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공동선언 발표 7주년을 맞아 남북해외 대표단이 참가한 가운데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6.15민족공동위)가 평양에서 개최한 6.15민족통일대축전(6.15대축전)이 우여곡절 끝에 17일 막을 내렸다.

알려진 대로 15일 치러질 예정이었던 이번 행사의 본대회 격인 민족단합대회는 한나라당 의원의 주석단 배치 문제로 차질을 빚어 3박 4일 일정의 마지막 날인 17일에서야 한나라당 의원 3명이 불참한 가운데 열렸다.

이처럼 본대회가 제 날짜에 열리지 못한 것은 2001년부터 남북해외가 함께 치러온 6.15 공동행사상 처음이었고, 2005년 6.15 공동행사 이후 남북의 당국대표단이 참석해오던 전통이 깨어진 것도 처음이었다.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남북 당국간 관계에 냉기류가 흐르고 있는 와중에도 민간차원의 공동행사가 개최돼 민족대단합의 목소리를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며, 파행을 초래한 원인들에 대한 냉정한 평가도 필요할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나?

이번 6.15대축전은 지난 5월 제2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측이 쌀 차관 제공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당국 대표단이 불참한 가운데 열리게 됐지만 민간차원에서 큰 무리없이 행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더구나 2.13합의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는 BDA(방코 델타 아시아) 문제가 해결 국면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열렸고, 남북간 합의한 행사일정도 가장 전형적인 14일 개막식, 15일 민족단합대회, 16일 폐막식 외에는 연회와 참관 등으로 채워져 별탈없는, 오히려 다소 밋밋한 대회가 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러나 15일 본대회 격인 민족단합대회에 주석단(귀빈단)이 입장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 의원의 주석단 배치 문제를 두고 남북간 실무협의가 오가던 중 북측이 한나라당 의원이 주석단에 앉는 것 자체를 거부해 행사가 난항을 겪게 되었다.

이에 대해 객관적 사실관계 여부와 정치적 배경 해석까지 다양한 추측과 견해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대체로 △남북 실무선에서 ‘한나라당 의원’ 주석단 배치가 합의되었으나 앞열 배치냐 뒷열 배치냐를 두고 조정하는 과정에서 북측 상층부가 ‘불가’ 입장을 지시해 파행하게 되었다는 ‘지시설’과 △ 남북 실무선에서 ‘박계동 의원’ 주석단 배치가 합의되었으나 북측 실무진은 박 의원이 한나라당 소속인줄 미처 몰랐다가 앞뒷열 논란 과정에서 뒤늦게서야 이를 알고 배제시켰다는 ‘실수설’이 나오고 있다. 남북이 합의한 주석단 명단에는 ‘박계동’이라고 이름만 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해석을 따르든 북측이 일단 박 의원을 주석단에 배치키로 했다가 행사 시작 시점에 뒤집은 모양새가 됐고 북측에게 파행의 책임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남측 집행부가 ‘과욕’을 부려 무리하게 박 의원을 주석단 앞열에 세우려다가 화를 자초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6.15대축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남측위)와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6.15북측위)는 한나라당 의원의 참석을 두고 사전협의를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6.15남측위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오는 것에 대해 좋아하지 않은 팩스가 (북측으로부터) 한두 번 온 것은 사실이고, 우리는 이것을 한나라당 의원이 대거로 참가하지 말아달라는 뜻으로 해석해 일부 줄여서 보낸 것이고, 원내대표 김형오 의원을 빼고 정치적 부담을 줄이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처리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참가 의원은) 한나라당 원내대표실에 공식 요청해서 추천받았다”고 덧붙였다.

결국 박계동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3명이 북측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았고, 14일 개막식과 환영연회에 한나라당 의원이 주석단에 자리했지만 별 문제가 없었다.

더구나 관례적으로 남측 주석단 배치는 남측에서 정하게 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측이 앞열로 배치를 요구한 박 의원을 북측이 임의로 뒷열로 뺐다가 남측이 문제제기를 하자 다시 앞열로 재배치했다가 안경호 6.15북측위 위원장의 요청을 받은 남측이 박 의원의 동의를 얻어 뒷열로 배치하고 행사를 진행키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북측에 의해 주석단 입장에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것이 6.15남측위 관계자의 공식 설명이다.

그러나 일부 참가자들은 남북 실무자간 박 의원은 뒷열에 앉기로 이미 합의되었으나 남측 실무진이 앞열로 배치를 요구하면서 갈등이 빚어졌다는 북측의 설명을 전하기도 했다.

당시 상황상 주석단이 2열로 배치될 것을 예상해 미리 앞열 뒷열 명단을 특정해서 남측 주석단의 명단을 제출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다만 순서대로 이름만 적시한 명단이 제출된 것으로 보이며, 이를 배치하는 과정에서 남북간 의견차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북측의 반한나라당 정서 수위는?

일각에서는 6.15남측위가 상황분석을 너무 안이하게 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약속된 쌀 차관 제공마저 거부한 남측 정부 때문에 남북관계에 심각한 균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단을 상당수 초청하려 했고, 꺼려하면서도 소수라도 초청장을 보내준 북측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주석단 앞뒷열 문제까지 몰아붙여 결국 북측이 인내성의 한계를 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부 남측 대표단은 평소 6.15공동선언을 폄하해온 한나라당 의원을, 그것도 당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참가한 의원을 민간공동행사에 한나라당을 대표해 주석단 앞열에 내세우려 한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6.15남측위 현 집행부에 대해 극단적인 불만을 가진 일부 인사들은 아예 집행부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한나라당 간사인 진영 의원을 초청한 것은 행사비용을 국회에서 쉽게 승인받기 위한 ‘술책’이며, 한나라당 의원들을 행사에 극구 끌어들이려 하는 것은 차기 정부에서의 입각점을 마련하기 위한 ‘추파’라고 단죄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6.15남측위는 올해 주요 사업기조 중 하나로 국회의원과 종단 지도자들을 6.15남측위에 최대한 참여시키기로 정한 바 있어 이는 극단적 평가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북측 기류를 간접적으로 전하는 재일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통일세력이 스스로 원칙을 버리면서 상대의 비위를 맞추어야 할 이유가 없다”며 “한나라당을 배제하면 국민여론의 반발이 일어나 오히려 선거국면에서 한나라당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통설’도 6.15의 신봉자들에게 통하지 않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북측은 과거에 통일운동을 타산에 기초하여 설계한 바 없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고 밝혀 앞으로도 이같은 기본 입장을 유지할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북측이 민족단합대회가 무산된 뒤 16일 하루동안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회에 참석하는 대회를 치러야 한다는 입장에서 진지한 노력을 기울인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6.15남측위 관계자는 “협상과정에서 느꼈던 것은 북은 행사에는 어떻게 하든 한나라당을 참여시키는 것이었다”며 “북은 한나라당 의원들을 주석단에 끌어들이기 위해 내부적으로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결국 공식적으로 채택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6.15남측위 내부 민주주의 제대로 작동했나?

예기치 못한 한나라당 의원 주석단 배치 문제로 행사가 중단되자 남북 실무진은 협의를 진행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결국 백낙청 6.15남측위 상임대표와 안경호 6.15북측위 위원장 간의 단독 회동이 열렸으나 역시 합의에 이르지 못해 백 대표는 남측 대표단에게 행사의 ‘일단 무산’을 통보하고 대표자회의를 소집하는 등 내부 의견조율에 들어갔다.

백 대표와 실무진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북측과 협의를 진행하는 한편 대표자회의나 부문별 회의 등을 갖고 남측 내부 의견 수렴과 조율을 진행했으며, 종단지도자들은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한 설득작업을 병행하기도 했다.

6.15남측위는 대표자회의를 통해 백 대표에게 협상 전권을 위임했으나 북측과의 협상은 16일 저녁에서야 전날 낮에 북측이 제안했던 공동위원장과 연설자만 주석단에 앉는 ‘주석단 11인 안’에 합의하기에 이르렀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끝까지 대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유의미한 내부 협의와 상호이해의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오랜 노력을 기울인데 비해 결과는 초라했다.

백낙청 상임대표는 “처음부터 북측의 제안을 덥썩 받았다고 하면 대회를 빨리 여는 결과가 됐을지 모르지만 우리 내부에 엄청난 갈등이 생겼을 것이고, 이번 대회가 무산됐어도 엄청난 갈등이 생겼을 것이다”며 “지금 대회를 하는 것이 다른 두 어느 경우보다 더 나은 결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총평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남측 내부의 논의과정이 백 대표와 소수의 집행간부 중심으로만 진행됐다는 점과 대승적 견지에서 한나라당 의원 불참을 각오하고라도 빨리 대회를 열었어야 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었다.

다른 일각에서는 16일 낮 남북간에 ‘주석단 11인 안’+‘북 고위층 한나라당 의원 면담 안’이라는 절충안이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관철시키지 못한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16일 오전 2시간여에 걸쳐 한나라당 의원들을 간곡하게 설득한 종단 지도자들은 오후에 한나라당이 남북이 마련한 절충안마저 거부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당초 한나라당 의원이 불참한 대회에는 자신들도 참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바꿔 대회에 참석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주석단 11인 안’에 따라 한나라당 의원들이 불참한 채 행사가 열리게 됐다.

종단을 대표해 6.15남측위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인성 원불교 교무는 평소의 온화한 어법과는 달리 “한나라당 의원들이 철저히 당리당략으로 일관했다”며 “참가자들의 열망을 무시했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6.15남측위는 이번 행사 평가를 두고 상당한 내부의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백낙청 상임대표는 “많은 토론이 있을 것이고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곤 6.15남측위 사무처장도 “6.15남측위 조직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며 “남쪽에 내려가면 여러 불만들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이색적으로 안경호 6.15북측위 위원장은 “처음에는 좀 산고를 겪었지만 이제 돌아가셔서 갑론을박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7년의 힘’이 대회를 성사시켰다?

이같은 일정의 파행과 내부의 극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6.15대축전은 16일 밤 남북이 ‘주석단 11인 안’에 합의함으로써 한나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열리게 되었고 실무적 준비 때문에 17일 오전에 폐막식과 함께 거행되었다.

17일 민족단합대회에서 남북해외 공동위원장은 하나 같이 유감과 사과 의사를 표명했다. 남북해외의 공동위원장들이 이처럼 원인과 결과에 상관없이 함께 정중한 유감과 사과를 표명한 것은 처음있는 일로 민간 통일운동의 성숙성을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조선신보가 “행사무산의 파국을 끝내 회피한 통일일군들의 모습은 6.15공동선언의 기치따라 전개되어온 민족대단결운동의 성숙도를 보여”주었고, “운동이 갓 시작된 첫 시기에 문제가 발생했더라면 판이 깨졌을지도 모르지만 7년 동안의 6.15운동을 통해 일군들은 화해와 단합의 실천적 경험을 축적했다”고 해석한 것은 적절해 보인다.

예기치 않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6.15대축전의 본래 의미가 다소 빛바래긴 했지만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은 내외 정세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남북해외의 민간대표들이 한 목소리로 민족대단결을 외쳤다는 사실이다.

백낙청 상임대표가 17일 도착성명에서 “이번 6.15 민족대축전을 통해, 당국간 대화가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만큼은 교류와 협력의 끈을 계속 이어가야한다는 우리의 다짐을 실천에 옮겼다”는 평가나 안경호 6.15북측위 위원장이 민족단합대회 대회사에서 “이번의 민족단합대회가 민족의 대단결과 조국통일에 대한 온 겨레의 드팀없는 의지를 내외에 과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민족단합대회에서의 연설은 충분한 무게를 담고 있다.

남측 백낙청 상임대표는 민족단합대회 대회사에서 △각 부문의 교류와 협력 확대, 운동의 대중화.일상화 △비핵화된 평화체제 구축 위한 관심과 노력 △솔직하고 인내심 있는 토론 풍토 발전 △6.15민족공동위원회의 확대 발전 등을 과제로 제기했다.

북측 안경호 위원장은 대회사에서 민족대단결을 강조하면서 6.15민족공동위 강화에 발언시간을 많이 할애해 눈길을 끌었다. 안 위원장은 △강령을 확정하고 정치적 수준을 높여야 할 것이며 북, 남, 해외의 지역위원회들 사이의 연대와 협의체계를 개선강화해야 할 것 △지역위원회들이 자기 관하에 분산되어 있는 동포대중들의 통일운동과 단합사업을 특성에 맞게 편향이 없이 잘 해나갈 수 있도록 통일적인 지도를 강화해야 할 것 △정계와 사회 각계 인사들과의 접촉과 연대를 강화하여 6.15지지대열을 끊임없이 확대해야 할 것 등 구체적 과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도약의 계기점’ 될까?

이번 대회는 2005년 6.15 공동행사부터 관례화된 6.15, 8.15 공동행사에 남북 당국대표단의 참가가 이루어지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지만 ‘대회 참가 불승인자’는 단 한 명도 없어 좋은 선례를 남겼다. 그러나 여전히 ‘참관지 제한’ 문제에서는 한 발짝도 진전이 없었다.

또한 북측의 방송 송출 제한 문제와 15일 보도차량 배정 거부로 인한 송고 지연사태는 행사 ‘일단 무산’ 사태의 파장을 남쪽에서 더욱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아쉬움을 남겼으며, 남북간 언론보도에 관한 사전합의 준수의 필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이번 6.15대축전은 남과 북, 해외 모두에게 많은 숙제를 남겼고 특히 6.15남측위는 내부의 시각차와 사업방식차의 극복을 위한 많은 과제가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정현곤 사무처장은 “통일운동 주체의 폭과 깊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된 첫 대회로서 앞으로 내용적인 도약의 계기점이 될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6.15공동선언 7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열린 6.15민족통일대축전은 민간차원의 행사가 내외의 정치적 정세에 영향을 받아 비틀거렸다는 점에서 커다란 숙제를 남겼지만 어려운 정세에도 불구하고 남북해외의 민간대표들이 한 목소리로 민족대단결과 평화와 통일을 외쳤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향후 6.15남측위의 내부 혁신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