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환(통일뉴스 편집국장)


지난해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남과 북은 당국자 차원이든 민간 차원이든 여러 갈래로 대화와 교류가 있었다. 또한 지난해 10월에는 북한 조명록 특사와 미국 올브라이트 국무부 장관의 워싱턴과 평양의 교차방문으로 북미간에 `관계정상화` 일보직전까지 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향한 가시적이고도 의미있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미 알고 있듯이 올해 3월 한미정상회담 이후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 표명으로 북미관계가 경색되고, 이에 따라 남북관계도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남북노동자 5.1절 통일대회`에서 보여지듯 남북간 민간 차원에서는 교류가 지속되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 민간 차원의 남북대화와 교류는 남북관계의 주요 고리인 셈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남측의 민간통일운동에 있어 지난 한 주일은 매우 분주하고도 의미있는 나날들이었다.

숱한 우여곡절 속에서 22일 통일연대가 대표자회의에서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를 구성하기로 결정했고, 그 다음날인 23일 민화협이 7대 종단으로 구성된 온겨레손잡기운동본부와 함께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를 발족시켰기 때문이다.

이로써 남측 민간통일운동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와 6.15-8.15 민족통일촉진운동기간 중에 함께 사업할 주체를 만든 것이다. 여기에는 간과할 수 없는 두 가지 의미, 즉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가 첫째 남측의 `단일한` 공동행사기구이자 둘째 북측 민화협과 `공식적` 파트너로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간 남측 민간통일운동의 역사성과 사정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의미는 언제든지 퇴색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의 출범을 한편으로 환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미 알고 있듯이 남측 민간통일운동의 역사는 8.15를 즈음해 `하나의 대회`를 둘러싼 투쟁과 분열의 역사였다. 하나의 대회란 사실 매우 당연한 것인데 역설적으로 보면 민간통일운동의 다른 모습, 즉 분열의 모습을 상기시켜준다.

통일운동이 활성화.본격화된 1980년대 말 이후 최근까지, 지난 10여 년에 걸친 과정에서 통일운동은 `통일`운동이 아니라 `분열`운동이라는 자학적인 얘기도 나왔다. 이로 인해 많은 통일운동가들이 상처받고, 마음을 바꾸고, 또 이 판을 떠났다.

우리는 이 과정을 모두가 `올바른 통일운동`을 향한 과정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리고 특히 지난 한 주일의 과정을 올바른 통일운동을 향한 `집약`으로 보고자 한다. 이런 관점에서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의 출범과 참가를 둘러싼 각 단체들에게 다음 몇 가지 점을 당부하고자 한다.

첫째, 통일연대는 가장 고뇌에 찬 결단을 내렸다. 몇몇 소속단체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표결강행을 하면서까지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를 구성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념과 종교를 뛰어넘고 과거를 묻지 않는 민족적 `큰 단결`에 걸맞는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특히 그간 정부로부터 `이적단체`로 불리운 범민련 남측본부와 한총련의 적극적인 참가의지와 결정은 가장 빛나는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통일연대는 이번 결정과정에서의 내부이견을 하루속히 수습해주길 바란다.

둘째, 우리는 특별히 가장 곤혹스러웠을 자통협과 민주노총에 당부하고자 한다. 두 단체의 반대와 거부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통일연대의 결정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두고 `작은 단결 속에서 큰 단결이 나오는 법`이라는 식이나 `조직결정에 승복`하라는 식으로 상투적으로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진심으로 승복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셋째, 우리는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를 발족시킨 민화협과 온겨레손잡기운동본부, 특히 민화협에 당부하고자 한다. 통일연대가 내부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참가결정을 내린 것에 최대의 존중과 예의를 갖춰주길 바란다.

한가지 방법으로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 구성에 있어 통일연대와 민화협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고 동수로 조직체계를 짤 것을 제안한다. 이는 `지분 챙기기나 나눠먹기`가 아니라 실제로 두 단체가 남쪽 민간통일운동의 두 축인 만큼 그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똑같이 지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해 민화협은 문을 크게 열고 또 자리를 내줘야 한다.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 구성문제를 둘러싸고 `주도권문제`가 돌출하거나, 또는 `무조건 들어오라`거나 `무엇을 보장하라`는 식의 주인행세와 조건 제시가 나와선 안된다. 내가 먼저 주도했다고 주인이 아니다. 참가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모두가 주인이다. 남쪽의 모든 민간통일운동 세력 더 나아가 국민들의 것이어야 한다.

`잘된 일 뒤에는 백 명의 은인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가 자신의 일을 잘 하려면,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노력들이 있어야 가능하다. 범민련 남측본부와 한총련의 통큰 결단에 이은 지속적 협력, 자통협과 민주노총의 승복과 참여, 그리고 무엇보다 민화협의 성의와 양보 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모두(冒頭)에서도 밝혔듯이 지금 남북 민간교류는 남북관계의 주요 고리이다. 민간 차원의 6.15-8.15 행사는 단순히 남북관계의 소강상태와 북미관계의 경색국면을 메우는 것이 아니라, 통일운동을 범민족적인 흐름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호기이다.

지난해 남북 당국자간의 합의에 의한 6.15공동선언이 통일운동의 물꼬를 텄다면, 그 1주년이 되는 6.15-8.15 행사는 남북 민간차원에 의해 통일의 문을 열고 통일의 대세를 이루는 역사적인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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