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10시, 서울 도곡동 국가정보원 내 국가정보관 3층에서 'KAL858사건' 조사과정과 관련 종합보고서 발간에 즈음한 3년간 활동결과에 대한 설명회가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김현희씨 면담 성사를 위해) 국정원 최고위층까지 나서서 설득했다. 과거와 같은 불법적인 것은 빼고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KAL858사건' 조사과정과 관련, 26일 오전 10시, 서울 도곡동 국가정보원 내 국가정보관 3층에서 개최한 종합보고서 발간에 즈음한 3년간 활동결과에 대한 설명회에서 '국가정보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국정원발전위)' 안병욱 위원장은 이같이 밝혔다.

지난 중간발표에 대한 KAL858 가족회와 시민대책위 등의 거듭된 비판을 의식, "일부 저희 조사에 대해 불만이 있거나 거부하는 분들에게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아 김현희 씨를 면담하고 싶었다"는 위원회 입장을 국가정보원 측이 수용해 적극적으로 나섰으나 결국 면담이 무산됐다는 것이다.

▲ 이창호 위원.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무산 이유'와 관련해서는 당사자의 거부를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이창호 위원은 "김현희 씨에 10여 차례 면담을 요청했으나 결과적으로 무산됐다"면서 "위원회에는 면담을 강제할 권한이 전혀 없었고 지금 현재 저희 판단으로는 (김씨가 면담을) 거부한 이유가 이 사건은 자기들로서는 확실한 것인데 왜 국정원에서 다시 조사하느냐는 반발심이 가장 큰 동기였다고 보여진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반면, 박용일 위원은 "김현희 면담도 국정원 측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처럼 보이는데 결과가 안나오니 우리가 나서겠다고 했다. 그런데 (국가정보원에서) 인권보장 측면에서 김씨의 거주지 밝힐 수 없다 해서 날카롭게 대립했다"고 말해 국가정보원의 비협조도 한 몫 했음을 시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병욱 위원장은 "면담 무산은 유감이지만 김씨 면담을 못했기에 저희 조사가 부실하다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면담 못했기에 조사를 철저히 하고 만전을 기했다. 조사 과정에서 김현희에 대해 얻어낼 수 있는 정보는 다 얻어냈다"며 보고서 발간 직전, 최후의 순간까지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KAL동체 발견 해프닝'에 대해, 안병욱 위원장은 "3년간 가장 가슴 아픈 점이 동체관련 보고였다"면서 "의욕이 넘치다보니 실수 했는데 위원회를 대표해서 다시 한 번 사과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사건 조사를 책임졌던 이창호 위원은 "개인적으로 KAL기 동체 찾으려 미얀마에 두번 나갔다. 두번째 마지막 날에 기절했다. 정말 있으리라고 생각해 갔는데 없어서 피로감으로"라고 그간의 마음고생을 전함과 아울러 "개인적으로 KAL기는 보고서에 나온 지점에 떨어진 것으로 생각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안병욱 위원장도 "이창호 위원.이 (미얀마에서) 돌아와서 살아 돌아와 죄송하다고 말했다. (탐사) 배에서 뛰어내리고픈 충동을 억눌렀다고 했다"고 거들고 나섰다.

'김현희 씨의 미국망명설'과 관련, 안강복 국정원 기조실장은 "미국에 망명했다는 정보는 금시초문"이라며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위원들, 'DJ납치'관련 일본 정부의 '이중적 태도' 비판

▲ 안병욱 위원장은 'DJ납치사건' 관련 일본정부의 태도에 비판적이었다.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이날 2시간 가까이 계속된 설명회에서 주된 화제는 '김대중 납치사건'이었다. 특히 '외교문제'를 거론하며 한국 정부의 사과를 요구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는 이구동성으로 '기만적'이라고 비판했다.

안병욱 위원장은 "일본은 한국정부가 했다는 것 한국 정부보다 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한국 정부가 '한국정부가 개입되지 않았다'고 부인하는 것을 빌미로 (몰랐다는 듯) 발뺌하는 것은 또 한번 일본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뒤늦게 조사하겠다며 "외교적 공세로서 한국정부에 자료요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쏘아부쳤다.

당시 한국정부가 '한국 기관원이 개입되지 않았다'고 발표한 것을 핑게로 '개입 사실이 밝혀지면 조사한다'고 타협한 것과 관련해서는 "서로 한.일 정부가 정치적 결착을 통해 (DJ납치사건을) 묻어두기로 하면서 일본 정부는 나름대로 논리가 필요했을 것"이라며 "당시 김종필의 이 표현에 대해 다나카가 '의례적인 표현'이라고 분명히 말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일본 정부가 이제 와서 '전제가 무너졌으므로 조사한다'고 요란떠는 데 대해 "사건을 덮기 위해서 만든 문서를 가지고 지금 와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흔쾌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아울러 일본 기자들이 거론한 '국제법적 문제'에 대해, 이창호 위원은 "당시 한-일 정부의 합의라는 게 공식적인 합의가 아니다. 일종의 야합이다. 거기 국제법이 거론될 게 뭐 있나. 문제 될 게 아무 것도 없다"고 일축했다.

이 사건 조사과정에서 발생한 새로운 사실도 언급됐다. 당시 일본 현지 공작책임자였던 윤 모 씨, 함께 납치공작에 참여했던 김동운 주일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이 개인적으로 사과를 표명하는 서신을 작성, 국정원발전위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안병욱 위원장은 "과거 직원으로서 지시를 받아서 한 행동이지만 결과적으로 DJ에게 엄청난 위해 가한 데 대해 유감으로 생각하고 그 점에 대해 사과한다"는 내용이라고 설명한 뒤, 현재 동교동 측이 조사내용에 불만을 표하는 상황이라 서신을 전달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날 설명회 자리에는 안병욱 위원장을 비롯해, 곽한왕, 문장식, 박용일, 손호철, 이창호, 한홍구 위원과 안강복 국정원 기조실장이 참석했다.

▲설명회를 마친 위원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이날 설명회에서 3년여 조사활동을 끝낸 민간위원들은 시원섭섭해 했다.

무거운 짐을 벗은 탓인지 그간 아꼈던 속내를 거침없이 토로하기도 했다. 언론보도에 대한 불만, 일본정부에 대한 직설적 비판, 심지어 '동교동'에 대한 섭섭함도 감추지 않았다. 

민간위원들과는 달리 안강복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은 시종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 '불만스런 언론보도'

▲안병욱 위원장은 언론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설명회에 참석한 취재진들의 모습.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안병욱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처음 조사했던 7개 사건들은 6개 분야 설명하기 위한 구체적인 사례들로 미리 조사해 놓은 것"이라며 "그런데, 언론의 관심은 7개 사건에 집중 돼 있다"고 우회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예컨대 학원분야의 경우, "보고서 자료를 보면 80년대 대학 다닌 분들은 다 이해할 수 있겠지만 학원 내 정보원 프락치망이 600여개 있었다는 것도 과감하게 실었다. 그런 것은 국정원측으로서는 뼈아픈 고백이다. 위원회로서는 국정원측의 (전향적) 자세를 그런 식으로 내보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원회 내에서 항상 소수파였다"는 손호철 위원도 이 조사활동이 "민간인이 정보기관에 들어가 조사활동을 벌인 유례없는 일"이었음을 강조하며, "평가의 작업은 역사적 의미 한계에 맞춰졌는데 언론의 관심이 특정 사건, (우선 조사대상) 7개 사건에만 맞춰진 것 같다"면서 "큰 그림들이 묻힌 것이 아쉽다"고 거들었다.

곽한왕 위원은 "언론에 실망스러운 것은 저희가 3년 동안 고생한 것은 DJ하고 KAL 때문 만은 아니다"라고 보다 직설적으로 불만을 표하며 "우리 사회에서 가장 탄압 받았던 노동자 등 서민들 관련 조사에 대해 관심 있게 보도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 '못마땅한 일본 정부'

▲안병욱 위원장(왼쪽 두번째)이 설명회 도중  안강복 국정원 기조실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이른바 'DJ납치' 관련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해, 역사학자인 안병욱 위원장은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일본 정부의 비협조적 태도가 도마에 올랐다.

파리에서의 '김형욱 살해사건'이나 백주 대낮에 많은 사람들을 납치한 '동베를린간첩단사건'의 경우, 프랑스.독일 정부가 진실 규명이라는 위원회의 활동취지를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했으나 "일본의 태도는 저희들이 섭섭할 정도로 차이가 있었다"고 안 위원장은 밝혔다.

이런 앙금 때문인지 '일본 정부가 사건 조사를 위한 자료협조 요청을 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대해 "일본 정부가 재조사하는데 한국 자료가 필요치 않다고 본다"고 일축하기도 했다.

그는 또 사건에 대해 "한국정부 보다 잘 알고 있었던 일본 정부"가 우리 측에 자료요청을 하는 것 자체가 "외교적 공세"라며 극도로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

일본 정부가 비협조를 넘어 조사 자체를 가로막고 나선 데 대한 불만도 표출됐다. 안병욱 위원장은 과거 일본 당국자가 "위원회가 조사 하면 일본 정부도 조사할 수 밖에 없다"며 "마음 편하게 조사할 수 없게 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조사를 하지 말라'는 일본 정부의 의사 표시가 몇 단계 거쳐서 위원회에 전달됐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사건 무마과정에서, '조중훈 당시 대한항공 사장이 다나카에게 정치자금으로 4억원을 건냈다'고 다나카 전 수상의 비서가 폭로한 것과 관련, 문장식 위원은 이후락 전 중정부장을 찾았으나 건강상태가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여서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안병욱 위원장은 "(당시) 청와대 기록을 조사했더니, 조중훈 씨가 공교롭게 그 때 일본을 방문했다.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비서가 '돈이 건네지는 것 직접 봤다' 했기 때문에 저희로서는 부인할 수도 확인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 '동교동에 섭섭'

보고서에서 '어쩔 수 없이 명령을 실행할 수 밖에 없는 분들이 처음 지시와는 달리 DJ를 납치해서 배에 실어 보냈다'고 표현한 것을 두고 동교동 측이 "결론이 우유부단하다"고 반발한 것과 관련, 안 위원장은 "우유부단하게 한 적 없다. 할만큼 했다"고 반발했다.

안 위원장은 "애초 공작목표에 대해서 보고서에 분명히 써 놓았다"면서 "(목표는) 'DJ 제거(해결)다. 암살, 살해 다 포함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그런 것을 다 포함해서 결론 내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한홍구 위원은 한 발 더 나갔다. "(DJ가) 대통령 지내시고 국정원을 지휘하는 조건에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조사할 수 있었는데 왜 안하고 지나간 것을 우리가 해야 하는가 하는 측면이 있어 (처음에는) 조사에 반대했다"면서 "그 시절에 제대로 조사했다면 저희 위원회 결론과 같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 안강복 기조실장, '활짝'

▲ 민간위원들의 후한 평가에 안강복 국정원 기조실장은 느긋한 표정이었다. [사진-통일뉴스 김주영 기자]
민간위원들은 '기대'와 달리 국가정보원의 협조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었다. 곽한왕 위원은 "국가정보원은 과거 잘못에 대해 상당한 고백과 반성의 모습을 보였"으나 "개별 가해 당사자들의 고백은 농도가 좀 옅었다"고 총평을 내리고 "자료협조도 처음은 D학점 정도였으나 마지막에 가서 B학점 정도가 됐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한홍구 위원도 인력과 시간이라는 물리적 한계 때문에 보지 못한 자료는 있어도 "원칙에 반해 보지 못한 자료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손호철 위원도 "국정원이 정보능력이 뛰어나야 하는 데 이것 밖에 안되나. 우리가 속는 것 아닌가 할 정도로 정보가 거의 안 남아 있었다"며 비협조가 문제는 아니었다는 데 동의했다.

다만, 전.현직 직원들의 경우, 현직은 증언에 적극적이었으나 전직은 대체로 비협조적이었다고 위원들은 입을 모았다.

칭찬이 이어지자 안강복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의 얼굴이 활짝 폈다. 그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국정원이 최대 수혜자"라며 "(국정원발전위 활동으로, 국정원이) 과거 짐을 털어버리고 짐을 가볍게 해서 앞으로 나아갈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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