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중(에다가와조선학교지원모금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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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어떻게 하면 조선학교 선생님이 될 수 있어요?”
최근 2명의 학생에게 받은 질문이다.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진지한 상담으로. 한명은 SBS스페셜의 <나는 가요-도쿄제2초급학교의 여름>를 보고, 한명은 지금도 상영중인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를 보고.
에다가와 조선학교 송현진 교장은 한국에서 400여 통의 메일을 받았는데, 그 중 조선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내용이 많았고, 또 직접 도쿄의 일본 학교까지 찾아와 물어 본 대학생도 있다 한다.
이 땅의 아이들이 일본 조선학교의 선생님이 되겠다고 나서고 있다. 조선학교 선생님이 요즘의 한국에서처럼 평생 자리가 보장되며 수입도 괜찮고 적당한 사회적 지위와 시간 여유도 있는 그런 자리가 아님은 물론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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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는 도대체 어떤 학교이기에 이렇게 사람들을 끌어당기나?
조선학교는 무엇을 가지고 있나? 그 보따리를 풀어 보자. 그 가운데 눈에 띄는 큰 덩어리부터 말해보자. 주로 우리사회의 관점에서 조선학교가 지닌 가치를.
조선학교는 통일교육의 최고 소재
솔직히 우리는 통일하면 우리나라가 가난해지고 힘들어져서 통일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갖게 된다. 그 아이들에 비해 나의 생각은 어리석었다.(<나는 가요->감상)
(영화 <우리학교> 장면 중) 학생들이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차창에 ‘우리나라 통일’이라는 걸 쓸 때 가슴이 찡했다. 나로선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고, 쉽게 말하고 들어온 ‘조국 통일’이 그 친구들에겐 가슴 깊이 소망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에서 통일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우리학교> 감상)
수업을 2시간 묶어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다룬 SBS 스페셜 프로 <나는 가요->를 보여 주었다. 아무 사전 설명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아이들이 집중하는 것도 예상 밖이었는데 아이들은 자리를 일어서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를 부르며 나갔다. 자연발생적으로.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야! 이거구나!”
조선학교 만큼 통일교육에 좋은 소재는 없을 것이다. 확신한다. 이를 분석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통일은 마음의 벽을 낮추고 허무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통일에는 민중기반이 필요하다. 마음에서 원하여 상대를 포용하고 한 데 섞일 수 있는 기반, 그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리의 통일도 동서해빙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정치결단으로 이룬 독일의 통일과 마찬가지로 민중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상부구조의 결정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통일 이후의 전망을 어지럽고 어둡게 한다. (경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측이 불가능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기반과 에너지가 갖춰진 상태에서의 통일이야말로 100년 우리 근현대사에 잠재된 정과 부(正否)의 에너지가 상승 작용하여 우리 민족사는 몇 단계 도약을 이룩하고, 동북아 및 세계 평화와 미래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우리 경제 역시 비약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회에 그 기반이 취약하며 또 소멸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를 방치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아깝다. 이 기반(즉 정신)과 에너지는 결국 교육을 통해 구축할 수밖에 없는데,(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다) 과연 정부에 교육의지가 있는가를 떠나서도 ‘왜 통일을 해야 되는가?’라는 학생들의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현 한국사회가 제시하는 것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인프라’(민족, 국가, 공동체의식)가 손상되었기 때문이다. 즉 통일교육은 먼저 인프라를 재건 구축해야 하며 그만큼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에겐 그럴 시간도 열정도 부족하며, 그 효과도 미지수이다.
그런데 바다 건너 일본 땅에 그 에너지가, 그 불꽃이 있다. 설명하고 설득할 필요 없이 정서적으로 와 닿는 불꽃이 있는 것이다. 천운일 수 있다.
재일조선인에게 통일은 해방
재일조선인들은 통일을 온몸으로 원하고 있다. 분단이 주는 아픔과 고난과 불이익이 일상의 삶에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고향을 물으면 손자들마저 경상남도 무슨군 무슨면 무슨리라고 답하는데, 그 꿈에 그리는 고향을 아직도 가지 못하는 1세들이 살고 있다. 그런 할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한 지붕에서 한 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다.
1959년부터의 귀국사업(남쪽에서는 그동안 ‘북송사업’)으로 재일조선인사회에 또 다른 대규모 이산가족이 형성된다. 9만명(약 7분의 1)이 북으로 이주, 대부분의 가족이 이산가족의 멍에를 안게 된다. 그 때 헤어진 아들딸과 형제 그리고 그들이 낳은 자식들이 북에 살고 있는데 자유로운 왕래도 힘들며, 장사나 사업을 위해선 한국국적 취득이 필요하나 이는 결국 북에 있는 부모자식 형제간의 생이별을 선택하는 아픔이기도 하다. 통일은 재일조선인들의 각 가정에 살아있는 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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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밥상에 앉은 형제, 식구가 한쪽은 민단으로 한쪽은 총련으로 갈려 서로가 서먹하다. 또, 민족적 감정이 바탕을 이루나 조선학교는 결국, 북쪽(분단의 한 쪽)학교라고 그 동안 모진 탄압을 받아 왔고, 세금은 내면서도 일본정부로부터 정당한 지원을 받지 못해 부모들은 비싼 학비를 내고 아이들은 오늘도 먼 길을 다녀야 한다.
거기에 다시 납치인정 이후 북조선을 죽이겠다는 미친 바람이 불더니 이것이 어느 새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어 하루하루 신변에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스쿨버스에 조선학교라는 이름도 지우고, 마음의 든든한 버팀목이던 치마저고리마저 입을 수가 없게 되었다. 말이 쉽지,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학살을 떠올리며 주변의 감시, 질시의 시선을 의식하며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분단이 가져다는 주는 고통은 남과 북의 이 땅이 아닌 바다 건너 일본 땅의 재일조선인들의 삶 속에 오늘도 어김없이 현실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재일조선인들은 이중의 수난, 즉 탄압과 동화(‘거세’)의 식민정책에서 여전히 해방되지 못한 <민족 수난>과 조국의 <분단 수난>을 매일 일상에서 받아내며 살고 있는 것이다.
조선학교에는 통일이 녹아있다
재일조선인들에게 통일은 해방을 의미한다. 그러니 원한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도,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도 간절히 ‘하나’가 되기를, 통일이 되기를 원한다.
북조선에서 통일교육을 하기에 이를 따라 조선학교에서 통일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다. 북조선의 지시로 어린 아이들에게 고향, 즉 본적지를 외우게 하고, 이를 묻는 문제를 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의 삶이 통일을 부르기 때문이다. 재일조선인들에게 통일은 관념이 아니라 삶이다. 따라서 그들이 세우고 지켜 온 <우리학교>, 조선학교에는 통일이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조선학교와 접하는 것은 바로 그 통일의 열정과 접하는 것이다. 교류가 물이 섞이는 것이라면 재일조선인의 통일 열망은 자연 한국사회에 흘러들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론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실제이다. <우리학교> 영화를 보거나, 또는 조선학교를 접한 젊은이들의 가슴을 지금 뜨겁게 달구며 자연스레 흘러들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순간, 재일조선인의 통일열망이 우리에게 흘려들어, 그들의 입장에서, 일본 땅에서 통일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의 시야는 확대된다. 남북만의 통일이 아닌 700만 재외동포를 포함하는 넓은 범위의 통일로 우리들의 인식 지평은 단숨에 확대되는 것이다. 통일은 우리보다 그들이 더 원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게 될 것이다.
논지를 정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조선학교를 통해 우리는 통일의 에너지를 전수받을 수 있다. 또 전수받고 있다. 거부감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특히 냉전교육에서 벗어난 젊은 세대들에게. 그리고 그것이 지닌 가치, 그 가능성과 희망을 상상해 보자.
붙이고 싶은 말이 많아 무엇을 자르고 마무리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조선학교는 <민족><통일><공동체>가치를 담고 있는 가치의 보고이다. 재일조선인들의 열정과 총련의 헌신과 북조선의 지원으로. 그리고 우리의 무관심과 일본의 탄압으로.
우리사회는 <민족>(일본과의 대항선)으로 조선학교와 만나 <통일>과 <공동체>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 조선학교와의 만남은 바로 우리사회가 심한 결핍증을 느끼는 <민족><통일><공동체>가치와의 만남이다.
가끔 생각한다.
<근대화>와 <민주화>를 일정 부분 달성하고 이를 수정보완해가며 통일의 시대로 나아가는 우리들에게, 60년 동안 조선학교가 보이지 않았다(보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천운일지 모른다고. 그래서 지금 우리들에게 보따리를 건네주고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도 며칠 전 김명준 감독(<우리학교>)을 만났을 때, 힘주어 이야기했다. 영화 상영을 접지 말라고, DVD 출시 늦추라고. 관객 곡선은 올라갔다 지금은 떨어져 있지만 다시 길게 상승될 것이라고. 내겐 <우리학교>가 하늘이 내려 준 선물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 회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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