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중(에다가와조선학교지원모금 공동집행위원장)

 

<조선학교> 연재를 시작하며

2005년 <에다가와 조선학교 재판>으로 한국사회에도 일본 내 조선학교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근의 다큐멘타리 영화 <우리학교>는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며 한국사회에 참신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으며, 지난 5월엔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이 결성돼 대중적 모금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한국사회가 조선학교에 접근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에게 잊혀진 60년의 역사, 700만 재외동포의 삶과 역사가 있다. 그 가운데 우뚝 솟은 탑이 있다면 그것은 조선학교이다. 통일을 비롯, 한국사회가 큰 그림을 그리며 바른 사회를 지향해 나간다면 조선학교는 반드시 우리가 이해하고 껴안고 가야 할 곳이다.

조선학교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우리의 인식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 3부에 걸쳐 <조선학교>를 기획 연재한다. 1부 <한국사회와 조선학교>, 2부 <조선학교가 걸어온 길>, 3부 <일본 안에서의 조선학교>를 8월 말까지 총 10여회에 걸쳐 <통일뉴스>와 <민중의 소리>에 공동으로 연재하고 또한 조선학교를 다닌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도 함께 전달하고자 한다. 조선학교에 초점을 맞춘 한국사회내의 첫 기획일 것이다.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모금

연재가 사실상 마무리된 뒤 황의중 공동집행위원장이 마무리 글에 해당하는 두 꼭지의 기고를 추가로 보내와 연속 게재한다. /편집자 주


<연재 순서>

1부 한국사회와 조선학교(황의중)

조선학교와의 만남은 새로운 가능성과의 만남
<연재 조선학교> 한국사회와 조선학교 1

조선학교는 인간을 지켜주는 '스위트 홈'이다
<연재 조선학교> 한국사회와 조선학교 2

조선학교는 보물 보따리
<연재 조선학교> 한국사회와 조선학교 3

조선학교는 한국사회의 구세주(?)
<연재 조선학교> 한국사회와 조선학교 4

2부 조선학교가 걸어온 길(오규상)

민족교육의 시작, 해방후 10년간의 우리학교(1945년8월∼1955년)
<연재 조선학교> 조선학교가 걸어온 길 1

총련결성이후의 우리학교(1955년5월∼1990년대말)
<연재 조선학교> 조선학교가 걸어온 길 2

최근년간의 우리학교 (2000년∼ 현재)
<연재 조선학교> 조선학교가 걸어온 길 3

3부 일본 안에서의 조선학교

재일동포와 조선학교 - 김진호
<연재 조선학교> 일본 안에서의 조선학교 1

재일조선인 삶과 조선학교 - 김미령
<연재 조선학교> 일본 안에서의 조선학교 2

총련과 조선학교 - 김형윤
<연재 조선학교> 일본 안에서의 조선학교 3

일본에 있어서의 조선학교와 브라질학교 - 타나카 히로시
<연재 조선학교> 일본 안에서의 조선학교 4

조선학교란 '기적'의 원천 - 황의중
<연재 조선학교> 일본 안에서의 조선학교 5

조선학교 연재를 마치며 - 황의중


“선생님, 이건 기적입니다.”

파티에서 만난 어느 부인회장(여성동맹위원장)이 2번째로 한 말이다. “선생님, 잘 오셨습니다. 많이 드세요”라는 인사말 다음으로. 어차피 짧은 만남이니, 꼭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알아 달라는 마음이겠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기적 같다는 마음이 담겨 있는 듯했다.

세계 어느 곳에도 조선학교 같은 학교는 없다. 이국 안에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완성된 교육체계를 지니고, 자체적으로 교과서를 만들고(교육과정을 만들고), 교사를 자체 육성 수급하며 1세가 아닌 2세,3세가 3세,4세에게 민족교육을 하는 곳은 없다. 조선학교(‘우리학교’)에 대한 재일조선인들의 애정을 이해하는 것은 재일조선인 이해의 핵심이다. 말 그대로 생명선이며 실제 기적적인 일인 것이다.

이 기적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60년간 조선학교가 존재해 온 힘은 어디에 있을까?
‘일본’이란 환경변수를 잠시 빼고, 내부 역량에 주목하면 나의 답은 3가지이다. 재일조선인의 열정, 이를 조직.체계화한 총련의 헌신, 그리고 재정적 지원과 함께 정신적 힘이 되어 준 북쪽 정부이다.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조선학교에 적합한 말일 것이다.

<생명의 물>인 교육원조비

북쪽 정부가 거액의 지원금(교육지원비)을, 전후 복구로 여유가 없던 57년부터 조선학교에 제공했다는 사실, 그리고 액수에 차이는 있으나 어려운 시기에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오늘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어느 정도 한국사회에도 알려졌다. 이를 그동안 남쪽 정부의 재일동포에 대한 정책과 대조하면 그 의미는 더욱 선명해진다.

57년 4월부터 시작된 북쪽 정부의 교육원조비 송금을 나는 조선학교 60년 교육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본다. 57년 약 2억 엔에서 점차 증가하여 75년 37억 엔으로 최고였으며 이후 하향추세로 최근엔 다시 약 2억 엔 대에 머물고 있다.

 

▲ 교육원조비 장학금이 지급된다는 소식에 환호하는 도쿄도내 조선학교 학생들, 1957년 4월. [사진 제공 - 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

일단, 이 원조비로 늘 재정난에 고투를 벌이던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에 일대 전기가 마련된다.

1958년, 학교운영비에서 교육원조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전국 평균 35%에 달하게 된다. 이 때부터 초급학교에서는 수업료가 폐지되고, 대신 부모의 생활정도에 따라 납부하는 <교육회 회비>제도가 시작된다. 교원의 급여기준과 정원규정이 제정되어 계속 미해결 과제였던 교원급여문제가 개선(8,000엔 기본)되고, 교원 양성 및 재교육사업, 교과서 출판 등의 예산이 확보된다.

원조비의 일부를 장학금으로 돌려 많은 대학생들이 혜택을 받게 되었고, 2차와 4,5차 원조비로 그간의 숙원사업인 조선대학의 부지를 구입하고 현 조선대학을 세워 초등에서 대학교육에 이르는 독자적 교육체계를 완성시킨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이런 성과들은 빙산과 같다. 빙산은 수면 아래가 묵직하다. 이 교육원조비가 재일조선인에 미친 정신적 효과가 절대적이었다. 재일조선인들은 이를 <생명의 물>이라 부르는데, 긴 세월 이민족 이국땅에서 냉대를 받으며 고립무원의 재일조선인 입장이 되어 본다면 누구나 쉽게 <생명의 물>이란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밑바닥에서 소학교조차 다닌 적이 없던 많은 조선인들에게 자식들의 교육비로 사용하라고 보낸 이 돈은 도저히 단순한 금전이 아니었다. 이 조국으로부터의 교육비 원조가 극심한 재정난에 허덕이던 조선인학교 운영에 재정적인 도움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적으로 얼마나 커다란 힘이 되었는가는 측량하기가 힘들다.

조국의 고마운 배려에 보답하는 길은 교육비의 2배, 3배의 마음으로 학교를 건설하여, 일본학교에 다니는 모든 조선의 아이들을 한명도 빠트리지 않고 학교로 데리고 오는 일이다.

“지금, 일본의 방방곡곡 동포가 살고 있는 곳이면 어디를 가도 조국에서 보낸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에 대한 이야기로, 빛나는 희망과 기쁨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이 만나든 세 사람이든 동포가 모이는 곳이면 이 화제로 꽃이 핀다.” 
- 金德龍, <조선학교의 전후사>

“어려운 때임에도 불구하고 재일조선인의 교육에 정력을 쏟아 주었다. 우리에게는 김일성 수상이 있구나. 이것이 바로 조국이구나...”
어려움 속에도 자이니치에 원조의 손길을 벋친 북조선에 신씨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교육자금원조를 배경으로, 북조선을 조국으로 하는 새로운 민족학교의 건설이 진행되어, 현재의 조선학교 골격이 형성된다. ‘뿌리는 한국, 조국은 북조선’이란 구조적 모순은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다. 
-무라구치 도시야 村口 敏也 <우리학교> (2004. 11. 創風社)

재일조선인들에게 마음속에 비로소 든든한 배경이 생긴 것이다. 단순한 ‘고향’이 아닌 ‘조국’이 생긴 것이다. ‘조국’이라는 실제 현존하는 마음의 의지처가 생긴 것이다. 이후 재일조선인들은 자발적으로 돈을 내어 학교를 새로 짓고, 아이들을 학교로 보냈고, 부모들은 스스로 야학에 나가 우리말과 역사를 배웠다. 진정한 삶의 즐거움이었다.

이는 중요한 변화이다. 이 중요성을 지적하는 글을 별로 보지 못했는데, 심적 구조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난다. 그동안의 일본에 대한 적대와 방어의 앤티(Anti)차원에서 이제는 자긍심을 바탕으로 스스로 앞으로 나아 갈 희망과 힘이 생긴 것이다. 길과 목표의 화살표 방향이 바뀐 것이다. ‘자랑스러운 조국’이 생기고, 정신적 뿌리가 생긴 것이다. 이것이 현재까지 재일조선인사회 및 조선학교를 지탱 유지시켜 온 근본적 힘의 하나임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관점이다.

이 모든 일은 물론 총련이 주도했으며, 이후 재일조선인사회에 <북조선-총련-재일조선인(조선학교)>의 구도가 명확하게 자리 잡힌다. 단순화의 오류가 있으나 교육원조비 →조국 형성 → <북조선-총련-재일조선인(조선학교)>의 구도가 정착된다.

이 심리적 조국의 중요성을 다른 측면에서 접근해 본다.

민족과 조국이란 두 바퀴

중국의 화교를 생각해 보자.
그들은 자신들의 말과 뿌리를 지키며 어느 사회에서나 잘 적응하고 반목분열 없이 상부상조의 공동체를 만들고 또 학교를 만들어 자녀들을 교육한다. 그것도 안정적으로.
그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나? 작은 부분들을 다 버리고 남는 쉬운 답은 중화민족에 대한 자긍심이고 또 중국의 힘이다.

그것이 우리에겐 약하다. 민족으로 유인하는 힘이 약하다. 굳이 민족을 찾고 지킬 동기가 약하다. 단지 민족은 주어진 의무와 같은 존재일 뿐. 민족교육의 바탕 자체가 빈약하다. 미국, 사할린, 러시아, 중국(조건과 환경이 다름) 그 어느 곳에서도 세대변화를 통해 민족교육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근본 원인일 것이다.

죄송한 마음으로 일본 내 같은 재일동포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문제가 있지만 크게 ‘민단계’와 ‘총련계’로 분류할 때, 민단은 남쪽을 지지하고 총련은 북쪽을 지지해 왔다. 남쪽 정부는 민단을 지원하고, 북쪽 정부는 총련을 지원했다. 민단계 동포들은 대부분 한국국적을 지니고 있고, 총련계 동포들은 북조선의 해외공민이라 여겨왔다.

즉, 민단계와 총련계는 주어진 ‘민족’은 같고, 마음속 ‘조국’이 다르다.
그런데 한쪽에는 민족교육이 미미하고, 한쪽에는 조선학교가 굳건히 존재한다.
단순화하면 ‘조국’이 결정변수이다. ‘조국’의 존재(마음 속) 유무, 또는 존재 방식(역할, 관계)이 이를 결정했다고 볼 수 있다.

한쪽에서 조국은 부정적 이미지로, 한쪽에서 조국은 긍정적 이미지로 작용했다. 이것이 한쪽에서 ‘민족의식’을 약화시키고, 한쪽에서는 강화시켜 한쪽은 민족교육이 약화되었고, 한쪽은 발전하였다. 그래서 한쪽은 점차 주류사회(일본)로 동화 흡수되어 갔고, 한쪽은 독자적 생활공동체를 형성, 유지할 수 있었다.

일본에 굴하지 않고 떳떳하게 민족성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와 이를 받쳐주고 지켜주는 조국이 있다는 긍지가 재일조선인들의 의식세계를 지배하고, 재일조선인사회를 형성유지하고 조선학교를 이끌어 온 힘이다. 그리고 이 조국에 대한 긍지가 민족성을 계속 강화시켜 조선학교란 기적을 가능케 했다.

앞에 나온 “아, 우리에게도 조국이 있었구나!” ‘자랑스런 조국’에 대한 일체감과 지향의식, 이 부분에 대한 이해 없이,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에 대한 이해는 반쪽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 핵심을 결한 것이기에 이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접근은 근본적으로 오류를 지닐 수밖에 없으며, 향후 조선학교 방향을 모색할 때 절대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글이 길어져 총련의 중요성이 생략되었다. 민족교육의 힘은 바로 동포사회의 조직역량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흔히들 총련의 힘이 조선학교에 있다고들 하지만, 역으로 조선학교가 지닌 힘은 바로 총련의 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같은 인식은 동시에 고민을 깊게 한다. ‘통일조국’은 여기서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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