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들어 북측의 첫 움직임이 나왔다. 북측의 첫 행동은 다름아닌 지난 24일에 개성공단 남북경협사무소의 남측 당국 인원의 철수를 요구한 것이다. 이유는 지난 19일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입주기업과의 간담회에서 “북핵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 확대가 어렵다”고 한 발언 때문이다. 이에 남측 당국 인원 11명이 하릴없이 27일 새벽에 철수했다. 우려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충분히 예측되던 일이기도 하다. 문제의 요지는 남측에서 대통령부터 관련 장관에 이르기까지 툭 하면 ‘핵’ ‘핵’ 한다는데 있다. 특히 26일에는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 여기저기서 ‘핵’ 소리가 튀어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26일 통일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들고 나왔다. 뚱딴지같은 소리다. 이 대통령은 모두(冒頭)발언을 통해 “가장 중요한 기본 남북 간 정신은 91년 체결된 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면서 “기본합의에는 한반도 핵에 관련된 부분이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자신의 ‘비핵 개방 3000 구상’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비핵 개방 3000 구상’의 핵심은 미국도 이미 실패한 북한의 ‘선핵포기’를 전제로 대북 지원을 하겠다는 것인데, 바로 기본합의서에 비핵화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어 이 대통령은 “핵을 이고 우리가 통일하기가 힘들고 본격적 경제협력하기 힘들다”고도 말했다. 이 대통령은 ‘북핵’에 가위눌린 듯하다.

같은 날 미국에서도 ‘핵’ 소리가 나왔다. 유명환 외교장관은 26일 워싱턴에서 열린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이 끝난 뒤 “시간과 인내심이 다해가고 있다(Time and patience is running out)”면서 “북한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신고(서)를 제출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왜곡이다. 북한만 핵프로그램 신고서를 제출하는 것이 아니다.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미국도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동시에 실시해야 한다. 지금 북핵 2단계가 교착상태에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이 책임이 북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 상황은 북미가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의 범위와 내용을 놓고 의견조율을 하면서 이와 아울러 핵프로그램 신고와 테러지원국 해제 등을 동시행동 하기 위한 속도조절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러던 중에 군에서까지 북핵과 관련해 강경발언이 나왔다. 김태영 합참의장 내정자(육군대장)가 2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이 소형 핵무기를 개발해 남한을 공격할 경우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는 한 의원의 질문에 “제일 중요한 것은 적(북한군)이 핵(무기)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확인해 타격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북한이 핵 공격을 할 기미가 있으면 핵 기지를 타격하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예방적 차원의 선제공격론으로 볼 수 있다. 이같은 선제공격론 역시 ‘부시 독트린’과 유사하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무력공격의 징후를 빌미로 북의 핵 기지를 선제공격한다는 것은 방어가 아니라 분명한 침략에 해당하는 것이다. 합참의장 내정자의 경망스럽고도 호전적인 발언은 북측을 자극할 뿐이다.

물론 북핵문제는 중요하다. 그러기에 남북기본합의서에 들어 있는 비핵화도 지금 그 해법이 6자회담의 9.19공동성명을 기본으로 해서 2.13합의라는 1단계를 거쳐 10.3합의라는 2단계가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또한 남북기본합의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이제 막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이처럼 6자회담에서의 9.19공동성명과 2.13합의, 10.3합의를 모르쇠하고 또한 남북 정상이 합의한 6.15선언과 10.4선언을 도외시하면서 17년 전의 기본합의서와 비핵화를 꺼내는 것은 시대착오이자 방향상실이다. 첫 단추가 잘못 꿰졌다. 북측이 개성공단 남북경협사무소 철수 요구로 그 신호를 보냈다. 남북관계의 석기시대였던 김영삼 정부 때로 회귀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명박 정부는 ‘핵’ 소리를 그만하고 6.15와 10.4선언 이행에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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