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1시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지난 2일부터 2박 3일간 열린 제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담은 역사적인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 노무현, 김정일 양 정상에 의해 서명, 발표됐다.

8개항의 합의 내용을 담은 ‘2007 남북정상선언’은 ‘남북관계발전과 한반도 평화, 민족공동의 번영과 통일을 실현하는데 따른 제반 문제들’이 폭넓고도 구체적으로 포함돼 향후 남북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릴 ‘제 2의 6.15공동선언’으로 자리매김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해설자료를 통해 “‘2007 남북정상선언’은 6.15 공동선언 이후 7년간의 남북관계 성과를 토대로 그간의 장애요인을 극복하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한 차원 높은 미래 비전을 포괄적으로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선언에 담긴 내용은 대체로 남측이 그간 주장해온 평화 번영정책을 북측이 수용하는 모양새에 머물러 실무적 수준을 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남북관계 현안 8개항에 총망라

먼저 선언의 합의내용 8개항의 구성을 살펴보면, 1,2항은 남북관계의 바탕이 되는 기본 정신과 원칙을 명시했으며, 3,4항은 군사적 적대관계와 정전체제 종식 문제를, 5항은 경제협력, 6항은 사회문화 분야 교류협력을, 7항은 인도주의 협력사업을, 8항은 국제관계를 다뤘으며, 맨 마지막으로 남북총리회담 개최와 정상회담의 수시 개최를 명기했다. 사실상 남북관계의 거의 모든 현안을 포괄하고 있는 셈이다. ['2007 남북정상선언' 전문 보기]

6.15공동선언 정신을 재확인하고 상호존중과 신뢰를 기본원칙으로 담은 1,2항 중 눈에 띠는 대목은 역시 6.15기념일 제정 추진과 ‘법률적.제도적 장치 정비’, ‘의회 등 각분야 대화와 접촉’이다.

모두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조치들이며, 특히 ‘법률적.제도적 장치 정비’는 남북관계의 발전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내포하고 있어 주목된다. 남측의 국가보안법과 북측의 조선로동당 규약은 개폐되어야 할 법률적 장벽으로 공론화된지 오래이다.

군사적 적대관계와 정전체제 종식을 담은 3,4항은 긴장완화와 불가침 재확인,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할 것을 명기하고 있으며, 11월 국방장관 회담 개최와 3자 또는 4자 정상 종전선언 추진, ‘9.19공동성명과 2.13합의’ 이행 노력 등을 담았다.

특히 11월 남북국방장관 회담 평양 개최와 3자 혹은 4자 정상 종전선언 추진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민족 내부와 외부에서의 핵심적 조치로 평가된다. 또한 북측이 주장해온 남.북.미 3자와 남측이 염두에 두고 있는 남.북.미.중 4자가 참여하는 종전선언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었다.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온 남북경협과 관련된 5항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개성공단 확대,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 건설, 개성-신의주 철도.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등 구체적 사안들이 풍성하게 포함됐다.

특히 그간 차관급이 위원장을 맡았던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부총리급의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로 격상시켜 남북경협 사업을 원활히 추진해나가기로 합의했다.

사회문화 교류 협력을 담은 6항은 백두산 관광 실시와 백두산-서울 직항로 개설, 2008북경올림픽대회 남북응원단 경의선 열차 이용 등을 담았다.

인도주의문제를 다룬 7항은 이산가족 문제에 중점을 두고 금강산면회소에 남북 대표 상주, 이산가족 상시 상봉 등을 명기했다. 그러나 그간 남측이 추진해온 이른바 ‘납북자.국군포로’문제는 명시되지 않았다.

국제 무대에서의 남북간 협력을 담은 8항에 이어 11월 남북총리급회담의 서울 개최, 정상회담 수시 개최라는 중량감있는 약속으로 마무리됐다.

각급 남북회담 격상, 체계화

이번 ‘2007 남북정상선언’에는 예상과는 달리 통일방안이나 통일기구에 대한 내용은 담기지 않았고 대신 정상회담 수시 개최와 총리급회담 11월 서울 개최, 부총리급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격상, 국방장관회담 11월 평양 개최 등 각급 회담의 개최와 체계화가 명기되었다.

정부는 해설자료를 통해 “통일은 통일방안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 신뢰를 증진시키면서 평화와 공동번영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통일문제는 6.15 남북공동선언을 통해 잘 정리되어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2007 남북정상선언' 해설자료 전문 보기]

또한 "그 동안 장관급으로 운영되어 온 남북대화 총괄 창구를 총리급으로 격상시키고 산하에 부총리급 경제협력공동위를 비롯 분야별로 장관급 또는 차관급 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상시적인 남북간 협의 틀을 만들기로 합의"했다며 "남북연합을 지향하는 남북관계 제도화의 길을 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여기에 더해 선언 2항에 명기된 '의회 등 각 분야의 대화와 접촉'을 추가하면 남북간 다양한 대화 통로가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총리급회담 개최 합의와 관련 "북측 스스로 현 장관급회담이 정세변화에 민감하다고 지적하면서 총리급회담을 제안함으로써 남북관계의 안정적 추진의지를 표명한 것은 주목할 대목"이라고 짚었다.

또한 정상회담 수시 개최 합의에 대해 “남북관계가 국가간 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정례화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다는 북측입장을 받아들여 수시로 만나자는 용어로 합의했지만 이는 사실상 정상회담의 정례화에 합의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밝혔다.

총리급회담을 비롯해 남북간 공식 회담의 격을 높이고 체계를 갖춘 것이 이번 선언의 뼈대를 이루고 있으며, 2차 정상회담이 성과적으로 마무리됨으로써 남측 차기 정부와의 정상회담도 부담없이 추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구체적 합의사항 다수 포함, 일부 사안은 추상적

또한 이번 ‘2007 남북정상선언’에는 구체성을 띤 합의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특히 경협 분야에서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문산-봉동간 철도화물수송 개시,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등 손에 잡히는 합의들이 많이 포함됐으며, 사회문화 교류에서도 백두산 관광 실시와 서울-백두산 직항로 개설, 2008 북경 올림픽경기대회에 남북응원단이 경의선 열차 이용 참가 등도 돋보인다.

금강산면회소가 완공되면 남북 대표를 상주시키고 이산가족 상봉을 상시적으로 진행키로 한 것도 인도주의적 조치로서 상당한 진전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다방면에 걸친 구체적인 합의들이 있는 반면 일부 사안들은 다소 추상적이거나 협의가 좀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사업’은 군사적 보장조치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개최키로 했지만 널리 알려진대로 서해상 경계선 문제 등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나 '경제특구 개발', ‘한강하구 공동이용’ 역시 유효한 개념이지만 계획이 구체화돼 실행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과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관측된다.

개성공단 발전을 위한 여러 합의사항들도 지금까지의 경과를 보면 합의대로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 아직까지는 미지수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첫 정상회담을 가진 뒤 가진 오찬에서 “우리는 개성공단을 아주 만족하는 성공적인 사업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북측이 속도의 문제에 대해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획기적 통일방안.통일기구 합의 없어, 다소 실무적 수준의 합의

남북 정상간에 다루어야 할 현안들을 거의 빠짐없이 다룬 이번 ‘2007 남북정상선언’은 격상되고 체계화된 각급 당국자 회담에서 하나하나 책임감 있게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언은 남북관계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릴 획기적 통일방안의 제시나 통일기구 설치 문제는 각급회담 격상.체계화 수준에 머물러 다소 실무적 수준의 합의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선언은 대체로 남측이 그간 제기하고 요구해온 '평화와 번영'(경협) 의제를 북측이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으로 평가된다. 남측은 6.15공동선언 발표 기념일 제정처럼 정부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조차도 분명한 합의를 미뤘다.

3일 오후 김 국방위원장의 일정 연장 제안을 노 대통령이 즉석에서 받아들였다면 선언에 담긴 내용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하지만 역사는 가정을 허용하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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