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마는 달리고 싶다.’ 이 표어는 민족적 염원을 넘어 하나의 민족적 정서로까지 곰삭혀 왔다. 이제 그 철마(鐵馬)가 17일 군사분계선(MDL)을 넘게 됐다. 반세기가 넘는 일이다. 56년 동안 끊겼던 남북 간 철로를 다시 이어 역사적인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시험운행이 이뤄지는 것이다. 경의선 시험운행구간은 남측 문산역에서 북측 개성역까지이고, 동해선의 경우 북측 금강산역에서 남측 제진역까지다. 이를 단순한 기술공학적인 연결로만 치부할 수 없다. 이와 관련 통일부가 “5.17 남북열차 시험운행은 분단으로 단절된 민족의 혈맥을 다시 잇고, 철도개통의 토대를 마련하는 한편, 군사적 신뢰구축을 촉진하는 등의 의미가 있다”고 나름대로 의미부여를 한 것은 일리가 있다.

이번 운행이 1회성이고 임시운행이라고 해서 그 역사적 의미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하나가 됐다는 것은 둘이 될 수 있고 또 둘은 열이, 열은 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임시는 곧 정규를 예약하기 때문이다. 이번 임시운행은 한마디로 철마가 언제든지 정식으로 달릴 수 있는 단초를 확보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특히 이번 임시운행은 남북간 일련의 군사회담을 통해 이뤄졌다. 지난 11일 제5차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공동보도문이 합의됐으며, 같은 날 ‘동·서해지구 남북열차시험운행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잠정합의서’가 채택되었다. 이어 13일에는 ‘남북철도연결구간 열차시험운행과 관련한 합의서’가 채택되었다. 그간 50년 넘게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서로 총칼을 겨눴던 남과 북의 군이 합의를 해서 마침내 철마가 군사분계선을 통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시험운행은 2000년 6.15공동선언의 직접적 산물이다. 따라서 철마는 ‘6.15시대’를 보다 속도감 있게 전진시킬 것이다. 그간 남북 철도 연결에는 많은 함의가 있어 왔다. 북측에선 일찍부터 남북 철도 연결이 고 김일성 주석의 교시로 내려왔다. 6.15공동선언 당시 김대중(DJ) 대통령은 남북 철도 연결을 두고 ‘철의 실크로드’라고 불렀다. 이후 제2차 정상회담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경의선 통일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철마를 타고 싶은 열망은 DJ도 컸다. DJ는 2006년 철마를 타고 특사로 방북하길 희망했다. 이제 철도 연결은 남북관계 발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 확실하며, 더 나아가 남북 철도의 정기 운행과 함께 한반도종단철도(TKR)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부풀리게 한다.

이처럼 철마는 한없이 달려야 하는 데도 시험운행에서조차 제동을 거는 세력들이 있어 우려된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16일 “남북화해와 6자회담 등 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이는 남북관계를 6자회담과 속도를 맞춰 진행해야 한다는 이른바 ‘속도조절론’의 우회적 표현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미국의 한 전직 관료가 “경의선, 동해선 시험운행은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열차티켓일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이들 미국측 인사들의 발언은 월권행위를 넘어 상식 이하의 발언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제 남북관계가 6자회담을 견인할 수도 있으며, 칠천만 겨레가 열차를 타게 된다면 티켓 가격은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게다가 보수측 일부에서 열차 운행을 BDA 문제와 연결시키기도 하는데 이같은 행태 역시 삼가야 한다. 달리는 철마에 가편(加鞭)은 못할망정 고삐를 잡아당기는 망동을 해서는 안 된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그래서 철마는 달려야 한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