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김양희 객원기자가, <겨레하나>가 주최한 북측 협력사업장 방문단 일원으로 5월4일부터 7일까지 3박4일간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지난해 11월달 이후 두 번째다. 평양방문 신청부터 소감을 정리한 김양희 객원기자의 평양방문기를 일기식으로 순차적으로 싣는다. 제목을 편의상 지난해와 구분하기 위해 <김양희 기자의 평양일기 Ⅱ>로 한다. / 편집자 주


김일성종합대학 혁명사적관과 동물표본 전시관

▲1946년 설립된 김일성종합대학 혁명사적관 내의 전시표본.  [사진-통일뉴스 김양희객원기자]
1946년 설립된 김일성종합대학에는 혁명사적관이 있다.

혁명사적지는 ‘로동계급의 수령, 또는 탁월한 혁명가의 혁명 활동과 투쟁 업적이 깃들어 있는 사적’으로 김일성종합대학의 혁명사적관은 주요 기관 등에 대한 현지 지도를 기념하는 곳이다.

2004년 개축 확장 공사를 마친 김일성종합대학의 혁명사적관에는 고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혁명활동에 대한 소개가 되어 있는데 우리는 빠듯한 일정으로 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만 참관하기로 했다.

해설강사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60년 9월 1일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을 했다. ‘조선아 너를 빛내리’ 등 로작학습을 하고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교복을 입고 공부를 했다고 한다.

‘현대제국주의의 특징과 침략적 본성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비롯, 신라가 통일한 것이 아닌 고려가 처음으로 통일을 했다는 고구려 중심의 역사서술 체계를 강조하는 ‘삼국통일문제를 다시 검토할 데 대하여’ 논문 등을 발표했고 자필 논문 등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룡성도로 확장공사에 20여 일간 참가해 남들보다 모범적으로 앞장서 일하던 모습의 사진과 공사도구, 평양방직기계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실습에 참여했던 기계, 도구 등을 전시하고 1962년 12월부터 1964년 3월까지 학습하던 교실을 참관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회주의 건설에서 군의 위치와 역할’이라는 졸업논문으로 1964년 3월30일 17회 졸업식으로 졸업을 한 뒤에도 대학을 23차례나 현지지도를 했다고 해설강사는 자랑이다.

사적관 곳곳에는 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다음과 같은 교시를 적어 놓은 현판들이 걸려있다.

‘김일성 종합대학은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제일 생명으로 하는 수령님의 대학 당의 대학입니다’ 김정일

‘김정일 조직비서는 학창시절부터 철학적 문제들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고 깊이 사색하고 탐구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그의 특징은 철학적 조예가 매우 깊은 것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에 김정일 조직비서와 같이 권위 있는 철학가 리론가가 있는데 대하여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일성

▲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필원고의 모습. [사진-통일뉴스 김양희객원기자]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민군대에 새롭게 제시하신 <일당백>의 구호는 우리 인민의 군대를 불패의 혁명 무력으로 강화할 수 있게 하는 전투적 구호입니다’ 김정일

또한 김일성종합대학에는 동물 표본 전시관도 있다.

고 김일성 주석이 직접 잡은 조선범, 70주년 생일 선물로 들어온 희귀동물 220종 320점을 학습용으로 기증을 했다한다.

특히 송아지만한 조선범은 일행에게 인기가 높았다. 다른 나라의 범들과는 달리 이마에 ‘임금 왕’자 무늬가 있는 것이 조선범의 특징이라는데 가까이서 볼수록 힘이 넘치고 기품이 있다.

참관을 마치고 나오는 일행을 위해 조철 김일성종합대학 사회과학부 부총장이 인사를 건네자 오종렬 대표는 그와 악수를 하며 “잘 발전할 것 같습니다”고 답한다.

아직 단팥 없는 ‘옥류’빵

▲대동강어린이빵공장에서는 빵을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다음 일정은 현재 10개의 지역본부에서 6000여명의 회원이 한 달 5000원씩 모은 후원회비로 하루 1만개의 빵을 생산, 평양 3개 구역 유치원과 탁아소 등에 지원하는 ‘대동강어린이빵공장’이다.

평양 대동강 유역에 위치한 ‘대동강어린이빵공장’은 겨레하나 빵사업본부가 지난 2004년 9월 의향서를 체결하고 남녘에서 설비와 재료비 등을 지원하고 북녘에서 부지와 인력을 대 공장을 설립, 2005년 4월1일부터 빵이 생산되고 있다.

공장 설비 등은 자동화되어 있으며 근로자들은 반죽 자르기, 오븐에 굽기, 포장 등의 작업을 분주히 진행하고 있다.

이곳의 빵 이름은 ‘옥류’. 남에서 보낸 소중한 마음이 옥 같고 또 그 마음이 남과 북에 서로 흐른다는 뜻으로 공장 근로자들의 직접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한 달 5000원이면 북녘의 한 어린이에게 한 달 내내 옥류를 먹일 수 있단다. 그러나 이곳의 옥류는 아직 단팥이 없는 빵이다.

단팥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재정문제 때문이라고. 아이들에게 좀 더 맛있는 빵을 전하고 싶지만 재정이 불안정해 아직은 단팥 빠진 빵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 빵공장 참관 뒤 일행들과 기념촬영. [사진-통일뉴스 김양희객원기자]
공장에서 일행을 위해 만들어진 옥류를 하나씩 나눠 주었다. 갓 구워 뜨거운 옥류를 받아먹는 모습까지 사진으로 남긴 나도 이름표 위에 옥류를 하나 받았다.

그런데 계단에서 내려오던 중 삐끗, 몸의 균형이 흐트러지면서 옥류를 구하기 위한 나의 몸부림은 필사적이었다. 옥류를 구하려다 그만 카메라를 떨어뜨렸다. 화들짝 놀라 카메라를 집다가 옥류도 그만 흙바닥에 떨어졌다.

겨레하나 권영진 회원은 “빵 떨어뜨리지 않으려다가 카메라를 떨어뜨렸다”며 나의 카메라가 무사한지 걱정해주었다.

시험 삼아 그를 찍어보니 다행히 카메라는 무사했고 옥류도 흙을 털어 먹을 수 있었다. 흙이 좀 묻어 있었지만 갓 구운 옥류는 아무것도 넣지 않아도 무척 맛이 있었다. 카메라가 무사해 그동안 찍은 사진과 앞으로 평양에서 찍을 사진들이 무사해 더 맛이 있었던 듯하다.

게다가 남녘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으니 나뿐 아니라 북녘 어린이들도 분명 맛있게 먹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 빨리 북녘 아이들이 단팥옥류를 먹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

“남쪽에는 왜 이런 게 없나”

▲ 주체탑의 모습.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빠듯한 일정으로 국수공장 참관 일정이 무산되고 주체사상탑으로 향한다. 주체사상탑은 대동강기슭 동평양 지구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주체사상탑은 조선의 고유한 석탑건축양식을 살려 백색화강석으로 쌓아올린 석탑으로 탑 꼭대기에는 봉화가 있다.

주체사상탑은 봉화, 탑신, 3인군상, 부주제군상, 정각, 두 개의 대형 분수로 구성되어 있다. 탑의 높이는 170m이며 이중 탑신의 높이가 150m, 봉화의 높이가 20m이다.

화강암 하나씩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그 옛날 피라미드를 어떻게 쌓았는지가 세기의 불가사의지만 이 역시 돌만으로 어떻게 이런 탑을 쌓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해설강사는 “주체사상탑은 자주 시대를 대표하는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을 창시하고 그 전면적 승리를 이룩한 김일성 수령님의 불멸의 공적을 칭송하여 세운 대 기념비적 건축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석탑이다”고 설명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주체사상탑은 김일성 주석의 70세 생일을 맞아 세운 것으로 모두 2만5550개의 화강암을 사용해서 만든 것이다. 2만5550개가 의미하는 것은 70×365의 숫자와 일치하는 것으로 수령님의 뜻 깊은 하루하루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기단 정면에는 ‘누리에 빛나라 주체사상이여’라는 헌시비가 있고 앞에는 조선로동당 마크를 든 노동자, 농민, 지식인을 형상한 3인 군상이 있다.

주체사상탑에는 80여개 나라 국가수반들과 정계, 사회계 인사들, 학술 연구 조직들, 친선단체들이 보내온 여러 나라 글을 새긴 고급 석재들인 대리석, 옥돌들이 붙어 있다.

주체사상탑을 세울 당시 각국에 크기만을 알려주고 돌을 보내라 요청을 했는데 ‘그런 일이라면 당연히 좋은 돌로 보내겠다’하며 여기저기서 보내와 탑에 사용된 돌들 외에도 창고에도 많은 돌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탑의 좌우에 있는 화강석부주제군상들은 ‘주체공업’ ‘만풍년’ ‘배움의 나라’ ‘무병장수’ ‘주체예술’ ‘철벽의 요새’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 주체탑으로 들어가는 입구. [사진-통일뉴스 김양희객원기자]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평양의 중심부에 위치한 주체사상탑의 맞은편에는 인민대학습당이 위치하고 있다. 전체 인민이 공부하는 대전당이라는 의미의 인민대학습당은 열람실, 강의실 등이 구비돼 있으며 장서 능력은 3000만부, 하루 수용 능력은 1만명라고 한다.

해설강사는 “학생들이 인민대학습당에서 주체사상탑을 보며 학습하면 좋고 또 어디서나 편히 와 공부할 수 있도록 평양의 중심에 주체사상탑과 아이들 학습 공간을 만든 것이다”고 설명한다.

주체사상탑을 더 웅장하게 부각시키는 것은 대동강 중심에서 솟아오르는 두 개의 대형 분수이다. 분수의 물기둥 높이는 150m이다.

주체사상탑 150m 위까지 고속승강기가 설치돼 탑신에 올라가 평양시 전경을 볼 수 있으나 우리 일행은 시간이 없어 전망대까지 오르지는 못했다.

일행 중 누군가가 “남쪽에는 왜 이런 게 없나”하니 어디선가 “만들 만한 사람이 있어야 만들지, 대통령들이라고 다 감옥가고 뭐 내 꺼라도 만들려면 몰라도” 한다. 농담이긴 하지만, 그래도 신심을 다해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봄을 맞아 결혼을 많이 하는지, 주체사상탑 주변에는 여러 쌍의 신혼부부들이 눈에 띄었다.

로승일 안내원은 “주체사상탑, 개선문, 만경대고향집, 만수대예술극장 앞, 을밀대 등은 기념비적 창조물이기 때문에 신혼부부들이 주로 사진을 찍는 곳이다”고 설명한다.

폭우로 걱정되는 ‘아리랑 ’ 공연

헐~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며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다.

비가 오면 배경대의 색지가 망가지고 공연을 하는 이들이 감기몸살에라도 걸릴까 싶어 아리랑 공연이 취소되기 때문에 일행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태양절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이번 아리랑은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다.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공연을 볼 수 있다고 좋아하던 터였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더해 갔다. ‘그래도 곧 그치겠지.’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날씨가 좋아지기만을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저녁 6시 현재,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리고 있다. 이 정도면 비가 내린다고 표현할 것이 아니라 퍼붓는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평양 하늘이 워낙 맑다보니 번쩍번쩍 하늘에 쫙쫙 금이 가는 번개와 천둥소리도 요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행은 “저녁을 먹는 동안 비가 그칠 것이다” “마지막 날인데 공연을 안 하고 끝내는 것은 너무 아쉽지 않냐, 그런 차원에서 다음날이라도 공연을 해야 하지 않을까?” 등등 아리랑 보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아리랑 공연은 깜깜한 밤에 화려한 불빛 등의 무대 효과를 위해 공연이 저녁 8시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아직 얼마간의 시간이 남아 있지만 지금 상황을 봐서는 공연이 이뤄지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싶었다.

지난해 재개장한 옥류관

▲옥류관이 재개장해 옥류관 평양냉면을 맛 볼 수 있었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객원기자]
나는 그저 지난해 옥류관에서 점심 먹기로 한 일정이 있었지만 재개장을 위한 공사로 가지 못했었던 것을 떠올리며 ‘옥류관 평양냉면을 맛보지 않으면 평양을 다녀갔다고 말할 수 없다’는 말이 생길만큼 유명한 옥류관 냉면을 먹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1999년 북녘의 국가관광국에서 발행된 평양 관광안내 책자에는 옥류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옥류관은 대동강 기슭 옥류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옥류관은 3개의 관으로 이루어진 조선식 건물로 옥류관은 국내외 많은 사람들의 인상 속에 남아 있는 조선료리전문 식당이다.
옥류관에서는 각종 조선료리를 다 내지만 제일 인기 있는 것이 평양랭면이다.”

1960년 8월에 개관한 옥류관은 지난해 7개월 간의 대대적으로 개.보수를 통해 바닥에는 대리석을 깔고 내.외벽 전체와 조명 등을 모두 교체했다고 한다.

본관과 별관 외에도 길 건너편에 ‘옥류관 전습식당’이 있는데 이는 요리사 실습장이라고. 재단장한지 얼마 되지 않은 옥류관은 원래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3시까지만 문을 열기 때문에 손님이 늘 북적여 옥류관전습식당까지 만원이라 한다.

때문에 70여명이나 되는 우리 일행이 도저히 갈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옥류관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 북녘 민화협 성원들이 천신만고 끝에 자리를 마련했다.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도 공연이 없는 날인데 우리를 위해서 따로 공연을 해주고 또 옥류관에서도 문을 닫을 시간인데도 음식 봉사를 해주니 융숭한 대접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일행들은 냉면을 두 그릇, 세 그릇씩 먹으며 옥류관과 평양의 맛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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