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운동체가 10년 이상 지속적인 힘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14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 대운동장에서 열린 8.15 민족통일대회 전야제 행사는 이 땅에 현존하는 통일운동세력의 건재와 위력을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었다.

이번 8.15대회 전야제는 한편으로는 남북 공동행사가 무산돼 분산개최가 된 아쉬움에다 다른 한편으로는 8월 말 예정된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로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을 불허했다.

행사 당일 오후까지 내린 비로 행사장 상태가 엉망이었고 참가자들이 과연 얼마나 올까 하며 우려하는 기색도 역력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참가 대오가 줄을 이으면서 무대 앞 스탠드를 가득 메우고도 넘쳐 한 낮에 내린 비로 젖어 있는 운동장까지 자리를 차지하면서 행사장은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게다가 무대 양쪽에는 ‘6.15통일시대 개척, 국가보안법 폐지’,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의 구호가 적힌 대형 풍선이 띄워져 행사장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다.

이날 전야제 행사에는 청년학생, 노동자, 농민, 여성, 민주노동당 그리고 일반 시민 등 각계각층이 참여했는데 주된 행사는 자정 무렵 ‘(준)한국진보연대(공동준비위원장 오종렬.정광훈.한상렬)’ 주최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 환영, 을지포커스렌즈 연습 중단, 주한미군 철수, 자주통일 결의대회’였다.

이번 전야제 행사는 두 가지 시사점을 던져 준다.

하나는 남측의 통일운동세력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이다. 이날 전야제 행사에는 1만여명의 참가자들이 몰렸다. 세계적 차원에서도 이만한 동원력이 있는 대중운동은 흔치 않다. 보름째 비가 오락가락 하는 이상 기후 속에서도, 그리고 당일 오후까지 세찬 비가 내렸음에도 행사장엔 참가자들이 몰렸다.

물론 10여년 전 엄혹한 군부독재시기 정부당국의 원천봉쇄와 탄압을 무릅쓰고 산 넘고 물 건너 대회장에 왔는데도 또한 숱한 낙오자를 제외하고도 3만명이 넘는 통일행사 전야제를 보아온 사람들에게는 이번 행사가 다소 미흡하게 비쳐질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다르게 평가되어야 한다.

내용에서도 이번 전야제에서는 ‘주한미군철수’ 문제가 대폭 강화되면서 중심 의제로 설정됐는데 이는 2.13합의에 따른 북미관계의 개선과 그에 따른 한반도 평화협정의 필연성, 그리고 최근 발표된 2차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따른 고조된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통일행사가 축전으로 정착하는 면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참가자들은 주요 인사들의 정치연설보다는 출연자들의 노래와 춤에 열광했다. 무대에서 출연자들이 노래와 춤과 율동을 선보이면 스탠드를 꽉 메운 참가자들도 따라 하며 환호로 화답했다.

특히 ‘제1회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토순례 대행진’에 참가한 어린이 통일선봉대들이 무대에 올라 6.15공동선언 전문을 번갈아 가며 암기하는 것이나, 62살(분단 62년) 된 ‘김한국’이라는 사람이 US암이(Army)에 걸렸다는 풍자시사극은 이번 전야제의 격을 높이고 흥미를 주는데 일조를 했다.

다른 하나의 시사점은 이번 전야제를 주최한 (준)한국진보연대(진보연대)의 저력이다. 진보연대는 ‘진보진영의 단일연합체 건설’이라는 정세의 요청에 따라 민주노총, 전농, 전빈련, 민주노동당, 한국청년단체협의회,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등 진보진영의 주요 대중단체를 중심으로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조직이다.

진보연대는 2년여에 걸친 준비과정부터 말 많고 탈 많게 인식되어 온 면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조직이 제대로 서고 순항할지에 대한 의구심도 표명했다. 통상 조직은 행사 능력으로 자신의 실력을 보여준다. 이번 전야제의 성공적 주최로 진보연대는 그간의 우려를 어느 정도 해소시킴으로서 9월16일 본조직 출범에 상당한 탄력을 받게 되었다.

이처럼 남측 통일운동세력의 건재와 저력은 이번 8월 말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전망을 한층 밝게 해준다. 남측 민간 차원 통일행사의 성공적 개최로 인해 평양으로 향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걸음이 한결 가볍고 또한 남측을 맞이하는 북측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어깨도 활짝 펴질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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