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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KAL858 사건 ‘진실게임’ 끝나지 않았다 - 정연규진실규명에 실패한 국정원 과거사위 종합보고서 ②
정연규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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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11.24  13: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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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규(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 위원, KAL858기 진상규명 모임 카페 공동운영자)


오는 11월 29일은 KAL858기 실종사건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사건은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특히 지난 10월 24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KAL858기 사건 조사 최종결과를 발표했지만 'KAL858기 가족회'와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는 즉각 성명서를 발표하고 "피해자 가족들을 우롱하는 처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KAL858기 사건 의혹 해결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온 정연규 씨가 국정원 발전위의 최종결과 보고서에 대해 자세한 반박 내용을 담은 기고글을 보내왔다.
국정원 발전위의 최종결과 발표 이후 첫 본격 반론인 셈이다.

정연규 씨는 "이 기고문은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시민대책위(www.kal858.or.kr) 게시판과 KAL858기 진상규명 모임 다음카페(http://cafe.daum.net/kal858notice)에 올라온 네티즌 의견들을 최대한 반영했다"며 "아무쪼록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의견을 바란다"고 밝혔다.

정연규 씨의 기고문을 3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주


6. 김현희는 과연 평양 비행장을 출발했는가?

“비행기는 캄캄한 밤에 '이르쿠츠크'라는 소련 땅에 급유하기 위해 착륙했다. 착륙 직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이르쿠츠크 시내는 불빛만 반짝거릴 뿐 조용했다. 11월 중순인데도 이곳에는 벌써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승객들은 급유하는 동안 공항 안으로 들어가 입국 사열을 마치고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했다. 밤늦은 시간이어서 공항 면세점은 문이 닫혀 있었다.” (김현희 <고백록> ‘이제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 제1부 227쪽)

김현희는 <자필진술서> 와 <고백록> ‘이제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 등에서 1987년 11월 12일 조선민항기 편으로 오전 8시 30분 평양 순안비행장을 출발, 소련의 ‘이르쿠츠크(Irkutsk)’를 중간 급유를 위해 기착한 뒤 소련 모스크바에 18시경에 도착했다고 진술했다. 물론 이 같은 김현희, 김승일 ‘범인의 행적’이 안기부에 의해 국민들에게 ‘진실’처럼 공표됐다.

그러나 김현희 진술과 안기부 발표는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2004년 5월 22일, 23일 2부작으로 방영된 <KBS스페셜-KAL858기의 미스터리>에 의하면, 1987년 11월 12일(목) 평양을 출발한 조선민항기(JS215)는 소련 '이르쿠츠크'에 중간급유를 위한 착륙 없이 모스크바로 ‘직항’했던 항공편으로 밝혀졌다. 더군다나 김현희 진술과 달리 조선민항기의 출발시간은 09시, 도착시간은 12시 30분이었다. 출발시간은 30분, 도착시간은 무려 5시간 30분의 차이가 났다(ABC 국제항공시간표). 1987년 조선민항기의 평양->이르쿠츠크(중간기착)->모스크바 노선은 폐지 상태였다.

이에 대해 국정원 과거사위는 1987.11.12 JS215편이 '평양-모스크바‘ 중간에 이르쿠츠크에 중간기착 했다는 김현희 <고백록>의 내용은, ’Ilyushin62‘의 비행거리를 비교하고, 현재 동종의 기종이 중간 급유 없이 같은 구간을 운항하고 있는 점 등을 볼 때 신빙성은 떨어진다고 판단되나 실제 중간기착 했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음(종합보고서 Ⅲ, 387쪽)이라고 판단내렸다.

아뿔싸! 김현희와 안기부가 발표한 평양->모스크바->부다페스트->빈 행적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꿴 것이다. 따라서 모스크바->부다페스트->빈 도착 행적을 논증하려는 태도는 일반상식(common sense)에 어긋난 ‘넌센스(nonsense)’요, 논리 필연적으로도 ‘무의미’한 억지가 될 수밖에 없다. 국정원 과거사위는 1987.11.13 모스크바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아에로폴로트’ 항공 SU423편을 확인했다고 하나 동 항공편 역시 김현희 진술과 달리 출발, 도착 시간이 상이하며, 김현희는 ‘아에로폴로트’항공을 기억하지 못했다.

7. 1987년 11월 14일 도쿄 나리타 공항 출발했던 김현희

김현희 소지의 여권에는 1984년 8월 25일 나리타 출국, 동년 10월 6일 나리타 귀국, 1986년 8월 5일 나리타 출국, 동년 8월 25일 나리타 귀국, 1987년 11월 14일 나리타 출국 소인이 찍혀 있다. 이러한 일본 출입국 소인들은 '모두 위조'라고 안기부는 수사 발표했다.

유감스럽게도 김현희 소지 여권에는 위조라고 발표된 일본 출입국 ‘소인’과 함께 3차례의 일본 출입국 사실의 흔적인 ‘철심’과 1987년 11월 14일 JAL편으로 도쿄 나리타 공항 출국을 확인해 주는 '일본인용 띠지'와 일련번호(PM 6979589. 12.)가 적힌 역시 일본인 귀국기록용 '귀국카드'가 스테이플러로 꼼꼼하게 찍혀 있다.

이 같은 ‘띠지’와 '귀국카드'가 스테이플러로 찍혀 있는 것은 1987년 11월 14일 나리타 공항 출국 시 일본 출입국 심사관이 붙여 놓은 것인데, 김현희가 1987년 12월 16일 서울로 ‘압송’ 되어 왔기 때문에 여권에 그대로 붙어 있는 것이다. 이 같이 꼭꼭 숨겨진 김현희 여권상의 기록물은 <KBS 스폐셜>에 의해 사실로 확인, 일반에 공개됐다.

   
  ▲ 김현희('하치야 마유미' 명의) 여권에 스테이플러로 찍혀 있는 일본인용 ‘띠지’와 귀국기록용 '귀국카드' (KBS 스폐셜 “KAL858의 미스터리” KBS1 방송 화면, 2004.5.22.-23.)  
 
사건의 실체 진실을 규명해야 할 국정원 과거사위는 위 같은 사실에 그 어떤 언급도 해명도 없이, 김현희 여권상의 일본 출,입국 스탬프는 모두 위조됐다는 주장만 되풀이 했다.

<바레인경찰 수사보고서(1987.12.31)>에 의하면 김현희는 “1987년 11월 14일 ‘관광’을 목적으로 도쿄를 떠나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곧장 갔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근처 한 호텔서 2박을 하고 빈에 갔다” 등의 진술을 했다. 그리고 당시 소지품에는 동독서 찍은 사진과 주화 등이 발견됐고, 동독서 ‘긴급지령’을 받고 11월 18일 빈으로 이동했다는 보도가 있었다.(동아일보 1987.12.8, 한국일보 1987.12.9)

이에 국정원 과거사위는 김현희와 김승일 일행의 소지품 가운데 동독에서 찍은 사진과 동독 화폐는 없었다고 주장하며, 김현희가 유럽 등지에서 일제 코니카 카메라로 찍은 ‘사진 25매’를 또다시 공개하지 않았다.(종합보고서 Ⅲ, 320쪽)

8. 일본 정부는 여권 위조 경위를 모른다?

‘위조여권’과 관련, 바레인서 체포된 하치야 마유미가 일본전신전화주식회사(NTT) 직원이라고 신분을 밝혔고, NTT 직원인 다카하시 유키토(高橋幸人)의 여권번호(MG5021208)가 ‘위조’되었다고 보도됐지만(NHK-1TV 1987.12.3. 한국일보87.12.4), 일본 정부는 김현희 일본여권이 어떻게, 어떤 경로로 위조됐는지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정원 과거사위는, 위 같은 보도는 사실상 확인 안 된 오보라고 하면서(종합보고서 Ⅲ, 294쪽), 일본 경찰과 외무성은 김현희 소지 위조여권의 위조 경위에 대해서 조사를 하였으나 성과를 얻지 못하였고, 김현희 본인도 위조 경위에 대해 잘 몰랐기에 확인 내용이 없다고 한다.(종합보고서 Ⅲ, 379쪽)

한편 안기부는 김승일 여권이 1985년 3월 ‘재일 북한 간첩사건 니시아라이(西新井) 사건으로 도피한 북한 스파이 미야모토 아키라 (宮 本明, 본명 이경우)가 위조’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국정원 과거사위는 日警(일본 경시청)이 주일한국대사관에 ‘니시아라이 사건 당시 이경우를 수배한 사실이 없다고 통보’한 전문을 확인했고(종합보고서 Ⅲ, 336쪽), 日警은 ‘宮 本明이 여권을 위조하고, 바레인에서 자살을 기도한 피의자 자칭 하치야 신이치에게 이 위조 여권을 제공한 배경 내지 증거 판명되지 않음’을 확인했다.(종합보고서 Ⅲ, 334쪽).

즉, 김현희의 여권(MAYUMI HACHIYA)에는 ‘교부관청 13, 수리번호 048782, 여권신청자 眞壁金0’(실존, 53세)라고 분명히 적혀있지만 그 경위를 알 수 없고, 김승일의 여권(SHINICHI HACHIYA)은 ‘북한 스파이’ 이경우가 위조했다고 발표했으나, 이경우가 김승일에 여권을 제공한 배경 내지 증거는 판명되지 않았다. KAL858기 사건 직후, 김현희와 김승일 일본여권은 위조됐다고 잽싸게 발표했던 일본 자민당 정부, 왜 여권 위조 경위를 알 수 없다는 것일까? 어느 누가 이들의 ‘차명여권’을 만들었을까?

9. 엉터리 <암호수첩> 무엇을 의미하는가?

안기부는 김현희 소지 수첩(일제 금전출납부) 115면에 숫자 조합 암호로 빈 주재 북한대사관 전화번호(892311) 및 베오그라드 주재 북한 비밀아지트 전화번호(625646)와 수첩 3면에 집세˙식대 등 지출내역으로 위장해 적은 한자는 점자식 암호로 164635는 부다페스트 주재 북한 공작지도원의 연락 전화번호, 668739는 베오그라드 주재 북한 대사관 전화번호로 점자 암호는 1985년 2월에 검거된 제3국 우회침투 스파이 신광수가 사용하던 점자 암호와 동일 계열이라며,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임을 입증하는 ‘증거물’로 제시했다.

그런데 일본 저널리스트 노다 미네오가 1987년 11월부터 1990년 초까지 도쿄와 김현희, 김승일의 모스크바에서 바레인까지 궤적을 따라 검증한 현장보고서 <파괴공작>(2004.3 도서출판 창해)에 의하면, 전화번호 625646은 베오그라드 소재 조르카(ZORKA) 화학회사로, 164635는 부다페스트 소재 국영방송국 유치원으로 밝혀졌다. 나머지 2개 번호는 전화번호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북한 대사관 전화번호였다. 이같이 북한 비밀아지트가 아닌 엉터리 전화번호는 <MBC PD수첩>의 현지 방문을 통해 재차 확인됐다.

충성맹세문을 달달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다는 김현희, 왜 전화번호 4개를 외우지 못해 점자와 숫자 암호-그것조차 이미 검거된 간첩이 써먹었던 암호 계열-로 적힌 엉터리 ‘암호수첩’을 체포 순간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다녔을까?

   
  ▲ 부다페스트와 베오그라드 북한 비밀아지트 전화번호가 암호로 적힌 김현희 소지 <암호수첩>이라고 발표한 ‘증제82호’ 일제 금전출납록, 그러나 각각 유치원과 화학회사 전화번호로 판명됐다. (MBC PD수첩 “16년간의 의혹, KAL858 김현희의 진실” MBC 방송 화면, 2003.11.18.)  
 
국정원 과거사위는 김현희의 <암호수첩>에 적힌 엉터리 전화번호에 대해 아무런 해명 없이, 김현희는 이미 검거된 간첩이 사용했던 암호 계열을 또 사용됐느냐 하는 의혹에 대해 “신광수가 사용한 암호와 김현희가 사용한 암호가 ‘동일 계열’이었는지 수사 담당자들이 同 내용을 알지 못하고, 검찰 송치서류에도 증거자료가 없는 점을 고려할 때, 1988.1.15 수사발표 내용과 2005.9 국정원 답변 내용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종합보고서 Ⅲ, 310쪽)

이른바 ‘암호수첩’은 바레인서 김현희의 서울 압송이 확정된 후 안기부가 공개했다.

10. 자살용 캡슐은 ‘청산가스’였나 아니면 ‘청산가루’였나?

안기부는 수사 발표시 김승일과 김현희 두 사람이 음독자살을 기도할 때 사용한 독극물의 성분은 액상 독약을 앰플에 충전한 ‘청산가스’였으며, 5년 전쯤에 검거된 북한 스파이 정해권 등이 소지하고 있던 독약과 그 형상, 크기, 성분 등이 동일하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바레인경찰 수사보고서>에 의하면, 바레인 경찰들은 김현희와 김승일이 음독자살을 시도할 때 ‘분홍색 분말’이 담긴 앰풀을 보았다고 주장했고 김현희 조차 담배의 필터 끝에서 ‘노란색 분말’을 목격했다고 진술, 안기부의 ‘청산가스’ 앰풀이었다는 수사 발표와 커다란 모순점이 발견됐다.

이에 대해 국정원 과거사위는 앰풀 내(內) 함유물에 대해서 분말, 알갱이 등을 목격했다는 기술이 있는 점, 백색 분말 형태의 청산칼륨(KCN)에 혈액이 묻을 경우 ‘분홍빛 분말’로 보여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앰풀 내용이 청산가스(HCN)였다면 입 주변에서 앰플이 깨졌을 경우에도 다량의 청산염(CYANIDE)이 흡입될 수 있을 가능성 등을 고려 할 때, 독약 앰풀 내용이 청산칼륨(KCN)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종합보고서 Ⅲ, 272쪽)

그렇다면, 김승일과 김현희 두 사람이 사용한 독극물은 ‘북한 스파이가 소지했던 것과 동일한 청산가스(HCN)’ 앰플이었다는 안기부 주장은 어떻게 된 일인가?

<바레인경찰 수사보고서>에 의하면 바레인 병원에서 찍은 김승일 X-RAY에는 “그의 머리와 목, 위장을 찍은 엑스선 사진에서는 깨진 앰풀 조각이 발견 되지 않았음”인데, 1987년 12월 19일 국과수 주관 김승일 사체 부검 결과 시에는 담배필터와 유리 파편이 다량 발견됐다.

11. 일제 파나소닉 라디오는 과연 ‘시한폭탄’이었나?

안기부는 수사 발표시 대한항공 858편 폭파에 사용된 시한폭탄용 라디오는 일본제 <파나소닉 RFO82> FM-AM 쿼츠 시계라디오로서 라디오의 기능을 최소한으로 줄여, 부품을 빼고 생긴 공간에 콤포지션 C4 폭약 350그램을 채웠으며 배터리 1개는 뇌관 역할을 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피카티니 액체폭약(Picatinny Liquid Explosive) PLX 700cc를 술로 가장한 병에 넣고 함께 설치했다고 확정 발표했다.

2005년 9월 21일, KALl858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청문회>에서 공학박사 심동수 동아대 교수는 미국서 표준화 된 콤포지션 C-4는 러시아, 북한 등지에서 ‘싸스답페 폭약’으로 호칭되며, 테러범이 ‘콤포지션 씨 포’라고 말했다면 북한 테러요원이 아니라는 추리가 가능하고, PLX 액체 폭약은 미국 피카티니 조병창에서 인용된 비표준제품으로 표준제품인 C-4와 제품 품질이 다르고 폭발 안정성을 저해하기 때문에 혼용을 금지하고 있다는 감정 소견을 발표했다.

또 파나소닉 소형 라디오를 이용한 ‘기폭회로 구성’에 대하여, 건전지를 뇌관으로 이용한 구성은 라디오를 켤 때 유도전류 및 전자파 개입에 의한 폭발의 위험이 있고 뇌관과 건전지가 너무 근접한 배열은 반공학적, 비기술적 배치라며, 뇌관을 건전지로 위장했다는 진술은 설득력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국정원 과거사위는 1988.1.15 당시 발표된 폭약의 종류와 양은 ‘추정’된 것이며, 추정한 이유는 김현희 진술에 입각한 폭탄 테러 범행의 수사내용을 무리하게 물증(物證)화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것으로 추정했다.(종합보고서 Ⅲ, 428쪽) 즉, 콤포지션 C-4 350g과 PLX 700cc는 ‘사실’이 아닌 임의 ‘추정’으로 안기부가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김현희는 C4 350g, PLX 700cc등 폭약의 종류와 양을 진술한 사실이 없다.(종합보고서 Ⅲ, 470쪽)

또한 ‘배터리 뇌관’에 대해 <국방과학연구소>와<경찰청>은 모두 부정적 답변, <국방과학연구소>는 ‘배터리 뇌관’은 위험하므로 기판에 따로 뇌관을 설치했을 것으로 추정했고 <경찰청>은 ‘뇌관을 AA건전지에 위장하기 위해서는 뇌관 상부의 PE주(플라스틱)을 없애야 삽입이 가능하고, 삽입한다 하더라도 각선이 노출되어 사실상 위장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이 타당함’이라는 답변을 전달 받았다고 한다.(종합보고서 Ⅲ, 427쪽)

더군다나, 1987년 11월 28일 바그다드 공항에서 김승일, 김현희를 검색한 공항 검색원 Mr. ZAFAR는 ‘밧데리 4개중 1개의 크기는 조금 작았으며(RF-082 라디오에는 3개의 AA사이즈와 그보다 작은 AAA사이즈 밧데리 1개가 들어감) 그 중 1개는 칼로 개봉, 밧데리 내부를 확인하는 등 이들을 철저하게 검사’했다고 한다.(종합보고서 Ⅲ, 427쪽) 김현희는 <자필진술서>에서 KAL기 탑승 20분전 라디오 스위치를 이용해 시한장치를 9시간 후로 작동시켰다고 했다. 그런데 칼로 개봉, 파손된 밧데리 때문에 시한장치가 정상 작동될 수 있었겠나?

김현희는 라디오 시한폭탄과 술병을 ‘비닐쇼핑백’에 넣어 기내에 운반했다고 진술했으나, 아부다비에서 교대한 사무장과 여승무원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김현희가 외국에서 많이 썼다는 ‘비닐쇼핑백’이란 용어는 非영어식 표현으로 이른바 콩글리쉬(Konglish)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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