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남북정상회담 이틀째인 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체류 일정을 하루 더 연장할 것을 제안했다가 1시간 반 만에 철회함에 따라 그 배경과 전말을 두고 갖가지 추측이 나돌고 있다.

회담기간 내 최대의 돌발변수로 평가될 '일정 연장 제안' 배경의 실마리를 풀기 위한 단서로는 3일 오전 회담의 내용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오찬사와 2007 남북정상회담에서의 최대 난제로 꼽히는 '통일의제'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의 '연장 제안' 발언이 있다.

노 대통령 오찬사, '상호불신'이 문제?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남측 수행단 및 기자단과 함께 한 옥류관 오찬에서 20분 간에 걸쳐 인사말을 하며 "한가지 쉽지 않은 벽을 느끼기도 했다"며, “예를 들면 개혁과 개방이라는 용어에 대한 불신감과 거부감을 어제 김영남 상임위원장과의 면담, 오늘 김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느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언급한 이 대목은 '개성공단'과 관련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개성공단의 성과를 얘기할 때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는 용의주도한 배려"와 "북측의 입장과 북측이 생각하는 방향도 존중해서 불신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노력해 나갈 것"을 주문했다.

오찬사를 통해 노 대통령이 "모든 부분에 인식을 같이하진 못했지만 (김 국방위원장이) 평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했고 "화해와 통일에 대해서는 논쟁이 따로 없었다"고 말했으나, 개성공단에 대해서 이같이 밝힌 것은 '공동번영'의 의제가 회담에서 난항에 부딪쳤던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정창현 한국현대사연구소 소장은 "오전 회담 후 표정이 밝지 않았던 것"과 오찬사를 근거로, "근본적인 문제, 상호체제를 존중하는 문제에 대해서 남측이 소홀한 것 아니냐는 생각에서 이런 문제들을 좀더 심도깊게 정상간에 논의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며 "그래서 연기를 제안했다가, 과정에서 의견차이를 좁힌 것일 수 있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오전 회담서 평화, 통일의제에서는 모종의 합의 내지는 공감대를 이뤘으나 '개성공단'이 발단이 된 '상호 체제의 불신'에 대한 '오해'가 있었던 것으로 풀이하기엔 회담에서 '평화', '통일'의제가 가지는 무게감이 크다.

설령 '오해'가 있었고, 그것이 풀렸다 하더라도, '평화'와 '통일'문제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녹록치 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 시각이었다.

일각에서는 만일 오전 첫 회담이 잘 풀렸다면 김 위원장이 일정을 바꿔 오찬까지 대화를 이어가는 파격을 연출했을 것이라는 관전평도 나름의 설득력을 갖춰 나오고 있다.

일정 연장해서라도 '통일의제' 최대접점 찾으려 했을 수도

노 대통령은 만찬에서 재차 '경제공동체'를 강조했다. 만찬사 앞부분의 회담에 대한 소회를 언급한 부분을 제외한 핵심적 내용은 민족 경제공동체를 형성하자는 것이다.

"경제협력이 평화를 다지고 평화에 대한 확신이 다시 경제협력을 가속화하는 선순환적인 발전이 이뤄지는 것"이라는 대목은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무엇을 이야기했을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천호선 대변인은 "우리가 준비해온 의제들은 거의 모두 개진했다"며 한반도 평화정착, 경제협력, 화해와 협력 등 각 분야에서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조국통일’ 의제가 ‘화해와 협력’으로 슬며시 대치된 점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남과 북 양측의 의제'들이 아니라 '우리가 준비해온 의제들'이 개진되었다는 설명과 통일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은 북측이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통일의제'가 다뤄지지 않았거나, 다뤄지더라도 남측이 제기한 '화해와 협력' 수준에 머물러 북측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통일의제'는 남북간 간극이 가장 큰 현안으로 꼽힌다. 6.15 공동선언의 다섯 가지 항 중 가장 발전이 더딘 합의가 2항으로 평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6.15 공동선언 탄생의 산파역을 했던 임동원 특보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보좌진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 부분은 노 대통령의 발언과 더불어 양 정상간 '통일의제'에 대한 교감이나 공감대가 거의 전무했을 것이란 관측을 낳고 있다.

따라서 평화와 경협에 무게를 두고 '실리적 접근'을 하는 노 대통령과 민족중시의 입장에서 통일을 앞당겨야 한다는 김 위원장간 인식의 차를 좁히기 위한 카드로 '회담 기간 연장'이 나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회담 기간을 연장해서라도 '통일의제'에서의 최대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북측의 절박성은 대선을 코 앞에 둔 남측 정세와 북미관계의 순항에도 불구하고 뒤쳐진 남북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평화.경협-민족.통일' 낮은 수준의 합의점 찾았을 가능성 높은 듯

김 위원장이 '연장 제안'을 하면서 "시간 품을 들여서 편안하게 앉아서 허리띠를 풀어놓고 식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고 말한 대목은, 예정된 행사도 소화하기 벅찰 정도로 일정에 쫒기는 노 대통령에 대한 배려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김 위원장의 ‘통일 의제’에 대한 큰 구상을 담아내기 위한 분위기 조성에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답답한 속내가 담겨있었을 지도 모른다.

노 대통령이 '개성공단'을 언급하며 지적한 '상호불신'의 문제가 정상회담에서의 핵심적 문제라기 보다, 양 정상간 '통일 의제'를 바라보는 인식의 차가 보다 깊은 대화가 필요한 대목이었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제안을 즉석에서 수용하지 않고 “경호, 의전쪽과 상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한발 물러섰고, 김 위원장으로서는 이 같은 노 대통령의 태도에 “대통령이 결심 못 하십니까. 대통령이 결심하시면 되는데...”라는 다소 실망스러운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자진철회'든 남측의 '사실상 거절'이든, 결과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체류기간이 연장되지 않은 채 사실상 회담이 마무리된 시점에서 이제 공동선언 형식의 합의문에 담길 내용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 대변인의 브리핑과 노 대통령의 만찬 발언을 종합해 볼 때, 2차 회담에서 양 정상은 '통일 의제'와 관련해 이렇다 할 합의가 이뤄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회담 기간 연장'이라는 '빅 카드'까지 선 보였던 김 위원장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렸을 지가 주목된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노 대통령의 '아리랑' 참관과 답례만찬에 김 위원장이 참석하지 않는 부분과 남측 정부의 회담 결과에 대한 발표 내용을 보면, 북측이 만족하지는 못할 것이란 기류가 감지된다.

대체로 남과 북이 '평화.경제', '민족.통일'을 두고, 서로 욕심을 내지 않는 낮은 수준의 합의점을 찾았을 가능성이 높고 대선을 목전에 둔 임기말의 노 대통령에 대한 배려 차원의 ‘선물 보따리’도 일부 담겼을 것으로 예측된다.

'회담 연장'이란 김 위원장의 돌발 제안과 철회가 현 단계 남북관계의 수준을 우회적으로 드러내 보이면서 남과 북 사이의 관계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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