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일 서울형사지법은 이시우 작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진-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및 군용항공기지법 위반은 죄가 되지 않고, 나머지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피고인은 무죄입니다.”

사진가 이시우(40)씨 1심 선고공판에서 판사의 이같은 최종 판결에 방청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부인 김은옥씨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며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회장은 “명판결 이다”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시우 작가는 지난해 4월 19일 국가보안법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돼 48일간의 목숨을 건 감옥안 단식 끝에 보석으로 출소했으며, 지난 1월 10일 검찰은 이시우 작가에게 징역 10년에 자격정지 10년, 압수물품 몰수라는 중형을 구형했다.

이시우 작가는 출소 후 지난해 11월 7일부터 국가보안법폐지를 위한 국회앞 삼보일배에 뛰어든 이래 12월 3일 혼자서 다시 삼보일배로 임진각으로 향했고, 지난 21일 마침내 임진각에 도달했지만 그는 동쪽 고성을 향해 계속 ‘국가보안법에 대한 명상’을 진행하면서 걷기명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재판부, 국가보안법 적용 범위 엄격히 제한

▲ 무죄를 선고받은 이시우 작가가 첫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31일 오전 10시 10분경부터 서울형사지법 417호 법정에서 열린 제27형사부의 이시우 작가 선고공판에서 한양석 부장판사는 이시우 피고인에 대한 국가보안법상 △기밀 탐지.수집.누설 △찬양.고무.선전.동조 및 이적표현물 제작.소지.반포 △회합통신 외에도 △해군기지법위반, 군사시설보호법위반, 군용항공기지법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조목조목 무죄를 판단했다. [판결문 전문 보기]

숱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와 군사시설보호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 완전 무죄가 선고된 것은 드문 경우로 향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에 대한 신중한 법적용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특히 한양석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국가보안법 1조 2항을 들어 “국가보안법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그 구성요건을 엄격히 제한해석하여야 한다”고 전제했으며, 4조(목적수행 등) 1항 '기밀'에 대해서도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공지의 사실, 물건 또는 지식에 속하지 아니한 것(非公知性)이어야 하고, 또 그 내용이 누설되는 경우 국가의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기밀로 보호할 실질적 가치를 갖춘 것(要秘匿性)이어야 한다”고 엄격한 적용기준을 제시했다.

실제로 이시우 작가의 공군 제19전투비행단 및 제15혼성비행단의 각 비행장 촬영의 경우 “현재 미국의 인터넷 업체인 구글에서 일반인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구글어스(Google Earth)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피고인이 촬영한 정도의 해상도를 갖춘 위 각 비행장 사진을 쉽게 취득할 수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 각 비행장 사진들은 비공지성이 없다”고 판단했으며, 또한 그가 이 공군기지들을 촬영할 당시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 조사담당자였다는 점을 들어 무죄를 판단했다.

핵무기와 화학무기와 관련된 대목에서는 “설령 피고인이 공개한 정보 중 국가보안법상 기밀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하더라도 북한 등의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를 지원할 목적으로 이를 공개하였다고는 인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했으며, "평화운동을 위한 목적"이라고 명시해 '목적'과 ‘죄형법정주의’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전범을 보였다.

특히 캠프보니파스와 만리포 한미합동군사연습 관련 사진과 기사에 대해서는 “통일뉴스 기자의 자격으로 캠프 보니파스를 방문하였다”, “이 법원이 적법하게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은 통일뉴스 전문기자의 자격으로...”라고 명시해 검찰측의 이시우 작가가 기자를 사칭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일 한통련과 총련 관계자와의 접촉에 대해 검찰측이 통신.회합 혐의를 적용한 점에 대해서도 “피고인과 강춘근 등과의 만남이 의례적, 사교적 차원을 넘어서서 어떤 목적수행을 위한 일련의 활동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는 인정할 수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지 않는 합법적인 활동과정에서 북한 등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모임.연락을 하였다면 국가보안법상 통신.회합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흔히 국가보안법 사범들에게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렸던 이적표현물 소지죄에 대해서도 이시우 작가가 소지한 북한 원전 등이 “이적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북한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할 목적이 있었고 그러한 목적으로 위 출판물들을 취득, 소지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무죄로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이시우 작가가 사진가로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고, 통일뉴스 전문기자로서 연구.집필활동을 하고 있는 점, 공공기관과 도서관에서 같은 책자의 열람.대출.등사를 허용하고 있는 점 등을 세세히 제시, '집필 목적'으로 해당 표현물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피고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판결의 의미’에 대해 △국가기밀의 범위를 엄격하게 해석 △일부 국가기밀을 침해하는 행위가 있다 하더라도 북한 등 반국가단체를 지원할 목적을 엄격하게 해석 △이적표현물 소지자가 연구나 저술활동에 활용하는 등 이적목적이 아닌 경우 이적표현물 소지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점 △합법적인 활동과정에서 반국가단체 구성원과 모임.연락을 했다면 통신.회합죄가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꼽았다. 

이시우, "판결과 관계없이 끊임없이 국보법 고뇌할 것"

▲ 재판정을 빠져나와 서울형사지법 2층 로비에서 포즈를 취한 지인들. [사진-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재판장의 무죄 선고가 끝나자 참석자들은 박수를 치며 기뻐했고, 법정구속 가능성까지 거론됐던 이시우 작가는 피고인석에서 방청석으로 내려와 가족 및 지인들과 즐거운 악수와 포옹을 나눴다.

이에 비해 이시우 작가의 재판 과정을 처음부터 방청해왔던 수십명의 극우보수단체 노인들은 한마디 말도 없이 조용히 방청석에서 물러나 대조를 보였다. 재향군인회 등은 이시우씨에 대해 엄벌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바 있다.

▲ 재판이 끝난 뒤 극우보수 단체에서 나온 노인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재향군인회는 이시우 작가를 엄벌에 처하라는 탄원서를 제출한 바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일부 방청객들은 법정을 빠져나와 법원건물 계단 앞에서 변연식 천주교인권위원장의 사회로 간략한 즉석 뒷풀이 모임을 진행하기도 했다.

무죄판결을 받은 이시우 작가는 “우선 그동안 공정하고 합리적인 재판을 진행해주신데 대해서 재판부의 노고와 수고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국가보안법을 사수하겠다고 하는 분들의 입장과 보수단체와 세력에게는 다시한번 국가보안법의 존폐문제를 성찰하고 통찰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첫 소감을 밝혔다.

이 작가는 기자에게 “나의 무죄판결이 작으나마 국가보안법 폐지에 힘이 됐으면 한다”며 “이것만 가지고는 일심회 등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관성화된 체계를 극복하기기는 험난할 것이다”고 말하고 “판결과 관계없이 국가보안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방법을 모색해 나가는 일을 하겠다고 다짐한다”고 심경을 밝혔다.

▲ 모처럼 밝은 표정으로 법원을 나서고 있는 이시우 작가 가족. [사진-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 작가의 부인 김은옥 씨는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드린다. 판사님께도 감사드린다”고 인사하고 “어제 기자회견이 있었던 일심회 가족들처럼 누구는 무죄고 누구는 유죄고, 또 유죄 중에서는 누구는 3년이고 7년이고 이런 것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며 “지금 무죄가 나왔다 해도 이미 그것 때문에 받은 정신적 피해나 가족들의 그런 것들은 이미 보상받을 길이 없다”며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했다.

이번 재판을 담당한 이정희 변호사는 “재판부가 국가기밀의 범위를 제한적으로 해석한 것은 현대 인터넷 사회에 걸맞는 아주 좋은 판결이라 생각한다”고 반기고 “국가보안법에 대한 법률가로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에 기초한 판결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 변호사는 “이시우 작가와 부인께서 굉장히 애를 썼고 주위 분들께서 많이 도와줘서 변호인으로서는 고맙고, 재판부가 공정한 재판을 진행해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사의를 표했다.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회장은 “아주 역사적인 일이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은 최소한도 재판부가 이런 양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고 평가하면서 “같은 법원에서 서로 다른 판결이 나오는 것은 개탄할 일이다. 국가보안법은 법자체가 법관의 자의적 판단 소지가 있는 반민주적 법으로서 존립가치를 잃고 있다”고 꼬집었다.

▲ 방청객들은 이날 판결을 '역사적'이라고 평가했다. [사진-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역시 재판을 받고 있는 김맹규 청담중 교사와 강정구 교수, 이시우 작가와 국회앞에서 삼보일배를 함께 진행하다 지금은 혼자서 삼보일배 중인 오철근 선생 외에도 김제영 작가, 한상렬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이영 민가협 의장, 조헌정 향린교회 담임목사 등도 모두 무죄판결을 환영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염원하는 짧은 발언을 했다.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는 이날 이시우 작가가 유죄를 선고받을 경우를 대비해 규탄 기자회견을 준비했지만 무죄가 선고되자 이를 취소했으며, 내일(1일) 오후 1시부터 대검찰청 앞에서 전교조 김형근 교사 구속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한다고 공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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