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15공동선언 합의에 따라 북으로 송환됐던 비전향장기수 김영태 선생이 14일 작고했다. 향년 76세.

북 인터넷매체 <우리민족끼리>에 실린 16일자 <로동신문>은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에게 끝없이 충실한 혁명전사였으며 불굴의 통일애국투사였던 비전향장기수 김영태동지는 불치의 병으로 주체97(2008)년 1월 14일 오후 3시 76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서거하였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고인은 1931년 7월 23일 평안북도 곽산군 빈농의 가정에서 출생했으며, 한국전쟁 시기 인민군에 입대해 조선로동당에 입당했다. 한국전쟁 당시 ‘전략적 후퇴시기’ 병으로 남쪽에 남게 된 그는 지리산 빨찌산 활동을 벌이다 체포돼 비전향장기수가 됐다.

신문은 “8년전 은혜로운 공화국의 품에 안긴 동지는 당의 고마운 은덕에 보답할 일념으로 심장의 고동을 멈추는 순간까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선군사상과 령도를 높이 받들고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과 조국통일위업실현을 위하여 힘과 지혜를 다 바치였다”며 “김영태동지는 비록 심장의 고동을 멈추었으나 주체혁명위업의 완성과 조국통일의 길에 바친 그의 공적은 길이 남아있을 것이다”고 고인을 기렸다.

북으로 송환된 비전향장기수 63명 중 그동안 리종환(2001.4), 윤용기(2001.6), 신인영(2002.1), 김종호(2003.11), 강동근(2004.2), 김석형(2006.8), 오형식(2006.9) 선생에 이어 이번에 김영태 선생이 타계함으로써 남은 송환 비전향장기수는 모두 55명이다.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회장은 “김영태 선생께선 1993년 리인모 선생이 전쟁포로로서 송환된 이후 같은 전쟁포로로서 김인서, 함세환 선생과 함께 국제법상 권리로 송환운동을 추진한 바 있지만 결국 2000년 9월 2일 63명과 함께 송환됐다”며 “(북에) 가서 더 오래 사셨어야 하는데 이렇게 가셨다니 너무 슬프고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고인은 송환 전에도 북에 있는 가족과 편지가 오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 회장은 “89년 출소해서 여기저기서 목수일 같은 것도 하다가 주변 분들이 광주에 따로 집을 마련해서 따로 계시다가 송환 때 같이 갔다”며 “한쪽 눈이 실명되셨지만 동지들을 사랑하고 온화하시고 참 좋으셨던 분이다”고 회고했다.

<고 김영태 선생 약력>

▲ [자료 사진-통일뉴스]
생년월일/출생지 : 1930. 7. 23. / 평북 정주
체포일 / 석방일 : 1952. 2. . / 1989. 10. .
형량 / 복역기간 : 무기(20년) + 감호 15년 / 34년
가족관계 : 부인-김금옥, 아들-룡제

1946. 인민학교 졸업
1950. 인민군 10사단 운수중대 입대
1951. 낙동강전투 후퇴 중 지리산에 입산, 이현상 부대에서 활동
1952. 2. . 탄환이 왼쪽 눈을 관통, 체포. 남원포로수용소 수감
1971. 대전교도소 만기출소
1972. 결혼. 목수일을 함
1975. 사회안전법으로 청주보안감호소 수감
1989. 10. . 사회안전법 폐지로 출감. 청주 양로원에 머뭄
1994. 6. . 광주 `빛고을 탕제원`에서 약탕제 일함
2000. 9. 2. 북으로 송환

<김영태동지의 서거에 대한 부고>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에게 끝없이 충실한 혁명전사였으며 불굴의 통일애국투사였던 비전향장기수 김영태동지는 불치의 병으로 주체97(2008)년 1월 14일 오후 3시 76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서거하였다.

주체20(1931)년 7월 23일 평안북도 곽산군 빈농의 가정에서 출생한 김영태동지는 일제식민지통치시기 나라잃은 망국노의 설음을 뼈에 사무치게 체험하며 살길을 찾아 헤매이다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국을 찾아주신 다음에야 비로소 참다운 삶을 마음껏 누리게 되였으며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인민군대에 입대하여 영광스럽게도 조선로동당에 입당하였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병으로 적구에 떨어진 김영태동지는 지리산빨찌산에서 적들과 용감히 싸우다가 불행하게도 원쑤들에게 체포된후 수십년간이나 철창속에서 야수적인 고문과 전향공작에도 굴함없이 조선로동당원으로서의 혁명적신념을 꿋꿋이 지켰으며 석방된 후에는 공화국의 품에 안기기 위한 투쟁을 과감히 벌렸다.

8년전 은혜로운 공화국의 품에 안긴 동지는 당의 고마운 은덕에 보답할 일념으로 심장의 고동을 멈추는 순간까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선군사상과 령도를 높이 받들고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과 조국통일위업실현을 위하여 힘과 지혜를 다 바치였다.

김영태동지는 비록 심장의 고동을 멈추었으나 주체혁명위업의 완성과 조국통일의 길에 바친 그의 공적은 길이 남아있을것이다.


주체97(2008)년 1월 15일

(출처-<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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