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에게 2007년 대선의 결과는 혹독했다.
신보수세력을 대변하는 이명박 후보의 압도적 당선뿐만 아니라 중도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의 지리멸렬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노동당으로 대변됐던 중도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은 선거 참패를 넘어 정치세력으로서의 존립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형국이다.

더구나 이명박 인수위가 쏟아내고 있는 친재벌적 신자유주의 경제.사회정책, 친미 일변도의 통일외교정책에 대해서 효과적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예고된 4월 총선 패배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정치공학적 내부 봉합과 총선 대책만으로는 전망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집권 신보수세력에 맞선 중도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의 활로는 야당다운 야당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적극적 활동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는 길밖에 없다.

이명박 신보수세력에 맞서 중도개혁세력과 진보진영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방향은 결국 신자유주의와 친미주의에 맞서는 것이다.

먼저, 민족적 소명에 진력해야 한다.

혹자는 민족은 허구의 개념이라는 둥 민족주의는 종말을 고했다는 둥 떠들어대고 있지만 남과 북에 단독 정부가 들어선지 60년을 맞는 우리 민족에게 민족통일의 시대적 소명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절대절명의 과제이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야 할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바로 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어야 한다는 사람이나 일본이나 중국과 통일을 하자는 사람이 없는 것만 보아도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야 할 당위성은 민족을 빼놓고서 이야기할 수 없다.

이명박 당선자의 정권인수위가 한미동맹 강화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고, 통일부를 외교부에 통폐합한다느니, 통일부의 대외정책 결정권을 외교부로 이월한다느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야당들은 민족적 소명의식에 입각해 친미가 살길이 아니라 통일이 살길이라는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북핵문제 해결 전에는 대규모 경협사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미국의 입장을 공공연히 지지하며 남과 북의 정상이 역사적으로 마련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합의사항 이행마저 모르쇠하고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이명박 세력에게 전국민적 힘을 모아 거스를 수 없는 통일의 행진을 벌여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집권 신보수 세력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종북주의’ 논란이 일고 있는 실정이다. 보수세력이 붙인 ‘친북’보다 더한 ‘종북’이라는 딱지를 진보를 자칭하는 일부 세력들이 동료들에게 붙이는 것을 보는 것은 분노보다 차라리 슬픔이다.

민주노동당이 대선의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코리아연방공화국' 처럼 현실 정합성 없는 공허한 민족통일론이 얼마나 현실에서 쉽게 매도될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교훈적 사례이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은 무엇보다도 자주통일이라는 민족적 소명에 전력을 다함으로써 이 땅, 이 시대의 진보적 가치를 구현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사회적 양심을 구현해야 한다.

어느덧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의 구조화가 심도 깊게 진전되었고, 신자유주의의 가치관과 제도들이 관행화 되었다. 그야말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고 외국자본의 침투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인수위는 재벌 규제 완화와 개발.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을 예고하고 있으며, 교육과 언론 분야 등에서 신자유주의적 약육강식 정책을 주창하고 있다.

IMF 이후 등장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역시 크게 보아 신자유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지만 이명박 정부 하에서 신자유주의는 더욱 노골적으로 추진돼 심각한 폐해에 직면하게 될 것임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일이다.

어느 후보가 내걸었던 ‘가정의 행복’도 신자유주의 광풍에 내몰린 오늘의 현실에서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부와 권력을 가진 소수를 제외하고는 인간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도 참으로 어려워진 시대로 점차 빠져들고 있고, 이명박 정부 임기중에 그 정도는 훨씬 심화될 것이다.

이제 성장과 경쟁의 논리나, 개인이나 가정의 논리로서는 개인적 양심이나 가정의 행복마저 유지하기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아니 사회적 양심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개인과 가정의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시대가 된 것이다.

가진 자보다는 가난한 이에게,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에 따른 경쟁보다는 사회적 연대를, 개별과 가정을 넘어 이웃과 사회, 국가에 눈 돌려야 할 때이다.

민족적 소명과 사회적 양심을 일깨우고 이 일에 중도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이 손을 맞잡고 맞서 나가갈 때만이 활로는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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