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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단체 지원은 북 경제개발 '마중물'"<인터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강영식 신임 사무총장
박현범/김치관 기자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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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3.03  14: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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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을 새롭게 이끌 강영식 신임 사무총장. 강 총장은 대북지원단체들이 북측의 중장기적 사회개발측면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단순한 인도적 긴급구호 개념에서 한 걸음 나아가서 중장기적 사회개발측면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지난 12년 동안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상임대표 강문규)을 이끌어 온 이용선 전 사무총장에게서 바통을 이어 받은 강영식 신임 사무총장은 앞으로의 대북지원 방향에 대해서 이같이 강조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을 비롯한 대북지원단체들이 2000년 6.15공동선언 발표 이전, 북측으로부터 '중앙정보부의 앞잡이 아니냐'는 정치적 오해를 받을 만큼 불신의 골이 깊었던 시기를 지나 '남북 화해협력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는 지금에 이르는 동안, 그 현장의 한복판에는 강 총장이 있었다.

비상근 운영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용선 전임 사무총장과 같이, 강 총장은 '100회 방북'이라는 수치가 알려주 듯 남북 민간교류의 전문가이다. 10년 만의 정권교체라는 새로운 환경을 맞이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을 새롭게 이끌어 나갈 강 총장을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소재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난 10여 년이 1기였다면 향후 10여 년은 2기라고 규정한 강 총장은 무엇보다 대북지원사업의 성격이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측 민간단체들이 북측의 영유아 영양문제나 수해 등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국민적 모금운동을 벌이는 인도적 차원의 틀을 벗어나 보건의료, 교육환경 등 사회개발의 측면으로 대북지원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강 총장은 이같은 '개발지원'을 해 나가기 위해서 '전근대적인 시스템'도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소한의 부분에서 필요한 현금지원의 불가원칙이라든지, 우리가 물자를 지원하면 나머지는 당연히 북측이 책임져야한다는 변형된 상호주의 논리 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 비상근 운영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용선 전임 사무총장(왼쪽 두 번째)과 강영식 신임 사무총장(왼쪽 네 번째). 지난달 28일 열린 사무총장 이취임식으로 강 총장은 '남북 화해협력 사업'의 바통을 이어 받았다.[사진제공-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개발지원을 한다면, 당연히 현지까지 가기 위해 수송까지 우리가 책임지고, 건물을 짓는다면 제대로 가동하기 위해 전기라든지 전문적인 기술 인력의 문제도 우리가 담보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어려움이 있다."

이같은 문제인식으로 지난해 북측 수해 때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경유를 지원했다. 이런 측면에서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한 새 정부에 거는 기대 겸 당부도 있다. 강 총장은 "이념이나 차이점 때문에 근본적 지원을 못했다면 실용의 관점에서는 지원이나 경협 부분의 몇 가지 문제점이 해소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10년간의 대북지원사업을 통해 '개발지원'의 모델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것이 강 총장의 진단이다. 농업과 보건의료분야가 대표적이다. 강 총장은 '지역개발사업'으로 진행돼 온 평양시 강남군 당곡리 사업에 대해서 "단순한 농업지원만이 아니라, 복지차원, 소득증대 차원의 지원을 해 왔고, 주택개량이나 도로포장, 당곡리 농장원들의 소득증대를 할 수 있는 시설재배 지원이라든지, 주민 복지를 위해서 진료소, 탁아소, 소학교 등이 같이 돼 왔다"고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북측 당국의 변화도 나타난다고 강 총장은 전했다. "남쪽 민간단체의 지원을 받아들이는 북한 당국, 북한의 대남부서가 단순한 일회적인 지원보다는 중장기적인 경제개발이나 사회개발을 위한 하나의 소위 '마중물'로서의 민간단체의 지원을 보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북, 민간단체 지원을  경제.사회개발 위한 마중물로 보고 있다"

   
  ▲ 강 총장과 인터뷰는 마포 사무실에서 1시간 30여분간 진행됐다.[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 통일뉴스 : 사무총장으로 새 역할 맡았는데.

■ 강영식 사무총장 : 저는 직책이 사무‘국’장에서 '총' 자로만 바뀌었지 여전히 같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기에 마음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런데 저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 일해 온지 12년차이고, 그런 의미에서 농담 반 진담처럼 10년간의 정권이 바뀌고 동시에 10년 동안 우리민족을 이끌어 온 (이용선) 총장이 그만두는 공교로운 시점에 맞물려서 사무총장이 되었다. 새로운 정세, 새롭게 변화된 조건 속에서 새로운 각오, 10년 전 초심으로 돌아가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앞으로 10년의 새로운 일을 해 나가려고 한다.

요약하자면 이전 10년을 1기로 보면 향후 10년은 2기가 되지 않겠나. 북한이 앞으로 5년 후인 2012년까지 대망론을 제시하고 있고, 공교롭게 이명박 정부의 임기도 앞으로 5년이고, 또한 새로운 10년을 맞이하는 의미에서 사무총장이 된 것이 감사하고 영광스럽지만 부담을 갖고 있다. 제2의 도약을 하는 데서 열심히 일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 지난해까지 지원이나 교류협력성과가 다양하고 풍성한 것으로 기억한다. 새 정부도 되고, 과연 유지될 수 있을 지가 관건인 것 같은데, 지난해 특별한 성과라면?

■ 두 가지 인 것 같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만이 아니라 대북지원단체들이 10년을 하면서 대북지원의 방향을 자리 잡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고, 그 동안 대북지원단체들의 화두가 단순한 긴급구호에서 북한의 본격적 경제개발을 위한 개발지원(으로 전환하자는 것)이었는데, 몇 가지 모델이 자리 잡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농업이나 보건의료 분야에서 새로운 개발협력사업이 등장하고 있다고 본다.

두 번째 가장 큰 의미는 남쪽 민간단체의 지원을 받아들이는 북한당국, 북한의 대남부서가 단순한 일회적인 지원보다는 중장기적인 경제개발이나 사회개발을 위한 하나의 소위 마중물로서의 민간단체의 지원을 보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최근에 느끼는 것은 6-7년 경과하면서 스스로의 자력갱생이랄까 소위 말하는 경제개발을 위한 큰 플랜을 짜고 있는 것 아니냐, 그런 차원에서 남쪽지원단체의 협력사업을 중요한 계기로서 파트너로서 인정을 하고 진지하게 나서고 있다는 것도 의미 있는 진전이다.

□ 두 가지가 일맥상통 한다. 새로운 개발협력모델을 구체적으로 얘기해 보자.

■ 일단, 지금까지는 북의 기존의 체계, 60년간 고수해 온 체계를 해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협력사업이라면, 즉 북의 체제를 기본적으로 존중하지만 체계 속에서의 인도적 분야의 발전을 받아들였다. 쉽게 말해 농업분야는 재래농법이 60년 동안 북의 발전에 상당 부분 기여를 해 왔지만, 새로운 시대에는 맞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 상당히 주저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간 남쪽의 민간단체들과의 협력사업을 통해서 변화하는, 현대적 농법이랄까, 새 농법을 받아들이는 것이 있었다. 벼농사, 밭농사, 채소농사 등 주요 부분에서 농업생산의 증대를 위해서는 현대적 농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여기에는 우리와의 꾸준한 협력이 도움이 됐었다.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사회주의 3대 보건의료체계, 즉 무상의료, 예방의학, 호당담당제 3대체계가 하나의 선진적인 의료체계로 정착돼 있었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체계가 중단되거나 어려움이 처해 있었다. 새롭게 개발해 나가는 데서, 기존의 사회주의 보건의료체계가 아니라 보다 더 발전된 형태, 단순히 기존의 우수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새로운 보건의료 체계를 구성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대표적으로 말하면 의약품이 있다. 기존의 ‘고난의 행군’ 이전에는 무상지급이었는데, 최근의 어려움 때문에 제대로 공급이 못 됨으로써, 무상의료가 오히려 역으로 보건의료체계에 제약이 된 체계가 왔다. 기본적인 기초의약품은 무상을 하지만, 필수 의료재라던지 전문치료제는 시장경제에 맡겨나가는 변화다.

그런 북한의 변화들이 잘 정착이 될 것인가는 진단이 좀 빠르지만, 북한이 스스로 적어도 인도적 분야의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려는 의지의 표현이지 않겠냐는 점에선 긍정적으로 보이고 정착될 수 있기를 바라는 측면이 있다.

□ 보건의료체계가 변화해 나가는 데서 남측의 지원, 현대화 사업들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기여가 되고 있나?

■ 크게 보면, 민간단체의 지원이 북의 어려움을 얼마나 해소했는가에서 본다면 자신 있게 얘기할 입장은 아니다. 실질적인 주체는 북한 당국이 되어야 하는데, 다만 민간단체의 지원이 갖는 의미는 북한이 스스로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는 데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어서, 단순히 물자를 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고민해 나가면서 북한이 스스로 극복해 나가는 몇 가지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방법이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북한이 10년 동안 스스로 경험을 통해서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 어떻게 해 나가는 것이 자신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빠른 길인가의 과정에서 민간단체들의 제시하고 있고, 함께 해 왔던 방법을 받아들인 것에 의미가 있다. 민간단체의 지원이 북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에 중요한 하나의 규모적 측면보다 스스로 변해나가는 데서의 질적 토대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준 것 아니냐는 측면에서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용적 관점서 대북 에너지 지원도 고려해야

   
  ▲12년간 남북 민간교류이 한복판에 서 있던 강 총장은 '전근대적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했다.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 수해피해 지원할 때 경유를 지원했다. 현실적 어려움은 없었나?

■ 크게 말씀드리면, 지금까지 대북지원의 상당 부분은 소위 말하는 시혜자의 입장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10.4선언을 하고 돌아오면서 ‘역지사지’라고 한 말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본다. 시혜자의 입장에서 주는 것이, 얼마나 효율적이냐의 방법보다는 주는 것을 빛나게 하는 것이 컸다는 생각이 들고,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의미 있게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관점이 부족했다.

10년 동안 대북지원 규모가 늘긴 했지만, 여전히 시스템은 전근대적이다. 최소한의 부분에서 필요한 현금지원의 불가원칙이라든지, 우리가 물자를 지원하면 나머지는 당연히 북측이 책임져야한다는 변형된 상호주의 논리 등이 여전히 존재한다. 제3세계에 대한 지원 논리가 여전히 대북지원에서도 단순히 적용되는 측면이 많아 근본적인 북한에 대한 개발지원에 한계가 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북은 여전히 전기, 에너지 등의 분야가 심각한 상황인데, 지원물자를 남포항까지는 지원하는데, 남포에서 지원현장까지 수송한다던지, 현지에서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제반의 기본조건을 함께 제공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개발지원을 한다면, 당연히 현지까지 가기 위해 수송까지 우리가 책임지고, 건물을 짓는다면 제대로 가동하기 위해 전기라든지 전문적인 기술 인력의 문제도 우리가 담보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어려움이 있다는 측면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원하는 현장에서 지원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지원도 따라가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전기, 에너지 문제다. 민간에서 전기를 지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원하는 현장이나 기관이 제대로 가동되기 위한 기제가 기름이라고 본다. 에너지 부분도 지원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필요한 기술 인력을 현지에서 북측인력으로 충당하기 위해서 일정부분 인건비 지급도 생각되어야 하지 않나? 단순한 인도적 긴급구호 개념에서 한 걸음 나아가서 중장기적 사회개발측면에서 발전해 나가야 하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시도로 수재피해 때 경유를 지원하였다.

□ 정부하고의 문제는 없었나?

■ 수재이기에 특별히 허락이 된 것이다. 여전히 일반지원은 기름지원이 안 되고, 중장비도 8T 이상 트럭은 안 되고, 트랙터도 50마력 이상이 안 되는 몇 가지 그런 점이 있는데. 정부는 그것을 바세나르 협정이나 전략물자통제 방침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남북협력사업이라는 것이 단순한 인도적 지원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남북 경제공동체로 간다는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이러한 틀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필요가 있다.

신정부가 남북간의 협력을 실용주의 잣대로 판단한다면 이런 점이야 말로 실용주의적 협력관계이지 않겠나? 이념이나 체제의 차이점 때문에 근본적 지원을 못했다면 실용의 관점에서는 지원이나 경협 부분의 몇 가지 문제점이 해소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 <창작과 비평> 봄호에 쓴 글을 보면 경제개발과 사회개발의 개념을 달리 봤다. 어떤 차이가 있나?

■ 근본적으로는 경제 개발이다. 경제개발은 사실은 남한 당국이나 민간의 지원만으로는 상당히 어려운 측면이 있다. 궁극적으로 인도적 지원을 하고 경제협력을 하거나 당국간의 교류협력의 화두는 북한의 경제개발이다. 그런데 본격적 경제개발을 위해선 국제협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북한 당국의 통 큰 결단이 필요한 것인데, 우선 그 전단계로서 인도적 분야의 개발, 즉 농업, 축산, 보건의료, 교육 등 기본적인 인민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는 측면에서의 사회개발이 우선 진행되지 않겠냐고 보는 것이고, 사회개발은 남쪽의 당국과 민간의 협력에서 가능한 측면이 있다. 물론 이도 본격적 경제개발과 병행해 나가겠지만, 남쪽 당국과 민간단체가 고민해야 될 측면은 본격적 경제개발에 앞서서 우선 인도적 분야의 사회개발에 집중해 나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측면에서 하는 말이다.

"현 정부에 거는 기대 있다"

   
  ▲ 강 총장은 새 정부에 대해 "철학이나 가치지향성의 부족한 것 아니냐"며 우려를 표하면서도, 기대를 전했다.[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는데, 바람직한 민관관계, 협력체계는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보나?

■ 현 정부에 거는 기대가 있다. 다만,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거칠고, 전 정부와의 차별성만을 강조하다 보니까 비현실적 측면도 있지만, 초기의 과도기를 거치다 보면, 그 전 정부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단계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정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본다. 그런 의미에서 민간단체들의 역할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올 신년사설에 북한이 5년 후인 대망의 2012년에 강성대국의 문을 열겠다고 제시하고 있고, 공교롭게 현 정부 5년과 일치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대선 결과 등으로 볼 때 앞으로 5년이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북한은 몇 번의 도약의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 기회는 주로 남북관계, 미국과의 관계 등 외적요인에 의해 좌절된 측면이 강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와 내년은 매우 이 중요한 때이며 신정부가 그런 관점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나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최근 한 달 정도를 보면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의 평화체계 정착이라는 관점에서 신정부의 진지한 고민이 부족하다. 전 정부와의 차별성만을 강조했지, 새롭게 한 단계 발전된 남북관계를 만들려고 하는 철학이나 가치지향성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강조하자면, 전 정권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발전시킬 것은 발전시키는 통 큰 대중적 관점에서 남북관계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 북측 파트너에 대한 평가는?

■ 쉽게 말해, 주위에서 농담으로 왜 이일을 하냐고 하면, 북측의 파트너 때문에 한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는데, 10년 넘게 해보니까 대남일꾼들의 고민들을 알 수 있다. 초기에는 정치적이었다. 최근에 스스로 자신들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 노력들이 있다. 대남일꾼들의 고민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 그들이 풀어나가고자 하는 것을 잘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남북관계 발전만이 아니라 북한의 경제, 사회개발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북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10년을 보니까, 변해가는 속도는 느리지만, 폭은 크다는 생각이다. 조만간 북의 변화나 자기발전이 우리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 남쪽의 민간단체, 기업을 상대했던 대남부서가 상당히 노력했다고 인정하고 싶다.

다만, 우리와 다르게 북한의 의사결정 구조가 경직된 사회이다 보니까, 충분하게 극대화 시킬 부분이 속도감 있게 진전이 안 되는 불만들은 있다. 북한의 내부체계상, 최근에 여러 가지 말들이 있지만, 아직도 남쪽을 상대한다는 것이 북쪽의 입장에선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다. 초기에 남쪽의 민간에 대한 색안경이 있었다. 오해가 있었고. 지금까지 많은 단체들이 지원을 해 오면서 신뢰가 있다.

최소한 당국간 관계는 아직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최소한 민간의 관계는 신뢰의 폭이 깊어져야 한다고 보고, 남쪽의 민간단체들에 대한 전폭적 신뢰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에 따라서 남측의 민간단체들도 북의 대남일꾼들에 대한 전폭적 지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점이 생각보다 좀 더디다는 것에 불만이 있다.

□ 그런 점에서 에피소드도 있었을 것 같다. 극복과정에서의 일화를 소개한다면?

■ 개인적으로 전두환 정권 때 시위를 한 것이 82년 4월 15일이다. 4월 15일이 무슨 날인지 몰랐다.(故김일성 주석 생일) 그것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고. 처음 북에 간 게 99년이다. 그때 만난 대남일꾼들을 지금도 만난다. 그때는 6.15이전이고 남북간의 관계가 어려운 때인데, 그때 저한테 “강영식 동지의 영웅적 투쟁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무슨 소리냐?”했더니 데모한 날을 자꾸 말해서 서로가 긴장한 적이 있었는데. 그러면서 저한테 얘기한 것이 “어떻게 투쟁했던 사람이 KCIA의 에이젼트가 되서 왔냐, 왜 중앙정보부를 위해 일 하냐”고 하더라.

그때는 북이 자신들이 어려울 때 자발적으로 남쪽의 국민들과 민간단체들이 지원한다는 것을 이해를 못했다. 자신들이 어려울 때 그것을 기회로 체제를 이완시키려는 남한 당국의 공작이 있고, 민간단체가 앞장선 것이 아니냐는 것이 북쪽의 대다수의 인식이었다. 상당히 까칠했다. 그러다 그것이 2000년 6.15선언이 지나고. 6.15선언이 큰 의미 아닌가? 남쪽 민간들이 해방시켜야 할 대상에서 ‘우리민족끼리’ 같이 해야 할 협력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0년간은 저 개인만이 아니라, 수많은 민간단체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서로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과정이었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 동질성은 단지 생각이 같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동질성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10년간의 과정은 동질성을 회복을 위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민간단체들의 지원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겠냐만은, 효율적 지원을 못했다는 반성은 들지만, 인적교류나 만남을 통해서 60년 동안의 단절을 빠른 시일 내에 복구했다는 점에서는 민간단체가 인정받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북 경제개발 위한 공적자금 조성과 공적기구 구성 필요

   
  ▲ 강 총장은 대북민간교류에서 '술 문화'를 일구기도(?) 했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북측 관계자들과 '형 동생' 한다는 그는 깊은 밤 술자리를 통해 허심탄회한 얘기를 많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 대북지원단체가 굉장히 늘고, 규모도 크다. 작년에는 감사도 받았는데, 내부도 고르지만은 않은 것 같다. 민간단체의 내적 과제는?

■ 정치적 이유가 있었지만, 통일부의 남북협력기금의 지원을 받은 모든 단체들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몇 개의 단체와 사업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조만간 국회 보고가 될 테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파장이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 과정이 대북지원단체들이 자기 갱신이랄까, 자기 발전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는데.

사실은 인도적 지원 원칙에서 바라보면 대북지원은 특수하다. 대북지원에 대해 편하게 생각하는 측면도 많았다. “여기는 특수하니까, 북한이니까” 이 얘기는, 스스로에 대해서 관대하려고 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북에 대해서 까다롭게 나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지원의 효과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고, 이것을 국민에게 알리고, 규모를 키우는 데 과감해야 하는데, 한편에선 북한의 특수성 얘기하면서 한편은 또 스스로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인도적 대북지원이라는 깃발을 든 것이 12년인데 아직도 인도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있고 아직도 북한 어린이들의 영양실조를 가지고 정책캠페인을 하고 있다. 북한이 2006년 핵 실험, 미사일 실험을 할 때, 몇 명의 북한 대남일꾼들과 논쟁을 벌였을 때 충격적 얘기를 들었다. “대북지원단체들이 고맙지만 한편으론 불쌍한 자기 인민들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 아니냐”는... 초기에는 북한인민들이 어렵고, 도와줘야 한다는 단순한 동포애로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인도적 지원이라는 기본정신은 여전히 근저에 있지만 북한의 경제사회개발이라는 큰 측면에서 지원사업들을 해야 하는데 여전히 스스로 북한 지원을 한계 지으려고 하는 것이 있다.

이는 ‘모금의 한계’와도 연관되어 있다. 즉 북한의 병원을 현대화 시키고 공장을 짓고, 근본적인 경제지원을 할 때 모금이 안 되는 측면이 있다. 모금이 잘 되는 측면이 긴급구호적 측면이다. 여전히 어린이 같은, 북한의 취약계층을 가지고 대북지원 캠페인을 하는데, 그런 측면이 여전히 필요하지만, 대북지원이 스스로의 인도적 지원의 틀 안에 갇혀있다면 발전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대북지원단체들이 보다 한 걸음 나아가서 근본적인 북한의 개발을 위해서 해 나가야 한다. 모금의 어려움, 재원의 어려움을 크게 풀어나가야 한다. 민간단체의 모금에서의 한계가 있기에 정부, 기업, 민간의 삼각 역할이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단순한 개별단체들의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근본적인 북한의 개발을 위해서는 공적 형태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냐는 것이다.

민간이 조성하는 몇 백 억 지원이나 정부의 협력지원금들이 효율적으로 사용되려면 개별단체들의 지원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북한의 경제개발을 위한 공적자금을 조성할 때이다. 그리고 공적자금을 제대로 활용할 공적기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민간이 공동으로 기금을 조성하고 투자할 수 있는 새로운 공적기구가 필요하지 않냐는 것이다. 새롭게 나가기 위해선 민간단체들로만 한계가 있고 새로운 형태의 대북 개발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대북 개발프로젝트를 위해서는 공적자금의 축적, 공적 지원기관의 등장, 이런 것들이 기본적으로 필요하지 않냐는 것이다.

□ 혹시 북측이 경제강성대국 얘기를 하면서, 새로운 경제개발 전략, 접근법을 추진하는 것을 내비친 것이 있나?

■ 최근에는 진지한 대화는 하지 못했다. 공동사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공동사설 속에 북의 고민과 입장을 그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농담으로 얘기하지만, 북이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표현이 적절치 않지만 앞으로 5년간이 북의 표현대로 강성대국으로 나가느냐, 아니면 나락으로 가느냐의 갈림길로 본다. 그동안 북이 어려움에 대해서 그 원인을 외부로 많이 돌려서 현실적 인식이 일정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의 과정이나 공동사설을 통해, 북이 이제 스스로의 문제를 자력갱생의 원칙대로 풀어나가려고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여전히 아쉬운 것은 자력갱생이 스스로 풀어나간다고 하는 것인데, 사실 북한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풀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남쪽과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북이 남쪽과,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본격화해야만 하고 그래서 조만간 북.미, 북.일관계를 빨리 풀어야 하지 않냐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북이 실기하지 않고, 2008년 한 해에 국제적인 관계를 조속히 회복시켜나가는 것이 2012년 대망론을 실질적으로 성과 있게 이뤄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인터뷰는 서울 마포구 소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실에서 1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 고려인 축제 같은 것도 하는 것 같은데, 동북아평화연대와 같이 하나?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대북지원을 계기로 시작이 됐지만, 크게 보면 어려움에 처한 동포들 돕자는 것이었다. 가장 큰 어려움 처한 동포가 북한 동포라는 것에서 주로 했지만, 당시에는 중국 조선족, 고려인들도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재외동포센터를 만들어서 조선족, 고려인 지원을 많이 했는데, 하다보니까 규모도 커지고, 또 대북지원과 재외동포지원을 함께 하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2000년 이후에 동북아평화연대라는 별도 조직을 만들어 동북아지역의 재외동포에 대한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다만 일부 남부 러시아를 떠돌고 있는 고려인 지원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남부 러시아 고려인 지원은 현재도 우리민족이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대북지원을 집중하다보니까, 제대로 신경을 못 쓴 측면이 있다. 이 점에서 반성을 한다. 그래서 올해에는 대북지원 외에도 재외동포 사업도 주요하게 자리 잡으려고 한다. 상황이 어려워서 재외동포 사업을 한다는 오해도 받을 수 있지만, 북한 동포들에 대한 지원사업과 똑같은 정신으로 하는 것이 우리 정신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평양시 강남군 당곡리, 장교리는 농장만이 아니라 지역개발의 케이스로 진행하나?

■ 우리 표현으로는 지역개발사업이다. 북측 표현은 농촌현대화사업이다. 강남군도 평양시지만, 낙후된 군이다. 군에 대한 지원을 북쪽과 협의해서 했는데, 협동농장의 핵심은 농업생산성 증대이다. 절반 이상 사업은 벼농사 지원사업인데 그간 3년 동안 벼농사의 생산성 증대, 시설 재배를 통한 소득증대를 기본적으로 해 왔는데 그러다 보니, 당곡리 주민들의 삶의 질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래서 단순한 농업지원만이 아니라, 주택개량이나 도로포장, 당곡리 농장원들의 소득중대를 할 수 있는 시설재배 지원이라든지, 주민 복지를 위해서 진료소, 탁아소, 소학교 등에 대한 지원을 함께 해왔다.

당곡리 농촌 현대화 사업은 경기도가 주체가 되어 진행하고 있고 북에서는 당곡리가 농촌 현대화사업의 표본이 되고 있다. 그런데 사실 한 마을에 대한 현대화 사업에는 기금이 많이 투여된다. 당곡리는 경기도가 참여하기 때문에 가능한 사업이었는데, 올해로 마무리되는 사업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당곡리가 얼마나 잘 살아졌느냐는 측면보다도 농촌이 발전하려면 어떡해야 하느지를 북이 스스로 정리해 나가는 데 당곡리를 하나의 좋은 모델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곡리를 지원하면 옆의 리와 격차가 발생하고 이로 인한 불만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북한이 스스로 단위마을이 발전해 나가는 시범적 사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

이제는 3년간 해 왔지만, 당곡리 현대화사업이 북이 얼마만큼 평가하는가에 대해 북측과 진지한 토론을 해야 할 때가 됐다. 한 협동농장, 4-5천명을 대상으로 하는 직접적 사업은 당곡리가 처음이다. 그 점에 대해서 성과나 효과에 대해서 북측과 진지한 평가와 토론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일단, 3년 하면서 북이 스스로 농촌 현대화를 해 나가는데 노하우를 배우는 의미 있는 시범사업이지 않나하고 자체평가를 해 본다.

"북이 남쪽 단체에 요구하는 것 생뚱한 것 아니다"

   
  ▲강 총장은 "근본적인 북한의 개발을 위해서는 공적 형태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 지원협력사업을 하다보면 북측의 요구가 끊임이 없다는 불평도 있는데.

■ 여전히 그것도 불만이다. 그러나 저는 이해가 된다. 북측 민화협의 입장이면 당연히 그럴 것 같다. 왜냐면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은 많고, 필요한 자재를 조달할 방법은 없고, 당연히 의지하고 손을 내밀 곳은 남측의 민간단체일 것이다. 그래서 북이 요청하는 것에 인도적 지원원칙의 잣대를 댈 것이 아니라 그것이 북이 스스로 개발하고 발전하느냐에 도움이 될 것이냐에 따라서 판단해야 한다.

북이 남쪽 단체에 요구하고 있는 여러 가지가 생뚱한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점이 남쪽 단체들이 계속 요구하고 있는 지원지역의 확대라는 측면과 연계되어 있지 않다는 한계를 갖고 있지만, 북이 스스로의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의미 있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남쪽 민간단체들이 진지하게 대답을 해 나가야 한다.

에너지나, 도시시설을 개발 복구해 나갈 수 있는 중장비, 건설자재 등 이런 것이다. 북이 가장 필요한 것이 건설자재, 설비, 페인트, 기름 등인데. 적어도 지원하는 단체가 소위 지원하는 자재에 대한 사용처의 모니터링을 충족해 나간다면 그것에 대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생각해 나가야 한다. 단체들이 모금하기 쉬운 의약품, 어린이 급식 자재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북이 요청하는 사회개발을 위한 것도 해야 한다. 북의 사회개발을 지원한다고 하면서, 북이 스스로 경제, 사회개발 해 나가는데 필요한 인프라, SOC를 대주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 다만, 그것이 새로운 재원이 필요하고 새로운 규모가 필요하다보니까, 민간단체들이 어려운 것뿐이다.

나름대로 효과적으로 지원하려면 어떻게 해 나가야 하나? 공적자금 등으로 민간단체들의 사업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북도 그런 점에서 진지하게 같이 얘기해 나가야 한다. 북이 스스로 밝히기 어려운 측면이 있더라도 신뢰를 가지고 발전시켜 나갈 때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것 아니겠나?

□ 100회가 넘게 방북했다. 분위기는 어땠나?

■ 제 성격이 답답하면 일을 못한다.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하고. 그런데서 불필요한 마찰, 오해도 있었다. 서로간의 다툼과 오해와 갈등을 풀면서 정이 쌓였다고 본다. 북쪽 민화협 성원을 신뢰하고 있고, 민화협도 저나 민간단체의 실무진들을 신뢰한다고 본다. 그러나 체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과, 생각이 다른 것은 현실이다. 우리는 남한이라는 사회에서 대북지원 하는 것이고, 북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일을 하기에 기본적인 인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협력하는 것이 신뢰와 존중인데 그럼에도 한계가 있다.

10년을 다녔지만,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고. 아직도 그 사람들의 고민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허심탄회하지 못하다. 그렇지만 저는 북의 민화협 일꾼들한테 제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얘기 못하지 않는다고 보는데, 북측 민화협 선생들은 우리한테 허심탄회 하나?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다소 우리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을 갖고 있지만, 그렇기에 일이 된 측면이 있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한편으로 민화협 대남일꾼들이 어려운 조건에서 자기 일을 다 하고 있다는 점에서 거꾸로 저보고 민화협 일을 하라면 저는 못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안타깝지만 존중하는 측면이 있다.

초기 98-99년 그들을 만날 때는 이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그랬는데 하다보니까 되고, 더 많이 하고 싶다. 소위 사상적 이념적 혼란의 시대에서 진보적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최근 반북의 입장에 많이 서잖나? 그런데 지원단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반북으로 돌아서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그것은 뭐냐. 서로 겪고 이해하고 신뢰하는 측면이 있기에 지원단체의 대다수는 이념 이런 것과 다르게 남북관계의 안전판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남북관계 진전의 바로미터가 민간협력사업에서 나타날 수 있다. 10년 동안 민간단체의 사업을 통해서 큰 변화가 있었다고 본다.

□ 술자리에서 가족이야기 이런 것도 편하게 오가나?

■ 당연히 사적인 자리에서는 나이도 따지고, 나이가 많으면 선배로 대접하고 적으면 후배로 생각한다. 북쪽도 그렇게 본다고 본다. 그런데 저는 사적인 얘기를 잘 하는데, 제가 100을 한다면 북은 10정도? 그래서 손해 본다는 얘기를... 그러나 이해를 한다.

□ 술 때문에 손해 본 것은 없나?

■ 10년 동안 문제없이 다닌 것은 술을 좋아한다, 운동권 출신이다라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저 때문에 몸 버린 사람도 많이 있다.(웃음) 접촉 초기에 누가 술이 세냐가 사실은 경쟁이다. 지금은 뭐랄까 서로가 자제를 하는데, 일상사가 됐다. 남쪽단체들의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종교단체이다 보니 밤 문화가 약하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좋은 의미에서 밤 문화를 형성했다.(웃음) 그런 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단체이름에서 먹고 들어가는 점이 있지만, 일 하는 사람들인데 편하게 같이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 같다. 이상하게 우리 사무처 사람들이 술을 잘 먹는다.

□ 많은 사업을 지자체 등 파트너와 함께 하는 것으로 아는데.

■ 독자적 기금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매개하는 역할이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다. 다양한 직능단체,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단체의 대북협력사업이나 교류협력사업을 매개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중요하게 중심을 두는 것이 지자체의 대북사업이다. 지자체는 정부와 민간이 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을 할 수가 있다. 지자체들이 대북사업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규모 있는 농업협력사업은 지자체 없으면 할 수가 없다.

많은 단체들이 어려워 하지만, 10년 전과 같이 북한 동포 돕기 운동에 대한 자발적 모금이 많이 약해졌다. 좋은 일도 3년이면 싫어진다고, "여전히 북이 어렵냐? 당신들은 뭐 했냐?"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새로운 형태의 대북지원 캠페인을 펼쳐야 하는데 10년 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모금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 활동가들이 오래 활동하면, 자기성장이 어렵다는데, 이런 것에 대한 생각이나 비전은?

■ 그동안 96년 창립할 때부터 같이 했었는데, 어제도 이취임식 때 말씀드렸지만, 12년 전으로 되돌아 가보자, 우리가 나서서 하지 않으면 남북관계 어려움이 더 부딪칠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하는 일 하나 하나가 중요하다는 절박감을 갖고 해야 한다는 것이고, 10년이 지난 지금에는 새로운 역사인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정세에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고, 민간단체가 일정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면. 지금 여러 가지 정세가 소용돌이친다. 이럴 때 시민사회운동이 새로운 역사인식과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2008년이 상당히 중요한 때다. 절박하게 해 나가야 하지 않나. 12년 전 창립 당시의 30대 중반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일하려고 하는데, 자신감도 있지만 두려움, 부담감도 많이 있다. 민간단체들에 대한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격려해 줘야 할 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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