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김양희 객원기자가, <겨레하나>가 주최한 북측 협력사업장 방문단 일원으로 5월4일부터 7일까지 3박4일간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지난해 11월달 이후 두 번째다. 평양방문 신청부터 소감을 정리한 김양희 객원기자의 평양방문기를 일기식으로 순차적으로 싣는다. 제목을 편의상 지난해와 구분하기 위해 <김양희 기자의 평양일기 Ⅱ>로 한다. / 편집자 주

김영실 안내원

▲ 김영실안내원(왼쪽)과 남측 한국폴리텍대학 박좌진 노조위원장. [사진-통일뉴스 김양희객원기자]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내 곁에 김영실 안내원이 앉았다. 스무 여덟 살 김영실 안내원은 김일성대 신문방송학과를 나온 재원이다. 학생 때는 평양학생소년궁전의 외국어 소조에서 공부를 했다한다.

“오~엘리트네.”

영실 안내원은 무심코 나온 내 말을 잠깐 못 알아들었다. 단어의 뜻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익숙치 않은 말에 어색했으리라.

애인 있냐는 질문에 “모든 청년 학생이 애인이죠” 대답하지만 이내 “애인이 있는 줄 알고 아무도 안 건드려 혼자다”고 한다.

지난해 6.15 행사 때 광주에 온 적이 있다는 영실씨는 남녘 첫인상이 그리 좋지 않단다.

“그래도 광주 하면 혁명의 도시라 기대를 했었는데 막상 가보니 외국어 간판이 왜 그리 많은지, 골이 다 아프더란 말입니다” 한다.

“남녘 사람들은 왜 그렇게 영어를 많이 씁니까? 아까도 엘리트라는 말을 썼는데, 난 외국어 소조에서 공부해서 다른 사람보다 영어를 많이 아는 편인데도 남녘 사람들 말은 통 못 알아듣겠습니다. 광주에 가서도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물었지만 나중엔 묻기가 그래서 그냥 넘어 갔습니다.”

영어를 너무 많이 써 골이 아팠다는 영실씨, “그래도 담번에 또 남녘에 오면 골 아파도 조금만 이해해줘^^ 골 안 아픈 사람들끼리만 모여 통일할 수는 없는 거잖아~그래줄 꺼지?”

양각도 호텔에서의 환영만찬

▲ 양각도 호텔 숙소에서 북측이 마련한 환영만찬이 열렸다. 남북 대표단(왼쪽부터 한상렬 공동대표, 리충복 북 민화협 부회장, 오종렬 공동대표)건배하는 모습.  [사진-통일뉴스 김양희객원기자]
양각도 호텔 숙소에 도착하니 북측의 환영만찬이 준비돼 있다.

일행은 준비해온 정장을 입고 탁자별로 나눠 앉았고 오종렬, 한상렬 공동대표를 비롯한 남과 북의 대표단은 따로 긴 탁자에 앉았다(북측 안내원들은 그 탁자에 앉은 분들을 주석단이라 불렀다).

식은 리충복 북측 민화협 부회장의 환영사로 시작됐다.

▲ 북 민화협 리충복 부회장이 환영사를 전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객원기자]
리충복 부회장은 “지나온 3월은 단순한 자연 계절적인 봄의 의미뿐 아니라 새 역사를 만든 태양의 봄으로 우리는 얼마 전 태양절을 인류 대명절로 뜻 깊게 보냈다. 특히 공화국의 존엄을 만방에 알리고 우리 민족이 휘황찬란하다는 것을 보였다. 그러나 통일의 길로 나서야 함을 절감하는 시기였다. 이번 방북 대표단은 통일 운동의 기수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이곳에 있는 동안 군대와 인민이 일심단결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며 평양의 동포들에게서 뜨거운 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오종렬 대표는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도 지척이다”며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의 아이들을 보니 본능적으로 안아주고 싶었다. 북이나 남이나 가릴 것 없이 우리 어린 아이들을, 또 조국강산을 손 맞잡고 함께 지키고 가꿔야 할 것이며 남이 찢어놓은 우리 민족의 아픔을 우리 스스로 치유해야 할 것이다”고 답했다.

이어 리충복 부회장과 오종렬 대표 등은 ‘조국은 하나다’는 구호에 맞춰 건배할 것을 제안했다. 이후는 북녘 음식들의 향연~

▲'조국은 하나다'구호와 함께 건배.  [사진-통일뉴스 김양희객원기자]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조미료 없이 담백한 음식들과 함께하는 룡성맥주 한 잔, 인풍 포도주 한 잔이란 딱 ‘세상에 부러울 자 누가 있으랴’다.

헐~ 그런데 비행기에 내리자마자 ‘시집갔나?’하고 물어보던 리동혁 안내원이 주석단에 앉아있다. 그리 높은 줄 몰랐는데 웬 주석단?

슬금슬금 다가가 “이리 높은 사람이었어요? 어른들 앉는 자리에 앉으시다니...” 했더니 리동혁 안내원 하는 말 “그것 가지고 놀라면 곤란하다구” 한다.

‘정말 높은 분이었나?’ 생각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직위가 높아서라기보다 겨레하나 담당 참사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앉은 것이라고 한다.

“왜~태어났니~ 왜~태어났니?~맥주 축내려 태어났지~”

환영만찬을 마치고 난 뒤 삼삼오오 짝을 이뤄 1층에 위치한 찻집이나 맨 윗층의 회전전망칸 식당에서 간단히 맥주를 한 잔 한다고 나섰다. 나도 민주노총에서 오신 분 등과 한자리를 차지하기로 했다.

그런데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고경훈, 로승일 안내원을 만난 우리는 이들을 가만 놔둘 리가 없다. 같이 한 잔 하자고 조르는 우리를 뒤로 하고 가는데 내가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을 했다.

“저 곧 있으면 생일인데 함께 맥주하며 축하해주세요!”
“아 그럼 한 잔만 하자.”

맥주잔이 하나씩 놓이자 고경훈 안내원은 나를 가리키며 “이 동무가 생일이라니 내가 노래를 한마디 부르겠습니다”하며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왜~태어났니~ 왜~태어났니?~맥주 축내려 태어났지~”
“한잔씩들 쭉 냅시다.”

헉~북녘도 이런 노래를 부르다니....정말 우리랑 똑같구나.
그렇게 우린 평양에서의 새날을 맞고 있었다.

2007년 5월5일

아침 일찍 방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호텔 측에서 생일축하를 해주기 위해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 내려 오냐는 전화였다. 생각지도 않은 일이라 느즈막하게 일어난 나는 초간단 고양이 세수를 하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북측 접대원동무들은 일일이 내게 “생일 축하합니다”며 인사를 건넨다. 식당에는 꽃다발과 미역국, 밥 그리고 단과자빵, 요거트 등으로 구성된 소박한 생일상이 차려져 있다. 함께 온 일행들도 생일 축하한다고 여기저기서 인사를 전한다.

‘김원균 명칭 음악대학’ 참관

▲ '김원균 명칭 음악대학'의 모습. [사진-통일뉴스 김양희객원기자]
▲ 김영균 명칭 음악대학 대강당에서 기념촬영. [사진-통일뉴스 김양희객원기자]
오늘 첫 번째 일정은 ‘김원균 명칭 음악대학’ 참관이다.

대동강 문수구역에 위치한 김원균 명칭 음악대학은 4만8000여 평의 8개 호동으로 구성됐다. 이 학교는 원래 1949년 3월 1일 창립된 국립음악학교의 명칭이 바뀐 것으로 지난해 2월 새로 건립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이름이 개칭됐다고 한다.

▲북녘의 ‘애국가’ ‘김일성 장군의 노래’ ‘수령숭배찬가’ 등을 작곡한 김원균 음악가의 동상.  [사진-통일뉴스 김양희객원기자]
음악가 김원균은 북녘의 ‘애국가’ ‘김일성 장군의 노래’ ‘수령숭배찬가’ 등을 작곡했으며 1960년 7월 이 대학 학장으로 부임했다.

북녘의 대학 중 ‘김일성 종합대학’이나 ‘김정숙 사범대’처럼 이름이 들어간 대학은 여럿 있지만 그 안에 ‘명칭’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은 김원균 명칭 음악대학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해설 강사는 “작곡가 김원균과 음악대학이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해 5월 9일 이곳을 직접 참관하며 “음악대학은 우리나라의 믿음직한 음악 예술인 양성 기지입니다”고 교시했다.

성악학부, 민족기악학부, 양악기악학부, 작곡기악학부 등 4개의 학부로 나눠져 있으며 24석, 36석, 외국어 강의실 등 30여 개의 강의실과 전공수업실, 연습실, 전자열람실, 컴퓨터 조종실, 체육실, 음악당, 기숙사 등을 갖췄다.

특히 음악당에는 60석, 83석, 300석 규모의 소강당이 3개가 있고 800석 규모의 대강당에는 중주연습실, 종합연습실, 음향조종실, 조명조종실, 영사실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800여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는 이곳은 일반 학생들뿐만 아니라 공훈배우 등의 재교육도 담당하고 있어 평생교육의 산실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재능 있는 음악 예술인을 많이 키우는 것은 주체음악예술 발전의 장래와 관련되는 근본 문제의 하나이다”며 “예술 교육에서는 한 사람의 예술인을 키워도 예술의 당적 사명을 알고 예술로 당과 혁명위업을 받드는 혁명적 예술인으로 육성하여야 합니다”고 교시했다.

▲ '김원균 명칭 음악대학' 학생들의 공연 준비모습. [사진-통일뉴스 김양희객원기자]
인민예술가 허재복, 안정호 등을 배출한 이곳은 졸업생 60% 이상이 최고 기량을 자랑하는 만수대 예술단과 보천보 전자음악단에 진출하고 있다한다.

전은경 해설강사는 “수령님은 늘 교육이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고 말씀하시며 교육사업에 관심을 갖고 배려한다”며 “지난 1966년 2월 자택에서 쓰시던 피아노를 직접 하사하셨다”고 전한다.

음악당 중앙홀에는 푸른 벌판에서 아이가 뛰놀고 있는 커다란 그림이 전시돼 있다.

김원균 명칭 음악대학의 전은경 해설강사는 “지상낙원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 그림은 선군정치가 있는 한 영원히 푸를 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일행은 학생들에게 폐가 되겠지만 각 연습실과 강의실을 돌면서 시설을 지켜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옥류금을 연주하는 학생.  [사진-통일뉴스 김양희객원기자]
매 강의실과 연습실에서는 최고의 예술가가 되기 위한 학생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한 강의실에서는 옥류금이라는 다소 낮선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여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

1970년대 초 북한에서 전통 국악기 와공후를 개량해 새롭게 만든 옥류금은 얼핏 들으면 하프, 피아노 소리 같기도 하고 가야금 기타소리 같기도 한데 그것이 조화되어 구슬 같은 소리가 흘러나온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옥류금이 현대 음악 발전의 높은 요구를 보장하면서 질적으로 제작 완성하도록 악기의 형태와 크기, 줄 수, 변음장치, 음량과 음색, 목각 장식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세심하게 지도하고 악기가 다 완성된 다음에는 그 악기가 구슬 같이 맑은 소리를 낸다고 해 직접 옥류금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소강당에서는 양악기악학부의 시험이 벌어지고 있었다.

▲소강당에서는 양악기학부의 시험이 한창이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객원기자]
갑자기 들이닥친 낮선 손님들에 평가를 담당하는 선생들도 놀랄 정도였으니 시험 당사자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그러나 그들은 당황함을 뒤로하고 혼신을 다해 연주하고 있었다.

대강당은 남녘의 웬만한 대극장에 비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공연장의 시설을 자랑하고 있다.

정말 고맙게도 학생들과 졸업생들로 구성된 관현악단이 우리 일행을 위해 공연을 보여주기로 했다. 몇 안 되는 관객들이지만 이들은 더 없이 훌륭한 공연을 보여주고 우리 일행도 열띤 호응으로 화답했다.

공연을 마친 지휘자에게 오종렬 대표는 “훌륭한 예술인이 되어 통일에 이바지하는 역군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핵 구호판이 올해엔 ‘경제강국건설’로 교체돼

▲지난해 핵실험이 성공한 것을 과시하기 위한 내용 위주인 핵구호판은 올해 경제강국 건설이라는 목표를 위해 함께 뛰자는 내용으로 전면 교체됐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객원기자]
교내의 본관과 음악당 몇 개의 강의실만을 둘러봤을 뿐인데 학교 규모가 워낙 커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교내에는 시내 곳곳에 있는 선전 구호판도 따로 있을 정도다. 거리에서 찍지 못한 ‘올해 공동사설에서 제시된 전투과업을 철저히 관철하자’는 구호판 사진을 이곳에서 찍는다. 허둥지둥 뛰어다니는 나를 보고 로승일 안내원은 “뭐 그런 걸 다 찍나?” 한다.

북녘 안내원에게는 늘 보는 구호판이지만 북녘이 현재 가장 중시하거나 하고자 하는 말을 써 놓은 구호판은 훌륭한 기사거리라 난 오히려 못 찍을까봐 안달이 났었다.

지난해 핵실험이 성공한 것을 과시하기 위한 내용 위주인 핵구호판은 올해 경제강국 건설이라는 목표를 위해 함께 뛰자는 내용으로 전면 교체됐다.

북녘은 올해 신년사설에서 경제 재건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해 로 안내원은 “인민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 경제강국을 건설, 일대 혁신을 이룩하자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핵실험으로 국제적으로 고립, 엄혹했던 시기를 보낸 북녘은 2.13합의와 함께 화사한 봄을 맞으며 경제강국 건설에 온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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