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25일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진화의 길, 다 함께 열어갑시다’는 제목의 취임사를 통해 “새로운 60년을 시작하는 첫 해인 2008년을 대한민국 선진화의 원년으로 선포한다”면서 “우리는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가야 한다”고 선언했다. 특히 관심사인 대북정책에서도 “남북관계는 이제까지보다 더 생산적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운을 떼고는 그 발전 방안으로 “(남북관계를)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어가겠다”고 천명했다. 전반적인 국정운용과 대북정책에 있어서 한마디로 말해 ‘실용’을 강조한 것이다. 여러 정황에서 살펴볼 때 ‘이념의 잣대’란 민족주의를, ‘실용의 잣대’란 실용주의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보다 정확하게는 민족문제와 통일문제를 실용주의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이 대통령은 줄곧 실용주의를 강조해 왔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는 실용주의 정부’라는 말도 나왔다. 문제는 실용주의가 무엇이냐는 점이다. 이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와 평소의 대북관에서 볼 때, 실용주의란 대북정책에서 경제주의와 상호주의를 적용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분명한 것은 그간 남북관계에서 무수히 증명된 바와 같이 민족문제를 경제적 차원이나 상호주의(절대적 상호주의든 상대적 상호주의든)로 접근해서는 절대로 풀 수 없다는 점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남북관계란 민족 내부문제이지 국가간 문제가 아니다. 민족 내부문제를 경제적 차원에서 접근하거나 상호주의를 적용하겠다는 발상은 북한을 동족(同族)이 아닌 이민족(異民族)으로 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실제로 그간 남북관계를 볼 때 경제적 차원에서 접근한 대북 전력공급을 골자로 한 ‘중대제안’이나 남북간 이것과 저것을 연계시키는 상호주의는 거개가 실패했었다.

분단된 나라에서 대통령 취임사라면 응당 민족문제와 관련한 비전은 물론 최소한 대북 메시지라도 던져야 한다. 취임사에는 민족문제와 관련한 비전은커녕 애써 ‘민족’이라는 단어를 ‘국민’으로 바꾸기까지 하고 있다. “남북통일은 7천만 국민의 염원”이라는 표현이 그렇다. ‘7천만 민족’이 낯익고 맞는 데도 말이다. 그러기에 이 대통령의 취임사는 역대 대통령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무게와 격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는 없다”고 ‘민족우선’ 입장을 밝혔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북 화해협력정책 기조 하에 △무력불용 △북한 흡수 반대 △화해협력 추진의 ‘대북3원칙’을 천명했으며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2차 핵위기가 불거진 가운데 북핵 불용 의지를 밝힌 뒤 △대화해결 △신뢰와 호혜 △남북 당사자 중시의 국제협력 △국민적 참여와 초당적 협력 등 ‘평화번영 정책의 추진 원칙’을 밝힌 바 있다.

그래도 굳이 이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대북 메시지를 찾는다면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택하면 남북협력에 새 지평이 열릴 것”이라며 ‘비핵・개방・3000 구상’을 밝힌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 정상이 언제든지 만나서 가슴을 열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한 것이다. 그런데 전자는 부시 미국 대통령도 실패한 ‘선핵포기’에 입각한 정책을 반복한 것이고, 후자에도 별반 진정성이나 무게감이 실리고 있지 않다. 앵무새처럼 반복하거나 깃털처럼 가벼운 취임사다. 그 이유는 당연히 취임사 전반에 흐르는 실용주의에 기인한다. 실용주의를 조자룡 헌 칼 쓰듯 마구 휘둘러서는 곤란하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이라는 측량할 수 없는 민족문제에, 무게를 달고 자로 잴 수 있는 ‘실용의 잣대’를 사용한다는 것은 민족문제에 대한 모독일 수 있다. 민족문제는 ‘실용의 잣대’로 풀 수가 없고 또 풀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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