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 지연으로 북핵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이 오는 8월을 차기 미 행정부에서 6자회담이 지속될 지 여부를 결정할 중대시한으로 제기, 향후 추이가 주목된다.

내달 중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 조율차 미국을 방문한 유 장관은 27일 워싱턴특파원 간담회에서 "북핵 6자회담이 내달이라도 열려야 미국에서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6자회담이 계속 진행될 수 있는 모멘텀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유 장관의 발언은 우선 북한의 조속한 핵프로그램 신고를 촉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내달 6자회담이 열리기 위해선 그 이전에 북핵 신고문제가 해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북한은 작년 '2.13합의'와 '10.3 공동선언'에서 작년 연말까지 북한의 모든 핵프로그램을 신고하기로 합의했지만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과 북한의 시리아 핵이전 의혹을 둘러싼 북미간 입장차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강조하면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과 시리아 핵이전 의혹을 모두 포함시킬 것을 북한에 요구하고 있지만 북한은 두 가지 의혹 자체를 부인하며 맞서 3개월째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일각에선 북한이 부시 행정부의 임기가 11개월 밖에 남지 않았음을 의식, 차기 미국 정부와 더 나은 여건에서 협상을 하기 위해 고의로 협상에 소극적인 태도까지 보이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반면에 부시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의 임기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북한과 협상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지난 2월 베이징에 이어 이번 달에도 제네바에서 회담을 갖고 절충에 나섰지만 합의에는 실패했다.

북한의 합의사항 이행이 늦어지면서 미국내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부시 행정부내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북핵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지난 25일 뉴욕채널을 통해 북한과 계속 접촉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향후 수주가 북핵문제 해결의 중대한 고비가 될 것임을 밝힌 것도 이를 반영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유 장관은 전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회담을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핵문제와 관련, "시간과 인내심이 다해가고 있다"며 최후통첩성 '경고'까지 내놓았다.

이런 점에서 유 장관의 이날 간담회 발언은 전날 '시간과 인내심이 다해가고 있다'는 언급에 대한 보충설명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가 "미국의 국내정치 일정을 보면 오는 8월이 지나가면 의미있는 결정이 있어도 행정부가 집행하기 어렵다"고 강조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시간적으로 수 주내에 북한 핵프로그램 신고를 마무리짓고 내달에 6자회담을 재개, 3단계 북핵 해체과정으로 진입해서 8월까지 북한 핵폐기를 어느 정도 진전시켜야 부시 대통령 임기내 북미.북일관계정상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논의 착수 등의 향후 절차를 구체화할 수 있다는 인식인 것이다.

반대로 북한 비핵화를 목적으로 내세운 6자회담이 당장 북한 핵신고라는 장애물을 넘지 못한 채 표류, 8월까지 눈에 보이는 진전을 이루지 못할 경우엔 부시 대통령 임기내 성과는 물론 차기 미국 정부에서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유 장관은 일례로 지난 2000년 빌 클린턴 행정부 임기말에도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시간에 쫓겨 성공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역사상 최초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방북하고, 그해 10월 조명록 북한군 총참모장이 미국을 답방한 데 이어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까지 계획됐지만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바람에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워싱턴 소식통은 "유 장관의 이날 발언은 북한에 지난 2000년의 역사적 과오를 반복하지 말라는 충고도 담겨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유명환 외교장관 일문일답>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27일 미국 대통령 휴양시설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내달 중순 열릴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 최고 지도자가 한미동맹의 미래 비전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뒤 공동발표문을 통해 이를 구체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관 취임 후 처음 미국을 방문한 유 장관은 이날 워싱턴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번 방미 활동 내역과 성과를 비롯해 새 정부의 대미.대북정책에 대해 소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라이스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선 어떤 게 주로 논의됐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만나서 다음달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에 대해 조율했다. 동맹의 기초가 되는 상호신뢰관계를 강화한다는 것을 우리가 앞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주요개념으로 제시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선 한미 동맹의 미래 비전에 대해 양국 지도자가 의견을 교환하게 될 것이다.

작년에 어렵게 합의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의회에서 비준하는 게 한미 양국의 실질적 이익을 증진하고 협력관계를 확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데 대해서도 인식을 같이 했다.

미국의 비자면제프로그램 한국 포함 문제와 관련, 연내에 양국이 필요한 조치를 취해서 곧 한국 국민이 편하게 자유스럽게 미국을 왕래하는 게 한미동맹관계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고 라이스에게 강조했고 라이스 장관도 이에 동의를 표했다.

또 양국은 기후변화, 테러와의 전쟁 등 글로벌 이슈에서도 상호간에 긴밀히 협의하면서 협력관계를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미국은 아프간, 이라크에 대한 한국의 지원에 감사를 표시했고, 우리도 능력이 닿는 한 여러 가지 노력을 해나가겠다고 얘기했다.

--미국은 FTA 비준과 관련,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시장 전면개방을 요구하고 있는데.

▲쇠고기는 오랜 통상현안이고, 한미간에 어떤 돌파구가 마련돼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선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국내적으로 민감한 문제다. 관계부처 간에 협의되고 있다. 먼저 농수산부를 중심으로 국내세부대책이 마련돼야 한미간에 협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 북한에 대해 북핵문제 해결의 시간과 인내심이 다해가고 있다고 말했는데, 향후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6자회담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긍정적으로 가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새 정부도 6자회담의 유용성.필요성에 대해선 이미 밝힌 바 있다.

'2.13', '10.3 공동선언'에 따르면 작년 말까지 핵신고를 종료하고 3단계 해체단계를 협의하도록 돼 있지만 이미 북한의 핵신고가 3개월 지연되고 있는 등 난관에 봉착해 있다.

우리쪽도 북한의 핵신고 대가로 중유 100만t을 제공하기로 했지만 28만6천t의 중유에 해당되는 중유와 물자만 제공했다. 북한도 신고가 늦어졌지만 우리 쪽도 중유제공이 늦어졌다.

미국의 국내정치일정을 보면 8월이 지나가면 의미있는 결정이 있어도 행정부가 집행하기 어렵다.

2000년에 '페리 프로세스'에 의해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방북하고 조명록 북한군 총참모장이 그해 10월에 워싱턴에 와서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을 만났다. 클린턴이 방북하는 시나리오까지 있었지만 시간에 쫓겨 성사되지 않았다. 당시 북한이 프로세스를 3개월만 미리 진행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북한에 알려준 것이다. 6자회담이 내달이라도 열려서 진행이 돼야 미국에서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6자회담 프로세스의 모멘텀이 생긴다.

--'시간과 인내심이 다해가고 있다'고 언급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미국은 지금 막후에서 북한과 협상하니까 미국이 그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6자회담은 참가국들이 역할을 분담해서 하는 것이다. 서로 보조를 맞춰서 북한을 설득하는 게 필요하다는 뜻에서 얘기한 것이다.

--라이스 장관과의 회담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 방어(MD) 및 핵확산금지구상(PSI)도 논의됐나.

▲간단히 논의했다. 새정부가 지난 2월 출범한 만큼 현단계에서 본격 논의하기는 시간이 이르다. MD문제는 돈이 한두 푼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중.러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PSI는 미국에서 먼저 언급했다. 목적은 이해하지만 어떻게 할 지는 시간을 갖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했다.

--라이스 장관이 PSI 참여를 공식 요청한 것으로 봐도 되나.

▲라이스 장관이 그런 취지로 얘기했다.

--대북식량지원에 대한 새 정부의 입장은.

▲북한이 식량상황을 공개적으로 얘기하고 요청하면 그 상황에 맞춰서 지원여부를 판단,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면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식량지원은 기본적으로 인도적 지원 범주에 속하지만 작년에 50만t을 줬으니까 올해도 자동적으로 북한에 얼마를 준다고 하는 것은 인도적 지원이 아니다. 식량 50만t이면 2억달러다. 북한 경제규모로 볼 때 엄청난 규모다.

미국이 북한에 식량 50만t을 지원하겠다고 제의한 적 있으며 지금 WFP(세계식량계획)를 통해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모니터링 문제가 해결이 안되고 있다. 이를 위해 WFP 관계자가 곧 북한에 들어가서 의논할 것이다. 모니터링 요원 몇 명 갖고 (식량지원) 합의가 안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된다.

--최근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의 방위비 분담비용을 미군기지이전비용으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는데.

▲방위비 분담 문제는 2년마다 협상하고 있으며 금년에도 협상해야 한다. 한국측에서도 현재의 방위비 분담 및 산출방식에 문제가 있으며 이를 재검토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또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을 기지이전에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협의가 필요하다.

--벨 사령관이 최근 의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면 주한미군 추가감축 중단을 요청할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주한미군 추가 감축에 대해선 미국의 입장도 아직 정립된 게 없다. 미국 입장 나오면 협의할 문제다.

(워싱턴=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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