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통일부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2008년도 남북관계 발전 실행계획’(이하 2008계획)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10.4선언’을 외면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이번 2008계획은 기존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국민적 비판’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후퇴시키고 있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이날 업무보고 인사말에서 “국민들 비판과 우려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이제 통일부가 새로운 각오와 자세로 변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내세운 대표적인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의 뼈대가 그대로 유지돼 “북핵문제 진전상황을 보아가며 남북관계 발전의 속도와 폭, 추진방식 조정”이라는 연계고리가 명기됐고, “남북대화를 통해 북핵문제와 관련한 우리와 유관국의 입장을 직접 전달하고, 북한의 핵폐기 결단 촉구”, “남북회담 개최 계기시 ‘비핵.개방 3000 구상’ 설명” 등이 이행계획으로 담겼다.

남북관계는 이제 북핵문제의 진전 상황을 쳐다봐야 할 형편이고 남북대화의 마당도 북핵문제 해결 촉구가 우선할 판이다. 기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남북관계 진전과 북핵문제 해결을 병행 추진한다는 방침을 뒤집고 연계론을 공식화한 셈이다.

또한 10년 내에 북한 주민 1인당 연간 소득 3천 달러가 되도록 돕는다는 이른바 ‘3000’ 구상은 향후 과제로 남겨져, ‘비핵.개방.3000 구상 추진기획단’(가칭)을 구성, 운영하되 북핵상황을 감안해 가동시기를 조정하겠다고 했다. 당장의 과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당북간 남북관계는 본격적인 경제협력이나 지원은 기대하기 어렵고 북핵문제 해결에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날 이명박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핵을 이고 우리가 통일하기가 힘들고 본격적 경제협력하기 힘들다”고 분명히 못박았다.

이는 두 번째 목표인 ‘상생의 경제협력 확대’의 구체적 과제들을 살펴보면 보다 분명해진다.

기존에 합의된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기업의 애로사항 해소나 산림.농수산.자원개발과 같은 1차 산업 중심의 초보적 경협 사안들이 주요한 과제로 제시돼 있다. 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담은 ‘10.4선언’에 명기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조성이나 조선협력단지 공동개발과 같은 굵직한 경협 사안들은 모두 빠져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은 “개선의 여지가 많긴 하지만 그 사업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밝혔지만 “진정한 남북간 사업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남북현안에 많은 문제가 개선되어야 실질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남북간 경협에도 상호주의와 호혜성, ‘실용과 생산성’이 강조됐다.

단 하나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나들섬 구상’ 만이 경협 과제에 들어가 있고, 그나마도 올해는 사전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기본계획 수립과 남북 협의를 추진하는 선에서 추진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를 반영해 이미 통일부 조직편재에도 ‘나들섬 추진기획단’이 신설돼 있다.

대체로 본격적 경협은 북핵문제 이후로 돌리고 기존에 추진 중이던 사업 중 개성공단이나 1차산업 중심의 초보적 경협 사업만을 추진하겠다는 소극적 입장으로 평가되며, 10.4선언에서 합의된 대규모 신규 경협사업은 회피하되 그 실현성이 의심되는 나들섬 구상 만이 반영된 정치적 취사선택이 분명한 정책추진 방향으로 보인다.

이번 2008계획의 또 하나의 특징은 지난 10년간 활발해진 사회문화교류 부분은 항목에서조차 사라져 완전히 제외됐고, 이에 반해 그간 조심스럽게 추진되어온 인도협력이 ‘호혜적’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공개적으로 수면 위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흐름은 이미 통일부 조직축소개편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기존 남북경제협력본부와 사회문화교류본부가 통합돼 남북교류협력국으로 축소됐고 인도협력국이 신설된 것과 궤를 같이 한 것이다.

따라서 향후 진보적 민간단체들이 주도했던 사회문화교류는 정부 차원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상황이고 총리회담에서 합의됐던 6.15공동행사 서울 개최와 당국대표단 참가 여부도 불투명하게 됐다.

이에 반해 보수단체들이 주도했던 북한 인권운동이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민간단체의 산림녹화사업에 대한 지원은 ‘산림분야 협력’의 이행계획에 담겼다.

특히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겠다든지 북한인권 문제를 인류 보편적 가치차원에서 적극 추진하고 국제사회 및 NGO 활동에 협력한다는 구상은 북측으로서 수용하기 어려운 것으로 향후 남북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또한 통일정책 추진 4대 원칙으로 내세운 △실용과 생산성 △원칙에 철저(비핵화, 남북대화), 유연한 접근 △국민 합의 △국제협력과 남북협력의 조화는 대체로 남북관계를 기존보다 보수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실용.생산성’을 판단하기 위한 대북정책 5대 실천 기준 역시 비슷한 내용과 취지로 볼 수 있다.

실용정부를 표방하는 새 정부의 방침에 맞춰 남북관계에서도 실용과 생산성을 기조로 내세우고 일관되게 강조한 대목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번 통일부의 대통령 업무보고는 새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 부서의 폐지마저 거론됐던 통일부가 철저히 코드 맞추기를 시도한 것으로 보이며, 김하중 장관 역시 당분간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고 몸을 낮추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불과 몇 달전 남북 양 정상이 합의한 10.4선언을 외면하고 ‘비핵.개방.3000’이라는 사실상 선핵포기론을 주창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측의 반발이 예상된다.

따라서 이 같은 통일부의 보수적인 대북정책이 실행된다면 당분간 남북관계가 경색을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6자회담에서도 그간 남북관계에 근거했던 한국의 입지가 약화될 것으로 예상돼 새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추진이 조기에 난관에 부딪칠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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