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순위 놓고 온도차..관련 외교일정 미확정
개념 정립도 안돼.."따져봐야 할 게 적지않다"
 

'2007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3자 혹은 4자 종전선언을 위한 정상회담'을 둘러싼 한국과 미국의 시각차가 확연해 지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양측의 시각차는 정부 당국자들 뿐 아니라 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는데다 국내적으로도 청와대와 외교부 사이에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일단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 정부 당국의 입장은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가능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지난해 베트남 하노이에서 뿐 아니라 호주 시드니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종전선언'이나 '평화조약' 등 구체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적극적인 협상의지를 과시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북한의 비핵화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진전된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따라서 한국 일각에서 남북정상회담 이후 조성된 열기를 몰아 '종전선언(또는 평화협정) 협상의 개시를 선언하기 위한 3자 혹은 4자 정상회담'을 추진하는데 대해 미국 조야의 분위기는 매우 소극적이라는게 외교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오히려 비핵화 2단계 로드맵을 담은 '10.3 합의'의 원만한 이행을 위해 6자회담의 협상동력을 최대한 끌어모아 연말까지 핵시설 불능화 작업을 완결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미국측은 개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소식통은 14일 "남북정상회담의 열기를 모아 노무현 대통령 임기 내에 '외교적 이벤트'를 연출하기를 원하는 한국 정부 일각의 뜻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미국이 그동안 견지해온 입장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내 상황을 종합해볼 때 중동 사태는 물론이고 국내 정국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이 연말 혹은 내년초에 종전선언을 하기 위해 한반도를 방문하는 일이 과연 쉽겠는가"라며 "일에는 순서가 있는 것이며 그 순서를 무시할 때 부작용이 일 가능성도 농후하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이제 겨우 핵시설 불능화 작업에 착수하려는 시점인데 몇 단계를 뛰어넘어 핵폐기 과정에서나 생각할 수 있는 평화협정이니 종전선언 등을 언급하는 것에 미국이 상당히 불편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 당국 뿐 아니라 미국내 한반도 문제를 연구하는 상당수의 전문가들도 한국 정부 일각에서 '4자 정상회담의 개최'를 조기에 성사시키려 하는데 대해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송민순 외교부 장관이 13일 "지금 우리는 비핵화의 빠른 진전에 모든 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데 일부에서는 그 다음에 올 일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미국의 흐름과 맥이 닿아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특히 송 장관은 종전선언과 관련, "지금 고려할 수 있는 것은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한 협상을 개시하는 것"이라며 "평화체제 협상(종전협상)을 개시하는 것을 두고 어떤 선언이라 정의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종전선언 자체는 협상 과정을 거쳐 끝 부분에 나오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3자 혹은 4자 정상들이 한반도에 모여 종전선언을 하자면 적어도 빈틈없는 협상을 통해 내용성있는 결과를 놓고 마무리하는게 정상적인 외교수순이라는 점을 역설한 것으로 풀이됐다.

이에 따라 한때 연내 혹은 내년초에라도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돌았던 3자 혹은 4자 정상회담의 개최는 적어도 내년초까지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북핵 현안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현재 평화체제 협상 문제 등을 다룰 6자 외교장관회담 개최일자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며 "적어도 이달 중에는 어렵고 다음달 중 열리게 되더라도 6개국 외교장관의 일정을 조율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6자 외교장관회담은 물론 이를 계기로 열릴 장관급 '4자(남북한과 미국, 중국)포럼' 역시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11월 중순께 6자 외교장관회담이 열리면 곧바로 연말로 접어들고 한국의 대선 등의 일정을 감안할 때 사실상 의미있는 외교적 이벤트를 하기에는 여건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게 이 소식통의 전언이다.

이에 따라 외교소식통들은 우선 비핵화 2단계 실천에 주력하면서 한국과 미국의 책임있는 당국자들이 '종전선언' 또는 '평화협정' 등 복잡하게 언급되고 있는 평화체제와 관련된 현안의 개념부터 확실히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단 개념이 분명해져야 이를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 지가 확실해지고 그래야 예측 가능한 외교적 시간표가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최근 '평화조약'이나 '평화협정' 등 여러 표현이 동원되고 있으나 '조약'과 '협약'에 대한 개념적, 법적 정의를 따지고 들어갈 경우 의미 차이를 낳을 수 있다"면서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하는지, 국제법적으로 어떤 효력이 있는 지 등 따져야 할 것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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