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호('통일맞이 나들이 - 하나를 위하여' 대표)


최근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북미관계는 종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처럼 객관적 통일정세가 무척 긍정적으로 흐르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통일에 대한 기대가 더욱 높아지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통일기행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가장 큰 통일기행은 상호 자유로운 방문일 것이지만 아직은 현실이 그러하지 못하기에 일단 남쪽 땅에서 통일기행으로 가장 많이 찾는 파주 일대의 민통선-DMZ 권역을 이번 기행지로 선택하였다.

출발지로는 이러한 통일환경 조성에 가장 크게 기여한 2000년 6.15공동선언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하여 <김대중도서관>을 선택하였고, 이렇게 시작되는 통일기행은 자유로를 이용하여 통일동산과 임진각을 둘러보고 민통선 내부로 들어가 도라산역, 제3땅굴, 캠프보니파스 등 여러 장소들을 보며 그 의미와 현실을 살펴보기로 한다. 또 유엔사 관할지역인 남측 비무장지대로 들어가 판문점과 대성동마을을 둘러본다. 그리고 민통선을 빠져 나오면서는 통일로를 이용하여 서울로 돌아오며 적군묘지, 장준하 묘, 보광사 구 비전향장기수 묘역 등을 살펴보며 돌아오는 것으로 기획하였다.

아직까지 분단의 흔적이 가장 짙게 남아있는 이곳 민통선-DMZ 일대에서 최근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통일의 역사를 직접 몸으로 느끼며 남아있는 분단의 흔적들을 지우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연재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두 차례 싣는다. /필자 주 

자유로휴게소에서 이곳 <통일동산>까지는 자동차전용도로인 자유로를 이용하는 까닭에 약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두산 정상에 위치한 전망대 주차장에 만차가 되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차량을 이용하여 오두산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전망대 주차장이 꽉 차서 자가용 출입이 통제될 시에는 아래 자동차극장과 함께 있는 통일동산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셔틀버스를 이용하거나 도보로 오를 수도 있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도보를 이용하여 걸어서 오두산 정상에 오를 것을 권한다. 소요시간은 약 15분 정도인데 조용한 길을 걸으며 백제 관미성이 존재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오두산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참 좋기 때문이다.

오두산 정상에 올라와 매표소에서 입장료 2500원을 내고 오두산 통일전망대 맨 위층에 오르면 일단 끝없이 넓게 펼쳐진 한강하구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248㎞ 군사분계선을 따라 여러 통일전망대가 있지만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주: 정전협정문에 ‘한강하구’라고 표현된 곳은 비무장지대가 끝나는 파주시 장단면의 사천강 하류와 문산 곡릉천으로부터 강화의 끝섬인 말도까지이다. 하지만 본래 이 부분에 대한 우리의 지명은 한강하구가 아니라 조상 조(祖)를 써서 ‘조강(祖江)’이라고 불렸다. 이러한 본래부터 존재했던 명칭이 정전협정 문안작성 과정에서 ‘한강하구’로 표기되고, 또 정전협정 이후로 이 곳은 군사시설화 되어 이용이 제한되면서 그 표현마저 한강하구로 굳어진 것이다.)

▲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하구. 좌로는 남녘의 김포반도이며 우로는 북녘의 개성시 외곽지역(구 황해도 개풍군)이다. 여기서부터 서해로 빠지는 강화군 말도까지를 본래 한강하구가 아닌 ‘조강(祖江)’이라고 불렀다. [사진 - 유영호]

남쪽에서 흘러내려온 한강과 북쪽에서 흘러내려온 임진강이 말없이 서로 섞이어 드넓은 서해로 빠져 나가고, 양 옆으로 남녘 땅 김포반도와 북녘 땅 개풍군이 조용히 서로 마주보고 있다. 육안으로도 남북 양측의 민가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 평온함이 정전협정이란 무시무시한 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한편 이곳 오두산 통일전망대의 행정 소재지는 파주시 탄현면으로 자유로휴게소가 있는 교하읍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곳이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한강하구를 내려보는 보는 순간 이 곳이야 말로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교하(交河)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은 이곳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정확한 교차점이며 이곳에서 두 물줄기는 하나가 되어 서해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전망대에서 북동쪽으로 파주시 장단면 정동리쯤의 임진강에서 끝나는 철책선이 육안으로 보인다. 바로 이 철책선이 남방한계선의 서쪽 끝이다. 따라서 여기서 더 이상 서쪽으로는 군사분계선이나 남방한계선이 없다. 정전협정문에서 군사분계선을 표시한 첨부지도를 보면 군사분계선은 파주시 장단면 정동리까지만 그어져 있기 때문이다.(사진 참조)

하지만 필자가 초중고 시절 보고 배웠던 사회과부도에는 분명 휴전선이 서쪽으로 육지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바다 위에도 그려져 백령도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러한 그릇된 지식이 서해 북방한계선(NNL)으로 이어져 지금 남북간 갈등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남갈등으로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 한겨레신문 2007. 7. 27일자에 실린 한강하구 도면. [사진 - 유영호]

뿐만 아니라 이런 그릇된 정보는 아직도 우리사회에 널리 남아있다. 얼마 전(2007.7.27) 한 일간지에 한강하구에 관한 기사와 함께 그려진 지도(사진참조)에서도 이같은 오류가 그대로 보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 그 잘못된 지도가 실리게 된 날은 다름 아닌 정전협정 체결일로 이 신문기사를 본 필자는 가슴이 찹찹했다.

왼쪽은 한겨레신문 2007년 7월 27일자 개성공단관련 기사가운데 첨부된 안내 지도로 군사분계선이 육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강하구를 이어 서해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정전협정문에 첨부된 군사분계선에 관한 지도에서 군사분계선은 동해안 고흥에서 시작하여 서쪽 끝은 파주시 장단이다. 즉, 한강하구 및 서해에는 군사분계선이 없다.( 이문항,『JSA‐판문점』,2001:소화 362쪽 참조)

▲  정전협정문에 첨부된 지도. 이문항,『JSA‐판문점』,2001:소화 362쪽. [사진 - 유영호]
이번 기회에 군사분계선이 결정되었던 당시의 정전협정 합의과정에 대하여 다시한번 확인해 보기로 하자. 북은 당시 유엔군에 대하여 해군력이 압도적으로 열악했다. 따라서 유엔군의 해안봉쇄에 대응할 필요성과 반공유격대의 활동을 통제하기 위하여 군사분계선을 육지뿐 아니라 바다에도 설정해야 한다고 정전회담에서 주장하였지만 미국은 육지에 대해서만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를 설정하자고 대응하였다. 이런 양측간 군사분계선 확정문제가 대립되다 결국 1952년 2월 서해 5도의 유엔군 관리를 승인함으로써 해상분계선 문제는 설정하지 않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따라서 한강하구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선은 군사분계선이 아니라 옛 경기도와 황해도의 경계선(강화 우도와 황해도 예성강)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오두산 통일전망대 3층 전망실 내부에 만들어진 축소지형판에는 군사분계선은 육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강 위에도 그려져 관람객들에게 그릇된 지식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들어 이러한 잘못된 표시가 지적되면서 이제는 그 거짓 휴전선이 지워지고 ‘중립지역(공동관리구역)’이라고 올바르게 표시되어 있다.

▲ 지난 시절 오두산 통일전망대의 축소지형판(왼쪽)에서는 정전협정에는 없는 한강하구의 군사분계선이 표시되어 있었다. [사진 - 이시우] 그러나 2007년 9월 이후 축소지형도(오른쪽)에는 군사분계선이 지워지고 한강하구는 ‘중립지역(공동관리구역)’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사진 - 유영호]
해상에 군사분계선을 설정하지 않기로 한 북과 유엔사는 한강하구에 대하여서는 정전협정의 조문을 보면 일종의 남북민간공동수역처럼 이용하기로 합의하였던 것이다.

“한강 하구의 수역으로서 그 한쪽 강안이 일방의 통제하에 있고 그 다른 한쪽 강안이 다른 일방의 통제하에 있는 곳은 쌍방의 민용선박의 항행에 이를 개방한다. 첨부한 지도에 표시한 부분의 한강하구의 항행규칙은 군사정전위원회가 이를 규정한다. 각방 민용선박이 항행함에 있어서 자기측의 군사 통제 하에 있는 육지에 배를 대는 것은 제한받지 않는다”(정전협정 1조 5항)

위의 정전협정의 합의사항처럼 한강하구는 “쌍방의 민용선박의 항행에 이를 개방”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강화 말도에 있는 군사정전위가 제공한 ‘평화호’라는 배가 조류에 밀려 북으로 가끔 들어가도 정전협정 위반이 성립되지 않고 북으로부터 특별히 문제 제기되지 않는 것도 이처럼 정전협정 상 보장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서 “민용선박”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지만, 1953년 10월 3일 군사정전위 제22차 본회의에서 합의된 정전협정 후속합의서 즉 <한강하구에서의 민용선박 항행에 관한 규칙 및 관계사항> 4항에서는 ‘민간인’으로 그 대상을 확대해주고 있다.

이러한 정전협정의 민간인에 대한 허용에도 불구하고 한강하구는 우리에게 지난 반세기가 넘도록 금단의 땅으로 존재하여 왔다. 이처럼 한강하구가 50년 이상 군사시설화 되어 함부로 드나들 수 없었던 곳으로 있다가 바로 정전협정의 틈새를 비집고 우리들에게 정전협정의 해방구로 그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노태우 정부의 ‘평화시’ 제안과 함께 기획된 ‘자유로’ 건설공사 때문이었다. 1991년 이 공사를 위하여 한진해운 소속 바지선이 분단 50년 만에 처음으로 한강하구를 통과함으로써 한강하구는 그 모습을 일반인들에게 드러냈던 것이다.

당시 도로 건설을 위하여 바지선 통과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건설사는 그 가능성을 국방부에 의뢰하였고, 다시 국방부는 한미연합사에, 한미연합사는 유엔사에 의뢰하였는데 당시 유엔사 고문관이던 한국계 미국인 제임스 리가 정전협정상 민간선박의 통항은 충분히 가능함을 조언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그 뒤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직후 민예총, 문화연대 등 예술인들이 중심이 되어 한강하구에서 평화의 배 띄우기를 진행함으로써 한강하구 항행자유에 대한 것을 다시 확인시켰다. 이러한 정전협정의 빈틈을 신속하게 파악한 시민단체들은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준비위원회’를 조직하여 2005년 정전협정일을 맞이하여 7월 27일에 ‘평화의 배 띄우기’를 진행하였고 그 뒤 매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일에 맞추어 이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 시민 단체가 포착한 정전협정의 빈틈이란 다음과 같다. 정전협정의 주체는 유엔사을 한측으로 하고 다른 한측은 북과 중국이었다. 당시 리승만 대통령은 계속적인 전쟁을 통하여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정전협정을 반대하였고, 또 군사작전권을 미국에게 완전히 이양한 상태였기 때문에 정전협정의 당사자로 참여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군사분계선 남측 비무장지대는 한국군이 아닌 유엔사가 관리주체인 것이다.

만일 군사분계선이 한강하구에도 그려져 있었다면 그것을 따라 남북 각각 2㎞ 비무장지대가 설정되었을 것이고 또 그곳 남측 비무장지대로의 출입은 유엔사의 허가를 받아야 했을 것이지만 한강하구에는 군사분계선이 없으므로 유엔사의 허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2005년부터 매년 정전협정 기념일(7월 27일)에 한강하구가 남북민간공동수역임을 알리기 위하여 치러지고 있는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 모습. [자료사진 - 통일뉴스]
당시 유엔사는 평화의 배 띄우기 주최측의 의뢰에 처음에는 “한강하구의 민간선박 항해는 가능하며 이 행사는 ‘훌륭한(Wonderful)’ 계획이다” 라고 답변까지 했다가 이러한 유엔사의 답변에 대하여 주최측이 “한강하구 수역에서는 누구의 어떠한 허가도 받음이 없이 배가 항해하는 것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정전협정 상 유엔사는 우리의 항행에 대한 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성명서를 발표하자 이에 당황하여 다시 이를 제지하며 “정전협정에 대한 해석은 오직 유엔사만이 할 수 있으며 어느 누구도 임의로 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 근거로 정전협정 후속합의서의 문구인 “항해하려는 선박의 등록절차를 정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여기에 ‘허가’한다는 말은 없으며, 항해에 대한 허가는 정전협정 5항에 의해 이미 쌍방이 합의한 사항이며, 항행규칙은 이 합의사항에 대한 후속합의서로서 단지 실행규칙을 정하고 있을 뿐이다. 즉 현재 유엔사는 등록절차라는 것으로 허가권을 행사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신고 절차일 뿐 허가사항이라고 볼 수 없다.

더구나 민간인은 선박이 아닌 모든 것(예:다리를 놓는 것, 선박이 아닌 뗏목 등으로 항행하는 것 등)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선박등록 절차규정이 무용지물이므로 유엔사의 관리권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이처럼 정전협정의 틈새를 발견하고 현재 통일운동 단체들은 매년 7월 27일 정전협정일에 맞추어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한강하구에 대한 규정을 문헌상 드러내고 있는 정전협정 후속합의서에 의하면 상대방의 육지로부터 100미터 안으로 진입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곳 한강하구의 자연조건을 잘 모르고 책상에서 결정된 합의사항이라 그런 것이고, 현실은 이 조항이 지켜질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지’란 만조기간을 기준으로 설정한 것인데 한강하구는 조수간만의 차가 무척 심한 곳으로 물이 빠질 때에는 북쪽으로 지극히 좁게 강물이 흐를 뿐이며 거의 대부분이 배가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수심이 낮거나 모래톱이 드러나기 때문에 만약에 배가 지나친다면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육지 100미터 안으로 지나칠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이러한 자연 환경과 정전협정 후속합의서의 규정을 잘 이용하면 남과 북이 정전협정을 위반하지 않고 따라서 유엔사의 간섭 없이도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이 가능하다. 먼저 간조시기에 물이 빠지면 한강하구는 수면이 낮아져 일부에서는 강바닥이 드러나게 되는데 이곳은 모두 정전협정 후속합의서가 가지 못하도록 하는 ‘상대방 육지로부터 100미터’를 벗어난 위치이다. 따라서 이 곳에서 남과 북의 민간인들이 만나서 대동놀이를 하며 크게 춤판을 벌이고 놀아도 정전협정 위반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해석이 가능하다면 이제 남은 것은 유엔사가 아닌 남과 북의 결단인 것이다. 이처럼 정전협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유엔사의 개입을 합법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 이곳 한강하구에는 가능한 것이다. 그야말로 이곳 한강하구는 남과 북의 통일운동을 옥죄였던 정전협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해방구인 것이다.

한편, 정전협정상 군사분계선은 육지에만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또 다른 문제점을 제기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김포, 강화 일대에 존재하고 있는 민간인통제선에 대한 위법성이다. ‘민간인 통제선’이란 군사시설보호법 제2조 3항에 의하여 “고도의 군사활동보장이 요구되는 군사분계선에 인접한 지역에서 군 작전상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하여 국방부장관이 군사분계선의 남방에 설정하는 선”으로 정의되며, 그 범위를 “군사분계선의 남방 10킬로미터의 범위 안에서 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군사분계선의 끝은 파주시 장단이고 저 멀리 보이는 김포, 강화까지는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곳이다. 따라서 이는 명백한 위법행위이며, 또한 이러한 군사시설보호법의 그릇된 적용으로 인하여 정전협정 이전부터 유지되어온 민간의 자유로운 어로활동이 저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전협정 후속합의서인 <한강하구에서의 민용선박 항행에 관한 규칙 및 관계사항> 6번째에 있는 “민간에게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사용하여 온 한강하구 수역 내에 성문화되지 않은 항행 규칙과 습관은 정전협정의 각 항 규정과 본 규칙에 저촉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쌍방 선박이 이를 존중한다”는 것에 정면으로 위배되고 있는 것이다.

후속합의서의 이 조항은 남북 쌍방이 오랜 동안 한강하구를 이용하던 관습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민통선 해제가 군사시설보호법의 개정을 통하여 그 범위를 줄이면서 해제되고 있는데, 해상에는 군사분계선이 없기 때문에 김포, 강화 등은 애당초 민통선의 적용대상이 아닌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정전협정에 언급된 군사분계선에 대하여 명확히 알게 되었고 또 그 동안 군사분계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민통선 설정의 오류에 대하여서도 이곳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눈으로 직접 군사분계선을 확인하면서 간단히 살펴보았다.

따라서 이제부터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이라도 정전협정의 틈새를 이용하여 한강하구에 남과 북의 민간인들이 서로 함께 통일의 꿈을 그리며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불법적으로 설치된 강화, 김포의 민통선도 해제하여 국민의 기본권이 제대로 향유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자체가 커다란 평화운동이요 통일운동이 될 것이다.

그저 이 곳 빼어난 한강하구의 경치를 바라보며 막연한 통일희망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 속에서 우리가 조금씩 통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제반의 제도적 조치들을 개혁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곳 전망대에서 내려가기로 한다.

우리가 통일기행을 떠나면서 안내자의 설명이나 혹은 표지판 등에서 여러 경계선의 이름을 접하게 된다. 특히 서해상에서의 경계선은 육지에서의 경계선 보다 훨씬 복잡하게 설정되어 있다. 해상에서의 경계선은 정전협정에서 일체 합의된 것이 없다.

제2차 정상회담을 계기로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LL) 역시 정전협정 때 합의한 경계선이 아니라 유엔사의 일방적인 내부 작전선에 불과한 것이며, 물리력에 의한 일방적인 경계선으로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서해의 북방한계선은 법적 구속력이 없고, 또 그러한 이유로 지난 두 번에 걸친 서해교전이 발생했고, 그 속에서 남북 젊은이들의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육지에 대한 기행이므로 해상에서의 경계선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우리가 육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계선들을 중심으로 간단히 설명함으로써 통일기행에 좀더 도움을 주고자 한다.

① 군사분계선(MDL)

▲ 공동경비구역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그 입구 좌측에 설치된 군사분계선 표지판.[사진 - 유영호]
군사분계선(MDL, Military Demarcation Line)은 동쪽으로 강원도 고성군 명호리에서 서쪽으로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정동리까지 248㎞에 걸쳐 있으며, 이 곳은 철책선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약 200미터 마다 군사분계선임을 나타내는 나무기둥이 총 1292개가 박혀있을 뿐이며, 여기 표지판에는 한글로 ‘군사분계선’과 영어로 ‘Military Demarcation Line’이 함께 쓰여져 있다.

위에 연합뉴스에서 제공된 그림에서 경계선 이미지는 정전협정과 달리 군사분계선이 한강하구에서 서해로 이어져 있다. 이는 분명한 정전협정에 대한 몰이해이거나, 아니면 남측에 형성된 한강하구 쪽의 강화도 등 서해 방면에 설정된 민통선을 설명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한강하구까지 그려져 있는 것이다.

② 비무장지대(DMZ)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 각 2㎞씩 설정되어 있으며 정전협정 체결 당시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의 총 면적은 248㎞×4㎞=992.0㎢(약 3억 평)이었지만 남북 각각의 철책선 일부가 군사분계선 쪽으로 옮기어져 현재는 총면적이 907.3㎢로 한반도 전체 면적의 0.41%에 해당한다.

군사분계선이 북쪽으로 이동된 예는 민간인들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도라산전망대 및 제3땅굴 관광지이다. 이들 모두 비무장지대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철책선을 북쪽으로 밀어 올리고 관광지로 개방한 것이다.

③ 남방한계선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측지역 비무장지대와 일반지역을 구분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철책선으로 우리가 흔히 텔레비전 속에서 군인들이 휴전선을 지키며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모습은 바로 이 남방한계선(Southern Limit Line)이다.

특히 서쪽의 남방한계선은 임진강 하구인 파주시 장단면에서 끝나므로 자유로를 통해 지나가다 보면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지나 낙하IC 직전에서 임진강 건너 설치된 철책선(남방한계선)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곳부터 서쪽으로는 비무장지대가 설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참고로 간첩침투를 쉽게 확인하기 위하여 남방한계선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약 5미터씩 풀들을 깎아내어 맨땅이 드러나게 하였다. 이는 전체 남방한계선 248㎞을 따라 만들어져 있으므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한반도에 황토색 허리띠가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는 위성사진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남방한계선을 따라 높이 약 5~10미터 정도의 콘크리트로 탱크방벽이 설치되어 있다.

④ 민통선

민통선이란 “고도의 군사활동보장이 요구되는 군사분계선에 인접한 지역으로 군 작전상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하여 국방부장관이 군사시설보호구역내 군사분계선 남방 10㎞의 범위 안에서 설정한 선”을 말한다.(군사보호법 제2조 제3호와 제4조 제1항 및 제3항)

본래 민통선은 1954년 2월 미 육군 제8군단 사령관의 직권으로 귀농선으로 설정된 것으로 이후 1958년 6월 한국군이 휴전선에 대한 방어임무를 담당하게 되면서 귀농선의 이북지역에 대해서도 군사작전과 보안유지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출입영농과 입주영농을 허용하게 되었다. 그 명칭도 귀농선에서 민통선으로 개칭된 것이다. 이렇게 관리되어 오던 민통선은 1972년 군사시설보호법에 의해 법률에 군사적인 개념으로 명확히 규정되었다(군사시설보호법 제2조 제3항)

참고로 북은 정전협정에서 규정한 비무장지대의 설정과 이를 경계짓는 북방한계선 외에 따로 민통선 같은 제한 구역을 설정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북은 비무장지대의 끝인 북방한계선을 따라 민간인들이 인민군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이들 일반인민들의 삶의 모습은 최전방에 배치된 인민군들이 나오는 거의 모든 북쪽 영화에서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예:<생의 흔적>, <그는 대좌였다> 등)

⑤ 접경지역경계

민통선 이남의 시.군의 관할구역에 속하는 지역으로서 민통선으로부터 거리 및 지리적 여건.개발 정도 등을 기준으로 하여 대통령령이 정하는 지역을 말한다.

하지만 민통선과 비무장지대 등이 군사상의 목적과 필요에 의해 구분지어 오던 지역이라면, 접경지역은 군사활동상의 규제에 의해 개발과 발전이 저해되고 있다는 인식 아래 종합적인 개발을 목표로 지정된 지역이다. 따라서 경제적이고 행정적인 목적과 필요에 의하여 구분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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