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일 (한신대 전 교수, Korea Project Director, Claremont Center for Process Studies)


탈북자들과 기독교의 의기투합

왜 이렇게도 기독교와 탈북자들은 궁합이 잘 맞을까? 넘어 왔다하면 탈북자들은 기독교인이 되고 심지어는 목사까지 된다. 김신조 목사 그리고 김만철 목사 하면 귀에 익숙한 이름들이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상투적 구호가 하나 있다 “남은 하나님을 잘 믿어 이렇게 잘 살고 북은 김일성 우상화 때문에 굶어 죽는다”라는. 탈북하여 기독교인이 되는 것도 있지만 교회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알선 유도하고 있다.

이렇게 양자 간의 선순환 고리 혹은 궁합에는 그럴 만한 교리적 이유도 있을 법 하다. 즉, 북을 생지옥 같은 사망의 세계 그리고 기독교는 그 지옥에서 생명을 구하는 구원자, 이 관계는 마치 세상과 예수의 관계와도 같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기독교인들은 순교를 각오할 만하다.

지난 번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에서 샘물교회가 보여준 태도를 보면 이런 도식은 결코 무리한 발상이 아니다. 살아 돌아온 인질 교인들이 지금 해외 순방을 하면서 자기들의 신앙 무용담을 간증하며 돌아다닌다고 한다. 왜 이들이 국내에서는 떳떳하게 활동을 못하면서 숨어서 이럴까.

그러나 이런 탈북자들과 기독교 사이의 궁합에 엉터리 논리가 지적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1970년 이전까진 북이 더 잘 살았는데 그 때는 하나님이 북을 축복했는가. 그리고 1998년 IMF는 장로 대통령이 초래했는데 그 때는 하나님이 어디 있었는가? 이런 치졸한 논리를 구사하기 때문에 리처드 도킨스는 기독교의 신을 ‘조작된 신’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한반도에선 문명사의 시계 바늘이 반대로 돌고 있는가?

막상 기독교가 발생한 서구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녀 보라. 도시의 가장 중심가 명당자리에는 교회가 들어서 있다. 얼마나 큰지 한 번 들어가 그 안에서 길을 잃을 지경이다. 그리고 주일 낮 예배 시간에 가 보면 수천 명 좌석에 많아야 30-40명, 그것도 뒤에서 보면 백사장 같다. 그래서 목사의 역할은 주로 병원 심방 혹은 장례식 치러주는 것이 주된 업무이다.

이렇게 지금 서양에서는 기독교가 썰물같이 퇴조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 밀물같이 밀려들어오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한국 이민교회이다. 어떤 곳에는 한 장소에 한국교회가 두 개 동시에 예배 보는 곳도 있다. 물론 꼴불견일 것은 불문가지이다. 한 주일 한 번 예배 보는 데 한 달 월세는 2천불(2백만원 정도)이다.

다른 한편 한국 안을 보자. ‘고소영’ 가운데 하나인 ‘소망교회’는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상징 언어가 되었다. 대형교회에는 수천 명 앉는 좌석에 주일 예배의 경우는 적어 3부 예배이다. 거두는 헌금은 평균 한 주 2억이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지난 주 광화문에 있는 한 대형 교회에서 주보를 입수하여 조사해 보았다. 경제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는 세금 한 푼 안 내는 곳이 교회이고 보면, 목사 직업은 이제 선망 1호가 되었다. 지금 한국교회는 이명박 대통령 따라하기 새벽기도가 유행이라고 한다. 이 장로가 성공한 비결은 새벽기도 때문이라고 그런 교회에는 새벽도 아닌 밤중 2시에 가도 자리 잡기 힘들 정도이다.

그 이유야 어떻든 지금 종교에 있어서 한국만은 지구촌의 시계 바늘의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기독교는 200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개신교와 가톨릭을 합쳐 국내에 1천 400만 명이 넘는 신자가 있다. 이처럼 다수의 신자를 가진 한국 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교회가 사라지는 것을 두고 종말이 가까워 온 징조이고, 이제 희망은 한국 밖에 없고, 한국민은 하나님의 선민이며, 한국은 ‘하나님의 새 이스라엘 God's New Israel’이라 설교한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마귀의 시험에 들지 말라고 교인들을 교육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아니라고 본다. 지구촌의 시계가 변하고 있고 종교도 낡은 것이 물러가고 새 것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베케트의 ‘고도을 기다리는’ 시대인 것을 모르는 착각 증상이 지금 한국의 현주소가 아닐까.

반기련(www.antichrist.or.kr)을 아십니까.

며칠 전에 어떤 목사가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한국교회를 고발한다는 책을 썼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잘못 건드렸다가 맞아 죽는 대상은 조직 깡패 이상으로 무서운 것이 한국교회이다. 나 역시 1985년 한국 굴지의 교단 신학교에 교수로 들어갔다가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가 기독교와 그 신학교 출신 33인 가운데 변절자들의 이름을 거론했다가 임용 1년 만에 재임용에 탈락한 경험이 있다. 어디 나 하나 뿐이 아니다. 한국교회의 비리를 폭로했다가 몰매당한 신문 방송은 우리가 지금 보고 있기 때문에 더 여기서 말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이들은 기독교를 두고 '개독교', '먹사', '똥경'이라고 비하하면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이른바 '안티기독교' 운동을 펼치고 있다. 안티기독교 운동의 중심에 있는 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반기련, www.antichrist.or.kr)이 2003년 출범할 때 내건 창립 선언문은 "이 사회에서 기독교가 더 이상 패악질을 일삼지 못하도록 기독교를 박멸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안티기독교 운동을 하는 네티즌들 사이에 기독교는 마치 모기나 바퀴벌레처럼 우리 사회에서 박멸해야 할 해충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언론회(대표 박봉상 목사)가 개최한 안티기독교 관련 토론회에서 이찬경 반기련 회장은 "신의 정의를 부르짖고 공의의 하나님을 이야기하면서 신의 심판을 설교하는 종교 엘리트의 부패가 그들보다 더 교육기회가 없었던 신도들보다 더 치졸하고 야비하다"면서 "우리는 기독교가 자정능력이 아예 없거나 상실했다고 판단한다"고 안티기독교 운동의 배경을 밝혔다. 이 회장은 "물질적 축복과 기복을 파는 종교업자들이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예수천당 불신지옥'으로 협박하고, 공룡화된 교회는 거대한 기업처럼 돌아간다"면서" 천민자본주의가 판을 치고, 교회의 외적 성장과 신도의 양적 팽창이 목사의 성공으로 치부되는 현실에서 신도들은 결국 현금 지급기 노릇만 죽으라고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독교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교리로 다른 문화와 다른 종교에 대한 멸시와 폄하를 일삼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망 사건을 순교로 미화하는 현실은 문화의 상대성과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기독교의 모순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그는 불상과 단군상을 부수고 장승을 훼손하며, 수만의 신도가 모여 모든 사찰이 무너지라고 통성기도를 했던 사례 등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배타성을 지적하면서 "존중받기를 원하면 먼저 존중하라"고 주장했다.

2002년 월드컵 대회 때 개신교계는 ‘붉은 악마’를 사탄의 무리로 단정, 반대 캠페인를 벌렸다. 이것이 안티기독교가 등장한 직접적인 이유라고도 진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패악은 이것 이외에 더 있다. 나는 그것을 기독교 망국론 5대 이유라 한다.

기독교 망국론 5대 이유

나는 5대 기독교 망국론을 1980년대 초부터 글로 말로 펴 왔다. 1980년 5월 27일 새벽(미국 시간) 광주가 무너지는 순간 미국에 대한 증오와 내가 미국에 속아 기독교인이 되었고 신학을 전공하였고 미국이 좋아 미국까지 왔다고 자탄을 하였다. 광주에 보낼 피를 헌혈 받으려 10일 간 로스앤젤레스 적십자 병원에서 밤잠을 못 자던 그 날 새벽, 그래서 미국 공수부대가 광주를 구해 줄 것이라고 철석 같이 믿었던 허망했던 신념이 무너지면서 나는 기독교 망국론을 5가지로 정리하였다. 이 5대 이유는 위에서 소개한 안티기독교의 창립 취지문에 일부 나타나 있지만 내 직장과 바꾸면서라도 포기할 수 없는 나의 지론이다.

1. 우리 민족에게는 전래 고유한 민족 종교의 전통이 있었다. 이를 신채호는 ‘선교’, ‘신교’ 혹은 ‘랑교’라고 했다. 그 위에 차례로 불교, 유교 그리고 기독교란 외래 종교가 들어 왔다. 그런데 불교의 경우는 고유 종교에 접목을 가장 잘 한 종교 가운데 하나이다. 불교의 대웅전이 원래는 환웅전이었다고 한다. 지금 환웅전은 삼성각과 같은 형식으로 윗자리에 밀려났지만 지금 한국 불교 사찰 경내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유교의 경우는 “공자를 높이고 중국을 훼손하지 말라”는 원칙에 의해 단군이 요순보다 먼저일 수는 없는 사대주의 사관을 유지하기는 했어도 각 지방에는 부군이라는 것을 두어 관리가 지방에 내려가면 이곳을 먼저 들렸고 하늘에 천제 지내는 풍습을 지켜왔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 문화전통을 뿌리째 도려내려 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우리는 아브라함 자손이다 곰자손 물러가라”고 현수막을 교회 밖에 내걸고 단군 목을 치고 있다.

불교는 신라와 고려 1500여년의 우리 역사를 지켜 온 우리의 저력이다. 유교도 500년 조선조를 지켰다. 그러나 기독교는 우리 땅에 들어온(1884년) 지 20년이 채 못 되어 우린 나라를 잃고 말았다. 오비이락일까. 나라 망한 원인과 기독교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나는 있다고 본다. 나라를 나무에 비교할 때에 그 뿌리가 잘린 나무가 성할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가 우리 문화전통과 종교의 뿌리를 뽑은 것이 우리의 힘을 상실하게 했고 이것이 망국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2. 한국에 기독교를 소개한 미국 선교사들은 청교도들의 후예들로서 극단적인 개인 구원과 종말론에 집착하였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란 구호는 모두 선교사들의 입김 때문이다. 1907년 1월 장대현 교회에서의 대 부흥회는 실로 초대 교회의 오순절 운동을 방불케 했다. 2007년 한국교회는 장대현 교회의 부흥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교회가 재 부흥의 도약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부정적이다.

그런데 보라. 장대현 교회의 부흥을 주도 했던 인물들이 거의 일제에 굴복, 신사 참배를 하였다. 실로 한국교회에 이름났다는 지도자 치고 신사 참배 안 한 사람 나와 봐라. 과연 몇이나 되나. 장대현 교회 부흥 때 그렇게도 열광적이던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도 신사 참배를 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3.1운동 지도자 33인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15명이나 되지만 거의 다 변절하고 말았다. 내가 처음 부임한 신학교의 동문들도 5명이나 33인에 들어있었지만 다 변절했다.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고 내가 해임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내 연구실에 단군 초상화가 걸려 있다고 구체적인 빌미를 잡아 목을 치고 말았다.

33인 가운데 한 사람 그리고 장대현 교회 부흥의 주인공인 길선주 목사는 독립선언문에 서명은 하고 3월 1일 그날 양평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었다. 나라 구하는 일 보다는 개인 영혼 구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국가 보다 교회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불참의 변이다. 이렇게 선교사들이 우리 몸에 놓은 주사는 아편주사였다. 이런 아편쟁이들이 국가관과 역사관을 바로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은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나중에 해방 신학자들은 이런 아편 주사를 ‘위로 주의 pacification' 그리고 이런 신앙의 개인화를 '사물화 privatization'라고 했다. 이런 기독교가 나라 망하게 하는 데 일조를 하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고소영’은 속물주의를 하나 더 첨가하고 있다.

3. 기독교의 종말론은 원래 인간이 자기 과오를 회개하지 않으면 신의 심판이 내리는 것은 마치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인 것과 같이 시간문제라는 데서 유래한다. 교만은 그 인간의 종말이라는 것이 종말 사관의 본뜻이다. 그러나 후대 기독교는 가만히 앉아 하늘에서 예수가 올라간 모양 그대로 다시 올 것이라는 것으로 변질시키고 말았다.

만약 종말론이 이렇게 해석된다면 그 패악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세상의 종말이 곧 오는 데 독립운동은 해 무엇하고, 세상 나라는 다 없어지고 신의 나라가 곧 건설되는 데 해방은 되어 무엇 하느냐 말이다. 얼마 전 ‘휴거’라는 것이 얼마나 사회 병폐를 조장했는가는 기독교의 종말론이 끼친 나쁜 영향이다. 선교사들은 독립운동에 참가하는 한국 청년들에게 이렇게 신국을 기다리라고 타일렀다. 불교의 승병 僧兵 그리고 유교의 의병 義兵 같은 것이 기독교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회 안에서는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라’고 목청을 높이면서 말이다.

4. 선교사들이 심어준 사대주의 이것은 또 다른 망국의 원인이다. 불교도 유교도 경전과 사상이 먼저 들어 왔다. 기독교 선교사 같은 포교자들이 들어 왔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곧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기독교 선교사들은 무슨 카나다 선교부, 호주 선교부, 남 감리교 선교부, 남 침례교 선교부 하면서 미국에 있는 선교본부의 복사판 같은 것들을 한국에 설치하고는 이 좁은 나라를 갈가리 찢어 자기들 선교 봉토로 삼았다. 그리고 서울의 가장 명소에 그들의 선교 본부 건물을 지어 놓고는 그들이 사는 주거지는 그야 말로 호화 별장 같았다. 과연 이들이 우리 민족과 고통을 함께 나누려 들어 온 사람들일까. 그들 집에서 일하던 하우스 보이들은 영어를 남보다 잘 해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유학을 가 출세를 해 돌아와 우리 문화를 말살하고 우리 언어를 압살시키는 데 하수인 노릇을 하였다.

실로 기독교 사대주의는 유교 사대주의를 뺨칠 정도였다. 이런 선교사 앞잡이 목사들은 신사참배 선봉장들이었으며, 나중에는 친일 매국노들과 결탁하여 언제나 독재자의 최대 지원 세력이 되었다. 지금은 뉴라이트란 이름으로 우리 역사까지 제 입맛대로 왜곡, 반민족적 그리고 반통일적 최대 세력이 되었다. 그 뿌리는 모두 한국 초대 기독교 그 자체에 있었다.

5. 미국을 ‘동맹국’이라고 하는 신화를 만드는 장본인이 한국 기독교이다. 제너럴 셔만 호를 타고 대동강에 처음 당도한 토마스 목사를 강의할 때엔 한국 교회사 교수는 강의실에서 눈물을 줄줄 흘린다. 그러나 토마스는 완전무장을 한 엄연히 군인이었다. 그 무엇보다 그가 군함 속에서 장사꾼들과 군인들과 한 배를 탔다는 그 자체가 정당하지 못하다. 기독교가 이런 식으로 전 세계를 복음화 하려 했기 때문에 백인 선교사들은 지금 제 3세계 그 어디도 발을 들여 놓지 못하고 있다.

그 오류의 전철을 지금 한국 교회가 밟고 있다. 진정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복음화 하고 싶을진데 한국군 파병과 때를 맞추지 말았어야 할 것이다. 그 정당하지 못한 전쟁에 선교사는 선교사가 아닌 전교사일 것이다. 미국은 1904년 일본과 뒷거래를 하면서 한일합방을 허락하고 자기들은 필리핀을 삼켰다. 그러면서 선교사들을 시켜 우리 앞에서는 일본 압제자와 우리를 위해 싸우는 양 하였다. 그리고 해방군으로 1945년 들어와 중앙청에 자기들 성조기를 올리고 무려 50년간을 지배하려 했다. 그리고 우리 국토를 잣대 하나로 그어 갈라놓고 말았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자기들 경제적 이익을 위해 신무기 거래 판매처로 만들어 놓고 우리 민족의 통일을 끝까지 방해하고 있다. 이런 나라가 동맹국일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민족의 최대 가해자를 천사로 둔갑시키고 우리의 바른 판단을 못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한국 기독교이고 ‘고소영’의 가운데 글자이다. 이 땅의 피끓는 젊은이들이 ‘개독교’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교회 ‘종교의 자유’ 말 할 자격있나?

수순으로 보아 미국과 이 나라 정부는 핵, 인권 문제에 이어 앞으로 종교의 자유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북을 압박할 것이다. 종교의 자유란 모든 종교가 아니라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 고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에 실린 모친 강반석 여사의 사진. [자료사진-김상일]
회고록 제 1권에는 김일성 주석과 기독교의 관계를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1권 6장의 ‘어머니’ 제목의 장에서 우리는 우리의 관심인 김일성 주석과 기독교의 관계를 상세히 읽을 수 수 있다. 회고록에서 김 주석은 “나는 기독교에 감싸여 있었다”고 할 정도이다. 어머니는 ‘강반석’이라 할 만큼의 기독교적 이름을 가질 정도이고 그의 외척에는 강양욱 목사등 기독교 집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기독교학교 숭실중학교에 다녔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어릴 때에 교회에 다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모든 것 보다 그가 길림에서 감옥에 갇혔을 때에 그리고 출옥 후에 가장 도움을 많이 준 사람이 바로 손정도 목사이다. 실로 그 시대에 이정도이면 김일성 주석은 기독교에 마사지 당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김 주석이 나라를 세움과 동시에 단행한 3대 청산 가운데 기독교가 들어 있다. 봉건지주 청산, 친일파 청산과 함께 기독교가 그 가운데 하나였다. 기독교는 청산이라기보다 기독교를 단죄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가 청산한 것은 기독교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기독교를 멀리하게 된 이유가 그의 아버지와의 다음과 같은 대화에 잘 나타나 있다. 회고록에서 그대로 읽으면 다음과 같다.

어느 일요일날 나는 할머니가 달여준 콩엿을 먹으면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오늘은 례배당에 안갈래요. 례배를 구경하는게 재미없어요” 아버지는 아직 철부지라고 할 수밖에 없는 나어린 나를 앉혀놓고 이런 말씀을 하였다. “가고 안가는거야 네 마음대로지. 사실상 례배당이라는데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안가도 좋다. 너는 예수보다도 자기나라를 더 믿고 자기 나라 사람들을 더 믿어야 한다. 그리구 나라를 위해서 큰일을 할 생각을 해야 한다” 이런 말씀을 들은 다음부터 나는 례배당에 잘 다니지 않았다. 칠골에서 학교를 다닐 때에도 례배당에 다니지 않는 학생들을 통제하였지만 한번도 가지 않았다. 나는 예수의 복음이 우리 인민이 겪고있는 비극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였다. 예수의 교리가운데 인도주의적인것도 많았으나 민족의 운명을 두고 깊은 고뇌에 빠져있던 나에게는 구국에로 부르는 력사의 웨침소리가 그보다 더 절박하게 들리였다. ...아버지도 신학을 가르치던 숭실중학교 출신이였기때문에 아버지의 주위에는 교인들이 많았고 따라서 나도 교인들과의 접촉을 많이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성장과정에 기독교적인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는가고 묻는데 나는 종교적영향은 받지 않았지만 기독교신자들에게서 인간적으로 도움은 많이 받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상적 영향도 주었다. 온 세상 사람들이 평화롭고 화목하게 살기를 바라는 기독교적정신과 인간의 자주적인 삶을 주장하는 나의 사상은 모순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1권 103쪽)

김 주석은 회고록 여러 곳에서 자기와 기독교 그리고 특히 천도교의 관계에 대하여 많은 언급을 하고 있다. 결론은 이러하다. 애국애족이 앞서지 않는 그 어떤 가치도 그것을 능가하거나 앞설 수 없다는 것. 종교이든 사상이든 이 나라를 사랑하고 이 민족을 위한다면 자기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그는 해방 후 중국과도 달리 ‘조선 기독교 연맹’을 설립했으며 애국애족의 정신과 기독교 신앙을 겸비한 지도자들을 모두 건국에 참가케 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남에서는 어용이니 운운하지만 그것은 자기들의 친일이라 쓴 모자를 돌려쓰고 하는 말에 불과하다. 1980년대 초 전 숭실대 총장이시면 김형직 선생과 숭실중학 동창이던 김성락 목사가 김 주석을 방문했을 때에 김 주석이 김 목사에게 식사기도를 부탁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아마 공산주의 혁명가 가운데 김일성 주석만큼 기독교에 관대한 인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북의 교회를 파괴한 것은 김일성 그리고 교인들을 다 죽인 것도 김일성이라고 남한 교회는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당장 옆의 모택동과 중국을 보라. 교회를 법적으로는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는 기독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다. 다른 공산국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은 기독교인이냐 아니냐가 결코 기준이 아니었다. 애국애족 만이 오직 기준이었다. 어떤 기독교인도 그가 이 기준만 있다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문익환 목사와의 만남이 바로 그 한 예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분명히 알라. 북에 진정으로 선교하고 싶으면 위에서 지적한 5대 망국 이유를 청산하고 애국애족의 선봉에 서라. 너희 교회를 포기할 때에 그 순간 교회가 살 것이란 사실을 명심하라.

신천 대학살자의 주범은? 제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를 다 폭격한 미국

▲ 파블로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Massacre in Korea, 1951, 109.5 x 209.5 cm), 한때 국내에서 공개가 금지됐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오늘 한국 기독교가 어린 김성주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이유가 바로 오늘날 젊은 세대를 포섭하지 못하고 그들로부터 개독교 소리를 듣는 진정한 이유이다.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함께 그가 미군의 신천 양민학살 소식을 듣고 그린 작품은 전 세계 유명 화랑에 다 걸려있다. 신천 주민 5만여명 가운데 3만 5천여명을 미군이 그 지역 기독교인들과 합작해 자행한 황해도 신천 대학살 사건은 단위 장소에서 일어난 최대의 사건이다. 피카소는 이 소식을 듣고 손에 붓을 들고 떨었다고 한다. 필자도 2004년 신천을 방문하였을 때 구월산 밑 이 작은 마을은 기독교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였다.

북엔 전쟁 전에는 엄연히 교회가 있었다. 그러나 미군은 하나 성한 곳 없이 교회를 폭격했으며 이북 전역을 쥐구멍까지 모조리 황무지로 만들 지경이었다. 오늘 북에서 미국과 교회를 증오하는 원인제공을 한 장본인은 바로 이 땅에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 미국 자신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미국이 그렇게 잔인하게 주민을 학살하지 않고 교회를 파괴하지만 않았어도 북이 그렇게 기독교에 대하여 태도를 취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다시 말해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이 교회를 박해하고 말살하는 그런 정책을 김일성 주석은 하지 않았다. 중국과도 달리 북은 천주교와 개신교회를 각각 세워 예배를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이웃 중국과는 극명한 대조가 된다.

김 주석은 언제나 이념의 잣대로 판단하지 말고 ‘사람 나름대로 판단하라’고 했다. 지주라도 사람 나름대로 애국애족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지금 이남 교회 목사들은 바리새인들 같이 율법과 이념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공산주의를 도매가격으로 매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생명의 은인이다시피 한 손정도 목사, 그의 아버지가 다닌 숭실중학교,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마음의 안식처로 다니던 교회를 그가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고 본다. 그리고 교회가 조금이라도 애국애족하는 태도를 보였더라도 김 주석의 기독교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을 것이다. 김 주석이 지금 생존해 있는 손정도 목사 가족들에게 보여준 따뜻한 애정 하나 만으로도 나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의 가슴 속엔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이런 그의 나라에 종교의 자유 운운하는 것은 몰라도 너무 모른 소리이다.

지금 평양을 방문하면 제너럴 셔만 호의 침몰한 흔적을 그대로 볼 것이다. 과연 기독교가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들어올 때에 어떤 손짓을 했는지, 그리고 그 때 그 몸짓을, 아니 그 버릇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는지 한국 기독교는 곰곰이 생각이나 하고 북을 향해 종교자유 운운해야 할 것이다. 개도 웃을 짓을 하고, 말을 하고, 북의 인권이니 종교의 자유 운운하기 때문에 기독교는 개독교 대접밖에 못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기독교는 ‘안티’ 정도가 아닌 국법으로 금해야 할지도

일본인 학자가 한국이 일본을 앞서는 3대 조건을 제시한 적이 있다. 부동산, 남북문제, 그리고 기독교이다. 그의 생각으로는 이 셋을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거리로 본 것 같고 남북은 통일을 그리고 부동산은 안정을 그리고 기독교는 위 5대 망국적 요소를 청산해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본다. 그런데 새로 선출된 장로 대통령은 이 세 가지에 대해 기대했던 방향으로 나가지 못 할 것 같다. 그렇다면 한반도는 일본에 뒤지게 되고 말고 어쩌면 구한말 같은 꼴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안티’ 정도의 대상이 아니라 국법으로 금해야 할 종교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장로 대통령을 셋이나 선출하였다.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이다. 앞의 둘은 모두 불행한 업적을 남기고 갔다. 벌써부터 이명박 대통령에게 따라붙어 따라 다니는 ‘강부자’ 아니 인젠 ‘청부자’, 그리고 ‘고소영’ 모두 이 땅의 기독교의 앞날을 어둡게만 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속물화 되어 가는 한국교회, 속물들은 잘 속는 게 특징. 이런 속물들에게 투표권을 맡겨놓는다는 것은 망국을 스스로 자초하는 첩경이다.

이완용이 나와도 뉴타운 공약하면 표 안 준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 오늘 남의 현실이다. 이런 속물화를 기독교 자체가 지금 조장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기독교는 망국적 종교라고 단언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과 손잡고 북을 치겠다고 내놓고 설교하는 목사들, 이들을 국법으로 안 다스려도 된단 말인가? 오늘날 남한의 기독교는 예수의 정신을 포기한지 오래이다. 1907년 대부흥이란 민족이 어려울 때 그 약점을 파고든 가장 위험한 마취제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2008년 현재 ‘마라난타’, 이 민족의 통일을 선도해 나가고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참 예수의 정신이 구현할 메시아가 나타나기를 기원한다.

초대교회도 이상적으로 실현하려다 실패한, 같이 일하고 같이 나누어 먹는 평등한 세상을 북은 근 반세기 이상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본주의 패권국가들의 눈에 북은 가시 같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북의 대문을 밖에서 빗장을 치고는 한 푼도 그 세계로 들어가지 못 하게 만들어 놓고 이 이상향을 추구하는 국가를 고사시키려 한다. 그러나 북은 항일 유격대의 그 강한 사랑과 신뢰의 힘으로 버티어내고 있다. 나는 이런 세상이 인류 지구촌이 구현해내야 할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강한 자가 약한 자의 골수까지 등쳐먹는 이런 세상이 곧 종식될 것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난하나 인간답게 살고 “내가 그리스도에게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 민족을 위하는 바”라고 고백한 바울 같은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참 크리스천을 이젠 평양에 가서야 만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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