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일 오후 5시 20분 서울 연세대 알렌관에서 故 이숙의 선생 회고록, '이 여자, 이숙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사진-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뜨거움으로 눈을 감으면 지금도 나는 흰 구름을 타고 태백산맥, 소백산맥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그의 모습을 본다. 언제인가 부석사에 올라 아득한 계곡을 내려다보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이 여자, 이숙의' 중)

빨치산 사령관의 아내로 60년 가까이 기다림 하나로 버티다, "그 사람이 우리를 찾았단다" 이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하고 생을 마감한 '이 여자, 이숙의'.

그는 그의 책에 "기다림! 그것은 나에게 생명이요 희망이었으며, 설렘과 분노를 견뎌 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으며, 허무와 뿌듯함을 함께 가슴에 실어 준 행복에의 손짓이었다"고 적고 있다.

7 일 오후 5시 20분 서울 연세대 알렌관에서 故 이숙의 선생 회고록, '이 여자, 이숙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조촐하게 차려진 행사장에는 짧은 사랑을 나누고 살아평생 만나지 못한, 젊은 혁명가 '박종근'과 해방 후 ‘국민학교’에 갓 부임한 여선생 '이숙의'의 앳된 사진이 나란히 걸렸다.

그리고 박종근 선생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통일광장' 원로들과 이숙의 선생을 기억하는 이들, 통일진영 인사 등 100여명이 행사장을 메워, 분단이 만들어낸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되새겼다.

▲ 이날 행사에는 '통일광장' 원로를 비롯해 10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옛 친구 이숙의'를 생각하며 눈가를 붉히던 박순경 이화여대 전 교수는 "분단 상황에서 투쟁으로 산화한 박종근과 불꽃 같은 헌신으로 고통과 멍에를 짊어지고 가시밭길을 걸으면서도 아름다운 삶을 살아온 이숙의를 뒤늦게 알게 돼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책은 이숙의 선생이 한 평생 가슴에 품고 있는 이야기를 1990년부터 출판 준비를 해오다, 2000년 출간을 앞두고 세상을 떠나면서 늦춰졌다가 그의 딸 박소은 씨를 통해 7년 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

양재혁 전 성균관대 교수가 박종근-이숙의 선생의 사랑이야기를 전하자 참석자들은 귀를 종긋 세웠다.

"이숙의 선생님이 경북 의성 고향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부임해 있다가, 46년 3.1절 행사에 참여했는데, 그때 좌익에서 올라와서 연설한 분이 박종근 선생이었다. 그 연설하는 모습을 보고 반해서 쫓아가서 결혼한 거다... 6월에 결혼해서 6개월을 살았는데 12월달에 (박종근 선생이) 모스크바로 공부하겠다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6.25)전쟁이 나서 경북도당위원장을 맡아서 하다가 산에 들어가 남부군 제3지대장을 이끌었다가 전사한 거다... 기다림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희망인데, 그 희망이라는 것을 가지고 사셨는데, (이숙의 선생에게) 가장 큰 것이 6.25때 큰 역할을 했는데 왜 나와 내 딸을 안 찾았는가, 2000년 8월에 돌아가실 때까지 이것이 의문이었다... 김익진 선생이 북송되기 전에 이숙의 여사 병석에 앉아서, '박종근 대장 연락병으로 이숙의와 딸을 찾아오라는 임무로 남에 내려왔다가 찾지 못하고 감옥을 30년 살았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이숙의 선생은) 몇 시간 있다가 돌아가셨다... 그 안도감으로 다시 심장마비가 와서 가셨지 않았는가."

▲통일광장 임방규 공동대표 뒤로 박종근 선생의 사진이 보인다. [사진-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같은 사랑 이야기를 잘 몰랐던 참석자 중 몇몇은 박수를 치다가도, 안타까운 마음에 '쯧쯧' 혀를 차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통일광장 임방규 공동대표는 남부지역에 진행된 빨치산 활동을 전하며 "그런 환경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며 "가족들은 전선에 나간 일꾼보다 엄청난 고생을 했다. 그 아픔을 이 책에 숨소리가, 맥박이 뛰는 그런 글로 표현했으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책을 낸 삼인출판사의 홍승권 부대표는 "우리가 추구해야할 신뢰와 사랑이 무엇인지 당신이 살아온 인생을 통해 보여줬다"며 "이숙의 선생이 함께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주인공이 없는 이 자리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독일 유학생활 당시 이숙의 선생과 인연을 맺은 정범구 전 국회의원은 추천사에서 "분단체제 속에서 정면으로 희생당하고 분단체제 한쪽 사회에서 모진 고난을 겪으며 산 중요한 이야기들"이라며 "이 책이 역사를 모르는 후배들에게 대한 역사 교과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숙의 선생이 초등학교 부임시절 제자였던 김해동 계성학원 이사장도 단상에 올라 "선생님이야 말로 진짜 선생님이며, 얼굴에는 이 나라의 비극을 고스란히 간직하고도 바다처럼 소화시킬 수 있는 대해의 모습이 아니었나"고 회고했다.

▲어머니 이숙의 선생과, 딸 박소은 씨. [사진-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 책의 또 다른 저자인 이숙의 선생의 딸 박소은 씨는 행사장에 나란히 걸린 부모님의 사진을 가리키며 "아버지 어머니 다 떠났지만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견우와 직녀의 다리를 건너 평화롭게 계실 것"이라며 부모님이 따로 묻혀 있는 "대구와 평양, 그리 중요하지 않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빨치산 활동중 부상을 입자 스스로 권총으로 자결한 박종근 선생의 유해는 당시 부모로부터도 외면당했고, 평양 혁명열사능에는 시신도 없는 묘지가 마련돼 있다.

이어 "사실 이렇게 소중한 자리를 맞이할 수 있는 저희는 행운아"라며 "역시 같은 투쟁을 했지만 역사에서도 사라진 그 수많은 피 흘린 영령들을 위해 이 작은 모임이 영혼의 자그마한 위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이숙의 선생의 손녀 이보람(왼쪽), 이한결. 참가자들은 젊을 적 할머니를 빼닮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첼리스트와 피아니스트로 활약중이다. [사진-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노래패 우리나라의 백자 씨의 '직녀에게' 노래 , 송영숙 씨의 가야금 연주, 이철진 씨의 살풀이춤으로 한 많은 두 영혼을 달래며 행사는 마무리됐다.

이날 출판 기념회에는 통일광장 권낙기 공동대표, 한상렬 진보연대(준) 공동준비위원장, 이규재 범민련남측본부 의장, 박중기 추모연대 의장, 남정현 소설가, 김형수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 등이 참석했다.

▲ 이철진 씨의 살풀이춤으로 한 많은 두 영혼을 달랬다. [사진-통일뉴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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