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남북정상회담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시종 차분한 표정을 보였다. 사진은 4일 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포즈를 취한 모습. [자료사진 - 공동취재단]
“기자가 아니라 작가인 것 같다.”

지난 4일 남북 정상이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발표한 뒤 환송오찬장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측 언론이 자신의 건강에 대해 구구한 억측을 보도한데 대해 언급한 촌철살인의 한마디이다.

북한 관련 기사라면 객관적 검증도 없이 우선 부정적 기사를 쏟아놓고 나중엔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 작태에 대한 뼈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수구언론들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보도는 유의미한 객관 사실에 대한 보도나 해설보다는 사소한 사안들을 객관적 검증조차 제대로 거치지 않고 부풀리기 식으로 터트리고 보는 구태가 여전하다.

그러나 정작 이번 정상회담에서 기성 언론들이 놓치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관한 유의미한 사안들은 따로 있다.

7년 만에 남측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김 위원장은 더 나이들어 보이고 좀더 차분해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곧바로 건강이상설 등을 제기한 것은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다.

말을 아끼고 실무적 업무스타일로

▲ 2일 4.25문화회관 앞에서 진행된 환영식에서 김 위원장은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과 실무적 태도로 일관했다. [자료사진 - 공동취재단]
그렇다면 7년 만에 등장한 김 위원장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기자는 그것을 업무스타일과 통치스타일에서의 변화라고 보았다.

먼저 김 위원장은 2000년 1차 정상회담 당시보다 남측 언론에 많은 육성을 들려주지 않았다.

공동취재단의 전언에 따르면 회담과 서명식 등에 기자단의 접근은 최소한으로 통제됐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등장하는 환담록이나 발언록의 분량이 극히 작았다.

김 위원장은 4.25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환영식장에서도 딱 한마디 ‘반갑습네다’ 외에는 어떤 말도 하지 않는 등 언론이 취재중인 상황에서 말을 가급적 아꼈다.

1차 정상회담 당시와 직후 이루어진 언론사사장단 방북 당시 거침없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던 때와 사뭇 다른 모습니다.

7년전 김 위원장의 일거수 일투족은 화제를 모았고 특히 좌중을 이끄는 수다스러울 만큼의 많은 발언들이 전해졌다.

이번 회담에서는 인사말 수준 외에는 3일 오후 두 번째 정상회담 앞부분에 잠깐 환송을 나간 사유와 체류일정 연장을 제안한 내용 정도를 직접 육성으로 접할 수 있었다.

다른 측면에서 봤을 때 김 위원장은 이번 회담을 상당히 실무적 태도로 임한 것으로 보인다.

7년 전 당시에는 역사적인 상봉과 회담을 감격적인 분위기에서 맞았다면 이번 회담에서는 시종 차분하게 맞았다.

특히 회담장에서도 1차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통일방안을 놓고 격론을 벌이기도 했던 상황과는 달리 김 위원장 스스로 의제들이 정리된 ‘말씀 카드’들을 준비해와 이를 보면서 실무적 태도로 토론에 임했다.

물론 노 대통령과의 오전 회담 결과가 신통치 않아 오후 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일정을 하루 연기해가며 차분히 논의해보려던 구상이었지만 이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같은 실무적 분위기가 더욱 가중되었으리라는 추측도 보태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헤어지는 장면도 그저 다시 볼 이웃을 보내는 방식의 악수 만 나누었다. 오히려 노 대통령이 두손을 쥐고 마지막이냐고 물었을 정도이다.

카리스마적 리더십에서 민주적 리더십으로

▲ 김 위원장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협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위원장 앞에는 회담 의제들을 정리한 것으로 보이는 '말씀 카드'가 놓여있다. [자료사진 - 공동취재단]
다른 하나의 차이점은 참모진과의 관계에서 경직된 모습보다 협의하는 모습, 즉 카리스마적 리더십에서 민주적 리더십으로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1차 회담 당시 김 위원장이 지금은 사망한 김용순 당시 통일전선부장에게 질문을 던지면 김 부장은 기립하여 부동자세를 취하며 군대식으로 답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김양건 통전부장과 나란히 앉아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김 위원장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며 의전을 담당해 눈길을 끌었던 전희정(77) 국방위원회 외사국장을 불러 지시하거나 보좌받는 일상적 모습 역시 자연스러워 보였다.

더구나 노 대통령과의 회담과정에서 참모진과 늘 긴밀하게 협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회담 도중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불러 6자회담 소식을 직접 보고하게 했고, 아리랑 참관 가능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관계자를 불러 날씨를 문의하기도 했다. 또한 오찬 시간에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와 관련해 군부 관계자들의 의견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 3일 오후 정상회담을 마치고 나오는 사진 맨 뒷편에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모습도 보인다. [자료사진 - 공동취재단]
이같은 김 위원장의 업무스타일은 7년전 좌중을 압도하며 중요한 문제에 대해 단독으로 통크게 결단하던 모습과는 상당히 달라진 것으로 평가된다. 민주적 리더십이 돋보이는 장면들이다.

김 위원장과 관련한 보도에 대해서는 북측이 매우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비추어 보아 이번 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보여준 절제되고 실무적인 업무스타일, 협의적이고 민주적인 통치스타일은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임에 틀림없다.

우리 언론이 주목해야 할 것은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아니라 김 위원장의 업무스타일과 통치스타일의 변화이고 그 변화의 이면에서 북측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이다.

1차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언변과 카리스마가 탁월한 통큰 지도자로서 남측에 각인되길 바랐다면 2차 정상회담에서는 절제력과 실무력을 갖춘 민주적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길 바랐던 것은 아닐까.

정창현.정성장, “새로운 것 없다”

▲ 정창현 교수는 북측이 국가수반인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노 대통령의 카운터 파트로 내세우고 김 위원장의 등장은 최소화 했다고 해석했다. [자료사진 - 공동취재단]
‘민족21’ 편집주간인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이번 정상회담이 두 번째이고 국가수반 대 국가수반으로 김영남 상임위원장 중심으로 행사가 준비돼 김정일 위원장의 등장은 최소화 한 것 같다”며 “그 외에는 공식행사와 손님과의 대화할 때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줬고 참모진과의 협의도 일반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고 평가했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의 업무스타일 변화에 대해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김정일 총비서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만 데리고 협상에 참여한 것으로 보아 특별히 새로운 것이 없다”며 “환송오찬에서 평상시 남측 사람들 앞에서 목에 힘을 주던 인사들도 직원 수준으로 뛰어다녔다는 소식을 들어보면 김 총비서의 위상이 얼마나 높은 것인지 알 수 있다”고 평했다.

정성장 실장은 “이번에 관심을 가질만한 것은 북측이 통일문제에 있어서도 상당히 실용적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라며 “일각에서 예상한 연방제 기구에 관한 논의보다는 내각을 경제사령부로 인식하는 북측이 총리회담을 먼저 제안하고 부총리급 경제협력공동위원회에 동의한 데 주목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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