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일보 다시보기’ 연재를 시작하며

민족일보는 1961년 2월 13일부터 5월 19일까지 지령 92호의 짧은 삶을 살았다. 단명(短命)했지만 민족일보는 당시 저 유명한 ‘양단된 조국의 통일을 절규하는 신문’ 등 4대 사시(社是)를 내걸고 사월혁명 직후 “한국사회의 새로운 발전과 모색을 대변하는 신문”으로서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통일뉴스가 민족일보의 얼을 이어받고 특히 ‘민족일보 다시보기’를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통일뉴스의 창간 정신이 민족일보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며, 다른 하나는 양사의 최대 관심인 통일문제와 관련해 민족일보가 활동했던 사월혁명 후 한국상황과 통일뉴스가 활동하고 있는 6.15공동선언 이후 현재의 그것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족일보를 널리 알리는 일은 역사를 두 번 겪는 이로움을 줄 것이다.

‘민족일보 다시보기’ 란에는 민족일보에 실린 여러 가지 내용이 게재될 것이다. 사설, 논단을 비롯해 인터뷰, 기획연재, 세계의 동향 그리고 생생한 사회면 기사들이 매주 한두 편씩 실릴 것이다. 게재 방식은 첫째 원본을 싣고, 둘째 그 원본을 현실에 맞게 수정해 싣고, 셋째 가능한 경우 해설을 덧붙일 것이다. 특히 이 작업을 주도하는 경희대학교 총민주동문회에 감사드린다. / 편집자 주

병에 걸리면 속절없이 죽어가는 판

병에 걸리면 병원에 가봐야 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가난한 농촌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상식이 통할 길 없다.

병원도 없고 의사도 없는 무의촌이 아직도 수두룩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골에는 여전히 원시적인 미신치료와 단방요법이 지배적이다.

인구 육만 오천을 가진 전북 장수군을 가봤다. 비록 노령산맥에 깊숙이 파묻힌 산골이라 하지만 병원다운 병원이 한군데도 없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이런데서 급병에 걸리면 꼼짝없이 죽기 마련이다. 일년 열두 달 앓지 않는다고 건강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이들이 병에 걸리면 꼼짝 못하고 죽어가는 것이다. 맹장염으로 죽고 결핵이나 위병으로 죽는 것이다.

시골사람들의 대부분은 아직도 병에 걸리는 것은 하나의 운명이요 숙명이라고 여기고들 있다.

미신과 경험치료는 두메산골 의술의 전부가 되다시피 하였다. 독사에 물리면 흙을 집어먹었고 맹장염에 걸리면 돼지똥물을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풀어먹인다. 결핵에 걸리면 뱀이 제일이고 뼈가 부러지면 참기름을 바른다는 것이다. 여름철「말라리아」는 이른 새벽 공동묘지에 가서 재주를 넘으면 낫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병이 나을 리 없다. 그들은 낫지 않는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아픈 몸을 이끌고 침장이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페니실린」이나 「마이신」같은 항생물질의 이름조차 모르고 또 설사 안다고 하여도 현대의약의 효험을 나눌 수 없는 그들의 처지에서는 침은 만병통치를 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무슨 병에나 약쑥을 불사르는 뜸질이 무엇보다 앞선다. 뜸질을 하되 일곱 자로 건너뛰어 일곱 번, 열네 번, 스물한 번씩을 해야 한다니 이것이 무슨 까닭인지 그들 자신도 알지를 못하였다.

아무리 침을 맞고 아무리 뜸질을 하여도 병이 나을 리가 없다. 다음에는 굿장이를 찾아간다. 병이 아니라 귀신이 붙었으니 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하자는 것이다. 무당은 죽어가는 환자를 옆에 두고 징치고 장구치며 경을 읽는다. 그러나 그것 역시 병을 고칠 리가 없다. 병세가 위중하고 최후가 되면 부랴부랴 아편을 써본다. 그렇지만 그것도 헛짓이다. 그들에겐 세상에 다시없는 비약으로 간직한 아편이지만 환자는 아무 효험 없이 슬픈 종말을 고할 뿐이다.

그렇다고 이들은 병원이 없고 의사가 없고 미신적인 사고방식 때문에만 죽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육, 칠십 리만 나가면 시가 있고 시내에는 이름 있는 병원도 몇 개쯤은 있다. 그렇지만 그들에겐 치료를 받을만한 경제력이 없다. 경제력이 없어 병마에 쓰러져가는 숫자가 제일 많은 것이다.

벽지를 돌아보고 귀로에 올랐을 때 전주에 있는 어느 병원에서 본 일이다. 부안군 백산면에서 왔다는 육십 세가량의 할머니는 진찰결과 장암으로 밝혀졌다. 의사는 수술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거절했다 집안 형편으로는 수술비를 짜낼 길이 없어 그만 되돌아 갈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힘없이 병원문을 등지는 파리한 그 할머니의 표정은 절망의 그림자에 휩싸여있었다.

이렇듯 질병의 무방비지대에서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또 내일도 비참한 순간순간의 영원한 시간 속에 파묻혀 살아가고 죽어가는 불행한 그들이었다. 무의촌을 없애기 위하여 의대생의 희망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졸업 후 개업 시에는 징집을 연기하고 병원건물을 제공하는 등의 특전을 베푼다고 하여도 지망자가 없다는 이 엄연한 사실은 팽개쳐진 원시마을에 현대의약의 빛은 먼 훗날의 얘기라는 적신호가 아닐까?

김제군 봉남면 보건진료소장 김씨의 말에 의하면 인구 일만 칠천을 가진 봉남면에 있어서 병원 신세를 질 수 있는 사람은 불과 백여 명을 헤아릴 정도라는 것이다.

뇌염의 전염체인 모기를 잡으려고 그 흔하게 쓰인 디.디.티 한번 살포된 일이 없다는 이 저주받은 원시마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병마에 신음하는 무수한 군상이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장석진=기)

(자료-민족일보 1961.2.15)

▲ [사진-민족일보 1961.2.15자 '농촌의 인상' 캡쳐]
병에 걸리면 병원에 가봐야 하는것이 상식이지만 가난한 농촌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상식이 통할 길 없다
병원도 없고 의사도 없는무의촌이 아직도수두룩하다 그렇기때문에 시골에는 여전히 원시적인 미신치료와 단방욧법(單方療法)이 지배적이다
인구 六만五천을가진 전북장수군(長水郡)을 가봤다 비록 노령산맥에 깊숙이 파묻힌 산골이라 하지만 병원다운 병원이 한군데도없다는것은 놀라운 사실이아닐수없다 이런데서 급병에 걸리면 꼼짝없이 죽기 마련이다 일년열두달 앓지않는다고건강한것은 결코 아니다 이들이 병에걸리면 꼼짝못하고 죽어가는것이다 맹장염으로 죽고 결핵이나 위병으로 죽는것이다
시골사람들의 대부분은아직도 병에 걸리는것은 하나의 운명이요 숙명이라고 여기고들있다
미신과 경험치료는두메산골 의술의 전부가되다싶이하였다 독사에물리면 흙을 집어먹었고 맹장염에 걸리면 돼지똥물을 다죽어가는 사람에게 풀어먹인다 결핵에 걸리면 뱀이제일이고 뼈가부러지면 참기름을 바른다는것이다 여름철「말라리아」는 이른새벽 공동묘지에가서재주를 넘으면 낫는것으로 알고있다
그러나 병이 나을리없다 그들은 낫지않는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아픈 몸을 이끌고 침장이를 찾아가는것이었다 「페니실린」이나 「마이신」같은 항생물질의 이름조차 모르고 또 설사 안다고 하여도 현대의약의 효험을 나눌수없는 그들의 처지에서는 침은 만병통치를 하는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무슨 병에나 약쑥을 불사르는 뜸질이 무엇보다 앞선다 뜸질을하되 일곱자로 건너뛰어 일곱번 열네번 스물한번씩을 해야한다니 이것이 무슨 까닭인지 그들 자신도 알지를 못하였다
아무리 침을맞고 아무리 뜸질을하여도 병이 나을리가 없다 다음에는 굿장이를 찾아간다 병이 아니라 귀신이 붙었으니 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하자는 것이다 무당은 죽어가는 환자를 옆에두고 징치고 장구치며 경을 읽는다 그러나 그것역시 병을 고칠리가 없다 병세가위중하고 최후가되면 부랴부랴 아편을 써본다 그렇지만 그것도 헛짓이다 그들에겐 세상에 다시없는 비약(秘藥)으로 간직한 아편이지만 환자는 아무 효험없이 슬픈종말을 고할 뿐이다
그렇다고 이들은 병원이 없고 의사가 없고 미신적인 사고방식때문에만 죽어가는것은 아니었다 六, 七十리만 나가면 시(市)가 있고 시내에는 이름있는 병원도 몇개쯤은있다 그렇지만 그들에겐 치료를 받을만한 경제력이 없다 경제력이없어 병마에 쓰러져가는 숫자가 제일 많은 것이다
벽지(僻地)를 돌아보고 귀로에 올랐을때 전주에 있는 어느 병원에서 본일이다 부안군백산면(扶安郡白山面)에서 왔다는 六十세가량의 할머니는 진찰결과 장암으로 밝혀졌다 의사는 수술할것을 권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거절했다 집안 형편으로는 수술비를 짜낼길이없어 그만 되돌아갈수밖에 없다는것이었다 힘없이 병원문을 등지는 파리한 그 할머니의 표정은 절망의 그림자에 휩싸여있었다
이렇듯 질병의 무방비지대에서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또 내일도 비참한 순간 순간의 영원한 시간속에파묻혀 살아가고 죽어가는 불행한 그들이었다 무의촌(無醫村)을 없애기 위하여 의대생의 희망자에게 장학금을지급하고 졸업후 개업시에는 징집을 연기하고 병원건물을 제공하는등의 특전을 베푼다고하여도 지망자가 없다는 이엄연한사실은 팽개쳐진 원시마을에 현대의약의 빛은 먼훗날의얘기라는 적신호(赤信號)가 아닐까?
김제군 봉남면보건진료소장 김씨의 말에 의하면 인구一만七천을가진 봉남면에 있어서병원신세를 질수있는 사람은 불과 백여명을헤아릴 정도라는 것이다
뇌염의 전염체인 모기를 잡으려고 그 흔하게 쓰인 디.디.티 한번 살포된일이 없다는 이 저주받은 원시마을은 지금 이순간에도 병마에 신음하는 무수한 군상이 몸부림치고 있는것이다 (張錫珍=記)

(자료-民族日報 19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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