는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무용가 최승희를 비롯해, <선구자>의 작곡가 조두남, <가고파>, <목련화>의 작곡가 김동진, <고향의 봄>을 작사한 이원수 등 '국민 가곡'으로 손꼽히는 노래의 작사.작곡가가 다수 포함될 예정이다.

조 부위원장은 "이 분들이 창작한 노래가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 안타깝지만, 이로 인해 어두운 면들이 드러나게 됐다"며 "역사에는 명암이 있다고 본다. 아름다운 부분만 드러내고 어두운 부분은 감추는 것은 올바른 평가를 가로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엄밀성과 정확성이 친일인명사전의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편찬위는 29일 명단발표 이후 60일간에 걸쳐 이의제기를 받아 추가조사를 벌여 최종적으로 사전 수록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미 이의제기 몇 건이 접수됐다. 그는 '무용가 최승희'의 예를 들며 "최승희 고향의 면민들이 연명부를 제출하기도 했고, 제자들과 기념사업회 쪽에서 '국방위문 공연 등 강제성이 있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며 탄원서도 보내왔다"고 전했다.

"보류된다고 해서 수록대상자에 제외되는 것 아니다"

▲ 엄밀성과 정확성을 강조한 조세열 부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논란이 불거진 시인 유치환에 대한 친일인명사전 등록 여부는 결국 유보됐다. 만선일보의 '친일 기고문', 만주친일단체 '협화회' 근무 사실 등 친일 행적이 분명하지만, 해당 지역 사회가 이 문제로 크게 대립하고 있어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조 부위원장은 "통영, 거제 등에서 유치환 기념사업을 벌이고 있는 반면, 시민단체에서는 기념사업 저지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전하며 "유치환에 대한 친일 행위는 추가적으로 발견될 가능성이 있어 조사를 더 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보류된다고 해서 사전수록 대상자에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인명편 발간 이후 '보유편' 발간을 계획 중이라며 "판단해서 보유편 수록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유편 발간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어 "그 경계선 상에 있는 인물들이 상당수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편찬위가 활동하면서 축적한 전체 인물정보만 100만건. 이중에서 주요 대상자로 추려낸 모집단에는 2-3만 여명의 인물이 포함돼 있다. 그는 "이중 4,800여명이 인명편 3권에 수록될 계획이지만, 모집단 속에 있는 인물들은 언제든지 수록대상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의 현장, 역사관 건립이 중요”

▲ 조세열 부위원장은 친일인명사전 발간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부탁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성봉 기자]
조 부위원장은 이번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대해 "해방 이후 친일 행적에 대해 방대하게 조사를 진행하고 정리한 사례가 없었다"면서 "초유의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이것을 토대로 친일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8 년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시작으로 2009년-2014년까지 일제강점기 단체.기구사전, 2015년 자료집 및 백서 발간을 계획하고 있다. 2015년 이후에는 개별인물 및 전문분야 연구서 발간도 구상 중이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규명 사업은 연구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현실사회에 제대로 반영되기 위해서는 연구 작업과 함께 실질적인 교육 현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친일문제가 무엇인지 실물자료를 보여주면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생동감 있게 체험할 수 있는 역사관 건립이 큰 목표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편찬 사업이 좌초 위기가 있을 때마다 국민 여러분들이 지지 성원을 보내줘서 지속할 수 있었다"며 "인명사전을 낸다고 해서 과거사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방대한 일정이 남아 있으니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으로 지켜봐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