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적인 안목의 수원(원조)에 만족하여 민족건국의 원칙에 맞설 수는 없다-

요즘 한.미경제협정을 둘러싸고 왈가왈부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그 같은 협정은 외국에 있어서도 이미 선례가 있는 일이고 피원국으로서는 불가피하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 있어서는 민족의 생활과 자존심을 짓밟는 매국적인 것이라고 해서 규탄하려는 기세도 엿보이고 있다.

이 같은 서로 반대되는 견해와 논쟁이 아무런 이유나 근거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말하자면 모두 다 응분의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불가피론』을 주장하는 측의 견해를 듣는다면 미국은 우방이고 우리를 돕는 나라인데 그 같은 협정이 무슨 의구심을 갖게 하느냐는 해석이다. 확실히 미국은 한국을 돕는 명목 밑에서 이제까지 약 30억불을 넘는 경제원조를 하여온 것이다.

단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에는 확실히 기아로부터 우리를 구제해주고 오늘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보다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에는 이 땅의 경제를 기형화시키고 만 것이다. 말하자면 미국경제에 대한 의존도만 높이고 예속성만을 강화시켰다는 말이다. 한나라의 경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달성하여야 할 목표는 자립화에 있는 줄 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오늘의 이 땅의 경제가 자립화 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 하나 갖추어져 있는 점은 없는 것이다. 그 같은 점은 이미 일반화되어 있는 일이지만 산업구조에 있어서나 소비구조에 있어서 그러한 점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여지의 무역이나 고용구조에 있어서도 같은 일이다.

한나라의 경제가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도「에너지」원이 확보되어 있어야한다. 우리는 소위「에너지」원의 핵심인 전력하나 해결함이 없이 이제까지『경제발전』을 운위하여온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넌센스」에 가까운 일이고 이제까지의 관계당국자들의 경제발전운운은『공염불』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도 한편에 있어서는 정상적인 무역「루트」를 통해서가 아니라 대내외적으로 비정상적인「루트」를 통해서 외래상품이 도입되었고 거의 외국의 상품시장화 해버리고 만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조건하에서 한나라의 경제가 건전하게 육성될 리는 결코 만무이다.

산업구조에 있어서 보면 비중이 무거워야 할 이차산업은 15%선에서 정체화 되어있고, 반대로 가벼워야 할 일차나 삼차산업의 비중은 여전히 무거운 양상을 띠고 있다. 전자가 39%선에 머무르고 있는가하면 후자가 45%선으로 비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후진국의 산업구조가 이러한 양상을 띠고 있으면서도 건전하게 발전될 도리는 없을 줄 안다.

더욱이 이차산업의 성장에 의해서 흡수 못되는 노동력은 농촌에 과잉된 인구로서 잠재케 되고 그것이 일 농가당 경지면적을 점점 영세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삼백만 정보의 경지면적에서 이백이십사만 호의 농가가 원시에 가까운 수법에 의해서 영농하고 있는 사실은 어떠한「기적」이 없는 한 그네들의 경제가 향상될 리는 없을 것 같다. 더욱이 생산과정이나 또는 그네들의 상품을 유통시키는 과정이 허다한 애로에 가득 차있는 이 마당에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농가부채가 이천억 환에 가깝고 고리채가 천억 환을 넘는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다.

우리는 미국의 잉여농산물을 약 삼천만 석 이상 도입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미국농업공황을 타국으로 전가」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잉여농산물의 도입 때문에 한국의 농업생산성은 일제말엽에 비해서 거의 같은 수준에 놓여져 있는 것이다. 반 정보당 1.4석선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을 따름이다.

이와 같이 이미 「골화」된 기성적인 사실 가운데에서 미국의 감독권이 더욱 강화되고 또한 미국관계 고용인까지도 외교관의 대우와 모든 특혜 조치를 베풀어주지 않으면 안 될 「협정」이 우리에게 순수하게 받아들여질 리는 없을 것이다. 만고에 오늘의 경제상태에 시정이 없는 한 보다 구체적으로는 정책적 전환이 없는 한 어느 후진국의 지도자가 말했듯이 「젊은 여자는 몸을 팔아야 되고 젊은 남자는 도박이 아니면 범죄자가 되어야한다」는 현실을 안 가져온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줄 안다.

우리는 후진국이고 피원국이라고 해서 민족적인 자존심마저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원조덕분에 기아에서는 면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높아진 소비성향과 외국상품의「과시효과」때문에 자립할 기력조차도 상실해 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결코 맹목적인「내쇼날리즘」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더욱이 고립적인 쇄국주의자도 아니다. 원조를 받는 후진적인 국가이지만 우리 자신이 잘 살 수 있는 조건과 원조를 희구하는 사람들에 불과한 것이다.

이 같은 점에서 우리를 낡은 사상의 소유자라고 생각하여서는 아니 된다. 수년전에 아세아의 어느 후진국지도자가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일이 있었다. 『우리아세아 사람들이「내쇼날리즘」을 신봉한다고 해서 낡았다고 비웃지 말아라. 우리는「민족」을 찾기 위해서 수백 년 동안 서구 식민주의와 싸워왔었고 이제 겨우 그것을 우리의 손아귀에 넣게 되었는데 어째서 귀중히 여기지 않을 수가 있느냐』『우리는「딸라」의 홍수에 의해서라도 그것을 놓칠 수는 없다』고 하였던 것이다.

이제까지 항상 서구식민주의에서 또는 우리처럼 일제식민주의에서 시달렸던 민족은 그 「내쇼날리즘」에 대해서 강한 향수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과학이 발달되고 「군의 세계」를 형성해가는 이 마당에 있어서 냉엄히 생각하면 그 같은 미시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겠지만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는 아직도 그것이 귀중한 것으로서 간직되어 있는 것이다. 당분간은 도리가 없을 줄 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의 민족적인 자존심이나 우리의 자주적이고 자립적인 노력을 손상한다든지 저해할 때에는 그만큼 반발이 일어나고 예민하게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같은 우리의 심정과 위치를 이해치 못하고『낡았다』고만 생각한다면 그것은『사실을 인식치 못하는』 환상적인 정치인이 아니면 착각을 느끼고 있는 위인이 아닐 수 없다. 대내외 관계인사의 심심한 숙고가 있기를 바라마지않는다.

(자료-민족일보 1961.2.15)

(자료-民族日報 196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