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김양희 객원기자가, <겨레하나>가 주최한 북측 협력사업장 방문단 일원으로 5월4일부터 7일까지 3박4일간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지난해 11월달 이후 두 번째다. 평양방문 신청부터 소감을 정리한 김양희 객원기자의 평양방문기를 일기식으로 순차적으로 싣는다. 제목을 편의상 지난해와 구분하기 위해 <김양희 기자의 평양일기 Ⅱ>로 한다. / 편집자 주

▲평양 순안공항 간이매대에는 화장품을 비롯한 각종 민예품이 관광객을 맞는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순안공항에 도착한 참관단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평양신문사 기자. 일행의 사진을 찍는 그를 취재하고 싶었으나 그는 마감이 바쁜지 우리 일행의 사진을 찍고는 황급히 떠났다.

순안공항에는 임시 간이매대가 생겼다. ‘아리랑’ 공연으로 북녘을 오가는 해외여행객들이 급증하자 생긴 것으로 국제발명전시회에서 2번이나 금메달을 받았다는 화장품 ‘봄향기’ 세트를 비롯, 인형, 그림, 각종 민예품 등을 선보이고 있다.

일행이 봄향기에 관심을 보이자 “세트로는 26유로지만 스킨, 로션, 에센스 등 개별로도 살 수 있습니다, 화장품마다 각각 인삼이 들어있어 살결이 고아집니다”며 “여성들에게 선물하면 좋습니다”고 화장품을 권한다.

“다음에 남쪽으로 갈 때 사겠습니다.”

인사를 건네곤 일행은 숙소인 양각도 호텔로 가기 위해 조별로 나뉘어져 차에 오른다. 차에 오르면 곧이어 하는 일은 인원점검. 혹시라도 버스에 타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늘 이동 전엔 인원수를 센다.

하나, 둘, 셋... 세다보니 오히려 2명이 늘었다. 북측 안내원 몇 명이 차에 탄 걸 남측 참관단인줄 알고 함께 셌나 보다.

‘겨레하나’ 한충목 운영위원장은 “예전에 320명과 함께 평양에 왔는데 행사 처음부터 끝까지 인원수가 한 번을 안 맞았었다”고 말해 일행은 한바탕 웃었다.

‘남측 사람 10명 줄 세우기보다 참새 10마리 줄 세우는 것이 쉽다’는 북측 안내원의 말대로 북측 안내원들이 보기에는 우린 여전히 말 안 듣는 피곤한 사람들일 것이다.

깔끔하고 활기찬 양각도 호텔로 가는 길

평양거리 곳곳에는 김일성.김정일화 간판이 서있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간신히 인원을 맞춰 양각도 호텔로 향한다. 쌀쌀한 서울과는 달리 이곳은 안개가 끼어 따뜻한 것을 넘어 초여름 날씨다. 북측 안내원은 “기상예보에서 오늘 기온이 26도까지 오른다 했다”고 전한다.

창 밖에는 강가에서 한가로이 낚시를 하는 아저씨, 데이트를 하며 아이스크림을 먹는 연인, 일곱 여덟씩 모여 도시락을 먹고 있는 모습 등 평양에 모처럼 평화로운 분위기가 펼쳐진다.

분홍색과 자주색이 유행하는 듯 여성들은 봄처럼 화려한 색상의 옷들을 입고 양산으로 멋을 한껏 뽐냈으며 평양 시내의 건물들은 고 김일성 주석의 95돌 생일인 태양절을 맞아 분홍, 초록, 주황색 등으로 도색을 해 산뜻하다. 조경에도 신경을 쓴 것인지 거리의 가로수들 또한 깔끔히 정리돼 있다.

북녘 거리의 상징물인 구호판도 지난해에는 핵실험 성공을 자축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수령님 탄생 95돌 맞는 올해 경제 강성대국 건설에서 일대 전기를 마련하자’, ‘올해 공동사설에서 제시된 전투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자’ 등으로 경제강국을 이루자는 내용이 주다. 또한 평양 곳곳에는 김일성화와 김정일화 간판이 서있다.

거리에는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나왔을까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전차와 자동차, 2층 버스 등이 시내를 누비고 있다. 거리에 늘어난 사람들만큼이나 자동차수도 급격히 늘었다.

강변에는 모래채취가 한창이고 시내 곳곳에는 건설 붐이 일고 있는지 곳곳에 공사현장이 있다. 대동강에는 2~3명이 뱃놀이를 하는 등 소풍 나온 학생들 모습이 보인다.

평화자동차는 힘 있고 든든한 차 ‘뻐꾸기’라는 광고 문구가 적힌 입간판을 시내 곳곳에 세워두고 거리에는 지난해 가을 보였던 군고구마 군밤매대보다 곱절은 많은 청량음료와 간식 등을 파는 임시 매대가 서 있다.

▲ 평양 거리 임시매대의 모습.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가을에는 군밤매대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청량음료를 파네요.”
“아 포장마차?”
“헉~북에서도 포장마차라고 부르나요?”
“아니 남쪽에서 그리 부르더만...”

이동 중 안내원은 연신 주변을 설명하기에 바쁘다.

광복거리는 지난 1989년 7월에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의 유치를 계기로 부근에 대단위 체육촌을 건설하면서 조성됐다. 또한 청춘거리는 우리의 태능선수촌과 비교되는 곳으로 안골체육촌으로도 불리는 곳인데, 이곳에는 태권도 전당, 수영, 배드민턴, 복싱 등 10개의 경기장과 체육인 식당, 피로회복관, 골프연습장(1990년 건설, 30타석) 등 부대시설이 들어서 있다.

금수산기념궁전을 지나며

금수산기념궁전을 지나자 북측 안내원은 “수령님이 계신 곳”이라고 설명한다. 금수산기념궁전의 정면에는 김일성 주석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안내원의 설명에 따르면 궁전의 길 양측에는 100여 정보의 수목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는 세계의 진보인사 등이 김일성 주석의 영생을 기원하며 보내온 나무들을 심은 것이라고 한다. 궁전의 돌 울타리에는 영생과 만수무강의 의미인 학이 새겨져 있다.

궁전의 주변에는 커다란 꽃이 곳곳에 놓여 있고 꼭 우리의 국회의사당처럼 보초가 있어 주변 경계를 살핀다. 저 멀리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입간판이 보인다.

베트남의 호치민, 중국의 모택동의 시신이 있는 곳은 우리가 관광지처럼 쉽게 가지만 이곳은 참관금지구역으로 설정돼 있어 국가보안법에 저촉되기 때문에 남측 인사들은 갈 수 없는 곳이다.

거리엔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뛰논다. 남측 참관단이 단일기를 흔들자 해맑게 웃으며 두 손 높이 들고 흔든다. 역시 아이들의 웃음은 사상과 이념, 그리고 국가보안법을 뛰어넘고 있다. 2.13합의 이후 평양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만큼이나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만경대고향집 참관

▲만경대 고향집을 찾은 북측 사람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만경대 고향집 앞에서 기념촬영.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점심을 먹은 후 일행은 만경대고향집으로 향한다.

1970년 10월 개관한 만경대고향집은 김일성 주석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쓰던 물건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만경대를 방문하는 것은 조선의 심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이곳을 오지 않으면 조선을 방문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 한다. 이곳은 지난해 말 현재 1억 1000만 여명이 방문을 했다고 한다.

만경대혁명사적관에 들어서자 ‘1912. 4. 15 수령님의 탄생은 우리 민족의 력사에 일찌기 없었던 대통운이였으며 대경사였습니다. 수령님께서 탄생하심으로써 우리 민족의 새 력사가 시작되고 주체의 새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교시가 크게 새겨져 눈길을 끈다.

만경대의 오영실 해설강사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7살 때 3.1운동에 참가했는데 달려가는 어른들을 따라가기 힘들어 맨발로 뛰면서 참가했다한다.

생전에 “3.1 인민 봉기는 나를 인민의 대오 속에 세워주고 나의 망막에 우리 민족의 참다운 일상을 새겨준 첫 계기였다”고 밝힌 김일성 주석은 “가족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애국자”라고 말했다 한다.

▲김 주석이 생전 즐겨 불렀던 '사향가'.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한상렬 대표(왼쪽)와 만경대 고향집 오 해설강사(오른쪽).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설명을 듣고 한상렬 대표는 오 해설강사에게 “설명하느라 수고 많았지만 수고하는 김에 노래까지 청해 듣자”한다.

일행이 박수를 치자 오영실 해설강사는 잠시 쑥스러워하다가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혁명투쟁을 하면서 직접지은 노래라는 사향가를 부르며 이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수령님이 80 고령에도 고향을 생각하며 자주 불렀던 노래로 수령님이 생각나 눈물이 납니다.”

만경대고향집은 태양절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개인과 단체 등 많은 주민들이 찾아와 참배를 하고 있다. 고향집과 만경대를 소개하는 비석 앞에는 이들이 놓고 간 꽃다발이 수북이 쌓여 있다.

오영실 해설강사는 한상렬 대표에게 “이번에 노래를 시켜 저를 울렸으니 다음번엔 제가 시키겠습니다. 준비하십시오” 한다.

그리고는 오영실 강사는 내게도 아는 체 인사를 건넨다.

“평양에 몇 번 왔더랬지요?”
“아 예,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늘 수첩을 들고 꼼꼼히 적어 알아봤습니다.”

누군가 “기자라서 그렇다” 하자 오영실 강사는 “기사를 열심히 써 통일을 앞당기는데 기여하시길 바랍니다” 한다.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참관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의 가야금소조의 연습모습.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다음 참관 장소는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이다.

1989년 5월 2일 준공된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은 어머니가 자식을 두 팔을 벌려 다정스레 맞아주는 그런 설계디자인 개념으로 건축된 건물로 대지 30만㎡, 건축면적 10만3천㎡. 높이 48m, 13층 건물이며, 500여 개의 부속실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는 과학, 무용, 수예, 컴퓨터, 장기 등 120여개의 소조로 구성된 특별활동을 할 수 있으며 10만 장서가 소장된 도서관, 2000여석의 극장, 체육관 등을 갖추고 있다. 이곳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하루 5000여명에 이르고 교직원만 해도 700여명에 이른다.

이곳 말고도 평양에는 또 다른 학생소년궁전이 있고 우리로 치면 시, 군별로 학생소년궁전이 있어 학생들은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언제나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건물에 들어서면 ‘어린이들은 우리나라의 보배들입니다. 앞날의 조선은 우리 어린이들의 것입니다, 김일성 1989.4.15’라는 대형 글씨가 새겨져 있어 북녘에서 어린이를 얼마나 위하는지를 알 수 있다.

▲서예소조 광복당상소학교 4학년 김윤철 군이 '조국통일' 붓글씨를 써내려가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우리는 무용소조, 가야금소조, 서예소조, 수예소조 등을 둘러봤는데 특히 서예소조의 광복당상소학교 4학년 김윤철 군은 “1주일에 3번씩 2년여 동안 이곳에 와서 학습을 한 것”이라는데 ‘조국통일’이라는 글씨를 아주 멋지게 써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곳에는 특히 컴퓨터 교육의 육성을 강조하며 컴퓨터 소조를 운영, 소학교 학생들이 분주히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공부 중이었다.

컴퓨터실에는 특히 ‘콤퓨터 교육을 강화하여 콤퓨터 수재들을 많이 키워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과학 기틀을 발전시키려면 학생들이 자만하지 말고 선진과학기술을 열심히 배우도록 하여야 합니다’ 등의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교시가 적혀 있다.

오늘은 정규 공연이 있는 날이 아닌데도 일행을 위해 예술소조에 있는 학생들이 공연을 보여주기로 했다.

통일무지개, 휘파람, 고향의 봄 등 남쪽에도 잘 알려진 노래와 아코디언 연주, 작은 몸에 어떻게 저리 훌라후프를 많이 돌릴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아이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공연이 끝나고도 아이들과 기념촬영을 하느라 자리를 못 뜨고 있는 일행들.  [사진-통일뉴스 김양희 객원기자]
일행은 아이들의 모습에 연신 환호한다. 공연이 끝나고도 일행은 아이들과 연신 사진을 찍으며 자리를 뜰 줄 모른다.

만경대학생소년 궁전 앞 광장에는 학생들 여럿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아이들 중에는 수준급의 실력을 자랑하는 아이도 있으니 인라인을 탄지 한참은 족히 돼 보인다.

“인라인 타는 아이들도 있네요.”
“뭐라고? 우리는 롤라스케이트라고 하는데.”
“우리도 옛날에는 롤라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저건 최신형 인라인인데.”
“저것을 탈 수 있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이지요?”
“저기는 롤라장으로 방과 후 이곳에 온 아이들 중 타고 싶은 아이는 누구나 탈 수 있습니다.”

날씨가 춥기도 했지만 지난해까지 만해도 북핵문제로 엄혹했던 그곳에서 인라인을 타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었으나 그 광경이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아이들은 가장 먼저 평양을 평화롭고 여유로운 도시로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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