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한순간 차라리 전쟁이었다. 11일 오후 4시 40분경 세종로 사거리 일대는 창졸간에 시가전이 벌어졌다. 그 내막은 이렇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리기로 했던 11.11 ‘한미FTA 저지, 비정규직 철폐, 반전평화를 위한 2007범국민행동의 날’ 대회가 경찰측의 원천봉쇄로 진입이 무산되자, 노동자 농민 사회단체 회원 등 참가자들은 프라자호텔 쪽에서 경찰과 대치선을 긋고 숭례문까지 길게 후미가 이어진 채 행사를 가졌다. 일요일이긴 하지만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프라자호텔과 덕수궁을 계선으로 해서, 세종로 사거리 일대는 차 없는 거리가 된 동시에 그 안에는 경찰병력 231개 중대 2만3천여명과 전경버스 600여대로 메워지고, 프라자호텔부터 숭례문까지 집회장에는 4만명 이상의 참가자들로 꽉 찬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진풍경이 살풍경으로 바뀐 것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오후 4시 10분경 프라자호텔 쪽 집회를 마무리한 참가자들은 여러 경로로 우회해 교보빌딩 쪽 세종로 사거리 일대로의 진출에 성공했다. 이때부터 시위대는 종로 일대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4시 30분경 교보빌딩과 광화문 우체국 사이를 막은 전경 차량 바리케이트를 계선으로 해서 자연스럽게 시위대와 전경측이 전선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때 시위대 측에서 쇠밧줄과 사다리를 바리케이트가 쳐진 전경 차량 쪽으로 이동해 사다리로는 차량에 걸고 올라가고, 쇠밧줄로는 차량에 걸어 줄다리기하듯 앞당겨 무너뜨리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작정한 듯’ 공중에는 경찰 헬기가 우렁찬 소리와 세찬 바람을 일으키며 선무방송을 해 댔고 전경들은 바리케이트 저편에서 살수차로 물대포와 소화기 분말을 쏘아댔다.

졸지에 세종로 사거리에서 시가전이 벌어진 것이다. 시위대 측과 전경 측이 밀고 밀리던 중 어느 순간 갑자기 바리케이트 저편 교보빌딩 쪽에 있던 무장한 전경들이 곤봉을 들고 바리케이트를 넘어 시위대쪽으로 돌진해 온 것이다. 급습을 당한 시위대 쪽은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다. 종로1가 일대에는 시위대만이 아니라 노점상과 행인, 구경꾼들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전경들의 순간 공격에 사람들은 우왕좌왕 했다. 교보빌딩 뒤편에 있던 사람들 중 일부는 교보빌딩 뒷길로 피신하다 역시 바리케이트를 친 전경들의 인의 장막 앞에 멈춰 섰고, 일부는 교보문고 안으로 빨려갔고 또 일부는 피맛골 길로 빠져나갔다. 이 과정에서 비명과 분노 소리와 함께 부모 손을 잃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일반 시민들의 대정부 규탄 발언들도 쏟아졌다.

이미 민주적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나라, 그것도 평화로워야 할 공휴일 오후 도심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때쯤은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의 날’이다. 노동자를 비롯한 기층 민중들은 지난 1988년부터 이 행사를 한 해도 빠짐없이 열어왔다. 다만 이번 집회는 그간 했듯이 여의도 일대나 대학에서가 아닌 도심에서 열고자 한 것뿐이다. 그런데 평화적인 집회를 경찰 측은 허가하지 않았다. 원천봉쇄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탄압과정은 더 가관이다. 서울광장 본 집회장에 진입할 수가 없어 임시로 연 집회장마다 헬기가 상공을 낮게 날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초겨울임에도 물대포를 쏘아대는 풍경은 참여정부라는 노무현 정부의 행태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물대포를 맞는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몸만 춥겠는가, 마음마저 얼음장마냥 싸늘하게 식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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