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중(에다가와조선학교지원모금 공동집행위원장)


 

<송>의 비극

그녀의 소식을 물었을 때, ‘정신병원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조심스런 답변이었다.

‘한국어 교실’에 <송>이 있었다. 한국정부가 교육공무원을 파견, 재일동포에게 우리말과 문화를 가르치라고 하나 교실은 어디나 대부분 일본사람들이다. 동포가 있다 해도 연세 많으신 분들. 동포 젊은이들은 그만큼 보배이다. 한명 한명이.

 

이 교실은 좀 멀다. 서울이라면 청주 정도. 일주일에 한 번, 저녁 2시간 수업 뒤 근처 술집에 모인다. 매번 그녀는 빠지지 않았다. 성격도 밝고 좋았다. 우리 집에서 자기도 하고, 그녀 동생도 남자친구를 데려와 같이 식사할 정도였으니 우리는 가족처럼 친했다. 사귀는 남자가 없다고 해서 ‘소개시켜 줄까?’, ‘눈이 높은 거 아냐?’는 둥 남녀문제와 결혼에 관한 이야기도 많았을 것이다. 한 2년 동안.

난 눈물이 많지만, 그 날도 뺨을 타고 내려오는 눈물을 혀끝으로 받아가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열차가 끊겨 바래다주는 터널 많은 고속도로의 어두운 차안이었다. 그녀가 속을 열었다.

7,8년 전인 20대 초반, 연애를 해 봤다고 한다. 일본남자였고, 서로 좋아하게 되었단다. <자이니치 在日>임을 고백했지만 문제없다고 해서 결혼 이야기로 발전했단다. 그런데 남자 집안에서 <더러운 피>를 집안에 들일 수 없다고, 부자의 연을 끊겠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그 과정이 힘들었을 것이고 결국 헤어졌단다.

늘 약을 달고 다녀, 무슨 약이냐 물었을 때, 소화제라고 했었다. 그런 줄만 알고 있었다.
그 뒤로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고 한다.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려움일 것이다. 만일 실수로 상대와 친해져 다시 호감을 품기 시작하면 어찌될 것인가?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장애). 근처에 남자가 접근하는 것조차 무서웠단다. 그래서 5,6년 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정신안정제만 복용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최근 2,3년 사이 많이 나아졌단다.

“선생님, 저는요. 이렇게 한국어도 배우고, 선생님하고 술도 마시고, 사람들하고 같이 떠들고 지내는 지금이 행복해요.”

‘행복하다’는 표현에 다시 눈물은 뺨을 타고 내린다. 비록 한국어교실이란 한정된 시간과 공간뿐이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송00>라는 본명으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기도 하단다. 나는 그저 그녀를 밝고 적극적인 그래서 마음 든든한 동포청년의 하나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정신병원에 들어간 뒷이야기는 파국이다.
한국어를 계속 배웠고, 민단 청년들을 모아 사물놀이를 배워 무대에 나가 발표도 했고 한국여행도 한두 번 갔다. 그리고 어떤 한국남자와 사귀게 되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일본남자들과는 달리 친절하고 어딘지 마음이 편안했다. 10년 동안 굳게 닫아 둔 문을 열었고 결혼까지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시어머니 될 사람이 자꾸 무엇을 요구했다고 한다(반지, 혼수, 결혼 자금 등). 재일동포는 돈이 좀 있다는 인식이 우리사회에 있다. 특히 지방에는.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한국 사정을 잘 모르니 그런가보다 하며 그 요구들을 맞춰 주었고, 결국 한국으로 건너가 호적에는 올리지 않은 채 결혼(동거)을 했나 보다.

그런데 채 1년이 안 되는 사이, ‘말도 못하는 며느리’, ‘반쪽바리’... 계속되는 금전적 요구에 그동안 저금한 돈이 바닥났고, 이혼하라는 시어머니, 중간에서 무능한 남편, 결국 그녀는 짐을 싸서 일본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정신병원에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2년 전 들은 이야기이다.

그녀의 비극은 특수하고 예외적인 사례일까? 아니다. 정도가 조금 심할 뿐 <자이니치(재일)>의 전형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늘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 하며, 자신을 드러내면 일본도 그리고 한국사회도 받아들여 주지 않는 본질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나는 누구인가?’
조선학교를 이해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는 자이니치의 고뇌와 아픔을, 그들이 처한 상황을 알고 있어야 한다.

<윤>의 고뇌

“황 선생은 내일부터 좋겠네. 해방되어서.”

이 말 역시 잊혀질 말이 아니다. 5년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친하게 지내던 당시 민단 부단장과 헤어지는 자리였다.

 

‘해방이 되어서.’
일본 땅을 떠나, 나는 답이 보이지 않는 그 지긋지긋한 <자이니치 문제>에서 해방되는 날이다. 그래 그런 날이다. 나는 해방되고, 그와 가족들은 계속 식민지 종주국 일본에 갇혀 살아가는.

평소와는 달리 그 날은 그도 술이 좀 올랐다.
“하루도 벗어날 수 없다. 그런 자이니치의 마음속을 도대체 알기나 하고 돌아가는 거냐?”
조금은 알 것 같다고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알긴 뭘 알아. 나이 오십이 넘도록 오늘까지 하루도, 단 하루도, 아침에 세수하며 거울을 보며, ‘너는 누구인가? 윤00, 너는 누구인가?’를 묻지 않은 날이 없었다. 거짓말하지 마라. 이 마음을 어떻게 한국 사람들이 알겠느냐?”
본명을 사용하는 그도 그러한데, 만약 거울 앞에 선 자신을 윤00가 아닌 ‘가네모토 테츠야’로 부른다면 또 어찌될 것인가?

일본학교 다니는 아이들

한 번 더 어두운 상황에 들어가 보자.

여러분이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라고 가정해 보자. 같은 반에서 지내다보면 자연 친구가 생긴다. 그러면 불안하고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친구가 <자이니치>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하나? 그래서 더 일본사람처럼 행세하기도 한다. 상대가 먼저 마음을 내 보이면 고민에 빠진다. 내가 누구인지를 말할까 말까? 말하면 멀어지지 않을까? 아니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그냥 이대로 지내자. 진짜 친해지면 그 때 가서 말하자.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불안과 고뇌는 깊어진다. 그러니 친구들과 아니 사람들과 진정으로 친해지면 안 된다.

또 용기를 내어 <한국인>이라 밝힌다 해도(본명 선언) 내세울 것이 없다. 말도 모르고 자기 이름조차 제대로 쓰지 못한다. 일본학교에서 일본인으로 교육을 받아 일본어 밖에 모르고 일본어로 사고하고 일본문화가 몸에 맞는다. 호적에 본명은 있으나 일본이름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뿌리는 일본이 아니다.

같은 고민을 하는 자이니치가 같은 반에 있어도 서로가 모르는 경우도 많다. 프라이버시라며 학교는 철저하게 비밀로 한다. 담임도 모르는 것으로 전제하고 생활한다. 자이니치라고 말하는 것 자체를 차별이라 생각하는 사회이다. 해외로 수학여행을 갈 때, 여권을 담임에게 내는데 여권 색깔이 다르니 모든 학생들에게 미리 여권에 카바를 씌워 제출하라고 한다.

 

현재 재일조선인 자녀들의 9할이 일본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들은 이런 알뜰한 배려 안에 완전히 방치되어 있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니 학교 내 이 문제에 대한 상담체계가 있을 리 없다.

수많은 성장기 청소년들은 불안과 고민, 답을 찾을 수 없는 정체성의 혼란, 여기서 생기는 자기 부정, 더 나아가 부모와 핏줄, 조국, 민족이란 것에 대한 혐오감에서, ‘나는 왜 일본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는가?’를 수도 때도 없이 되뇌이며 살아가고 있다. 답이 없기는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일이 60년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자이니치는 스스로를 ‘굴절된 인간’이라 자조하기도 하는 것이다.

차라리 겉모습에서 명확히 구분되는 미국 내 흑인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애초부터 이런 멍에를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 방향이 명확해 진다. 미국 내 흑인들이 그랬듯이,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되어 인종차별폐지운동을 벌이면 된다.

어둡고 괴롭다. 어떤 유령과 같은 무거운 공기가 일본 땅에 사는 자이니치를 누르고 있다. 이를 의식하든 피하든 평생을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일본이란 도대체 어떤 사회인가? 일본은 재일조선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보는 일본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일본은 재일조선인을 인정하지 않는다.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 존재하는데 무시한다. 있는데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귀화자를 제외하면 60만으로 전체의 0.5%정도이다). 있어도 조용히 죽어 살라는 것이다. 자이니치임을 서로 알면서도 이를 드러내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자이니치는 틀 밖의 존재이다. 우리(일본인)라는 틀이 있고 그 밖에 있는 영원한 외국인이다. 그것도 아주 부정적 이미지(‘죠센징’)의 외국인이다. 우리(일본인)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이지메 현상) 그 다른 것이 이물질처럼 일본 내에 실재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다 쫓아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물론 여기서 치안대상으로서의 감시, 그리고 ‘동화와 배제’라는 기본정책이 나온다. 그리고 이 동화(‘거세’라는 표현이 더 좋다)와 배제의 효과적인 방법이 보지 않는 것 즉 ‘무시’인 것이다. 일본사회가 재일조선인을 흔히 <보이지 않는 존재>, <숨겨진 존재>라 표현하는데, <보지 않는 존재>, <숨긴 존재>라고 바꿔 말해야 할 것이다.

<유령과 같은 공기>가 흐르고 있다. 조선인멸시사상이 유전자처럼 무의식적으로 바닥에 존재하나 절대 드러내지는 않는다. 교양 있는 일본인이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 그러니 <자이니치>라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면 서로가 곤란하다. 그러니 알아도 모른 척, 있어도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차별은 있는데 겉에는 없다. 없어 보인다.

젊은 세대들에게 일본에 살면서 차별 받아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 자체가 어리석은 질문이다. 질문해 보면 ‘차별 받은 적은 없다’는 답이 대부분이다. 패스포트에 카바를 씌워 제출하는 사회이고, 안다 해도 아닌 것으로 있어도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이니 예전과 같은 눈에 보이는 차별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그러나 아파트 입주나 취직 그리고 결혼 등 생활의 결정적 국면에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눈에 띄는 ‘치마저고리’에 대한 차별, 아니 질시는 물론 지속된다).

그런 사회에서 자이니치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 불가능함에도 자신을 부정하고 일본인 행세를 하면서 끊임없는 자아분열을 경험해야 되는 것이다.
일본은 생각한다. 그러다 언젠가 몇 세대 지나면 자연 사라지겠지. 그 동안은 있어도 없는 것으로 하고 되도록 사회문제로 부각시키지 않는다. 이것이 일본의 <동화>와 <배제>의 실체이다. 내 관점에서는 ‘거세’이고 더 심하게 표현하면 (정신적)살인이다.

 

일본인들은 스스로를 ‘섬나라’, ‘섬나라 사람’라고 한다.
메이지유신 이후 제국주의 팽창기를 거치며 일본인들 마음엔 일본 우월의식과 아시아(특히 조선) 멸시사상이 뿌리 내린다. 천황을 만들어 놓고, 자신들을 신성한 천황의 만계 일손의 자손으로 만들어 놓았다(臣民사상). 45년 이후에도 이 근간은 유지되고 있다.

신민사상이 바닥에 깔린 배타적 국수적 <일본주의>는 자원이 부족한 일본을 하나로 묶는 일본 힘의 원천이자 생활원리이기도 하다. 틀을 하나 만들어 놓고, 이 밖의 존재를 철저하게 무시한다. 있어도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원하지는 않지만 밖에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기도 한다. 단 조건이 있다. 완전히 발가벗고, 뼈 속까지 씻고 들어오라고 한다(귀화).

그러나 막상 들어가도 다르게 여긴다. 뼈 속까지 씻을 수 없는 것이니까. 원래 만계일손의 자손이 아니니까. 우리들이 이해하기 힘든 ‘부락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자조적 뉘앙스로 ‘섬나라’라고 하는 말에는 이를 인정하라는 잠재적 의미도 담겨 있는 것이다.

조선학교는 따뜻한 인권 사랑방

그 일본이란 섬 안에 <조선학교>가 있다.
조선학교는 어떤 학교인가? 우리에게 조선학교는 부끄럼과 함께 자랑스러운 학교일 것이다. ‘일본 땅에서 60년간 우리말과 글을 지켜온 학교’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겉모습의 하나일 뿐이다. 민족을 떠나 먼저 조선학교는 한 인간을 지켜주는 곳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간으로 살리는 곳이다. 일본의 그 유령과 같은 공기 속에 있다가는 모두가 질식해 죽을 것이니, 이를 차단하기 위해 재일조선인들이 하나하나 담을 쌓아 만들어 놓은 공간이다.

오늘도 웃음이 넘치는 조선학교는 재일조선인들이 내 자식들만큼은, 우리 후손들만큼은 나처럼 살지 말고 떳떳하게 한 인간으로 자라나라고 만든 처절한 공간이다. 이름과 말을 버리라고, 민족을 부정하고 그래서 결국은 자신을 부정하고 죽이라는 일본 땅 안에 작은 공간을 만들어 놓고 먼저 우리말을 배움으로써, 민족문화를 익힘으로써, 조국과 민족을 가슴에 안음으로써 ‘거세’당하지 않은 한 인간이 되라고 만든 공간이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들(재일조선인)의 뿌리와 역사를 제대로 알고, 또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이 되라고 자신들의 모든 것을 바쳐 만들고 지켜온 학교인 것이다. 이것이 ‘떳떳한 조선인’이란 교육목표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인간 존엄성의 선언인 것이다.

 

어떤 이들은 ‘조선학교는 온실’이라 비판한다. 바깥은 찬바람이 부는 세상인데 온실 안에서 자라, 즉 민족 정체성을 지닌 조선인으로 자라 어떻게 일본사회에서 적응하고 살 수 있겠느냐고. 실제 모든 조선학교의 졸업식장은 울음바다이다. 둥지를 떠나는 새가 제대로 날개짓을 하고 날아갈 수 있을지.

일본이 바뀐다면 조선학교의 이런 성격은 바뀌어도 된다. 아니 바뀌어야 한다. 흔히 말하는 국제화 시대에. 아니 자연스레 바뀔 것이다. 그러나 일본사회가, 일본인들의 의식이 변하지 않는 한, 유령과 같은 공기가 걷히지 않는 한 조선학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조선학교는 지켜야 한다. 만약 일본이 자신이 변하지 않은 채 조선학교를 없애려 한다면 이는 인류가 나서서 지켜야 된다.

조선학교는 ‘우리학교’는 인간을 거세시키는 일본 땅 안에서 한 인간을 지키는 학교이다. ‘민족’을 떠나서도 ‘인권’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 면에서도 조선학교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자는 소리가 턱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하기는 힘들 것이다.

다시 덧붙이며 맺는다.
일본에서 조선대학까지 나오고 조선학교 선생님을 하시던 분이 왔다. 7월 한 달간 한국사회의 이모저모를 경험하고 싶다고.

“조선학교 나와서 좋았어요?”
“예, 참 좋았어요. 부모님께 감사드려요.”

주저 없는 답과 일본인과는 또 다른 밝고 환한 그녀의 웃음이 이 글에 자신감을 보태주었다. 정녕 생기 넘치는 사람으로 그녀는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